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그것이 미술사일까? - 서양미술사 400년의 편견과 오류
제임스 엘킨스 지음, 정지인 옮김 / 아트북스 / 2005년 3월
평점 :
절판


제임스 엘킨스의 <그림과 눈물>을 아주 흥미롭게 읽고 주문했다. 난 별 세 개를 왠만하면 주지 않는데 별 세 개로 낙점했다. 책이 형편없거나 한 게 전혀 아니라 내 독서 목적과는 너무 거리가 멀어서다.  

책의 주제가 미술 또는 미술사에 관심있는 일반 독자를 위한 게 아니다. 미술에 관심있는 일반 독자가 읽지 말란 법은 없지만 서술 방식이 불친절하다. 책 전반에 걸쳐 전달하려는 저자의 의도는 충분히 이해되지만 미술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을 위한 접근방법일 수 있으므로 흥미가 생기지 않는다.   

지상의 모든 미술사가 서양, 특히 유럽중심주의라는 걸 서술하기 위해 여러 (아마도) 저명한 미술사가들이 취한 관점을 간략하게 분석해서 나열한다. 참 재미없게 읽은 부분이다. 미술사를 공부했거나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엘킨스가 이 책 속에서 던진 여러 가지 질문들이 예사롭지 않게 다가올 수도 있다.  

물론 나 역시 느낀 바가 많기도 했다. 내가 그림을 좋아하는 게 유럽 회화에 한정돼 있으며 동양화에 문외한일 뿐 아니라 관심도 희미한 이유는, 엘킨스의 지적대로 글이라는 도구의 힘 때문일 수 있다. 많은 자료들이 서양화에 집중되어 있고 내가 접근할 수 있는 자료의 범위를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그럼 이런 의문이 생긴다. 한국인 미술사가들 중 한국미술 내지는 동양미술사가를 떠올리기 힘다. 내 관심 부족이 첫번째 이유겠지만 또 하나는 오주석 씨만큼 알찬 글을 쓴 사람이 없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싶다.  

언어의 권력은 이미지를 포함한 문화 전반을 다르게 보도록 이끌 수 있다. 서양미술보다 한국미술이 더 접근하기 어렵게 여겨진다. 이는 한국 미술사가들 탓도 크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원스 SE (슈퍼쥬얼 케이스) - 2007년 인디영화 최고의 화제작!감독, 주연배우 음성해설수록
존 카니 감독, 글렌 한사드 외 출연 / 아인스엠앤엠(구 태원) / 2008년 6월
평점 :
품절


지난 금요일, 바람 불며 비가 사선으로 내렸다. 우산은 뒤집어지고 비는 고스란히 옷에 와 닿았다. 출시되기 전에 주문해서 출시되자마자 받고 뜯지도 않고 지내다 금요일...드디어 개봉했다. 감독의 말대로 비오는 날 뮤직 비디오처럼 틀어놓고 차도 마시고 뒹굴거렸다. 이런 순간을 행복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  

극장판과는 조금 달랐다. 내 기억이 맞다면 가이의 회상 장면이 극장판에는 없었는데 디비디에는 들어갔다. 내러티브상 큰 변화가 아니었고 음악이 흐르고 영상이 나오는 그런 정도였다. 여전히 영화는 달콤했고, 파란색 후버 청소기를 끌고 더블린 시내를 누비는 걸의 모습은 다시 봐도 인상적이다.  손 때묻은 기타에서 풍기는 잔잔한 여운처럼 음악은 격렬하면서도 서정적이어서 마음을 적신다.   

삶을 살아간다는 게, 또 사랑을 하는 게 꼭 극적인 게 아니라 가랑비처럼 주어진 시간을 서서히 메우는 거라는 걸 영화는 말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 The Curious Case of Benjamin Button
영화
평점 :
상영종료


걸어서 십 분 거리에 있는 집 앞 멀티플렉스는 유난히 커플들이 많이 오는 극장이다. 오늘 발렌타인 데이고 토요일이며 저녁이라 왠만하면 가지 않으려고 했지만 짬나는 시간이 아까워 극장으로 향했다. 영화 시작 30분 전에 도착했고 역시나 커플들이 득실거렸으며 <벤자민 버튼>은 딱 1좌석 남아있었다. 좌석이 나쁘면 다시 돌아오려고 했는데 남아있는 좌석은 '명당'이었다. 예매했던 누군가가 커플들 꼴보기 싫어 취소한 건 아닐까 상상했다. 한 가운데 좌석은데 양 옆으로 커플들의 대화까지 엿들으면서 기나긴 영화를 봤다.  

전형적인 할리우드 영화로 적절한 감동과 교훈이 곳곳에 드러난다. 삶은 누구에게나 공평해, 그러니까 부러워할 것도 없고 슬퍼할 것도 없어. 그저 주어진 시간을 충실히 다해 살아가면 돼, 하고 말한다.

거꾸로 가는 생체 시계를 가지고 태어난 벤자민. 늙은 모습으로 어린 시절을 보내고 나이들수록 젊어지는 벤자민의 일생 주기는 어쩐지 처절하다. 나이드는 게 그러니까 꼭 나쁜 것만은 아니고, 젊다는 게 꼭 좋은 게 아니야,하고 역설하고 있지만 나이들어가고 있는 내 입장에서, 맞아하고 맞장구가 잘 쳐지지 않는다. 세월의 두께가 눈가를 비롯한 얼굴 곳곳에 드러나는 요즘은, 흥분도 덜하고 욕심도 적어졌지만 동시에 감동도 덜하고 희망도 절망도 부질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계속 살아가도 좋지만 다른 삶을 살아도 괜찮아(평소에 이렇게 생각했는 데 세상에나, 이 말이 영화 속에 나온다!)하는 태도는 젊음이 사라져가는 증거가 아닐까, 싶다.  

