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기점으로 예상했던 6.10집회가 끝나고 숨고르기 시점이다. 그래서인지 오늘자 (6.12) 한겨레는 재미있는 기사가 많다.

# 홍세화의 세상속으로 "벽창호 정부를 넘어 생활혁명 준비해야" (내가 이번 집회를 보며서 이탈리아에서 죽은 어떤 이를 뒤적이고 싶었던 것도 이런 맥락이 아니었을까)

# 광화문 스티로폼 논쟁 "컨데이너 넘자" "안된다" 5시간 토론끝 민주주의 쌓았다.(역사에서 수없이 반복되었던 주제다. 영화로 많이 알려진 '말콤X' 와 '마틴 루터 킹'의 대립도 이렇게 볼 수 있지않을까. 하워드 진은 <미국 민중사>에서 실제 말콤X가 피억압 흑인들의 정서를 더 많이,더 제대로 반영하고 있다고 평한다. 80년 서울의 봄 ,서울역 앞의 '무림'과 '학림' 논쟁도 이런 목록에 들어갈 만한다. 이런 류의 역사만 모아놓아도 제법 괜찮은 책 한권이 나올 듯 하다.)

#6.10이후 어떻게 뜨거운 논쟁 "국민이 빈손으로 촛불 끄진 않을텐데..(촛불이 쉽게 꺼지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과 촛불 피로증을 돌파할 수 있을까에 대해 쓰고 있다)

#학계시민단체 긴급좌담 "촛불대행진 그 이후" ...."국민주권 힘보여준 촛불혁명이었다." "진보세력 좌표찾는데 새 동력 될 듯" (새로운 형태와 성격의 집회에 대한 동의와 급격한 신자유주의에 대한 제갈물리기로 본다. 또한 참석자들은 이명박 정권 퇴진이라는 것은 국가적 불행으로 실제 일어나기전에 이명박의 인식전환을 요구한다. 특히 '자본의 세계화에 맞선 세계적 사건으로 남을 것' 이라는 말은 분명하다.)

#촛불이 움직인 미국 민심 "광우병전수검사를...." (미국소비자 단체와 뉴욕타임즈등의 언론에서 수출 미국소의 검역 문제점 등 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는 기사다. 이런게 국제연대라는 것 아니겠는가)

 

..................................

안그래도 복잡한데 시국이 시국이다 보니 생각이 더 많아진다. 하루 종일 무언가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무언가에 복무하고 있는 느낌이다. 신자유주의에 탄력받아 일상에서 끊임없이 압력카드를 꺼내고 있는 회사,그리고 답답한 노조, 매주 해결해야하는 일상의 업무, 집에서 하는 육아 보조 등등 등....

 어제는 새벽 1시에 퇴근했다. 와이프와 예찬이는 이미 잠들어 있구...와이프는 정성스레 갈아놓은 토마토 주스와 함께 먼저 잔다는 수고했다는 글을 남겨놓았다.

머리 대면 1분인 나이지만 어제는 잠들기까지 좀 걸렸다. 내가 하는 말로 '업무 잔상'때문이다. 거기에 이런 저런 복잡한 생각들까지...

생각해보니 이래저래 끼어들고 질문하고 댓글달고 그랬던 것 같다. 별 주제넘은 짓이고 생각만 더 가중하는 일이다. 복잡한 머리를 털고 싶어졌다.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기도 했다.

니코스 카잔찬키스의 말이었던가...'나는 두려워하지 않는다.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그러므로 자유' .....실제 두려워할 것도 많고 바라는 것도 많다.그래서 자유롭지도 못하다.

어쨋거나 지지배배 거리는 불필요한 짓으로 부터는 자유롭기로 하자. 그게 아무짓도 아니다. 시간만 잡아먹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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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 2008-06-12 1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어준의 그까이꺼 아나토미, 도 재미있던데요.^^;; 그거 보고 한참 낄낄 거렸습니다.ㅋ 드팀전님 취향이 아닐수도 있겠지만요.
 

