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
이사카 고타로 지음, 오유리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7년 5월
구판절판


"마음만 먹으면?"
니시지마가 입을 떼며 또박또박, '단언'했다.
"우리들이 마음만 먹으면, 사막에 눈이 오게 할 수도 있다 이겁니다."-20쪽

"운동은 안 하냐?"
"난 있지, 스포츠 따위에 땀 흘리는 사람들은 시간 활용법을 모르는 부류라고 본다."
- 도리이의 대사.-25쪽

"있다면 어쩔 건데?" 그렇게 되물은 건, 옆에 가던 도도.
"있다면 우선적으로 태워 버리겠습니다." 곧이어 대답이 나왔다.
"태워?" 나는 앵무새처럼 되풀이했다.
"태워 버리겠습니다. 무능한 정치가의 집을 태워 버리고, 어리석은 학생들이 신주 모시듯 하는 PC를 태워 버리겠습니다. 그러면 학생들도 이 세상 중대사에 발 벗고 나설지도 모릅니다."
학생들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PC와 휴대전화라고 그는 꼭 집어 말했다.-55쪽

"우리 학생들이, 설렁설렁 놀고먹는 것과는 정반대로 말입니다. 자기 몸을 쓰고, 신체에 고통을 견디며 맞부딪치는 겁니다. 그런 식으로 해 나가야 돼요. PC라든가 인터넷이라든가, 그런 세계와는 달리 자신의 피부로 직접 부딪친 부분이 바로 세계입니다. 나는 완전히 감동 먹었습니다. 감동의 도가니에 완전 빠져 버렸습니다."-99쪽

"그렇게 머리 좋은 척하며 살아서 득 보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나라 국민들의 대부분은 말이죠, 바보짓을 하게 될까 두려워 결국 아무것도 못합니다. 바보짓 하기를 죽는 것만큼이나 두려워하는, 바보들의 천국이라고요."-117쪽

"아까 말한 모금 활동도 마찬가집니다. 역사라든가 세계라든가 하곤 상관이 없어요. 지금 당장 눈앞에 닥친 어려움, 위기 그걸 해결하면 되는 겁니다. 항생제가 있으면, 그냥 주면 됩니다. 필요한 사람이 나타날 때마다 그냥 막 주는 겁니다. 생각해 보세요. 자기 눈앞에 있는 사람도 못 구하는 인간이 더 큰 일에 일조할 리 있겠습니까. 역사는 무슨 얼어 죽을 역삽니까. 당장의 위기를 해결하면 되는 거라고요. 지금 내 눈 앞에서 울고 있는 사람을 구하지 못하는 인간이 내일, 이 세계를 무슨 수로 구한답니까."-118쪽

"(...)그러나 보다 더 놀라워해야 할 일은, 한 인간이 몸과 마음을 다 바쳐 전달하고자 한 것도 전달되지 않는다는 바로 그 사실입니다. 미시마 유키오를, 바보라 매도한 사람들도 말이죠. 마음 한구석에서는 진심을 다해 전하면 자신의 뜻이 전달될 거라 생각하고 있을 겁니다. 그건 절대적으로 확실합니다. 인터넷에서 의견을 피력하는 누리꾼들도 말이죠, 자기가 하겠다고 맘만 먹으면 본심이 가 닿을 거라 과신하고 있는 겁니다. 지금은 자기가 제 역량을 다 발휘하지 않아서 그런 거라고 말이죠. 하지만 미시마 유키오의 힘으로도 어쩔 수 없었는데, 할복할 각오를 하고 호소했음에도 그 메시지가 전달되지 않았는데, 저런 데서 확성기로 외친들 그게 먹히겠습니까."-293쪽

"이렇게 멀리 떨어진 나라의, 이런 술집에서, 학생들이 맥주를 마시며 어디선가 죽어간 사람들을 두고 어쩔 수 없다느니 하는 것 자체가 끔찍한 일입니다. 우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을지라도, 같이 마음 아파하며 하루라도 빨리 전쟁이 끝나길 기원조차 하지 않으니 말입니다. 적어도 그에 대해 부끄럽다는 생각은 갖고 말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니시지마는 개탄하면서 덧붙였다.
"전쟁에 대해 말할 때는 좀 더 괴로워하며, 몸부림치며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302쪽

유머러스하고, 거드름 피우지 않고 지적으로 보이는 남자. 일전에 니시지마가 가르쳐 준, '팔리는 소설의 조건'과 신기하게도 일치했다. 유머와 가벼움, 지적인 내용. 유려한 필치에 알맹이는 없는....-318쪽

