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켄슈타인 ㅣ 열린책들 세계문학 160
메리 셸리 지음, 오숙은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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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체구의 흉포한 괴물. 인간을 닮았지만 자연이 아닌 인간이 만들어낸 불의한 존재. 그것이 지칭하는 명칭의 어감만으로도 공포감을 자아내는 괴물 인간, 프랑켄슈타인이다. 대중매체의 집중적인 관심으로 괴물 인간의 인지도는 비약적으로 상승하였지만, 문학사적으로는 여전히 B급 장르문학으로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 작품이다.

 

이 소설을 읽는 독자는 대체로 실망하기 마련이다. 프랑켄슈타인 괴물의 잔인한 살상행위와 이에 대항하는 인간의 결투 등을 기대했다면 실제적 살인과 대결 등의 묘사는 전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 하나 프랑켄슈타인 괴물을 주인공으로 생각하고 괴물의 행동은 물론 내면까지도 심도 깊게 기술되어 전모를 확연히 알 수 있게 되리라고 생각했다면 주인공은 괴물이 아니라 괴물을 창조해 낸 젊은 과학자이고, 그의 이름이 프랑켄슈타인이며 괴물은 딱히 이름도 없다는 사실이다.

 

작품의 부제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현대의 프로메테우스. 프로메테우스는 신화에서 인간에게 불을 가져다 준 신으로 기억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진흙으로 인간을 빚어낸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작가는 인간이 신을 흉내 내어 유사 생명체를 창조해 내지만 그것이 얼마나 독신 적이며 반인간적 행위임을 신랄하게 파헤치고 있다. 생명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과학적 지식을 향한 인간의 집착, 만들어 낸 존재에 대한 창조자로서의 무책임한 방치와 증오, 신체적으로 지적으로 우월한 피조물에 이끌려 다니며 무력하고 나약하기 그지없는 인간의 양태 등. 괴물이 아닌 인간 프랑켄슈타인의 관점에서 작품을 읽어나가면 그의 오만과 좌절, 비겁과 나약, 분노와 증오가 파노라마처럼 작중에 펼쳐져 있음을 발견하게 되고 두 프랑켄슈타인의 미래가 전개되는 귀결에 목말라함을 느끼게 된다.

 

작자는 메리 셸리는 영국 낭만주의 시기 대표적 시인인 퍼시 셸리의 아내다. 진보적 철학자 아버지를 둔 가정환경에서 자라 지적으로 조숙한 그녀는 퍼시 셸리의 두 번째 아내가 되어 바이런의 스위스 별장에서 이 작품을 착안하게 되었다고 한다. 당시 그녀의 나이 불과 19세. 소설을 읽다 보면 구성을 과도하게 비틀어놓으면서도 진행은 나이브하게 느껴지곤 하는데 여기에 연유한 탓이리라.

 

대중적 관심은 단연 괴물 프랑켄슈타인에게 집중되겠지만, 이 작품이 던지는 도덕적, 사회적 함의는 제법 묵직하다. 현대는 과학진보주의에 대한 낙관적 환상을 더 이상 인정하지 않지만, 줄기세포, 유전자 조작 등 발전을 거듭하는 생명공학 분야에서 한계와 기준 설정에 대한 공감대는 아직 형성되지 않은 상태다. 궁극적으로 인간 복제와 대체가 가능하다면, 결국 괴물 프랑켄슈타인을 만든 인간 프랑켄슈타인과 동일한 입장에 처하게 되는 셈이다.

 

“아! 그 얼굴이 안겨 주는 공포를 견딜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다시 살아난 미라도 그것만큼 소름끼칠 수는 없었다. 일이 끝나기 전에도 그를 가만히 뜯어본 적이 많았다. 그때도 물론 보기 흉했지만 막상 근육과 관절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단테도 상상 못 할 그런 악마가 되고 말았다.” (P.83)

 

인간 프랑켄슈타인은 스스로의 손으로 창조한 괴물 프랑켄슈타인의 혐오스런 외모에 치를 떨면서 외면하고 방치해 버린다. 괴물은 창조자로부터 애정과 보살핌을 받고 떳떳한 하나의 생명체로서 인정받기를 원하지만 아무도 그를 원하지 않는다. 창조자마저 버린 괴물이니 어느 누가 그를 받아들이겠는가. 그 자신은 어린 시절에 애정 어린 양육과 교육을 받았으면서도 그것을 피조물에게 베풀지 못하였다.