촛불 집회가 정점은 지난 듯 하다. 이명박이 정신못차리고 악수를 계속 두지 않으면 어제 만큼의 숫자를 조만간에 다시 끌어모으기 힘들지 않을까 싶다. 이명박이 가장 두려워 했던 날도 비교적 조용히 지나갔다.

이명박에 대한 욕은 계속 높아지고 높아져서 이제 태산에 이른다. 일상적인 자리에서나 알라딘에서나 이명박에 분노하고 거품 물지 않으면 비투사적 행위가 된다. 어제 회사에서 어떤 이는 몇 가지 생각나는 점들을 이야기했더니 내가 한 마디하면 열마디의 거품을 물으며 이명박이나 대운하나 다 물리쳐야 한다...국민이 나서야 한다...이 개같은 이명박...그런다.

내가 나중에 그냥 듣고만 있었던 것은 "그 개같은 이야기를 다 아는데..." 왜 게거품을 물면서 광분하냐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 개같은 이야기를 비슷하게 공감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외치는 것이 가진 개인정치적 의미는 무엇이냐는 것이다. 동료의식을 만드는 단계는 지나지 않았는가 ..생각하면 일단 개같은 상황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알린다. 두번째는 나는 그런 개같은 상황에 반대하는 정의로운 시민이다. 세번째 나의 이명박에 대한 분노는 너무 높아 게거품을 물지 않을 수 없다.

물론 개같은 이야기를 하는 인간들 앞에서 게거품 물수 있다. 그런데 비슷 비슷한 감정을 갖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혼자만 그 사실을 아는양 게거품을 무는게 도대체 상대방의 고막에 무리를 주는 것외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나는 그런 질문을 했다. "대운하때에 과연 이만한 사람들이 모일 것인가? 위대한 시민들이 거기에 공감하고 지금처럼 나와주겠는가? 아니라면...어떡게 해야하는가? 이정도가 모이지 않으면 밀릴게 뻔한데..그럼 지금 어떡게 해야하는가 " ....의외로 답은 간단했다.

"국민들이 이번에 깨우친게 있으니까 아무래도 다르지 않겠어요? "

게거품이 꺼진 자리에 남는 것이 이렇게 허망하다면 도대체 무엇을 더 도모할 수 있는가

그리고 그 사람은 다시 이명박이 개xx라는 것에 분통터뜨린다.

나는 시민들의 이런 분노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최근에 뒤적인 그람시 책의 한 귀퉁이에는 이런 시민들의 소아적인 형태의 투쟁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구절이 있다. 그람시 시대 이전의 맑스주의자들이 간과하고 있었던 것이 바로 그 점이었다.

나는 시위에 참가하지 못하는 날이나 집에서 책을 보는 날에는 그런 생각들이 머리를 어지럽힌다.컴퓨터가 중환자실에 있어서 아프리카같은 것은 엄두도 못낸다.

시민, 노동자, 다중, 운동, 계급, 역사, 연대, 대중, 당, 조합,  정치...

 그런데 온고지신이라고 이 모든 것이 '역사' 속에서 한번쯤은 유사한 형태로 반복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마샬 버먼이 <맑스주의의 향연>에서 '마치 어제 태어난 사람들 처럼 역사와 서 있는 곳을 외면하고 그렇게 행동하는 사람들'을 실없다고 비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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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8-06-11 2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민들의 분노가 정점에 이르렀는데도... 아무런 타협안을 내놓지 않고...
제가 419 민주화 1세대라는 둥, 헛소리를 지껄이고, 미친소 문제도 전혀 해결의 기미가 없으니... 이제 기말고사 기간이 임박했지만... 촛불은 계속 들어야 할 듯 싶네요.
특히나 kbs에 대한 감사에 들어간 일 같은 걸 보면, 전방위적인 '전면전'의 시기가 닥치는 듯 싶습니다. 촛불과 인터넷 투쟁이 '국지전'보다는 '전면전'에 유리하기도 합니다만...
조선일보 몰빵 때리기나 방송국 지키기, 한나라당 압박하기... 할 일은 많고 시간은 없는 국민들 참 피곤하게 하네요.