"내 생각에는, 머리 좋은 사람들이 걸려들기 쉬운 올가미가 있는 것 같아."
"올가미?"
"응, 머리 좋고 유식해 보이는 사람들은 꼭 상황을 요약하고 싶어 하더라."
"그 말은?"
"초능력은 이런 것이고, 그것을 믿는 사람은 이렇다는 식으로 말이야. 예를 들면, 영화를 봐도 이 영화의 테마는 '말린 멸치'라는 식으로. 무엇이든 요약을 하는 거지. 모두 뭉뚱그려서. 본질을 간파하려고 하는 거야. 실제로 본질이란 건 곳곳에 다양하게 포진해 있고, 케이스 바이 케이스라고 생각하는데, 그들은 요약해서 분류하고 싶어 해. 그렇게 하면 자기가 우수한 것을 어필할 수 있으니까. 난 그렇게 생각해."
- 이건 '나' 기타무라와 그 여친 하토무기 씨의 대화-352쪽

니시지마의 주관에 따르면, 그 남자는 남들 위에서 사람들을 가르치듯 논리정연하게 말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며 사실을 알면 행복해진다고 생각하는 '전형적인 바보'란다.
"사실을 알면 행복한 거 아냐?"
미나미가 거기서 말했다. (...)

"저기요, 사실이란 건 말입니다. 사실, 이러나저러나 크게 상관없는 겁니다."
니시지마가 침을 튀겼다.-365쪽

"아버지의 반대는 없으셨니?" 내가 물었다.
"아니." 도도가 바로 대답했다.
"엄마가 개를 키우기로 했다고 했더니 '그거 잘 됐네. 그렇잖아도 나도 키우고 싶었는데.' 하셨어."
"그 말밖에 할 줄 모르는 양반이니까 뭐."-374쪽

"매일같이 우리들은 열심히 살고 있지만, 어떻게 사는 게 옳은 길인지 모르잖아. 무엇을 하면 행복해질지 아무도 모른다고. 안 그래?"
"응, 그래요."
미나미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말하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본의 아니게 사막에 덜렁 내던져져서는 그때부터 알아서 생존해 가야 하는 존재들이야."
"알아서?"
"그래. 어떻게 살면 좋을지,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아. 그냥 네 맘대로 하라고 하면 더 하기 어려운 법이잖아."
"그게 무슨 말이야?"
"모두들 답을 알고 싶어한다고. 꼭 정답이 아니더라도 적어도 힌트라도 주어지길 바라지. 그러니 예를 들어 주택매매 시 체크할 사항이라든가, 실패 없는 육아법이라든가, 이렇게만 하면 문제없습니다 하는 지표에 의지하는 거지."
- 하토무기 씨.-386쪽

"(...) 하지만 결국 그런 것에 기대지 말고 '자유 연기를 해야 하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루하루 고민하고 온몸으로 부딪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난 생각해."
- 역시 하토무기 씨.-388쪽

'학창 시절을 떠올리며 그리워하는 것은 상관없다. 하지만, 그 시절은 참 좋았지, 오아시스였지 하면서 현실도피적인 생각일랑은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 인생을 보내선 안 된다'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렇게 덧붙였다.
"인간으로서 누릴 최대의 사치란, 인간관계의 풍요로움을 말한다."
- 졸업식에서, 학장님의 연설.-599쪽

"아마도 말입니다, 도저히 제 자신을 주체할 수가 없어서, 그는 그 나름의 행동을 개진하고 있는 거라 봅니다. 미국이 이딴 식으로 제멋대로 나오는 것은 모두 그 원숭이처럼 생긴 대통령 탓이라고 생각한 거 아니겠습니까."
나는 요즘 텔레비전을 켤 때마다 등장하는, 호리호리하고 칙칙한 얼굴을 떠올렸다. 늘 눈동자를 가만히 놔두지 못하고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며 대답이 궁하면 어째서인지 배우처럼 웃음짓는 대통령. 그 사람도 나름대로 고민은 하고 있을 것이고 나보다야 사회 전반에 대해 아는 게 많겠지만, 그의 언동을 보고 들을 때마다 '저거 바보 아냐?'하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나처럼 세상 물정 모르는 애송이한테서도 그런 소릴 들으니 대통령 노릇도 참 가련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 ㅋㅋㅋ-4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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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lin 2007-08-01 2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사카 고타로 답네요..이 책은 못 읽어봤지만, 이 작가의 다른 작품들의 느낌이 나요~

알맹이 2007-08-05 2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이 분만의 스타일이 있어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