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뇌의 원근법 - 서경식의 서양근대미술 기행
서경식 지음, 박소현 옮김 / 돌베개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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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각종 전시회가 많아서 다 쫒아다니려면 시간과 만만치 않은 입장료와 무엇보다도 부지런함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전시회의 획일성에 이런 힘들게 마련한 요소들이 값어치 없게 느껴질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우리는 아직 미에 대해 획일적 기준만을 가지고 있다. 그림은 무조건 아름다워야한다는. 그리고 그림 속 이야기를 깨닫기 시작했지만 전적으로 주입식이다. 5월에 <카쉬 사진전>에 마지막 날 갔다. 전시회는 별 기대 없이 갔었지만 예상보다 훨씬 실망스러웠다. 전시회는 마직막 날이어서 그런지 매우 붐볐다. 전시장 입구에서 줄을 서서 시간이 되면 입장할 수 있었다. 전시장 안에 들어가서 이유를 깨달았다. 사진 옆에 적어 놓은 설명들을 읽느라고 모두가 목을 빼고 멈춰있었다. 설명을 먼저 읽고 사진은 잠시 보고 다음 사진으로 시선을 옮기고 있었다.  

이미지 전시회에서 우리는 글에 의존하느라 전시회 주인공인 이미지는 정작 소홀히 대하는 관람객들이었다. 그리고는 다른 해석이 있을 수 있다는 것조차 의심하지 않는다. 요즘 양적으로 풍부한 전시회가 과연 질적으로도 풍부한 전시회가에 대한 문제는 회의적이다. 과도기적 과정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열리고 있는 각종 전시회에 애정과 열정을 잃어가고 있는 중이다.  

이런 시점에서 서경식 씨의 글은 무게감이 남다르다. 그의 글 자체는 아름다우면서도 우울이 배여있다. 아름다운 우울이 그의 글의 매력이지만 여름에는 피하고 싶은 것도 사실이다. 그가 던지는 화두는 가볍고 싶은 여름 뿐 아니라 일년 내내 생각해봄직하다. 왜 우리는 근대미술이 없는가. 우리 미술은 왜 아름답기만 한가. 

그림이 꼭 정치적이거나 사회상황을 담아야하는 게 물론 아니다. 그러나 한 시대를 산 사람의 감정기복을 담는 것이다. 그림은 글보다 더 감정적인 도구라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는 잘 화내고 울고 웃는 민족임에도 화내고 우는 그림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런 점을 생각해보도록 해주는 책이다. 미에 대한 근본적인 시각을 한 번 바꿔보지 않겠니, 하는 가이드 같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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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 - Hair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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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전에 참전하려는 친구에게 추억을 만들어주고 사랑을 찾아주려는 히피들의 노력을 줄거리로 삼는다. 헤어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그들은 머리도 길고 옷도 치렁치렁하게 입는다. 이들이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이런 생활습관은 반정부, 반체제보다는 취향의 문제였다. 그냥 긴 머리가 좋은 거고 넥타이를 매고 양복을 입고 구두를 신는 거 보다 청바지를 입고 웨스턴 부츠를 신는 게 간편하기 때문이다. 이런 걸 규제하려는 경찰에게 그들은 "난 이게 좋을 뿐이에요."하고 말한다. 결국 군에 입대한 친구한테 사랑하는 여자친구를 잠시 만나게 해주려다 자신이 머리를 깎고 베트남전에 참전에 친구대신 죽는 의리파다.  

문화란 갑자기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ㅇㅇ문화라고 부르는 건 후대 사람들이 평가하고 판단해서이다. 당시에는 유행해서 집단 심리의 표출이라고 생각하지만 깊이 들어가면 이렇게 개인적 취향과 정서 속에서 더 공감을 하게 된다. 규정과 정의는 때로는 필요하지만 때로는 규정과 정의가 어떤 문화 속에 드러난 의도를 확대 해석하고 이슈화하는 경향이 있다. 여기에는 해석자의 의도와 심리가 반영되기 마련이고, 대중은 해석자의 명쾌한 논리에 설득당한다. 자신의 행동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지 않은 이들의 말보다 더 그럴듯해 보이기 때문이다. 문화가 생성되고 규정되기까지에 절대요소가 행동자와 해석자 사이에 존재하는 필연적 오해이다.  

