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책은 거의 추리 소설이다. 그런 습관은 결혼하고 생긴 것이다. 결혼하기 전, 나는 다소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추리 소설이란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난 2년 사이에 바뀌고 말았다. 요즘 읽은 추리 소설 가운데서는 마릴린 보레스의 <탄식하는 비>, 로셀 매저 크리히의 <얼어붙은 놀이>가 재미있었다. 페이 케러먼이다 패트리샤 콘웰, 메리 히긴즈 클락도 결혼하고서 탐독했다. 지금은 추리 소설이 없으면 아내로서 생활할 수 없을 정도다. 아파트에 혼자 있다 보면 외롭고 따분하다. 그러면 온갖 상념이 밀려온다. 하지만 생각하지 않는 편이 오히려 좋은 일들도 많으니까, 그런 때 대신 살해당한 맥건과 실종된 레네이, 유괴된 조주를 생각하면 된다. 그러다 보면 결국은 매듭이 지어진다. 아마도 매듭이 지어지지 않는 장소를 낯설어하기 때문이리라. 나는 때로 매듭을 짓지 못해 안달한다.-15쪽
한동안 나홀로 여행을 하지 못했다. 그런 생각이 드는 순간, 갑자기 여행을 떠나고 싶어졌다. 나는 이런 때는 행동이 재빠르다. 수첩을 펼치고, 스케줄을 생각하고, 9월에는 여행을 떠나자고 결심했다. 여권의 유효 기간이 끝나, 그날 산책하는 길에 사진을 찍고 구청에서 서류를 받아와 다음날 신청서를 냈다. 밤, 회사에서 돌아온 남편에게 대뜸 말을 꺼냈다. "나, 9월에 여행할 거야." 양복과 넥타이, 와이셔츠와 양말을 여기저기 벗어던지던 남편이, 옷을 벗다말고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나를 보며 이렇게 말했다. "그럼, 밥은?" 이번에는 그 말을 들은 내가 어안이 벙벙했다. 밥? 몇 초 동안, 둘 다 말이 없었다. 그리고 간신히 내가 말했다. "밥? 첫 마디가 그거야?" 지금 외출을 하는 거라면 몰라도 앞으로 몇 달 후에 여행을 간다는데, 그 말을 듣고 처음 한는 소리가 어디?가 아니고, 며칠 동안이나?도 아니고, 밥은?이라니. 나는 나의 가장 큰 존재 가치가 밥에 있다는 소리를 들은 것만 같아 슬펐다. 밥. 결혼하고 두세 달 지나면 결혼 생활에서 밥이 얼마나 큰 관건인지 싫어도 깨닫게 된다. 회사에서 돌아오면 밥을 먹고 자는 그 일련의 행동에 군더더기 하나 없는 남편의 모습을 보다 보면 마음 속에서 예의 진부한 의문 - 이 사람, 혹시 밥 때문에 나랑 결혼한 거 아니야 - 을 떨어내기가 어렵다.-9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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