드팀전 2008-06-12 00:03   좋아요 0 | URL
그런게 모두 '진지전'인듯 보입니다...'전면전'이란게 결코 그렇게 쉽지가 않은 문제지요. 안하는게 아니라 못하는 것일겝니다.아직은
 

음모론 이런 거 아니구요...

컨테이너 저건 정말 위험하다구요.

시위의 규모가 아마 최근 들어 가장 클 듯 합니다. 제가 속해있는 여러 단체들로부터 모두 문자를 받았습니다.

부산이야 서울에 비하면 그리 대단하지 않겠지만...

서울은 정말 많은 사람들이 모일 듯 합니다.

거대한 대중의 흐름이 어디로 이어질지는 알 수 없으나...그 거대함으로 인해 과격해질 수도 있습니다. 다시는 이 정도 숫자가 모이기 힘들다는 어떤 절박함 같은 것으로 인해서 말이지요,...

예전에 부산에서 에이펙 할 때인가 ILO할 때인가 수영교 다리 앞에 컨테이너 바리케이드를 했습니다. 그 때는 안에 아무것도 안채웠지요. 그거 밀리지요.이번에는 채웠다더군요. 그때도 시위대중 일부가 컨테이너 위로 올라갔습니다. 그 와중에 몇 몇은 떨어지고....

부산에서 컨테이너가 나왔을 때 아마 경찰청장이 어청수 아니었나 싶은데...

시위대가 컨테이너 올라갈 가능성이 잇습니다.경찰은 막겠지요. 전경 버스에서 떨어지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높이입니다. 양측다 상당한 부상이 있을 수도 있지요.

컨테이너....이건 불쏘시개입니다. 부상을 야기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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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목에 꼬인 거다. 인터넷 용어로 낚인 거라고 하고...저널리즘에서는 엘로우페이퍼(황색저널)의 선정적 제목이라고 한다. <혁명이 다가오지 않는다>는 지젝의 책을 패러디한 거고...클라우디오 아라우는 <사회변혁과 헤게모니>의 라클라우의 연상작용을 불러 일으킬 듯 하지만 사실 음악가다. ^^ 

-오늘은 6.10 .100만 동원의 날이다. 민주노총에서도 산별을 통해 촛불 시위 참여를 독려했다. 우리 회사 노조에서도 방을 붙여서 회사 출발시간과 장소를 고지했다. 

-알라딘에서 내가 즐겨찾기 하는 분들은 대략 30명쯤 될것 같다. 웅녀의 후손으로 백일에 한번쯤 글을 올리시는 분들을 빼면 정작 10명 미만의 글이 매일 아침 서재 브리핑에 올라온다.

오늘 아침에 보니 23개의 서재 브리핑이 있었다. 시국이 시국이다 보니 그 중 19개가 '이명박', '촛불집회', '미국 소 수입 반대'와 관련된 글이다. 촛불 집회를 바라보는 시각은 조금씩 다르겠지만 대략적으로 내가 즐찾하는 분들의 성향이 읽힌다. 

일상의 작은 유머를 전하시던 분들은 어디갔을까? 아이들의 귀여운 모습을 전하던 분들은 어디갔을까?  재미있는 동화책을 소개해주시던 분들은 어디갔을까? 

 시국의 중대함과 무거움이 알라딘에 무언의 압력으로 작용하는 건 사실인 듯 하다. 실제 누구도 그런 글을 올리지 말라고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때와 장소 그리고 분위기를 읽는 것은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눈치 없으면 인간이냐? 라는 말이 그래서 나온 듯 하다.

