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3월은 일년 중 분기점같은 기분이 난다. 일기예보에서는 봄바람이라고 호들갑떨지만 여전히 겨울바람으로 내복을 벗기에는 바람이 뼛속을 파고 든다. 그래도 겨울 끝물이라는 생각에 견딜만하다. 빈국립미술사박물관에 있는 피터 브뢰겔의 그림이 주인공인 줄 알고, 오랜만에 아트시네마에 갔다. 중년판 <비포 선라이즈>같은 이야기를 씨실로 브뢰겔의 그림 이야기도 있고 브뢰겔의 그림이 있는 빈미술사박물관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2.

영화는 캐나다 여자가 연락도 잘 안 하는 사촌이 죽음을 앞두고 있다는 연락을 병원측에서 받고 빈으로 오면서 시작한다. 여자는 사촌이 오래전에 보내줬다는 오스트리안 그린색 코트를 입고 미술사박물관에서 지도를 들여다본다. 박물관에서 관람객이 그림을 올바른 태도로 관람하는지 지켜보는 일을 하는 남자의 내레이션을 통해 이야기가 전개된다. 정해진 면회 시간외에 남는 많은 시간에 당황스러워하는 이방인 여자와 앉거나 서서 관람객을 보는 일을 하는 남자. 두 사람의 공통점은 시간이 많다. 그리하여 비엔나의 이곳저곳을 남자는 여자한테 안내해준다. 남자가 이런 말을 한다. 자신이 일 외에는 아무데도 돌아다니지 않았다는 걸 여자를 통해 깨달았다고. 공간은 공유하는 대상이 누군가에 따라 전혀 새로운 곳이 될 수 있다. 남자는 이방인 여자와 함께 익숙한 공간을 새롭게 바라보는 행운을 얻는다. 덤으로 여자의 질문으로 남자의 일상이 건조한 걸 깨닫게 된다. 일상과 습관이 건조해지는 건 극적인 자극의 부재라기 보다는 익숙함에 있는데 이방인은 그 익숙함에 질문을 던진다. 질문과 함게 일상적 습관은 거리두기가 가능해지고 객관화를 통해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이 영화는 러브스토리가 아니지만 내가 러브스토리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 이유이다.

 

3.

왜 서로 모르는 남자와 여자의 이야기를 교차시키면서 미술관이야기를 하는가. 사람의 삶이 미술관에 소장된 그림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림은 대체로 같은 미술관의 같은 자리에 있다. 그림은 남자와 같은 입장으로 미술관 붙박이다. 한결같은 그림을 새롭게 보기도 하고 진부하게 보기도 하는 건, 관람객이다. 미술관의 주인은 겉으로 보기에는 그림같지만 그림에 생명을 불어넣는 건 보는 이의 시선이다. 남자는 지루한 시간을 보내는 법에 관해 이야기한다. 관람객을 바라보거나 그림에서 숨은 그림 찾듯이 전에 보지 못했던 점을 찾으면서 시간을 보낸다. 새로운 점을 찾으려는 적극적 취미가 그림을 새롭게 보게 하듯이, 반복적이고 단순한 일상도 그 일상을 살아내는 주체의 태도에 따라 새롭게도 보이고 지루하게도 보인다. 가끔씩 영화처럼 이방인이 들아와 함께 봐 주면 반복적 일상에서 놓쳤던 걸 찾아내는 소중한 시간이 펼쳐진다. 보존된 그림이 살아있기 위해서 관람객이 필요하듯이, 일상을 이어가기 위해서 우리도 나 이외의 사람들과 관계를 필요로 할지 모르겠다.

 

4.

한편으로 미술'관'사에 대해 생각지도 못했던 점을 제시하기도 한다. 미술관은 언제부터 있었을까. 프랑스 혁명 후 그림이 소수의 전유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혁명정신으로 루브르가 세워졌다고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시민정신의 계승은 단절되는 거 같기도 하다. 그림은 일종의 속지주의를 따르기 때문에 접근성이 용이하지 않은 편이다. 혁명정신에 위배되는 현실. 그리고 미술관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에 대한 전개도 이루어진다.

 

 

5.

피터 브뢰겔의 그림에 대해서는, 도슨트의 설명을 그대로 보여주기도 한다. 브뢰겔이 그린 서민 풍속화에 대한 미술사적 의의에 대한 설명이 주를 이루기도 하면서 남자가 보는 주관적 시점이 첨가되기도  한다. 집에 돌아와서 브뢰겔 책을 다시 펼쳐보는 동기부여도 해 주고.

 

6.

집에 오는 길에 후배와 미술관에서 일하는 남자의 직업에 대해 말했다. 꿀직장이라고. 미술관에서 관람객 감시(?)하는 일 하고 싶다고ㅋ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