<태풍 태양>에 이런 대사가 있다. 젊음은 미래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과거를 돌아보지도 않는다. 이십 대에 가졌던 자신감은 사라진지 오래고 그 자리를 체념으로 채워 넣는다. 체념은 자신의  좌표가 어디에 있든 마음의 평화를 찾을 수 있는 방법이다. 젊은 외모를 잃어버려서 슬픈 게 아니라 어린 시절에나 가질 수 있는 무모한 열정을 잃어버려 나이든다는 건 슬프다.  

이렇게 심각한 영화는 아닌데, 혼자 심각해졌다. -.-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프레이야 2009-02-20 2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태풍태양의 대사를 기억하고 계시군요. ^^

넙치 2009-02-25 00:59   좋아요 0 | URL
요 대사만 인상적이어서 기억하고 있습니다.^^
 
타로 카드 100배 즐기기 - 초보에서 전문가까지
레이첼 폴락 지음, 이선화 옮김 / 물병자리 / 2005년 6월
평점 :
품절


지난 달 초에 무료(?)해서 타로 초보자 세트를 구입했다. 함께 온 책은 요점만 간단히 적혀있어서 도무지 안 외워진다. 게다가 각 카드의 상징을 암기해도 리딩을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뭐든 입문과정에서는 애정과 시간 투자가 필요한 법이다. 서점에서 직접 보고 여러 권 중 도움이 될만한 책인 거 같았는데 실제로 초보자용 덱과 함께 따라온 책과는 차원이 다른 해설서다. 

각각의 카드에 그려진 그림을 인과관계를 제시하면서 구석구석까지 해석해주고 있다. 안 보였던 그림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러면 이제 타로 리딩을 할 수 있는가?라고 묻는다면 그건 또 별개의 문제다.  타로 리딩이란 게 보기보다 쉽지 않다. 각 카드가 상징하는 걸 다른 카드들과 유기적으로 엮는 재주가 필요하다. 즉 상상력과 직관이 필요하다. 뒤집어보면 타로 리딩을 훈련하면 없던 상상력과 직관이 길러질 수 있을 거 같기에 조금 열심히(?) 해볼까 싶다.

마지막에 리딩 태도에 말하면서 카드에 애정을 품고 하루에 한 번 카드와 대화하라는 말이 있다. 카드가 사건을 만들지 않지만 사건을 알려주는 예시적 역할을 이해하려면 말이다. 삶의 근본적 태도도 이것이리다. 많은 사소한 일은 우연처럼 보여서 신경쓰지 않고 흘려보내고 곧 잊지만 시간이 한참 흐른 후 우리는 깨닫는다. 작은 우연들은 하나의 필연을 위한 보이지 않은 암시였다는 걸. 우연의 흐름을 놓치지 않으면 필연 또한 원하는 모양으로 만들 수도 있을거란 긍정적 자기최면을 걸 수 있다면, 타로 리딩은 가치있는 취미가 될 터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자벨 아자니의 포제션 - Possession
영화
평점 :
상영종료


 

1. 20대의 이자벨 아자니를 볼 수 있는 영화다. 내면 묘사 선이 크게 출렁대는 캐릭터들을 주로 연기한다. 이 영화에서도 어김없이 광녀의 모습으로 몰입한다. 아름다운 두 눈과 가날픈 몸으로 스크린 가득, 내면의 고통을 뿜어내서 가끔 질식할 것 같다. 그녀가 힘들어할 때 스크린을 통해 전해져오는 것 같다.  

2. 안드레이 줄랍스키의 정신 세계, 독특하다. 이 영화를 만들었을 때 여러 가지로 힘든 상황이라고 했는데 그 고통을 영상을 통해 옮겨 놓는 재주. 요거 부럽다. 어떤 특별한 내러티브가 아니라 사람이 하루에 가질 수 있는 오만 생각을 영화로 만들 수도 있다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하루 종일 한 가지 생각만 하는 사람은 드물게다. 오전에 심드렁했다가 커피 한 잔에 행복을 느끼기도 하고 누군가의 사소한 말 한 마디에 짜증이 나기도 하고...뭐 이렇게 생각은 하루 종일 바이오 리듬 그래프를 그린다. 이런 생각들은 파편적이고 일시적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경우에 정신 건강에 크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 그런데 어떤 한 찰라를 돋보기로 확대해서 분석하자면 안드레이 줄랍스키가 만든 영화처럼 보일 거 같다.  자신의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른 채 내뱉기도 하고 거울을 통해 본 표정과 머릿속에서 실제로 짓는 표정이 다르기도 하면서. 무의식과 의식을 오가며 이성이 숨겨진 악을 지배하고 때로는 악이 이성을 누르는 이런 무의식의 과정을 영상으로 표현했다.  

3. 영화를 감싸는 분위기의 색조는 군청색이다. 핏기가 없어서 서늘하지만 늘 단정한 색이어서 주변에 녹아들 수 있는 색이다.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는 이런 군청색 빛깔인지도 모른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프레이야 2009-02-10 1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혹적인 이자벨 아자니의 뒷모습이군요.
보고싶은 영화로 가져갑니다.^^
군청색 분위기의 영화라니..

넙치 2009-02-10 1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편안한 영화는 아니지만 매력있는 영화입니다.^^

비로그인 2009-08-02 0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무척 좋아하는 영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