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하는 힘>을 리뷰해주세요.
고민하는 힘
강상중 지음, 이경덕 옮김 / 사계절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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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이십년지기 친구랑, 늘 그렇듯, 범세계적 주제를 아우르는 수다를 새벽까지 떨었다. 과거 속에 여전히 있는 거 같은 지저분한 종로에서 모두 집에 돌아가려고 종업원들이 홀을 청소할 때까지 앉아있을 정도로 진지했지만 과연 생산적인가.

우리는 나이가 들어가면서도 세계의 중심에서 아직 '나'를 굳건히 세워 놓고 있다. 서로 자의식이 지나치게 강하다고 비판(?)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자의식이 강하다는 말에 수긍을 하지 못한다. 자의식이 나쁜 게 아니라 자의식 때문에 타인에 대한 배려를 손상할 위험을 갖고있는 에고이즘이 문제다.  

짐짓 에고이스트가 안 되려고 다짐을 하고 이따금씩 반성도 하지만 세월과 경험이라는 두께가 아집을 만들어 견고한 성벽처럼 버티고 있다. 정신차려보면 스스로 디아스포라를 만들고 있다. 이 글은 자의식에 대한 고민은 타인에 대한 배려를 포함하는 것이니 고민은 평생해야한다고 말한다. 고민의 질이 문제다. 나와 친구가 떤 수다가 형이상학적 주제지만 다소 형이하학적  결과만을 낳는다. 그러니 수다 떤 다음 날, 머릿속이 명쾌한 게 아니라 말을 많이 한 게 후회가 찾아오는 아침을 맞는다. 

이 책은 일단 이런 반성의 디딤판에서 설 수 있게 이끌면서 도약하면서 단숨에 읽을 수 있게 이끈다. 강연체고(난 참 강연체를 좋아하는 거 같다!) 나쓰메 소세키와 막스 베버를 통해 근대의 속성이 함축하고 있는 현시성을 찾아낸다. 물질 세계에 대한 나쓰메 소세키의 양가적 태도를 짚어가면서 그 프리즘 결 속에서 쓸쓸함과 고독감을 찾아내고 우리 현대인은 공감하고 작품들을 통해 위안받는다. 나쓰메 소세키의 열혈(?) 팬으로서 나쓰메 소세키와 같은 영혼을 가진 사람의 글을 읽는 즐거움은 말로 할 수 없다. 저도 같은 영혼을 가진 사람입니다, 하고 손을 번쩍 들고 싶다. 

나쓰메 소세키와 막스 베버의 고민을 이어받는다고 우리 모두가 소세키나 베버가 될 수는 없지만 타인에 대한 배려를 하는 개인이 많아지긴 할 거다. 그러면 더 나은 공동체 또는 사회라는 긍정적 희망이 생길 수도 있을거고.  

주의-나쓰메 소세키의 글에 반한 사람이라면 더 즐겁게 읽을 수 있겠지만 나쓰메 소세키의 글을 따분하게 여기는 사람이라면 지루할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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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율표
프리모 레비 지음, 이현경 옮김 / 돌베개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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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다. 그런데 바람은 차다. 볕의 고도는 올라가서 따스한데 바람에 실린 찬기는 볕과 비례하지 않다. 내 생활은 주기율표에 갇힌 것처럼 반복되고 책 읽는 속도는 한낮 사막을 걷는 것처럼 느리고 힘겹기만하다. 요즘 오로지 하고 있는 일이란, 밥벌이. 사람이 무언가에 익숙해지고 편안해지면 흥분도 동요도 없다. 늘상 하는 호흡처럼 잔잔해서 심호흡이나 빠른 호흡이 자꾸 귀찮게 느껴진다.  프리모 레비의 주기율표는, 이런 게으른 호흡을 조금은 떨쳐버리게 했다.  

