인간과 말 봄날의책 세계산문선
막스 피카르트 지음, 배수아 옮김 / 봄날의책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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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적으로 말, 언어에 관심이 많다. 말은 한 개인의 우주고 세계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단지 소리를 내는 게 말이 아니라 사고를 드러내는 게 말이라는 확고한 믿음이 있다. 이 책은 제목도 끌리고 목차도 끌리고 번역자도 끌리고 출판이름도 끌리 책이다. 게다가 이 책은 내 로망, 무게가 가벼운 책. 출판사에 꾸벅 절하고 싶다.

 

읽다보니 말에 관한 예찬론이다. 저자에 대해서 전혀 모르지만 저자는 아마도 창조론을 절대적으로 믿는 사람인 듯 싶다. 이런 부분은 설득력이 전혀 없진 않는데 긍정을 할 수는 없다. 언어의 선험성에 대해서는 이견의 여지가 없지만 선험적 기원을 읽다보면 저자는 창조론쪽으로 기운다. 난 진화론자 입장이고.

 

책의 미덕은 저자가 지닌 감각의 과잉에서 나온다. 과잉이 생산적인 좋은 예시이다. 말을 지나치게 사랑한 나머지 말에 관해서만 산문시 한 권을 쓸 수 있는 능력. 읽으면서 감각의 과잉에 관해 생각했다. 이 책을 읽다보면 저자는 언어에 대한 지나친 감각이 통찰력까지 나아간다.

 

"말은 다른 존재로부터 앞서 주어진 것으로부터 인간에게 온다. 그리고 한 인간에게서 다시 다른 인간에게로 전달되려고 한다. 말이 있으면 이미 거기에는 다른 인간이 있는 것이다."(84)

 

말을 하면서 상대가 거기에 있다고 예상한다. 그런데 가끔 내 입을 떠난 말이 상대에게 전달되지 못한 채 말로만 남을 때 좌절과 후회가 있다. 이럴 때 말이 공허하다고 느낀다. 침묵도 말의 한 종류로 언어 이전에 침묵이 있었다고. 침묵의 가치에 대한 관점을 제시한다. 저자는 말 그자체 보다는 침묵 혹은 그와 비슷한 말을 애정한다. 시인의 언어에 신의 언어과 같은 자격을 부여한다. 저자의 문장도 산문시를 읽는 느낌이다.

 

 

덧.

나 역시 지나치게 신체적 감각이 발달했지만 부정적 측면이다. 가령 유리문을 열때 손목이 조금 아프다 싶으면 다음날 부어오른다. 앉을 때 손을 잘못 짚어 손가락이 조금 아프다 싶으면 다음날 손가락이 부어 오른다. 침 맞으러 한의원에 간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스마트폰을 터치하면 손끝이 찌릿찌릿해서 전기가 오는 거 같다. 바닥에 발뒤꿈치가 닿으면 아파서 잘 때 발도 배게를 해줘야한다. 물만 마셔도 물이 식도를 넘어서 위를 거쳐 십이지장, 대장까지 닿는 경로를 느낄 수 있다. 농담삼아 연약해서 살기 힘들다고 말한다. 쓸데 없는 감각이 지나치게 발달해서 통증이 삶의 일부를 이루는데 익숙해져있다. 무익한 감각을 유익한 감각으로 전환하는 방법은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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