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문명이란 생각의 무한질주, 무한증식의 결과물이다. 그와 동시에 새로운 질문들이 생겨났다. 폭력은 대체 언제 종식되는가? 제국이 확장될수록, 부가 증식될수록 왜 괴로움은 더욱 늘어나는가? 얼마만큼 노력해야, 얼마나 누려야 이 갈증은 해소되는가? 그와 더불어 더 궁극의 질문, 왜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은 소멸해야 하는가? 생과 사의 경계는 대체 무엇인가? 등등. 그때 비로소 알게 되었다. 이것은 자아를 무작정 팽창한다고 되는 것이 아님을. 소유와 증식과 팽창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그때부터 생각은 방향을 선회했다. 외부를 향해 치달리던 생각이 이제 자신을, 자신의 내면을 향하기 시작한 것이다.
- P35

욕망 자체는 죄가 없다. 그것은 생명의 토대이자 동력이므로. 다만 그것이 향하는 방향과 속도는 알아차려야 한다. 생명이라는 토대를 벗어날 때, 그것은 과속으로 치달린다. 치달리는 순간 방향이 어긋난다. 이때 해야 할 일은 이 어긋남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더더욱 치달리게 된다. 그런 점에서 무지야말로 폭력이자 반생명이다. 생각에 생각을 더했는데, 결국은 무지에 도달한다는 이 우주적 역설, 그 역설로부터의 해방, 이것이 돌원숭이가 삼장법사와 함께 서쪽으로 간 까닭이다. - P39

하여, 우리가 일상적으로 해야 할 실천은 간단하다. "간절히 궁금해하는 것" (운성스님, 명상 유튜브) 무엇에 대해? 세계의 근원에 대해서, 존재의 심연에 대해서. 어떻게? "마음을 텅 비운 채, 우주적 가능성으로!" 모든 배움의 기초가 질문인 것도 그 때문이다. - P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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