 

인간 프랑켄슈타인은 자신의 손으로 과학적 기적을 생산할 수 있다는 학문적 열망과 세속적 욕망에만 눈이 어두운 나머지 생산 이후의 결과에 대해서는 아무런 인식과 자각도 하지 못하였다. 인간으로 눈을 돌려서 남녀가 서로의 사랑에만 매달려서 낳은 아이를 방치하고 유기한다면 중대한 반인륜적 범죄로서 지탄과 처벌을 받게 됨은 자명하다. 오늘날 생명공학 연구자들이 자신들의 연구에 대해 학문적, 상업적, 세속적 욕망 외에 도덕적 인식을 제대로 갖추고 있는지 여부는 사실 알 수 없다.

 

인간 프랑켄슈타인이 자신을 구조한 로버트 월턴의 과학진보주의에 대한 소신을 듣고 터뜨린 신음은 자신의 뼈저린 체험에서 비롯된 이러한 깨달음일 것이다.

 

“불행한 사람! 당신도 나 같은 광기를 지닌 거요? 당신 역시 그 도취의 한 모금에 취한 거요?” (P.44)

 

“나는 선한 의도로 삶을 시작했고, 그것을 실행에 옮겨 내가 인류에게 쓸모 있는 존재가 되는 순간을 갈망했다. 그러나 모든 것이 무너져 버렸다. 과거를 흐뭇하게 돌아보고 거기에서 새로운 희망의 약속을 끌어내는 양심의 평화는 사라지고, 후회와 죄의식이 어떤 언어로도 표현할 수 없는 고통스러운 지옥으로 나를 몰아댔다.” (P.125)

 

그래서 괴물 프랑켄슈타인의 항변은 섣불리 무시하기 어려운 도덕적 명분의 울림을 지닌다.

 

“어떻게 생명을 가지고 그런 장난을 친단 말이오? 나에 대한 의무를 다하시오. 그러면 나도 당신을 물론 다른 인간들에 대해 내 의무를 다할 테니.” (P.136)

 

“나는 당신의 정의를, 당신의 너그러움과 애정을 받아야 마땅하오. 나는 당신의 피조물이잖소. 나는 당신의 아담이어야 했건만 타락한 천사가 되었고, 아무 잘못도 없는 나를 기쁨에서 몰아내었소.” (P.137)

 

“비록 당신에 대해서는 야속한 감정밖에 없었지만 내가 구원을 기대할 사람도 당신뿐이었으니까. 무정하고 냉혹한 창조자 같으니! 당신은 내게 인지력과 열정을 주어 놓고선 세상 밖으로 내팽개쳐 인간의 경멸과 공포를 사게 만들었소.” (P.184)

 

공상과학 문학이나 영화 등 장르에서 즐겨 다루는 소재 중 로봇이 있다. 괴물 프랑켄슈타인도 일종의 로봇이라고 부를 수 있다. 차페크의 희곡 <R.U.R.>이나 아시모프의 소설을 바탕으로 한 영화 <아이 로봇>, 일본 애니메이션인 <은하철도 999>도 피조물 로봇이 인간 세상을 지배하려고 하는 대목은 공통이다. 다소 다르지만 <도롱뇽과의 전쟁>도 기본 접근은 유사하다. 인간을 닮은 고급 복제물(로봇 포함)일수록 자신이 인간에게 복종하고 지배당하는 현실을 계속 감수하지는 않을 것은 당연한 추론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인간을 지배하기를 원하게 된다. 괴물 프랑켄슈타인은 초보적 인식 단계에 머무르지만 궁극적 지향에 이르는 길은 멀지 않으리라.

 

“넌 노예야. 그렇게 설득했건만 넌 내가 애써 겸손 떨 가치도 없음을 스스로 입증하고 말았어......넌 나를 만들었지만 네 주인은 나야. 어서 복종해!” (P.220)

 

발표 당시에는 대단한 찬사를 받았지만 곧 세인에게 잊히는 경우도 있지만, 처음에 그저 그런 정도로 여겨졌지만 시간이 경과할수록 의의와 평가가 점점 높아지는 예술 작품이 있다. 진정한 고전이라고 할 수 있는데, 소설 <프랑켄슈타인>도 여기에 해당한다. 작자가 200년 후 현대의 과학적 진보를 예견하고 이 작품을 쓰지는 않았을 테지만, 인간과 과학과 도덕이 맞물리는 난해한 지점을 천재적 직감으로 선취한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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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누키노스케 일기 ㅣ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수필비평선집
사누키노스케 지음, 정순분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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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리카와 천황은 일본의 제73대 천황이며, 그 아들이 제74대 도바 천황이다. 작자 사누키노스케는 호리카와 천황을 지근에서 모시던 여관이었다. 이 책은 자신이 모시던 호리카와 천황의 죽음과 추억에 대한 회상록이다. 2부 구성으로서 상권은 호리카와 천황의 사망 경과를 묘사하고 있으며, 하권은 호리카와 천황에 얽힌 추억을 기술하고 있다.

