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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superfrog > 그녀와그녀의고양이

 

 
계절은 초봄으로, 그 날은 비가 왔다.

Sec.1 [Introduction]

그래서 그녀의 머리카락도 내 몸도
무겁고 눅눅해졌고
주위는 너무 좋은 비 냄새가 가득했다
지축은 소리도 없이 천천히 회전하고
그녀와 나의 체온은 세상 속에서
조용히 계속 열을 빼앗기고 있었다
「 지금은 전화를 받을 수 없습니다
용건을 남겨 주세요 」
그날, 그녀가 날 주웠다
그러니까 나는
그녀의 고양이다.

Sec.2 [그녀의 일상]

그녀는 어머니처럼 상냥하고
연인처럼 아름다웠다
그래서 나는
금새 그녀를 좋아하게 됐다
그녀는 혼자서 살며
매일 아침 일하러 간다
어떤 일을 하는지는 모르며
관심도 없다
하지만 나는, 아침에 집을 나서는
그녀의 모습을 무척 좋아한다
깔끔하게 묶은 긴 머리
가벼운 화장과 향수 냄새
그녀는 내 머리에 손을 얹고서
갔다 올께 라고 말하고서
등을 쭉 펴고
기분 좋은 구두 소리를 내며
무거운 철문을 연다
비에 젖은 아침의 풀밭같은 냄새가
잠시동안 남아 있다.

Sec.2 [그의 일상]

여름이 되고
내게도 여자친구가 생겼다
새끼 고양이 미미다
미미는 작고 귀엽고
응석을 부리는 솜씨가 좋지만
역시 그래도 나는
나의 그녀처럼
어른스러운 여자쪽이 좋다
있잖아,쵸비
왜 미미
결혼하자
미미, 전에도 얘기 했지만
내게는 어른인 연인이 있어
거짓말
거짓말이 아냐
만나게 해줘
안돼
어째서?
있잖아 미미, 몇번이나 말했듯이
이런 얘기는 네가 좀 더 큰 다음에
어쩌구 저쩌구
이런 식의 대화가 계속된다
다음에 또 놀러와
정말로 와야 해
정말 꼭 와야만 해
꼭꼭 와야만 해
이렇게 나의 첫 여름은 지나고
점점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게 됐다.

Sec.4 [그녀의 외로움]

그러던 어느 날
길고 긴 전화 통화 후
그녀가 울었다
나로서는 이유를 알 수 없다
하지만 내 곁에서 오랜 시간 울었다
나쁜 건 그녀 쪽이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나만이 언제나 보고 있는
그녀는 언제나 누구보다 상냥하고
누구보다도 예쁘고
누구보다도 현명하게 살아가고 있다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누군가 누군가
누군가 도와줘

Sec.5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

끝없는 어둠 속을
우리들을 태운 이 세상은
계속해서 돌고 있다
계절은 바뀌어 지금은 겨울이다
내게는 처음인 눈 오는 풍경도
예전부터 알고 있었던 듯한 느낌이 든다
겨울에는 아침이 늦어지기 때문에
그녀가 집을 나가는 시간이 되어도
아직 바깥은 어둡다
두꺼운 코트에 감싸진 그녀는
마치 커다란 고양이 같다
눈냄새에 빠진 듯한 몸의 그녀와
그녀의 가늘고 차가운 손가락과
먼 하늘에서 검은
구름이 흘러가는 소리와
그녀의 마음과
나의 기분과
우리들의 방
눈은 모든 소리를 삼켜 버린다
하지만 그녀가 타고
있는 전차의 소리만은
쫑긋하게 서 있는 내 귀에 닿는다
나도
그리고 아마 그녀도
이 세상을
좋아한다고 생각해.

■ animation makoto shink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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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흔 2004-03-24 1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금붕어님 서재에서 끌어와서 화면이 바로 뜨도록 수정했습니다.
짧지만 긴 여운이 남네요. 저런 생각을 하고 만드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superfrog 2004-03-24 1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여흔님 꺼 다시 퍼갈까요?^^

갈대 2004-03-24 2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봤습니다. 저 고양이 성별만 바꿔서 가지고 싶어지네요^^

김여흔 2004-03-25 04: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갈대님, 고양이랑 같이 사세요?
저도 고양이랑 살고픈데 ...
아주 어릴 적에 몇번 같이 살았는데 그땐 사랑을 몰라서 ...
다시 같이 살아 보면 어떨까요?
저런 철학적인인 놈이면 좋으련만 .. 간지런

갈대 2004-03-25 0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양이를 좋아라 할 뿐이고 여건상 같이 살지는 못하고 있답니다.
독립하면 꼭 동거하고 싶은 녀석이죠^^

2004-03-25 23: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신주영, 빨간이불의 꿈 2003

 

 



그 해, 그 늦은 밤에도 이랬어요.

