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집회는 이제 최고점에 다다른 듯 하다. 물론 흐름이 어떤 물꼬를 따라 흐르게 될 지는 아무도 모른다. 여기에는 하루 하루 바뀌는 작용과 그에 따른 반작용이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두들 예상하듯 내일 (6.10)은 분기점이 될 듯 하다.

여고생들의 소박한 집회로 시작되었던 촛불 집회가 38일째에 이르렀다. 청장년 층이 참여했고 유모차와 엄마들이 힘을 실었다. 각종 사회 단체들과 진보 단체들도 '미국 소'로 야기된 이명박 정부의 약한 고리에 몰려 들었다. 시위 구성원의 성격도 조금 씩 변화했고 시위의 양상도 변하고 있다.

나는 이번 시위가 -지금까지는-상당히 소박한 형태의 자유주의적 시민 불복종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대중동원력도 높았고 또한 정치적 공격의 빌미도 제공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또한 한계가 있다. 몇 몇 알라딘 분들이 '축제같은 시위'의 한계에 대해 미리 걱정하신 것도 그런 차원에서다. 내가 언젠가 이런 집회의 속성때문에 생긴 '진보 진영의 딜레마'에 대해 말한 것도 그런 의미에서다. 나서기도 뭐하고 안나서자니 희미해지는 그런 상황 말이다. 

집회가 영구적일 수 없다. 물리적으로 그런 동력을 이어갈 수는 없다. 쉽게 말해서 '분노와 열정'도 피곤함 앞에서는 무력하다. 나는 역사를 외면하고- 역사는 그대로 반복된다는 뜻은 아니다- 마치 어제 세상에 태어난 사람 마냥 자신이 그 역사 위에 서있음을 등지는 운동과 투쟁에 선뜻 동의하기 힘들다. 교조주의적 급진주의에도 동의할 수 없지만 현장의 흥분과 열정만으로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소아론적 포퓰리즘에도 동의할 수 없다.

집에서 책장을 바라보다가 우연히 그람시가 눈에 띄었다. 내가 이 시점에 그람시를 읽고 싶어졌던 것은 어떤 의미일까....책 종이는 시간과 공기에 숙성되어 누런 빛을 띠고 발효된 종이 냄새가 구수했다.   

이것은 바로 오래된 것은 죽어가고 있으나 새로운 것은 아직 탄생하지 못한 시기이다. 이러한 공백기에 대단히 다양한 병적 증상들이 나타난다.

국가에 대한 직접적인 '정면 공격'에 착수하기 전에 모든 차원-경제적,정치적, 문화적,사회적-브루자아 질서의 이데올로기적 침식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이 과정은 하층 또는 피억압자계급들이 급격하게 전진했다 후퇴를 겪고 모였다가 흩어지며 특정한 영향과 사건들에 따라서 각양각색으로 형성되어나가는 결코 조화롭게 발전하지 않는 지속적이며 유기적인 과정을 통해 일어날 것이다.

지배계급과 전체 인구의 다양한 부문들 사이의 이데올로기적 유대를 끊어버릴 수 있는 '대항헤게모니'를 창출하는 것.....자신의 이데올로기적 헤게모니를 주장하려면 총체적 혁명과정의 필수부분으로서 그 자신의 문화를 창조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초보적인 문화적 항의와 반란의 흐름에 의지하여야 한다.

그람시에게 가장 중심적인 딜레마는 어떻게 해서 피억압 대중들의 자발적인 에너지를 제거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그들의 일상적 관심의 즉자성을 뛰어넘도록 하느냐의 문제였다. 이데올로기적 헤게모니의 파급력 때문에 모든 즉자적 혹은 중재되지 않은 대응들은 필연적으로 지배구조와 지배적인 가치체계에 의해 제약받게 될 것이다.그런고로 상식은 구질서에 대한 부정이며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왜곡된 부정 그 이상일 수가 없는 것이다. 강력한 대항 헤게모니적 힘이 부재한 상황에서 대중 항쟁은 주도적인 헤게모니에 의해 흡수되어 버리든지 심지어 반동적인 대중주의로 그 방향이 바뀌어버릴지도 모른다.또한 대중의 반대는 억압이나 심각한 정치적 실패에서 숙명론적 절망이나 수동성의 차원으로 표류할 가능성도 있다.

 이번 촛불집회가 한번에 '대항헤게모니'까지 형성하지는 못할지라도 집회에 참가했던 시민들과 청소년들에게 분명히 유의미한 기억을 남길 것으로 믿는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위는 승리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기억들은 5년 내내 지속될 현 정부의 무능과 서민을 죽이는 정책들에 대해 그때 그때 동참할 수 있는 힘이 될 것이다. 그렇게 기대하고 싶다.

내일 시위를 정점으로 아마 촛불집회는 어떤 변화를 겪게 될지도 모른다. 시위의 성격과 한계를 미리 예견하는 것은 이론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올바르지 못하다. 집회는 거의 사십일째 비폭력의 이름으로 대중을 동원하고 도덕적 명분을 쌓아왔다. 이 집회가 가진 한계를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레토닉으로가 아니라  실재적으로 '이명박 퇴진'이 가능할 만한 현실적 정세와 대중 응집력이 아니라면 비폭력노선이 유지되는 것이 옳은 방향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정세와 대중의 응집력,그리고 대중의 변혁 열망이 어떻게 움직일지는 열린 공간으로 남겨두어야 한다. 어떤 노선을 하나 정하고 그것만을 유지하겠다는 것은 대게 혁명의 시기를 기다리다 놓쳐버린 과거의 역사가 선례로서 경계하고 있기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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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8-06-09 1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개가 미래... 인가요?

글샘 2008-06-09 11:55   좋아요 0 | URL
멍박이가 기다리는 미래가 그런 것 같아요. 기말고사 압박하고, 평화적 시위라 별로 겁도 안 나고... 느슨해 지면서 자멸하리라는... 노선간의 분쟁싸움만 심해지리리는... 그럴수록 조중동과 한나라당을 더욱 가열차게 압박할 필요도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