이 영화는 이런 필연적 오해에서 생긴 간극을 유머러스하고 뮤지컬이 담고 있는 경쾌함으로 처리했다. 가엾은 히피, 무기력한 히피는 60년대에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21세기에도 여전히 존재한다. 타인의 취향을 인정하지 못하고 누군가를 히피로 여기는 지, 타인의 해석을 받고 있는 히피인지 현재 모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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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성적 충동 - 인간의 비이성적 심리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
조지 애커로프, 로버트 J. 쉴러 지음, 김태훈 옮김, 장보형 감수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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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이란 학문은 참 따분하다. 그 이유는 인간의 심리를 제외하고 외적인 교환에 의한 가치만을 수치화하려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경제학자들이 들으면, 이 무슨 무식한 소리냐, 하겠지만 아무튼 내가 바라보는 경제학은 그렇다. 이런 내게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책이 나왔다. 야성적 충동이라고 부르지만 실은 심리적 작동 기제를 경제학적 관점에서 서술한 책이다. 그러나 이 책 역시 밀도가 높지는 못하다. 경제학의 근본적 한계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과거의 사례를 가지고 일반화를 끌어내는 데 무리가 있다. 일반화가 물론 부분적으로는 수긍가능하지만 일반화로 미래를 예측할 수는 전혀 없기 때문에 책 한 권으로 무언가를 점쳐보고 싶은 욕심은 만용으로 끝났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저자들이 '자신감'이라고 부르는 투자 심리는 우리 모두에게 존재한다. 나처럼 숫자에 약하고 계산에 어두운 사람조차도 전반적으로 경제에서 자신감으로 넘쳤을 때 대세에 합류한 동물적 습성을 지녔다. 3년도 넘었을 거다. 만원도 넘을 거라는 말을 전해듣고는 팔천오백원에 주식을 샀다. 정보를 준 사람의 말을 믿었고 어떤 회사 주식인지도 알아보지 않았다. 이동해야하는 철새가 목적지에 대한 고민없이 선두 그룹을 따라가는 그런 꼴이었다. 전반적 사회분위기는 투자에 대한 자신감이 없는 게 비정상처럼 보였다. 그러나 곧 주식은 곤두박질쳤고 지금은 천원 쯤한다. 대체 이 주식의 정체가 뭔지 몇 개월 전에 궁금해졌다. 엔터테인먼트 주라는 걸 알고 이내 체념했다. 내가 주식을 샀을 무렵이 한류 바람이 불쏘시개를 했던 때고 지금이 한류가 꺼져가는 불씨라는 걸 직시하면, 이 주식은 앞으로도 소생할 가망이 없고 없는 돈으로 계산한다. 그렇지만 매도는 하고 싶지 않다. 내가 자신감의 희생자라는 걸 암묵적으로 보류하고 있는 셈이다.

사회적 자신감이 팽배할 때, 나처럼 의심많은 사람도 사회적 자신감에서 '위험'이란 요소를 안 보고 싶어하는 걸 직접 체험했다. 모험하지 않으면 얻는 것도 없다는 말처럼 위험을 기회로 얻을 거라고 낙관했다. 쓰지도 않은 돈이 공중분해되는 과정은 생각보다는 덜 실감난다. 잃어버린 돈의 액수가 그렇게 안 커서 내 일상에 미치는 영향은 사실 미미하다. 물론 그 돈이면 유럽을 호화롭게 두 번은 돌고 올텐데하면 속이 쓰리긴 하지만 유럽여행이라는 게 안가도 그만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나씩은 갖고 있는 펀드 계좌가 이런 심리를 이용한다. 미래를 위한 저축분으로 언젠가는 필요하지만 지금 당장은 없어도 괜찮은 자금이다. 재산증식의 한 수단으로 집에 대한 가치 역시 마찬가지다. 몇 억씩 대출을 받아 산 집 값이 올라 마음은 든든하지만 현실은 월급을 쪼개서 대출금 이자를 갚으면서도 행복해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의 심리가 야성적 충동이라는 말로 설명될 수 있겠다. 이 야성적 충동을 이용해 영리한 자본 소유주는 기하급수적으로 자본을 축적한다.

각자가 조금씩만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면 자본 축적의 쏠림을 바꿀 수 있을텐데 충동이란 게 이성이 없어서 이성한테 조종당하는 운명이다. 운명의 고리를 끊을 지는 순전히 사회에 속한 개인의 의지에 달려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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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노운 우먼 - The Unknown Woman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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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없을 때 모든 영화가 다 재밌어보이고 시간이 많을 때는 재미있는 영화가 빈곤해보이는 법이다. 시간이 나서 집 근처 시너스를 기웃거리는 데, 시너스는 너무 프로그래밍이 빈곤한다. 그래도 <시네마 천국> 감독이 만들었다고 하니..  