 그 무언의 분위기를 '폭력'이라고 말하는 -별로 납득하기 어려운-인물들도 곧 등장할 것이다. 7천 5백년동안 썩지도 않고 써먹던 레퍼토리다. 거대한 '폭력'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하면서 피억압자들의 소란에 대해서는 심기가 불편한 사람들이 아주 아주 많다. 지금의 열기가 식고 나면 그런 분들이 나와서 다시 한번 시끄럽게 할 것이 분명하다. 조금 이르지만  그들 이성의 '고도 난시' 와 세상을 읽는 '난독증'에 대해 종합 검진을 적극 권장한다.

지금은 '혁명의 시대' 도 아니다. 촛불 시위는 큰 의미가 있는 일이기는 하지만 그것을 과장하여 흥분하는 것도 한번쯤 생각해봐야 한다. 거리 점거하는 경험, 그 곳에서 한 마음으로 모인 무수한 대중들의 역동적인 힘,그리고 그 역사적 순간을 함께 한다는 의식을 갖게 되면 가슴이 벌렁 벌렁 거리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누구인들 그러지 않겠는가? 그런 '해방구'의 경험은 소중한 것이고 승리는 또다른 승리를 부른다. 하지만 바닷물을 처음 본 아이들 처럼 과장하거나 흥분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더 큰 싸움을 위해서 그리고 항구적 싸움을 위해서는 들뜬 마음도 추스리며 나아갈 필요가 있다. 열정을 단속하라는 뜻은 아니다. 열정의 아집에 자신을 둥둥 띄우지 말하는 뜻일 뿐이다.(결국 이게 꼰대같은 소리인 줄은 안다.)  당신이 태어나기 전 부터 싸움은 있어왔고 당신이 잠든 사이에도 싸움은 있어 왔다.

- 오늘 저녁때 나는 회사 노조와 함께 하긴 힘들 듯 하다. 집에 가서 아내와 아이를 데리고 시위 현장에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나중에 합류할 수 있을 지 모르지만 그 많은 사람들 속에서 그 위치를 찾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그냥 가는 데로 뒤에 설 수 밖에 없을 듯 하다.

- 히틀러는 유태인들을 학살하면서 베토벤을 들었다. 지옥의 묵시록에서는 베트남 마을을 초토화하는 헬기에서 바그너를 듣는다. 레닌은 슈베르트를 듣다가 너무 감동하여 이런 음악은 사람을 감성적으로 만들어 혁명에 방해가 된다고 했다. 슈베르트를 들으면서 할 수 있는 혁명은 나쁜가? 혹시  레닌이 슈베르트를 내려놓아서 피로 흥건한 역사와 중앙집중형 권위주의 문제가 발생한 것은 아닌가 ? ^^

음악가 이야기를 하려고 이 카테고리에 글을 써놓고 사실 딴 이야기가 너무 길었다. 나는 클라우디오 아라우를 들으면 시위를 갈 참이다. 

 어제 6월 9일은 20세기 위대한 피아니스트 중 한 명이 '클라우디오 아라우' 가 죽은 날이다. 나도 우연히 알았다. 남미는 사실 음악의 보고다.( 어디 음악 뿐이겠는가 문학,미술, 정치 등등에서 엄청난 영감을 준다.) 대중 음악만 봐도 대단하지 않은가.보사노바,탱고,차차차,룸바 뭐 이런 것들이 전부 남미의 리듬이고 음악이다. 브라질,아르헨티나,멕시코,쿠바의 월드뮤직은 세계를 재패했다. 거기에 슬픈 정치적 역사가 만들어낸 누에바 깐시온의 가수들은 민중음악의 산맥이다. 클래식 쪽에서도 요즘 주목받고 있는 볼리비아가 있다. 빈민 청소년오케스트라 지원프로그램 같은 것 말이다. 이미 메이저로 데뷔한 구스타브 두다멜은 그런 프로그램의 상징이다.조금 옛날 일이지만 내가 좋아하는 바이올린연주자 헨릭 쉐링은 나치를 피해 망명하는 유럽인들을 흔쾌히 받아들여준 멕시코 정부에 감사를 뜻하는 차원에서 멕시코 국적을 얻고 그 곳에 뿌리를 내렸다.

