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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은 왼쪽에 있음을 기억하라 - 정운영의 마지막 칼럼집
정운영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9월
평점 :
품절
대학에 입학하고 한겨레신문을 꾸준히 보던 때가 있었다. 그때는 내 눈길을 끄는 것은 단 두가지였다. 신문을 한장 펼치면 나타나는 박재동의 카툰과 신문의 한가운데 숨어 있던 정운영선생의 컬럼이었다. 담배인지 분필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물건을 손에 쥔 케리커쳐가 인상적이고 세상의 일들을 깊이있고 폭넓게 그리고 날카롭게 분석하는 그의 글들이 와 닿았었다. 언젠가 우리학교에 선생의 강연이 있었을 때 염치불구하고 조최측의 뒷풀이까지 따라가서 선생께 이것저것 여쭤봤던 기억이 있다. 당시 한겨레신문 내에서도 진보의 방향성에 대해 뜨거운 논쟁중이었다는 걸 들었고 선생이 그곳에서 발 붙이고 있기가 쉽지 않으시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제법 시간이 지난 후 선생의 글을 다시 만난 건 <정운영의 중국경제산책>이란 책을 통해서였다. 그책을 통해 선생이 중앙일보로 옮기셨다는 걸 알고 의아해 했지만 중국사회의 경제와 정치를 선생의 해박한 지식을 통해 쉬우면서도 핵심을 잃지 않게 설명해주셨다. 그리고 백분토론의 사회자로 토론 진행자로서 선생의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하셨지만 신문사를 옮기고 했던 선생의 거취에 대한 논란을 접하고 여러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이리고 이제 선생의 유고집을 들었다. 정치, 경제, 문학 등 많은 분야의 해박한 지식으로 우리사회의 나아가야 할 바를 그리고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밝히며 그것을 풀어 나갈 방법에 대해 고민하는 선생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몇몇 글들의 논조가 예전 한겨레신문에서 나를 감동케하던 방향과는 어긋나는 듯해 당혹스럽기도 하고 이러한 시각이 그의 거취에 대해 변절이란 무심시한 표딱지가 붙게한 빌미였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선생의 인생 말미에 쓰여진 이컬럼들을 일관되게 흐르는 기조는 이땅에 진정한 보수와 개혁이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한 가운데 페어플레이를 해서 진정 이나라에 사는 백성들이 평안하고 행복하기를 바라는 애정이 아닐까?
레닌이 혁명의 초기에 <무엇을 할 것인가?>를 썼던 건 당시 러시아사회주의자들 속에 만연한 우경화를 비판하기 위함이요 만년에 좌익소아병을 비판한건 사회의 좌경화를 비판하기 위해 다소 우파적인 입장에서 서술했다고 한다. 선생의 글들에서도 80년대말 90년대 초엔 당시 아직까지 남아있던 우리사회의 보수들을 비판하며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음이요 근래 예전보다 조금은 보수스러운(?) 글을 남기심은 진보라는 이름으로 세상을 어지럽히는 잘못된 이름만 진보인 족속들을 꾸짓기 위함은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