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판타스틱 데뷔작 - Son of Ramb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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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상암동에 있는 영상자료원에서 본 영화다. 처음 가 봤는데 가까운 자주 가고 싶을 정도로 시설도 좋은데 영화도 공짜다! 그러나 집에 돌아오는 길은 너무 험난했다. 마포쪽은 오, 노, 하고 싶은 곳이다. ㅠ.ㅠ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를 만든 감독의 영화로 비슷한 분위기다. 발랄하고 유쾌하면서도 섬세하다. 그런데도 난 이런 류의 영화에는 빠져들 수 없다. 어쩌면 감독의 탁월한 재능을 질투하는지도 모른다. 누구나가 머리속으로 한 번쯤 생각해봤음직한 맥락없는 잔생각들을 한 편의 영화로 풀어놓는 게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니까. 

이 영화도 아주 사소한 에피소들로 영화를 풀어간다. <람보>를 보고 영화를 만들기로 결심한 열살 무렵의 소년들 이야기다. 영화 속 액션과 현실을 혼동해서 죽을 뻔한 사고도 내고 갑자기 고학년들이 영화를 함께 찍겠다며 끼어들어 원래 두 소년의 우정이 금이가기도 한다. 우여곡절 끝에 영화는 완성되고 형의 도움으로 극장상영까지하고 두 소년은 다시 우정을 회복한다.  

꼬마들의 우정 속에서 긴장과 갈등이며 아이들의 시선으로 본 가족의 의미를 섬세하게 잡아낸다. 아이들을 꿈을 꾸기 시작하는 매체와 아이들을 둘러싼 학교와 집, 아주 일상적인 것에서 액센트를 줄 곳을 찾아내는 시선이 이 감독의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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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의 끝 - At the End of Daybre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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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 전에 한국 독립영화 <양 한 마리 양 두마리>를 봤다. 굉장히 정직한 영화로 안톤 체홉 <세자매>의 대사를 모티브로 극을 이끌어가는데 연극적 경향이 강했다. 연극을 그냥 카메라로 담은 거 같았다. 영화적 메시지가 꽤 좋은데도 영화가 이러면 안 되지..하는 고정관념이 있다. 다음에 바로 이 영화를 보면서 그렇지 이게 영화지, 했다.  

같은 독립영화라도(두 영화를 연속 봐서 아무래도 비교를 하게 된다) 영화가 연극과 다른점은 영화 언어다. 카메라 움직임이 주는 긴장감이나 효과, 각종 쇼트들이 만들어내는 분위기가 연극과 구별된다. 이 영화를 만든 감독은 황철민 감독보다는 확실히 영화언어에 능하다.  

여자친구를 죽이고 터벅터벅 나타나는 장면을 예로 들면, 카메라는 나무 위에 위치해있다. 아무도 없는 잔디 위로 발이 느릿느릿 나타나고 반대편에서 친구들의 머리가 나타난다. 남자가 카메라 안으로 다 들어왔을 때, 친구들은 뛰어서 카메라를 빠져나가고 다시 남자는 혼자 남는다. 이 장면은 그 어떤 대사보다도 남자의 처참한 심경을 잘 담아내고 있다.  

이런 수려한 장면이 있긴하지만 영화는 대책없이 어둡다. 왜 사람을 다 죽이는거냐. 오프닝에서 쥐를 생포(?)해서 뜨거운 물을 부어서 죽인다. 엔딩도 죽음으로 끝난다. 새벽의 끝이 아니라 밤의 계속이다.-.-;  