 남미 클래식의 위상을 높인 1세대 연주자가 클라우디오 아라우다. 그는 뛰어난 피아니스트 였지만 블라디미르 호로비츠나 스비아토슬라브 리히터등 러시아 피아노 거장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인기가 그리 높지는 않은 듯 하다.그는 클래식의 변방 칠레 출신이다. 어려서 부터 신동이었으며 리스트의 제자로 알려진 크라우제 교수의 눈에 띄어 독일에서 공부하게 된다. 그는 1903년에 태어나서 1991년에 세상을 떠났다.  SP시대부터 CD 시대까지 산 것이다. 그의 레퍼토리는 주로 고전음악과 낭만주의 음악에 중심을 두고 있다. 젊은 시절에는 바흐의 모든 건반 악기곡들은 릴레이 콘서트로 연주하는 괴력을 선보이기도 했다고 한다. 당시에 바흐곡들도 꽤 녹음한 걸로 알고 있으나 점차 멀어지게된다. 일반적으로 아라우가 피아노로 연주하는 바흐의 건반악기곡의 한계에 대해 고민한 결과로 알려져 있다. 아라우는 80이 넘은 나이까지 정력적으로 연주했다. 연간 100회 가까운 연주를 한 걸로 기록되어 있다. 그런 강행군 속에서도 하루에 몇 시간 씩 피아노 앞에 앉아서 연습을 했다고 한다.

클라우디오 아라우의 피아노 소리....이건 독창적이다. 유화같은 두터움이 있으면서도 유리구슬 같은 영롱함이 있다. 타건에는 파워와 힘이 있다. 그리스의 비너스처럼 조금 살이 오른 우아함과 넉넉함이 있다. 힘을 요하는 연주에서도 같은 강함이어도 러시아의 찬바람 같은 날카로움이 아니라 햄머의 묵직함이 있다. 리히터나 호로비츠의 연주를 들으면 마치 피아노를 조각 낼 듯 하다. 그러나 아라우는 피아노를 한번에 으깨버릴 듯 하다. 하지만 아라우 피아노의 가장 큰 특징은 그런 강력한 힘은 아니다. 힘에 바탕을 두돼 미묘한 음색을 어떻게 팔레트 위에서 섞어내느냐이다. 그 색깔이 참으로 묘해서 직접 듣고 느끼는 것 외에는 달리 설명하기가 힘들다. 어느 누구도 클라우디오 아라우를 세계 최고의 피아니스트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가끔 호로비츠나 리히터에 대해서는 그런 사람들이 있지만. 그런 1등이 뭐가 중요하겠는가? 그는 그만의 독특함으로 여전히 우리를 떨리게 하는데 말이다.   

유명한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열정' 1악장과 협주곡 '황제' 1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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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8-06-10 1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떤 분이신지 조금 궁금해요
많이 배웁니다
드팀전님 색깔도 좀 묘합니다
오래 들여다봐야 보이네요
그렇다고 다 보지는 못했구요
드팀전, 제가 모르는 말입니다
무슨 뜻인가요


드팀전 2008-06-10 10:50   좋아요 0 | URL
아...드팀전은 '들기름을 살짝 부어서 열을 가한 후 밀가루와 녹두가루를 2대 1로 섞어서 앞뒤로 살짝 되치고 ..버찌와 오디를 그 위에 얹어서 마지막에 꿀을 뿌려서 먹는 부침개'가 아니라....

우리말인데요 .'포목이나 피륙등을 파는 가게에요'
<메밀꽃 필 무렵>에 보면 '드팀전'이란 말이 나와요.

비로그인 2008-06-10 10:55   좋아요 0 | URL
네이버 국어사전 이용 잘 하는데
드팀전도 헤게모니 만큼 어려운 말인 줄 알고
찾아볼 엄두도 안 냈어요

비로그인 2008-06-10 1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헤게모니라는 말도 모르는 말이어서
내내 끙끙거리다 찾아봤습니다
드팀전님 쓰시는 말들은 제가 거의 모르는 말들입니다

드팀전 2008-06-10 11:04   좋아요 0 | URL
^^...천천히 알아가시면 되지요.
그리고 다른 말을 좀 찾고 싶은데...(물론 리뷰나 제 블로그가 아니라 좀 더 대중적인 곳에서는 그 단어조차 쓰지 않습니다.)
딱히 뭐라 한단어로 하기도 그렇고...딜레마에요.