어떤 일을 하든 주변을 관찰하면 통찰력이 길러진다. 관찰은 사물이나 현상에 대한 애정이 있어야 가능하다. 프리모 레비가 화학에 대한 애정을 토대로 유태인으로 겪은 나치즘 시기의 경험이 각 원소로 작용해 프리모 레비만의 세상 주기율표가 탄생했다. 수 십 년이 지나고, 전지구적 시기, 겉으로는 적어도 레비의 시절과 비교도 할 수 없는 많은 물질적 풍요와 과학적 발전 속에서 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리모 레비의 주기율표는 과거가 아니라 현재 주기율표에 대입해도 될 것 같다. 물질의 속성이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듯이 인간의 속성 역시 크게 변하지 않는 탓일게다.

나를 둘러싼 사람, 일, 환경, 이 모든 요소들이 한 개체를 형성하는 원자고 분자다. 각각의 금속이나 화학물질이 이루고 있는 특성을 들여다보면 여러 성질이 모여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인간사를 물질의 특성이란 관점에 대입해서 바라보는 방법을 제시한 주기율표는 신선함 그 이상이다. "물질을 정복한다는 것은 그것을 이해한다는 것이며, 물질을 이해하는 것은 우주와 우리 자신을 이해하는 데 필요하다"고 했다. 레비의 관점이다. 화학자로서 대의명분이다.  

나만의 주기율표를 작성하기 위해 바꿔야할 태도가 있다. 깨어있는 시간 중 많은 시간을 정작 보내는 밥벌이에 가치를 별로 두지 않고 자꾸 다른 길만 '꿈'꾸는데 몽상daydream이 아닌 꿈gaol으로 걸어가려면 이런 자세부터 고쳐야하는 게 아닐까. 쉽지 않겠지만 사소한 일에 조금만 더 성실하게 임하면 어떨까. 열정이란 거창한 이름보다는 성실은 쉬워보이지만 한편으로는 둘을 동족이고 단지 그 표정만 다른 게 아닐까, 하고 불성실하고 열정 결핍인 난 달아날 구멍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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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머무는 도시 그 깊은 이야기>를 리뷰해주세요.
시간이 머무는 도시 그 깊은 이야기 - 역사도시, 이희수 교수의 세계 도시 견문록
이희수 지음 / 바다출판사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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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가 기행문을 선택할 때 기준은 무엇인가. 내 기준은, 첫째, 도시에 대한 사실과 환상을 섞어 머리와 가슴으로 도시를 기억하고 상상할 수 있어야 할 것. 둘째, 작가와 내가 같은 영혼을 가지고 있다고 느낄 수 있는 구절이 있을 것. 셋째, 실용정보가 있을 것. 정도 되겠다.  세번째 실용 정보는 정확히 기행문을 선택하는 기준이라고 할 수 없다. 실용정보는 여행가드이북을 참조하거나 인터넷 검색을 통해 밥만큼이나 손쉽고 흔하게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글과 사진을 통해 앉아서 가봤던 곳을 추억하고 맞아하고 회상할 수 있는 교집합이 있어야한다. 또 가보지 않은 곳에 관한 시선은 흥미를 자아낼 수 있어야한다. 그것이 역사든, 작가의 무용담이든 또 그 도시 사람 이야기든 소재는 중요하지 않다.  

이런 점에서 이희수 교수의 기행문은 내게 매력이 전혀 없다. 감성이 통해서 맞아서 와, 하는 감탄을 할 수도 없고 간략한 역사는 가이드북에도 나와있을 내용으로 개괄적이다. 이전에 나왔던 <지중해 기행>이란 책을 무척 따분하게 읽다 말았다. 도시에 관한 간략한 역사와 도시에서 느낀 지은이의 감상이 혼합된 일반적 형태를 택하고 있다. 이 책 역시 <지중해 기행>과 겹치는 도시도 있고 그렇지 않은 곳도 있지만 구성은 똑같은 형태를 취한다.  

