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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랑, <시선으로부터> 밑줄긋기

"할머니는 할머니의 싸움을 했어. 효율적이지 못했고 이기지못했을지 몰라도, 어찌되었든 사람은 시대가 보여주는 데까지만 볼 수 있으니까."
- P182

좆같은 일이 화수에게 일어났다. 좆같다는 말을 쓰는 사람이 될 줄 몰랐지만 유해한 남성성을 그보다 잘 표현하는 말도 없을 것 같았다. 할머니는 욕도 표현의 일종이라고, 다만 정확하고 폭발력있게 욕을 써야 한다고 말했었다.
- P183

"하와이가 합병된 과정 말이야, 낯설지가 않더라고, 갑자기 외부인들이 들이닥쳐서는 땅을 빼앗아가고 자원을 빼앗아가고 문화를 훼손하고 가짜 정부를 세워서 집어삼켰어. 선교사들과 군대가순서대로 ….…. 처리해버린 거지."
"처리라고?"
"응, 제국주의는 일종의 처리 공정이었던 것 같아. 매번 같은일이 벌어졌어. 질릴 정도로 똑같은 얼굴이야."
"그런 시절이었지. 지난 세기도 지지난 세기도 지지지난 세기도."
"안 끝났어."
"어?"
"계속되고 있어. 교묘할 뿐이야. 좀더 포장을 잘한 제국주의 시대를 살고 있다고."
- P234

"한국이 아니지, 조선이지. 조선 사람이 아니니까 모르지. 특별히 어느 지역 사람들이 더 잔인한 건 아닌 것 같아.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에겐 기본적으로 잔인함이 내재되어 있어. 함부로 굴어도 되겠다 싶으면 바로 튀어나오는 거야. 그걸 인정할 줄 아는지 모르는지에 따라 한 집단의 역겨움 농도가 정해지는 거고."
- P235

누군가는 유전적인 것이나 환경적인 것을, 또는 그 모든 걸 넘어서는 노력을 재능이라 부르지만 내가 지켜본 바로는 질리지 않는 것이 가장 대단한 재능인 것 같았다. 매일 똑같은 일을 하면서 질리지 않는 것. 수십 년 한 분야에 몸을 담으면서 흥미를 잃지 않는 것. 같은 주제에 수백 수천 번씩 비슷한 듯 다른 각도로 접근하는 것. 사실 그들은 계속 같은 일을 했다. 그리고 조각하고 빚고 찍고.… 아득할 정도의 반복이었다. 예외는 있지만 주제도 한둘이었다. 각자에게 주어진 질문 하나에 온 평생으로 대답하는 것은 질리기 쉬운 일이 아닌가? 그런데도 대가들일수록 질려하지 않았다. 즐거워했다는 게 아니다. 즐거워하면서 일하는 사람은 드물다. 질리지 않았다는 것이 정확하다.
그러므로 만약 당신이 어떤 일에 뛰어난 것 같은데 얼마 동안 해보니 질린다면, 그 일은 하지 않는 것이 낫다. 당장 뛰어난 것 같지는 않지만 하고 하고 또 해도 질리지 않는다면, 그것은 시도해 볼 만하다. - P288

상현씨랑은 할머니가 인용한 글을 나도 인용해서 말할 수 있을 것 같네, 사랑은 돌멩이처럼 꼼짝 않고 그대로 있는 게 아니라 빵처럼 매일 다시, 새롭게 만들어야 하는 거래. 여전히 그러고 싶어? - P304

"그 점은 나도 싫은데 외부의 충격에 영향받지 않는 인생이 어딨겠어? 그렇지만 내가 그날 이후로 곱씹고 있는 건 내 불행, 내 상처가 아니야. 스스로가 가엽고 불쌍해서 이러고 있는 게 아니라고, 그보다는 세상의 일그러지고 오염된 면을 너무 가까이서 보게 되면, 그 전으로 돌아갈 수가 없게 되는 거야. 그걸 설명할 언어를 찾을 때까지는. 어떤 건지 이해가 가? 내가 찾아야 할 걸 찾는 동안, 계속 곁에 있고 싶어? 그럴 수 있겠어?"
- P305

"너는 … 그래, 쾌락주의자만이 시대를 이길 수 있지."
명혜가 둘째 딸의 반박을 받아들였다. 우윤과 규림과 해림은 각자의 이유로 시선에게서 뻗어나온 가지의 끝이 되기로 조용히 마음먹었고 말이다.
화수는 멈추고 끊겨 전달되지 않을 것들을 헤아려보았다. (중략)
"그렇지만 상실감도 뮬려주지 않을 수 있겠네." - P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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