덧. 말레이시아 영화인데 처음에는 태국말인 거 같았고 조금 지나니 중국말 같기도 하다. 말레이어가 이렇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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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한 마리, 양 두 마리 - Mosc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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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버디 무비는 남자들이 주인공인 경우가 많은데 이 영화는 여자들이 주인공이다. 중학교 동창인 두 사람이 사회인이 되서 다시 재회하면서 불편한 진실을 겪는다. 십대 시절 같은 곳을 보았던 아이들은, 사회인이 되어 다른 곳을 보는 것 같다. 한 사람은 해고된 비정규직 노동자, 한 사람은 대기업의 비서라는 그럴 듯한 유니폼을 입었지만 하나의 소모품. 두 사람이 헤어졌던 시간 따위는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시간의 궤적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한다. 해고된 비정규직 노동자 친구는, 자신이 투쟁했던 회사 엠피쓰리 플레이어를 선물로 주는 친구에게, 너도 악덕 자본주의나 다름없다고 쏘아댄다. 그러나 그녀의 마음 한 구석에는 연극배우가 되고 싶다는, 혹은 친구의 회사에 들어가고 싶다는 욕구가 내재되어있다. 자신의 현실에서 도망치는 걸 한 번쯤 꿈꾸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다행히 영화는 두 친구가 화해하고 다시 같은 곳을 바라봤던 걸 상기한다. 그리고는 각자의 길을 갈 것이다. 같은 꿈을 간직했던 친구를 가슴에 한켠에 간직한 채.

어른은 5년 주기로 친구가 바뀐다는 말을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다. 학창시절을 마감하면서 동료들로 이루어진 공동체 속에서 동료애를 쌓고 이직과 전직으로 매일 보는 사람, 일상을 나누는 사람이 달라진다고. 주기가 거듭되면서 친구가 많아져야 당연한 논리인데 이상하게 그렇지 않은 거 같다. 아는 사람은 많아지지만 학창시절처럼 같은 곳을 보고 같은 꿈을 꾸는 사람을 만나는 게 불가능한 것 처럼 보인다. 나이테가 굵어지고 긍정적이고 부정적인 경험이 쌓이면서 어린 시절만큼 마음을 활짝 열지 못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른으로 살아가는 건 친구를 잃어버리는 데 익숙해지는 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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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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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여만에 영화를 봤다. 역시 영화를 보는 두 시간은 꿈이라고 부를 수 있다. 아, 좋다. 그래서인지 이 영화에 대한 내 감상도 후하다. 이준익 감독이 예술영화를 만드는 감독이 아니니 그의 영화에서 예술성을 기대하지 않는다. <왕의 남자> 흥행으로 각종 인터뷰를 보면서 이준익 감독은 철학이나 미학을 운운하기보다는 감독을 하나의 직업군으로 보는 게 독특하고 재밌었다. 제작비에 맞춰 영화를 찍을 자세를 하는 감독은, 직장 상사가 어떻게든 결과물을 내라고 독촉할 때 밤샘하면서 자료찾아 프리젠테이션 준비하는 과장처럼 보였다. 이 모습이 나쁜 게 아니라 참 현실적이기도 하고 친밀감을 만들기도 했다. 박흥식 감독은, <말순씨 사랑해>를 찍은 후, 다음 작품은 뭐냐는 질문에 다음에는 영화가 아닌 일로 밥벌이를 하고 싶다고 했다. 감독은 일반 직장인이 풍기는 꼬질함과 비루함과는 거리가 먼 아우라가 있기 마련인데 이준익 감독이나 박흥식 감독은, 예술이나 창조자로서의 포스보다는 밥벌이의 힘겨움을 감추지 않는다. 그래서 연대감이 형성된다고나 할까. 

이준익 감독 영화 중에서 <황산벌>이  제일 인상적이다. 한국역사의 진지한 에피소드를 사투리라는 코미디로 풀어간 영화다. 화려한 액션이나 CG 따위 없어도 영화적 재미를 표현한 가능성을 보여준 영화다. <구르믈 버서난 달>은 <황산벌>과 한 핏줄 영화다. 소재도 임진왜란 직전에 정여립난(한국사에 이런 사건이 있는 줄도 몰랐다-.-)을 소재로 풀어간다. 해학적 인물인 황정학, 진정한 시어리어스 맨 이몽학, 강아지처럼 촐랑대는 견자, 줏대없는 선조, 말로 줄다리기 하는 동인과 서인, 그리고 차라리 없으면 좋았을 인물 백지. 조정에서 탁상공론하는 동인과 서인 장면은 황정민이 억지로 하는 연기보다 더 웃기다. 황정학이란 인물이 해학적으로 설정돼있어 웃음코드를 미리 설정했다면 탁상공론 장면과 왕의 우유부단하게 버럭질이나 하거나 주저주저하는 행동은 오히려 말 장난이기 때문에 웃을 사람만 웃는다. 난 이런 말 장난이 너무 웃기다. 극장에서 나 혼자 흐흐거렸다.  