드팀전 2008-06-10 11:04   좋아요 0 | URL
네이버 검색보니까...저도 더 헷갈리게 내용이 기네요..제가 쓴 헤게모니.제가 대학 1학년때 처음 배웠던-전공이 전공이다 보니- 헤게모니는 그람시의 헤게모니엿습니다,
네이버에서 보면 바로 요 내용입지요..^^

헤게모니란?
그람시가 말하는 헤게모니는 한 계급이 단지 힘의 위력으로써만이 아니라 제도, 사회관계, 관념의 조직망 속에 동의를 이끌어냄으로써 자신의 지배를 유지하는 수단이다. 다시 말하면 성공적인 헤게모니는 지배계급의 이해(利害)를 표현할 뿐만 아니라 종속집단인 피지배계급으로 하여금 이것을 자연스러운 것, 또는 상식적이며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더 나아가 헤게모니의 기초는 단지 경제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회의 문화생활 속에 존재하는 통합적 관계망이다.

2008-06-10 14: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08-06-11 0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눈치 없으면 인간이냐?
눈치 없이 어문 소리만 지껄이고 있었어요
딸이 집회에 간다고 해서 다녀오라고 했더니
잘 다녀 왔더군요
은행에 가면 대출 해주면서
그에 준한 합당한 예금,
가는 것이 있으면 오는 것이 있어야 한다며
당연하게 요구한다네요
대출 안 해주게 정해진 업종들이 몇몇 있다하네요
저는 세상 난독증에 걸리고 싶어 죽겠어요
 

촛불 집회는 이제 최고점에 다다른 듯 하다. 물론 흐름이 어떤 물꼬를 따라 흐르게 될 지는 아무도 모른다. 여기에는 하루 하루 바뀌는 작용과 그에 따른 반작용이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두들 예상하듯 내일 (6.10)은 분기점이 될 듯 하다.

여고생들의 소박한 집회로 시작되었던 촛불 집회가 38일째에 이르렀다. 청장년 층이 참여했고 유모차와 엄마들이 힘을 실었다. 각종 사회 단체들과 진보 단체들도 '미국 소'로 야기된 이명박 정부의 약한 고리에 몰려 들었다. 시위 구성원의 성격도 조금 씩 변화했고 시위의 양상도 변하고 있다.

나는 이번 시위가 -지금까지는-상당히 소박한 형태의 자유주의적 시민 불복종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대중동원력도 높았고 또한 정치적 공격의 빌미도 제공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또한 한계가 있다. 몇 몇 알라딘 분들이 '축제같은 시위'의 한계에 대해 미리 걱정하신 것도 그런 차원에서다. 내가 언젠가 이런 집회의 속성때문에 생긴 '진보 진영의 딜레마'에 대해 말한 것도 그런 의미에서다. 나서기도 뭐하고 안나서자니 희미해지는 그런 상황 말이다. 

집회가 영구적일 수 없다. 물리적으로 그런 동력을 이어갈 수는 없다. 쉽게 말해서 '분노와 열정'도 피곤함 앞에서는 무력하다. 나는 역사를 외면하고- 역사는 그대로 반복된다는 뜻은 아니다- 마치 어제 세상에 태어난 사람 마냥 자신이 그 역사 위에 서있음을 등지는 운동과 투쟁에 선뜻 동의하기 힘들다. 교조주의적 급진주의에도 동의할 수 없지만 현장의 흥분과 열정만으로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소아론적 포퓰리즘에도 동의할 수 없다.

집에서 책장을 바라보다가 우연히 그람시가 눈에 띄었다. 내가 이 시점에 그람시를 읽고 싶어졌던 것은 어떤 의미일까....책 종이는 시간과 공기에 숙성되어 누런 빛을 띠고 발효된 종이 냄새가 구수했다.   

