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스파이 소설을 쓰는 존 르 카레의 작품을 원작으로 해서 구성이 탄탄하고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사실은 아프리카의 인권 문제와 대형 자본의 무자비함에 대한 영화랄 수 있지만, 거기에 스파이 이야기적인 요소가 가미되었다. 또한 최고의 사랑 이야기랄 수도 있다.

온갖 요소가 섞여 있어서 여러 가지 재미를 느낄 수 있고, 덕분에 어떤 사람이 보아도 재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초반 70여 분을 인내심을 갖고 보아야만 뒤의 흥미진진함을 느낄 수 있다.

아프리카에 대해서는 워낙 접해 본 바가 없어서 알렉산더 매콜 스미스의 <넘버원 여탐정 에이전시>에서 읽은 대로 자연은 비정하지만 아직 인간의 따뜻함이 남아 있는 곳, 그리고 개발의 파도를 여지 없이 넘고 있는 곳 정도로 생각했었는데- 물론 환란이나 자연 재해로 1초에 수십 명이 죽어 나가는 나라도 있지만. -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아프리카는 생각보다 더 비참하고 하루하루 살아남을 수 있는지의 여부가 어쩌면 운에 맡겨지는 그런 곳이었다. 또한 서구의 자본에 의해 자연도 사람도 철저하게 이용당하는 곳.

영화를 보면서 요즘은 돈이 최고의 신이어서,
결국은 돈 때문에 수천 수만의 사람들이 죽어 나간다는 사실을 - 그것도 교묘하게, 가해자의 손에 직접 피를 묻히지 않으면서도 - 다시 한 번 느꼈다. 돈도 결국에는 사람이 만든 것인데도 돈이 사람의 정신과 생명까지 좌지우지한다는 게 참 분하고 슬펐다. 만약에 정말로 신이 있다면, 세상이 요즘 같아서야 곧 노아가 살았던 그 때처럼 홍수라도 일으키시지 않을까 싶기까지 하다.

이런 영화를 보면 늘 마음이 불편해진다. 나만 알고, 내 소소한 행복만 좇고 살아가면서, 내가 뭘 할 수 있겠어, 하고 불편한 마음을 재빠르게 덮어 버리는 스스로에 대한 죄책감이 생겨서인 듯.

그래서인지 다음 장면이 정말 찡하게 와 닿았다:
병원에서 아이를 낳은 후 40km를 걸어 다시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남매를 차에 태워 데려다 주자는 아내 테사에게 남편인 저스틴이 말한다. "저렇게 걸어가야 하는 사람들은 저 둘만이 아니야. 나에겐 지금 당신을 집에 데려다 주는 일이 더 중요해." 라고. 사산 이후의 퇴원길이라 아내의 건강이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아내는 모두에게 도움을 주지는 못할지언정 저 두 사람만이라도 도와줘야 한다고 하지만 저스틴은 냉정하게 차를 몰고 그들을 지나쳐 버린다.
그런데 같은 상황이 아내의 죽음 이후 변모된 저스틴에게 되풀이된다.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죽이고 여자와 아이들을 납치해 가는 사막의 해적 집단이 한 마을을 습격했을 때, 저스틴 및 마을에 구호 활동차 와 있던 의사는 유엔 헬기를 타고 구조된다. 하지만 의사가 조수 삼아 돌보고 있던 여자 아이를 저스틴이 함께 헬기에 데리고 탔을 때 헬기 기장은 아이의 탑승을 거부한다. 그 헬기는 구호 활동 요원만 탈 수 있도록 승인된 것이라면서. 그 때 저스틴은 사람 목숨이 더 중요한 거 아니냐고 외치지만, 기장은 이 헬기 밖에는 그렇게 죽어가는 수천의 사람이 있다고 말하고, 저스틴은 한 명만이라도 구해야 하는 게 아니냐고 항변한다.
어떻게 보면 종종 우리 앞에 닥쳐 오는 이런 선택의 상황에서 무엇이든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최대한 해야겠다는 생각을 이 장면에서 했다. <사막>이라는 이사카 코타로 소설에 나오는 니시지마가 '지금 내 눈 앞에서 울고 있는 사람을 구하지 못하는 인간이 내일, 이 세계를 무슨 수로 구한답니까' 라고 말했듯. 작은 행동이 어쩌면 세상을 바꿀 수도 있는 것이다.

재미 있으면서도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주는 좋은 영화였다.


댓글(5)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순오기 2008-01-06 04: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취향 영화인데, 극장에서 개봉한 건가요? 보고 싶군요.
정말 '돈'이 신이 된 현실에 재앙이라도 내릴 것 같은 불안감도 느껴집니다.ㅠㅠ

알맹이 2008-01-06 1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05년도에 개봉한 영화일 거에요. 저도 미루고 미루다가 이제야 봤는데 괜찮았어요. ^^

솔랑주 2008-01-28 1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마이 갓~ ! 이런 영화가 있었다니 - 큰 조 카

태영이에욤 2008-03-27 1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뭐얌~~ 영화를 보지도 않았는데, 샘 글 읽고 벌써 눈이 시큰해졌어용....앙~ 빨리 보고파용^^

알맹이 2008-03-27 22:00   좋아요 0 | URL
어떻게 보면 지루할 수도 있는데 꾹 참고 보면.. 나름 괜찮았어요.. 가능하면 오늘 구워가볼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