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두 가지 기준이 있다. 시비是非와 이해利害가 그것이다. 옳은 것을 지켜 이롭게 되는 것이 가장 좋고, 옳은 일을 해서 손해를 보는 것이 그다음이다. 그른 일을 해서 이익을 얻는 것이세 번째고, 그른 일을 하다가 해를 보는 것은 네 번째다. 첫 번째는 드물고, 두 번째는 싫어서, 세 번째를 하려다 네 번째가 되고 마는 것이 세상의 일이다. 너는 내게 그들에게 항복하고 애걸하라고 하는구나. 이는 세 번째를 구하려다 네 번째가 되라는 말과 같다. 내가 어찌 그런 짓을 하리. 이는 그들이 쳐놓은 덫에 내 발로 들어가라는 말이 아니냐? 나도 너희들 곁으로 돌아가고 싶다. 하지만 죽고 사는 문제에 견주면 가고 안 가고는 아무것도 아니지. 하찮은 일로 아양 떨며 동정을 애걸할 수는 없지 않느냐?
다산은 아들의 간청에도 불구하고 18년간의 유배를 견디면서 살려달라는 편지 한 장 쓰지 않았다. 부끄러운 것이 없고 잘못한 일이 없는데 제가 먼저 굽히는 것은 마갈궁의 운명을 타고난 사람은 결단코 할 수 없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