<지중해 기행>을 재미있게 읽은 사람은 어떤 사람일지 궁금하다. 이전 책을 재미있게 읽은 사람은 이 책에 박수를 보내겠지만 나처럼 따분하게 느낀 사람에게는, 이 책 역시 그렇고 그런 기행문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저자가 전공을 살려 다른 기행문이 다루지 않는 심도있는 역사를 다룬 책을 쓰면 더 흥미로울 거 같은데......그나저나 매년 이슬람문화권을 기행한다고 하니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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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난새의 내가 사랑한 교향곡>을 리뷰해주세요.
금난새의 내가 사랑한 교향곡 우리가 아직 몰랐던 세계의 교양 25
금난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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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음악하면 뭔가 갖춰서 들어야한다는 그릇된 강박관념이 있다. 음악에 대해 열정적이지 않은 게 큰 원인일게다. 난 음악을 들으면서 책을 읽거나 다른 일을 할 수 없다. 음악만 들어야한다. 고로 음악을 듣는 시간을 내는 게 익숙치 않고 귀를 트는게 있을 수 없다. 음악을 접한 통로는 주로 영화란 매체를 통해서다. 이미지 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는 거의 정신을 놓아 영화가 끝나면 음악을 찾아보는 식이었다. 또 운전 중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귀를 기울이고 좋으면 또 들어보려고 기억하는 식이다. 적고 보니 음악을 들으면서 다른 일을 할 수 없다는 말은 모순이다. 음악만을 듣지 않고 영화를 보거나 운전을 하고 있으니까. 아무튼 음악에 대한 내 열정은 이렇게 미미하다.  

제목에서부터 큼지막하게 들어간 금난새 씨의 이름은 사실, 금난새 씨 팬이 아니라면 살짝 거부감이 든다. 목차 역시 훑어보니 새로울 게 없는 구성이다. 머리 복잡할 때 가볍게 읽으면 좋겠다고 분류하고 별 기대없이 책장을 넘겼다. 전문 작가가 아니니 문체나 글의 흐름이 이 책을 보는 적절한 관점이 아니다. 또 그는 평론가도 아니니 음악에 대한 심층적 분석을 기대해도 실망할 것이다.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의 열정을 행간에서 읽으려고 한다면 책은 읽을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다.   

간단한 에피소드로 교향곡을 알기 쉽게 소개하면서 무엇보다도 악장을 넘어가면서 느끼는 감상에서 느끼는 섬세한 서정이 음악을 찾아서 들어보고 싶게 이끈다. 이 책의 미덕은 바로 듣고 싶은 욕구를 자극하는 것이다. 음악을 싫어하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모든 예술 장르 중 가장 감성에 호소하는 게 음악이 아닐까 싶다. 나처럼 음악에 대해 미지근한 태도를 가지고 있는 이들에게, 가볍게 읽고 진지하게 들어보라고 자극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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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이름이 없다
위화 지음, 이보경 옮김 / 푸른숲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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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화를 처음 만난 건 <허삼관 매혈기>를 통해서였다. 허삼관이 워낙 매력있는 작품으로 여운이 강해서 위화의 다음 책들을 읽는 데 사실, 적지않게 방해가 됐다. 허삼관의 포스를 자꾸만 떠올리니 그럴 수 밖에. 단편 모음집은 기대치를 낮추자고 주문을 외워댔다.  

역시 대가는 장편이든 단편이든 분량이 문제가 아니다. 장편 이전에 대가의 싹이 보인다. 단편들에서 엿볼 수 있는 세계관은 놀라울 정도로 허무하다. 불운에 마주치기도 하고 죽음도 흔하고 사랑도 잿빛으로 바래서 낡은 사진같은 느낌이다. 삶의 질곡을 소란스럽게 한탄하거나 기뻐하지 않고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어떤 운명이든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게 삶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사건을 비약적으로 생략하고 상황을 사진처럼 묘사하는 문체는 차분함을 더해준다. 예상치 못한 불운을 살다가 마주쳤을 때, 고통을 호소하는 심리가 아니라 고통을 대하는 자세를 말한다.  이 의연한 자세 때문에 낙관을 볼 수 있는지도 모른다. 불행을 비웃는 냉소가 아니라 불행을 가만히 성찰하는 관조를 앞으로 배울 수 있다면......그러나 사람이 과연 글 속에 드러난 문체처럼 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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