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 백석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거리를 걸어가는 것은 잠풍 날씨가 너무나 좋은 탓이고
가난한 동무가 새 구두를 신고 지나간 탓이고 언제나 꼭 같은 넥타이를 매고 고은 사람을 사랑하는 탓이다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거리를 걸어가는 것은 또 내 많지 못한 월급이 얼마나 고마운 탓이고
이렇게 젊은 나이로 코밑수염도 길러보는 탓이고 그리고 어느 가난한 집 부엌으로 달재 생선을 진장에 꼿꼿이 지진 것은 맛도 있다는 말이 자꾸 들려오는 탓이다
왠지 파블로 네루다의 '산책'이라는 시를 떠올리게 하는 시. '산책' 역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시이다. '걷는다'는 행위와 어우러진 이미지들이 너무 멋진 시라서. 이 시는 이미지 면에서는 '산책'만 못하지만, '부끄러움'이라는 정서 면에서는 나와 더욱 맞닿아 있는 시.. 어느 누가 이렇게 진솔하고 순수하게 사는 것의 구차함을 말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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