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태어나서 살아가는 일이 어떤 의미일까. 잘 모르겠다. 사람이 사람을 부품처럼 쓰다 버리고(삼성 직업병 문제) 약한 존재의 죽음을 무시하고(세월호 참사) 자연을 파괴하면서 (밀양 송전탑) 기업이 이익을 우선으로(옥시 가습기 살균제 사건) 돌아가는 세상이다. 가진 자가 더 갖기 위한 거대한 시스템으로 구조화된 세상에서, 나는 그냥 밥 먹고 숨 쉬고 애들 키우고 일상을 사는 것만으로도 나도 모르게 죄를 짓게 된다.
가령 어느 날 나는 멀티플렉스에서 영화 보고 아래층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커피 마시고 드러그 스토어에서 생리대를 샀는데, 알고 보니 그게 모두 같은 재벌 기업의 브랜드였다. 발길 닿는 대로 욕구를 따르는 일이 큰 것의 배를 불리고 작은 것을 소멸시키는 순환 고리에 깊숙이 들어가 있다. 오싹한 일이다. 소비자 정체성으로 포인트 적립하다가 하루를 보내게 만드는 자본의 천국은 얼마나 무서운가. 내 삶을 찬찬히 돌아보고 글로 적어 두기, 이 세계의 무자비한 힘에 끌려가지 않기 위한, 태어난 것을 덜 후회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