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0만 가지 죽는 방법 밀리언셀러 클럽 13
로렌스 블록 지음, 김미옥 옮김 / 황금가지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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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로 마음먹기까지 조금 시간이 걸리기는 했지만, 나는 달리 갈 곳도 없는데다가 딱히 할 일도 없었다.-14쪽

두 개의 세계가 겹쳐 있다. 지금 자전거를 타는 이 사람들 중에는 자전거를 도둑맞게 될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한가롭게 공원을 거닐고 있는 연인들은 집에 돌아가 아파트에 강도가 든 것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지금 떠들며 웃고 있는 아이들이 강도로 돌변하여 총이나 칼을 들이댈지도 모른다. 뉴욕의 진짜 얼굴을 이해한다는 건 누구에게든 간단한 문제가 아닐 것이다.-79쪽

이튿날 아침 <뉴스>를 샀다. 킴 다키넨 기사를 밀어내고 벌써 새로운 살인 사건 기사가 첫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었다.-109쪽

"사람들은 자기가 뭔가를 알고 있다는 사실을 모를 때가 있어."
"때로는 자기가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말하기도 하고."
"그 말도 맞아."-148쪽

"하인리히 하이네가 죽어 가고 있을 때 말이에요. 그 사람 독일 시인이죠?"
"그런가?"
"죽어 가면서 이렇게 말했대요. '하느님은 나를 용서하실 거야. 그게 하느님의 직업이니까.'"
"재미있는데."
"독일어로 하면 더 근사할 거예요. 나는 섹스를 하고 당신은 탐정 노릇을 하고 하느님은 용서를 하죠."-163쪽

"<워터십 다운의 열한 마리 토끼>라는 책을 읽어 보신 적 있나요?"
읽은 적이 없었다.
"그 책에 토끼 마을이 나오거든요. 인간들에 의해 길들여진 토끼들의 마을이죠. 인간들이 토끼를 위해 음식을 마련해 주기 때문에 식량은 충분해요. 식량을 주는 사람들이 이따금 덫을 놓아 토끼 고기를 먹으려고 드는 것만 빼면 토끼 천국이라고 할 수 있죠. 살아남은 토끼들은 절대로 덫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덫에 걸려 죽은 친구들에 대해 말하는 법이 없어요. 그들은 덫이라는 것이 존재하지도 않는 듯이 죽은 동료들이 아예 살았던 적도 없었다는 듯이 태연히 행동하기로 무언의 약속을 한 셈이죠."
그녀는 이야기하는 동안 시선을 돌리고 있다가 문득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뉴요커들이 마치 그 토끼들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가 여기 사는 건 문화든 일자리든 간에 이 도시가 주는 뭔가가 필요해서죠. 그리고 이 도시가 우리 친구나 이웃들을 죽일 때 우리는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보죠. 그런 기사를 읽으면 하루나 이틀쯤은 그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곧 잊어버리는 거예요. 잊어버리지 않으면 그 일에 대해 뭔가를 해야 하는데 그럴 수가 없기 때문이죠. 그러지 않으려면 이 도시를 떠나야 하는데 떠나고 싶지 않기 때문이죠. 우린 마치 그 토끼들 같아요. 그렇죠?"-249쪽

걷기 시작했다. 달리지 않으려면 걸을 수밖에 없었다.-368쪽

이제 내 차례가 되었다.
"내 이름은 매트예요."
잠시 멈추었다가 다시 시작했다.
"내 이름은 매트고요, 알코올 중독자입니다."
그리고 빌어먹을 일이 벌어졌다. 내가 울음을 터뜨렸던 것이다.-48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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