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성적 충동 - 인간의 비이성적 심리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
조지 애커로프, 로버트 J. 쉴러 지음, 김태훈 옮김, 장보형 감수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5월
평점 :
품절


경제학이란 학문은 참 따분하다. 그 이유는 인간의 심리를 제외하고 외적인 교환에 의한 가치만을 수치화하려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경제학자들이 들으면, 이 무슨 무식한 소리냐, 하겠지만 아무튼 내가 바라보는 경제학은 그렇다. 이런 내게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책이 나왔다. 야성적 충동이라고 부르지만 실은 심리적 작동 기제를 경제학적 관점에서 서술한 책이다. 그러나 이 책 역시 밀도가 높지는 못하다. 경제학의 근본적 한계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과거의 사례를 가지고 일반화를 끌어내는 데 무리가 있다. 일반화가 물론 부분적으로는 수긍가능하지만 일반화로 미래를 예측할 수는 전혀 없기 때문에 책 한 권으로 무언가를 점쳐보고 싶은 욕심은 만용으로 끝났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저자들이 '자신감'이라고 부르는 투자 심리는 우리 모두에게 존재한다. 나처럼 숫자에 약하고 계산에 어두운 사람조차도 전반적으로 경제에서 자신감으로 넘쳤을 때 대세에 합류한 동물적 습성을 지녔다. 3년도 넘었을 거다. 만원도 넘을 거라는 말을 전해듣고는 팔천오백원에 주식을 샀다. 정보를 준 사람의 말을 믿었고 어떤 회사 주식인지도 알아보지 않았다. 이동해야하는 철새가 목적지에 대한 고민없이 선두 그룹을 따라가는 그런 꼴이었다. 전반적 사회분위기는 투자에 대한 자신감이 없는 게 비정상처럼 보였다. 그러나 곧 주식은 곤두박질쳤고 지금은 천원 쯤한다. 대체 이 주식의 정체가 뭔지 몇 개월 전에 궁금해졌다. 엔터테인먼트 주라는 걸 알고 이내 체념했다. 내가 주식을 샀을 무렵이 한류 바람이 불쏘시개를 했던 때고 지금이 한류가 꺼져가는 불씨라는 걸 직시하면, 이 주식은 앞으로도 소생할 가망이 없고 없는 돈으로 계산한다. 그렇지만 매도는 하고 싶지 않다. 내가 자신감의 희생자라는 걸 암묵적으로 보류하고 있는 셈이다.

사회적 자신감이 팽배할 때, 나처럼 의심많은 사람도 사회적 자신감에서 '위험'이란 요소를 안 보고 싶어하는 걸 직접 체험했다. 모험하지 않으면 얻는 것도 없다는 말처럼 위험을 기회로 얻을 거라고 낙관했다. 쓰지도 않은 돈이 공중분해되는 과정은 생각보다는 덜 실감난다. 잃어버린 돈의 액수가 그렇게 안 커서 내 일상에 미치는 영향은 사실 미미하다. 물론 그 돈이면 유럽을 호화롭게 두 번은 돌고 올텐데하면 속이 쓰리긴 하지만 유럽여행이라는 게 안가도 그만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나씩은 갖고 있는 펀드 계좌가 이런 심리를 이용한다. 미래를 위한 저축분으로 언젠가는 필요하지만 지금 당장은 없어도 괜찮은 자금이다. 재산증식의 한 수단으로 집에 대한 가치 역시 마찬가지다. 몇 억씩 대출을 받아 산 집 값이 올라 마음은 든든하지만 현실은 월급을 쪼개서 대출금 이자를 갚으면서도 행복해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의 심리가 야성적 충동이라는 말로 설명될 수 있겠다. 이 야성적 충동을 이용해 영리한 자본 소유주는 기하급수적으로 자본을 축적한다.

각자가 조금씩만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면 자본 축적의 쏠림을 바꿀 수 있을텐데 충동이란 게 이성이 없어서 이성한테 조종당하는 운명이다. 운명의 고리를 끊을 지는 순전히 사회에 속한 개인의 의지에 달려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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