이것은 바로 오래된 것은 죽어가고 있으나 새로운 것은 아직 탄생하지 못한 시기이다. 이러한 공백기에 대단히 다양한 병적 증상들이 나타난다.

국가에 대한 직접적인 '정면 공격'에 착수하기 전에 모든 차원-경제적,정치적, 문화적,사회적-브루자아 질서의 이데올로기적 침식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이 과정은 하층 또는 피억압자계급들이 급격하게 전진했다 후퇴를 겪고 모였다가 흩어지며 특정한 영향과 사건들에 따라서 각양각색으로 형성되어나가는 결코 조화롭게 발전하지 않는 지속적이며 유기적인 과정을 통해 일어날 것이다.

지배계급과 전체 인구의 다양한 부문들 사이의 이데올로기적 유대를 끊어버릴 수 있는 '대항헤게모니'를 창출하는 것.....자신의 이데올로기적 헤게모니를 주장하려면 총체적 혁명과정의 필수부분으로서 그 자신의 문화를 창조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초보적인 문화적 항의와 반란의 흐름에 의지하여야 한다.

그람시에게 가장 중심적인 딜레마는 어떻게 해서 피억압 대중들의 자발적인 에너지를 제거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그들의 일상적 관심의 즉자성을 뛰어넘도록 하느냐의 문제였다. 이데올로기적 헤게모니의 파급력 때문에 모든 즉자적 혹은 중재되지 않은 대응들은 필연적으로 지배구조와 지배적인 가치체계에 의해 제약받게 될 것이다.그런고로 상식은 구질서에 대한 부정이며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왜곡된 부정 그 이상일 수가 없는 것이다. 강력한 대항 헤게모니적 힘이 부재한 상황에서 대중 항쟁은 주도적인 헤게모니에 의해 흡수되어 버리든지 심지어 반동적인 대중주의로 그 방향이 바뀌어버릴지도 모른다.또한 대중의 반대는 억압이나 심각한 정치적 실패에서 숙명론적 절망이나 수동성의 차원으로 표류할 가능성도 있다.

 이번 촛불집회가 한번에 '대항헤게모니'까지 형성하지는 못할지라도 집회에 참가했던 시민들과 청소년들에게 분명히 유의미한 기억을 남길 것으로 믿는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위는 승리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기억들은 5년 내내 지속될 현 정부의 무능과 서민을 죽이는 정책들에 대해 그때 그때 동참할 수 있는 힘이 될 것이다. 그렇게 기대하고 싶다.

내일 시위를 정점으로 아마 촛불집회는 어떤 변화를 겪게 될지도 모른다. 시위의 성격과 한계를 미리 예견하는 것은 이론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올바르지 못하다. 집회는 거의 사십일째 비폭력의 이름으로 대중을 동원하고 도덕적 명분을 쌓아왔다. 이 집회가 가진 한계를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레토닉으로가 아니라  실재적으로 '이명박 퇴진'이 가능할 만한 현실적 정세와 대중 응집력이 아니라면 비폭력노선이 유지되는 것이 옳은 방향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정세와 대중의 응집력,그리고 대중의 변혁 열망이 어떻게 움직일지는 열린 공간으로 남겨두어야 한다. 어떤 노선을 하나 정하고 그것만을 유지하겠다는 것은 대게 혁명의 시기를 기다리다 놓쳐버린 과거의 역사가 선례로서 경계하고 있기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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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8-06-09 1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개가 미래... 인가요?

글샘 2008-06-09 11:55   좋아요 0 | URL
멍박이가 기다리는 미래가 그런 것 같아요. 기말고사 압박하고, 평화적 시위라 별로 겁도 안 나고... 느슨해 지면서 자멸하리라는... 노선간의 분쟁싸움만 심해지리리는... 그럴수록 조중동과 한나라당을 더욱 가열차게 압박할 필요도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