때깔로 치자면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됐는데 찾아보니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 촬영감독이란다. 어쩐지! 긴장감을 줄 때 과감한 클로즈업과 차승원이 쓰고 있는 갓을 이용해서 카메라와 스크린 사이에 막을 친다거나 풍경을 엽서처럼 담는 화면은 이준익 감독 영화에도 이런 명장면이?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덧. 백성현이란 아역 배우, 또래 아역 배우들 중 가장 근사하게 자란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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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시로
나쓰메 소세키 지음, 최재철 옮김 / 한국외국어대학교출판부 지식출판원(HUINE)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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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마음>을 들고 교토를 찾았다가 돌아와서 <산시로>를 주문했다. 몇 몇 지인들과 전화로 안부 인사를 주고 받으면서 어떻게 지내냐는 서로의 물음에 "뭐, 똑같지"라고 대답이 정해져있다. 소세키의 주인공들처럼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지켜보면서 적응하려고 바등거린다. 소세키의 소설 주인공들은 대체로 비슷한데 그래서 좋다. 현실같아서. 

시골뜨기 산시로는 대학과 도시, 그리고 시골 사람들과는 다른 가치관을 지닌 사람을 만나면서 강의필기나 열심히하고 그 외에는 아무 일도 안 한다. 미네코한테 반해 용기내서 어설픈 고백을 해보기도 하지만 도전이나 패기와는 거리가 먼 인물이다.  

"용건이 있어 다른 사람과 만난 약속 따윌 할때에는 상대방이 어떻게 나올까만을 상상한다. 자기가 이런 얼굴을 하고 이런 말을 이런 목소리로 말해주겠다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면담이 끝나면 뒤에 꼭 그걸 생각한다. 그리곤 후회한다." 산시로는 이런 인물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덜 성숙했을 수도 있지만 성숙한 히로타 선생도 산시로와 비슷하다. 차이라면 히로타 선생은 자의로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세속을 초월해서 태평하다. 근대 이전의 인물한테서 느꼈을 여유와 느긋함을 선사한다. 히로타 선생은 현대인의 가치관으로는 밥 값 못하는 인간유형인데 현대인은 밥 값을 하느라 많은 걸 포기하라고 교육받는, 사실은 가엾은 존재들이다. 소세키의 인물들한테 얻는 위안은 가끔 밥 값을 못하는 게 아닌가 하는 자괴감이 들 때다. 삶이 이렇게 느긋해도 되나..하는 조바심이 날 때 소세키 인물들은 뭘 그렇게 조바심치나, 하고 속삭인다. 논문을 발표하지 않는 것도, 사랑을 놓친 것도 다 부질없으니 볕 좋을 때, 차나 한 잔 하지 그러나..한다. 좌충우돌 인물 요지로를 보게나..의욕은 앞서고 계획은 원대하나 뭐 하나 이루는 거 없는데 뭐가 부럽나?  

몸도 마음도 격하게 흐물거리는 한 주를 보내고 있는데 산시로한테 위안받으며 차나 한 잔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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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이 2010-05-18 2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을 놓치고 있다가 이제서야 봤네요. '지난 주 마음을 들고 교토를 찾았다가'하는 첫줄을 읽으면서 교토의 어디어디를 다녀오셨는지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마음'의 배경은 가마쿠라인데 거기 소세키 문학관이 있거든요. 탁트인 앞마당 끝으로 선생님과 '나'가 만나던 해변이 보이는 곳이었어요. 다녀오셨으면 좋았을텐데요.

넙치 2010-05-19 12:42   좋아요 0 | URL
가마쿠라가 교토에서 가까운 곳인가요??? 도쿄에서 가까운 곳이 아니구요??
제가 일본말에 까막눈인데다 거의 처음이라 교토는 일반적 루트를 따라 다녀왔어요. 근교까지는 엄두도 못내구요. 소세키 소설을 읽으면 도쿄도 꼭 한 번 가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