얇은 이불을 덮고, 빨간 베게를 베고
긴 꿈에서 깨나지 말기를
문을 걸어 잠그고
누구도 날 만지지 못하도록.

오래, 아주 오래 자고나면 감당할 수 있을 것처럼
숨을 고르기도 하며
오래 오래 자고나면 모든 게 몹쓸 꿈이었노라고
누군가 웃으며 말해줄거라고.

그 해, 그 늦은 밤에도
꼭 그랬어요.










Write  김여흔
Music  장혜진 / 1994년 어느 늦은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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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4-03-19 1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흔님, 이런 밤 참 많기도 했어요. 지금도 마음이 어지러울 때면 이런 자세로 엎드려 생각하다 나도 모르게 잠 들어버려요. 그러고나면 좀 편하죠. 만지고픈, 손에 묻어날 것 같은, 물결일까요, 꿈결일까요. 꼭 붙들고 눈 뜨고 싶지 않았어요. 그런 날이 있어요.~~
노래도 잘 듣고 갑니다.^^

2004-03-20 00: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4-03-20 12: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전출처 : kimji > 죽기 위해 살게 해다오



Louis-Maurice Boutet de Monvel (French, 1851-1913)
A Siren




아직 덜 앓은 것이 아니라면,
이제는 살고 싶어라.

아직 흘려야 할 눈물이 더 남아 있고,
가슴이 미어지는 슬픔이 똬리를 틀고 있어도,
내 육신과 정신을 후벼파내도 시원치 않은 후회가 가시지 않은 멍자국이 되어 내 평생을 따라다닌다고 해도,
나 오늘은 살고 싶어라.

그것마저 허락되지 않는다면
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오지 않고 심연속에 고요히 가라앉겠으니,
부디 이제는 살게 해다오.
살아, 내가 마땅히 치뤄야 할 고통을 감내할 수 있게 해다오.
그것이 나를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살게 함으로 나를 소멸시키는 일이므로
나를 살게 해다오.
그러므로 이제는 숨쉬고 싶어라.
이제는 두 눈을 버젓이 뜨고, 욕된 내 자신을 바라보며 죽어갈 수 있도록
나를 살게 해다오.



 

::: 이은미, Sunfl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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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4-03-11 2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그림 본 기억이 있네요.
이상하죠....음.....뭔가 몸에서 다 빠져나가버린 느낌이었다고나 할까요...여하튼..그랬어요...

어룸 2004-03-11 2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처음 보는 그림인데....숨이 탁 막히는 느낌이예요...!! 멋지다는 말도 나오지만 그정도로는 부족해요, 부족해...

김여흔 2004-03-11 2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kimji님 서재에서 몰래 들고 나온 거에요.
제 생각으론 그림 제목하고 발 모양을 보니 그리스신화의 사이렌(반은 여자이고 반은 새인 요정으로서 아름다운 노랫소리로 지나가는 뱃사공을 꾀어 들여 죽였다고 함)을 표현한 것 같은데, 그냥 제 추측일 뿐이구요.
저는 이 그림에서 영화 디아워즈에서 버지니아 울프가 물에 빠져 자살하는 장면이 떠오르던데요.
참 인상적인 그림인 건 분명해요.

비로그인 2004-03-11 2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그림 제목이 사이렌이군요. 정말...
오디세우스의 모험이었던가요? 사이렌이 등장하죠...님의 글을 읽으니 정말 그리스신화의 사이렌에서 모티브를 따온듯도 해요.....

프레이야 2004-03-11 2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흔님, 이 숨막히는 그림, 저도 니콜키드먼(버지니아울프)이 물로 걸어들어가던 장면이 보는 순간 떠올랐는데. 님과 정서가 비슷한가 봐요^^ ^^
이은미 넘넘 좋아요.