영화는 사실 말도 안 되는 설정이다. 과거에 매춘을 업으로 삼았던 여자, 이레나가 참한 가정부로 변신한 내막을 밝히는 플롯이다. 엔리오 모리꼬네의 익숙한 효과음이 스릴러 분위기지 내용은 정작 60년대 한국영화다. 이레나의 과거가 인서트 컷으로 퍼즐처럼 나열되지만 이런 영화 편집 기법에 감동받기에는, 우리나라가 너무나 IT강국이라..-.-;; 강남역 길바닥에 설치된 모니터 화면으로 사진찍고 메일로 전송할 수 있는 잡다한 영상기술 대국에 살고 있으니. 

숨겨진 이레나의 과거를 알게되고 현재와 얽혀읽는 동기는 모성이다. 왜 하필 모성인가하면 모성은 휴머니즘을 대표하지 않는가. <슬럼독 밀리어네어> 보고 나왔을 때처럼 허탈하다. 미끈한 화면에 적절한 주제. 

 '인정'에 기초한 플롯은 어쩐지 무임승차하는 것처럼 보인단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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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9-08-02 2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그렇군요. 이영화 워낙 좋다는 광고를 많이 봐서 한번 보려고 했는데, 그저 낚시용 홍보였던건지... 다시 생각해봐야겠군요~

넙치 2009-08-03 09:36   좋아요 0 | URL
따뜻한 건 있어요. 근데 완성도 면에서는 그닥..
 
레인 - Let It Rain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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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주변의 불쾌한 감정을 가진 한 여자(아가테)의 시선에서 시작한다. 오늘 부는 비바람처럼 안 반갑고 찐득찐득한 게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은 상황들이 펼쳐진다. 잘나가는 페미니스트 작가가 정치에 입문할 찰나에 다큐멘터를 찍기시작하면서 밥맛인 상황에 빠진다.  

촬영하는 사람들은 덜떨어졌다. 열심히 말하는 데 카메라가 오프되거나 힘들게 산을 올라갔는데 카메라 뱃터리가 없고, 또 피디 한 사람은 약속에 늦고 아주 마음에 안 든다. 와중에 남친은 자신의 위치가 뭐냐고 다그치면서 결별을 고한다.  

아가테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데만 집중할 수 있는 사람이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나 상황은 지나가는 비와 같아서 곧 하늘이 개기를 기다린다. 페미니스트로 대중의 권익을 위한 정치가가 되기로 결심한 그녀다.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돌보는 데 서툰 사람이 소수자의 마을을 헤아리는 페미니스트가 어떻게 될 수 있겠는가.  

자신이 잘하는 것과 남이 자신에게 원하는 것이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 똑똑하고 명민해서 자신의 능력과 한계를 잘 아는 사람이 꼭 따뜻한 사람은 아니다. 대다수의 사람은 똑똑하지도 않고 명민하지도 않다. 꼭 필요한 일도 게으름이나 사소한 실수로 망쳐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따뜻한 심장을 가지고 있어서 차가운 비를 맞은 후 의지가 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물론 아가테처럼 똑부러진 사람도 따뜻한 사람이 될 수는 있지만 자신의 분야에서 두드러지려면 경쟁이 필수인데 경쟁에서 우승자가 되면서 주변을 돌보는 사람이 되는 건 사실 쉽지 않다. 영화는 다행히 아가테가 고향에서 사소한 짜증나는 일들을 겪으면서 얼어버렸던 심장을 녹일 줄 아는 사람이 되고 끝난다.   

현실에서는 그게 간단하지 않다. 내 이익과 명예가 먼저냐 타인에 대한 배려가 먼저냐하는 선택을 해야한다. 리처드 도킨스의 이론에 따르면 이타심이 내 생존에 필요하다면 가능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이타심은 찾기 어려울 수 있다. 이타심을 소유하기 쉽다면 이타심에 대한 계몽도 필요없을 것이며 이타심을 가진 사람을 칭찬하지도 않을 것이다.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후배에게 물었다. "저렇게 덜떨어진 사람이 실제로 주변에 존재한다면 그래도 우리가 웃을 수 있을까?" 후배 왈, "아니오."  이 후배는 소심하고  타인에 대한 배려를 자신의 편안함보다 우선시하는 캐릭터인데도 말이다. 우리가 가끔은 <레인>같은 영화가 필요한 이유는, 현실에서는 버겁지만 두 시간도 안 되는 시간동안이라면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다는, 위안이 필요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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