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 백석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거리를 걸어가는 것은 잠풍 날씨가 너무나 좋은 탓이고
가난한 동무가 새 구두를 신고 지나간 탓이고 언제나 꼭 같은 넥타이를 매고 고은 사람을 사랑하는 탓이다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거리를 걸어가는 것은 또 내 많지 못한 월급이 얼마나 고마운 탓이고
이렇게 젊은 나이로 코밑수염도 길러보는 탓이고 그리고 어느 가난한 집 부엌으로 달재 생선을 진장에 꼿꼿이 지진 것은 맛도 있다는 말이 자꾸 들려오는 탓이다

왠지 파블로 네루다의 '산책'이라는 시를 떠올리게 하는 시. '산책' 역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시이다. '걷는다'는 행위와 어우러진 이미지들이 너무 멋진 시라서. 이 시는 이미지 면에서는 '산책'만 못하지만, '부끄러움'이라는 정서 면에서는 나와 더욱 맞닿아 있는 시.. 어느 누가 이렇게 진솔하고 순수하게 사는 것의 구차함을 말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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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 백석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이 시를 읽을 때면 꼭 샤갈의 이런 그림이 떠오른다..

고등학교 때 정말 좋아해서 거의 외다시피 한 백석의 시.

오늘 안도현 시인 강연회 갔다가 이 시 얘기를 하는 바람에 다시 기억이 났다. 다시 읽어도 여전히 너무 좋은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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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이매지 > 책읽는 여자는 위험하다 中


피터 얀센스 엘링가. 책 읽는 여인. 1668/70년.




프랑수아 부셰. 퐁파두르 후작 부인. 1756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 책 읽는 여인. 1770



프란츠 아이블. 독서하는 처녀. 1850


구르타프 아돌프 헤니히. 책읽는 소녀. 1828



라몬 카사르 이 카르보. 무도회 이후. 1895



제임스 티소. 정적. 연도미상



비토리오 마테오 코르코스. 꿈. 18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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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맹이 2006-11-11 2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지금 읽고 있는 책.
 

시모네 마르티니(1280/85~1344)의 수태고지.

수태고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에 관한 사실을 미리 알린 것.

천사장 가브리엘이 나자렛에 살고 있는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타나 신약성서의 《루가의 복음서》 1장 26∼38절에 따르면,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에게 "두려워하지 말라. 마리아, 너는 하느님의 은총을 받았다. 이제 아기를 가져 아들을 낳을 터이니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그 아기는 위대한 분이 되어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아들이라 불릴 것이다…"라고 일러 주었다. 그러나 마리아는 남자를 알지 못한 입장이었다. 그 사건은 생명에 위협을 느끼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유대의 율법에는 처녀가 임신을 하면 반드시 돌로 쳐죽이라는 내용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수태고지의 내용 속에서, 그리스도 교회의 중요한 교리인 '동정녀 수태설'이 나온다.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무죄성과 구약 예언의 성취, 그리고 그리스도의 인성()을 부인하는 가현설(:Docetism)을 배격하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이 아름다운 소재를 화폭에 담은 성화가들이 많았다. 그 중에서도 레오나르도 다 빈치, 엘 그레코, 안젤리코 등의 그림은 유명하다. 지금도 성지 나자렛에 가면 이때 마리아가 살던 곳이라고 믿어지는 장소에 고지교회라 불리는 기념()교회당이 있다.

- 네이버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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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신의주유동박시봉방 - 백석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매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 오는데,
나는 어느 목수네 집 헌 삿을 깐,
한 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
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나는 춥고, 누굿한 방에서,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 같이 생각하며,
딜옹배기에 북덕불이라도 담겨 오면,
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 우에 뜻 없이 글자를 쓰기도 하며,
또 문 밖에 나가지두 않구 자리에 누워서,
머리에 손깍지베개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쌔김질하는 것이었다.
내 가슴이 꽉 메어 올 적이며,
내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일 적이며,
또 내 스스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이며,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나 잠시 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천장을 쳐다보는 것인데,
이 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 가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 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이렇게 하여 여러 날이 지나는 동안에,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외로운 생각만이 드는 때쯤 해서는,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 끼며, 무릎을 꿇어 보며,
어니 먼 산 뒷옆에 바우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어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크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작년에 공부할 때 배워서 참 좋아하던 시. 개인적으로 백석님은 우리 나라에서 젤 위대한 시인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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