김여흔 2004-03-11 2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요? 혜경님, 기분이 업 되는걸요.
오늘 차안에서 라디오를 켜니까 이은미 노래가 들리더라구요.
그래서 집에서 이은미를 들어야지 했는데,
걸어 놓은 그림에도 그 노래가 있네요.

superfrog 2004-03-12 0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찌뿌둥.. 흐린날 오후, 이은미 거의 환상적인 만남이죠.. random heart를 조심해야 할 듯..--;;
많은 분들이 버지니아 울프를 떠올리시는군요.. 그 장면... 흠흠..

Laika 2004-03-12 07: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은미 노래 들으니 커피가 마시고 싶어지네요...

김여흔 2004-03-12 15: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random heart, 조심들 하시고...
라이카님, 커피 맛나게 드세요. ^^
 


난 힘들 때면
너의 생각을 하지
길을 걷고 커피를 마시고
또 같은 삶 속에서
난 어느 새 지쳐버렸는지
다시 만날 순 없어도
알 수 없는 힘이 되어준
너의 기억이,
항상 내 곁에서 따뜻한 위로가 되지

떠나가던 그 저녁에
나는 몹시 날고 싶었지
별이 맑은 하늘을 향해
아무도 없고 아무 소리도 없는
그런 밤의 하늘 속으로
하늘로 멀리 솟구쳐 날아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곳으로






 
 

Photo  js / 천국의 하늘
Music  전람회 / 하늘 높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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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ika 2004-03-09 2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마치 하늘 위에서 노래 듣는 기분이네요...

김여흔 2004-03-09 2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도 없고, 아무 소리도 없는
Hong Kong의 10,000m 상공이라네요.
저런 하늘에서 날아볼 수만 있다면...

검은비님, 님 서재는 자주 찾아가는 편인데 인사도 못하고 얼쩡거리는 것 같아 죄송스럽기만 하답니다. 인사 드리러 갈게요.

라이카님, 오늘 좋은 하루 되셨는지 궁금하네요. 행복한 잠, 이루시구요.

비로그인 2004-03-09 2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너무 좋아요~
잠이 다 달아나는 것 같네요.
김동률만큼 이 노래를 잘 표현할 목소리 ...그 목소리와 감성을 가진 가수는 아마 없을 것 같아요....

김여흔 2004-03-09 2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냉열사님이 좋아하시니 제 잠도 달아나네요. ^^
목소리도 목소리지만, 노랫말도 여느 시 못지 안잖아요.
 


첨엔 혼자라는게 편했지
자유로운 선택과 시간에
너의 기억을 지운 듯 했어
정말 난 그런 줄로 알았어

하지만 말야,

이른 아침 혼자 눈을 뜰때
내 곁에 니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될때면
나도 모를 눈물이 흘러
변한 건 없니?
날 웃게 했던 예전 그 말투도 여전히 그대로니
난 달라졌어
예전만큼 웃질 않고 좀 야위었어
널 만날때보다

나를 이해해 준 지난 날을
너의 구속이라 착각했지
남자다운 거라며 너에게 사랑한단 말조차 못했어

하지만 말야,

빈 종이에 가득 너의 이름쓰면서 네게 전활 걸어
너의 음성 들을땐 나도 모를 눈물이 흘러
변한 건 없니
내가 그토록 사랑한 미소도
여전히 아름답니?
난 달라졌어 예전만큼 웃질 않고 좀 야위었어
널 만날때보다

그는 어떠니?
우리 함께한 날들 잊을만큼 너에게 잘해주니?

행복해야 돼

나의 모자람 채워줄 좋은사람 만났으니까

 

 
 
 
 
 
 
 
Photo  ªRⓘEℓ~♡
Music  Toy  / 여전히 아름다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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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흔 2004-03-08 1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늘이 꾸물꾸물해서인지 괜스레 심드렁해집니다.
이럴땐 좀 슬픈 곡이 제격이겠죠.
잠깐 우울모드로 분위기 잡아볼까요.

비로그인 2004-03-08 16: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그새 올려 놓으셨네요. 은 정말 한 곡도 빠짐없이 다 좋은 곡만 들어 있죠. 그중 이 노래....저도 괜시리 꿀꿀해 지네요....
감사해요. 히~


김여흔 2004-03-08 17: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꿀꿀함이 오래되면 병 되는 거 아시죠.
이제 그만입니다.
남은 하루는, 종일 행복모드 켜두시길 바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