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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름 ㅣ 동서 미스터리 북스 99
로스 맥도날드 지음, 강영길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7월
평점 :
알라딘의 유명한 서재지기님들 - 개중에서도 추리계의 대모이신 M모님과 추리계에도 능통하신 H모님-이 좋게 평했던 소설이라 계속 읽어봐야지, 하고 벼르고 있던 로스 맥도날드의 '소름'을 이제야 읽었다. 읽고 난 뒤의 느낌은, 왜 이제야 읽었을까, 진작 읽을 걸. 이다.
이 작품의 매력은 무엇보다 탐정 '루 아처'에게 있다. 루 아처 책을 처음 읽는 것이라 그의 정확한 나이는 모르겠지만, 희끗희끗한 머리의 덩치가 꽤 큰, 그러나 어딘가 모르게 추레해 보이는 남자. 눈만은 언제나 샤프하게 번득이는 남자, 입술이 언제나 약간 일그러져 있을 것 같은 그런 남자, 라고 상상이 된다. 하지만 마음 속은 공명정대하고, 따뜻하다, 쉽사리 드러내 보이지 않지만.
게다가 이 남자는 자신이 하는 일에도 뛰어나다. 여러 개의 사건과 여러 명의 사람들이 복잡하고도 복잡하게 얽혀 있는 사건을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추적해 가는 모습 - 게다가 난 이런 일엔 베테랑이지, 하는 여유마저 보이면서 -이 너무 멋있었다. 챈들러씨의 필립 말로위 소설도 단 한 권밖에 안 읽긴 했지만, 어쩐지 필립 말로위랑 비교도 하게 된다. 그런데 내게는 이 책의 루 아처님이 더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일견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작은 실종 사건에서 시작하여, 몇 십 년의 세월을 가로지르는 복잡한 살인 사건으로 끝맺는 이 소설은, 사건의 구조 자체가 꽤 복잡하여, 다 읽어서 범인을 이미 알게 되었는데도 한 번 더 찬찬히 읽어 보면서 작가의 의도를 하나하나 확인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들게 한다. 이 책이 로스 맥도널드의 최고 걸작이라는 말이 있기 하지만, 이 작가의 루 아처 시리즈를 하나하나 섭렵해 보고 싶은 생각도 들게 했다. 그런데 번역되어 출간된 작품이 몇 없다, 아쉽게도.
사족.. 번역 문제에 대해서 - 일본 추리 소설은 그렇지 않은 편인데, 원작이 영어로 된 추리 소설을 읽어 보면 비록 실력은 안될지라도 원서를 사서 읽고 싶은 맘이 굴뚝 같아진다. 그만큼 날림으로 번역된 티가 나고, 날림으로 번역된다는 것은 그만큼 출판사에서 투자를 하기 힘든 상황이라 어쩔 수 없었을 거라는 짐작이 가긴 한다. 그래도 이런 책은 제발, 솜씨 있는 번역가가 정성 들여 제대로 번역한 것으로 읽고 싶은 욕심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