 

주목되는 것은 호리카와 천황과 작자와의 관계다. 일기 내용과 해설에 따르면 작자는 왕을 측근에서 모시는 여관, 즉 조선시대의 상궁 같은 지위인 동시에, 후궁과도 같은 애첩 역할도 담당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일까 일기 내용에 따르면 천황을 언급할 때 ‘임’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등 공적 상하관계를 넘어서 개인적인 깊은 애정관계를 엿볼 수 있다.

 

“그것을 본 다지마 여방이 ”마치 한집안 사람끼리 하는 행동처럼 격의가 없으시니 다른 사람은 아예 두 분 사이에 끼어들 수가 없사옵니다.“라며 재미있어했다. (하권 12단)

 

이처럼 동갑내기로서 천황과 작자는 주위에서 시샘할 정도로 돈독한 정을 주고받는다. 와병 중에도 신하들의 시선에서 작자를 무릎으로 가려주는 행동 등 애정과 배려가 넘칠 정도다. 이런 작자였기에 천황에 대한 연모의 정은 남들과 다를 수밖에 없었고 천황의 죽음을 대하는 심경도 남달랐을 것이다. 작자는 심지어 다른 사람들처럼 소리내어 울 수도 없을 정도(상권 19단)였다.

 

호리카와 천황의 죽음으로 작자는 궁중에서 물러나 자택에 은거하지만, 곧 명에 의해 아들인 도바 천황을 모시게 된다. 심신을 다해 섬긴 천황이 이승에 없지만 세상사는 언제 그러했다는 듯이 곧 일상으로 돌아간다. 그럴수록 천황에 대한 사무치는 심경은 새록새록 하다.

 

“더위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는데도 나는 여전히 호리카와 천황님 계실 때 생각에 빠져 있었다.” (하권 12단)

 

“다른 사람들은 지난날의 추억으로 무엇을 떠올리곤 할까? 나는 오랫동안 모시고 있던 호리카와 천황님 생각뿐이다.” (하권 23단)

 

샘물과 부채 뽑기 일화(하권 12단)와 둘 간의 연인스런 티격태격 일화(하권 23단)는 해제에서 언급했듯이 신분 고하 차이를 넘어선 개인적이고 진실한 인간관계의 표현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본인들에게 있어 오랫동안 천황은 인간이 아닌 신적인 존재로 인식되었다. 따라서 천황은 외경과 존엄의 대상이었지 희로애락을 표출하는 인간다운 면모를 기록으로 만나보기는 어려웠다. 그런데 천 년 전에 한 여관은 사랑과 존경과 충성을 바치고 모시던 천황의 일상과 죽음이라는 특이한 소재를 사적인 관점에서 가식 없이 솔직한 시각으로 기술하였다.

 

독자는 이 일기를 통해서 우선 천황의 인간적 면모를 알게 되어 흥미로우며, 죽음을 맞이하여 두려움 속에서도 의연함을 지키려는 천황의 심정과 태도에 다소간 놀라게 되며, 무엇보다도 한결같은 마음가짐으로 천황을 그리워하고 추억에 잠겨 호시절을 회상하는 작자의 기쁨과 슬픔에 공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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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시나 일기 ㅣ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수필비평선집
다카스에의 딸 지음, 정순분.김효숙 옮김 / 지만지고전천줄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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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에 외롭고 쓸쓸한 처지에서 예전의 생을 회상할 때의 심경은 차라리 참혹하다. 자신의 삶 전체를 다루고 있는 점에서 <청령일기>와 비슷하나, 남편과의 관계에 의존하지 않고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는 점에서 진정한 회상록이라고 할 수 있다.

 

작자는 ‘모노가타리’의 세계에 매료되어 현실적 삶의 인식을 갖지 못한 점을 못내 후회한다. 오늘날 드라마나 영화 속의 화려한 삶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일부 군상이 자연스레 오버랩된다.

 

“히카루겐지님처럼 신분이 높고 멋진 분을 만나면 좋겠다.” (P.102)

 

이들의 공통점은 환상과 가공의 세계에 익숙하여 현실 세계에 불만스러워하고 외면하여 환상 속으로 도피하는 데 있다. 현실은 녹록치 않다.

 

“히카루겐지님처럼 멋진 사람이 세상에 있겠는가 말이다.” (P.142)

 

처절하면서도 씁쓸한 깨달음이다. 세상에 신데렐라가 있을 수 있지만 누구나 신데렐라가 되지는 못한다. 이처럼 작자에게 모노가타리는 현실 인식을 무감각하게 만드는 짙은 폐해를 드리웠다.

 

일기의 첫부분은 형식상 기행문, 즉 여행문학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오늘날의 도쿄 동부에 해당하는 가즈사 지방에서 당시 수도였던 오늘날의 교토인 헤인안쿄까지 수 개월간 육로와 수로를 거쳐 귀경하는 대목이다. 해설에서는 <도사 일기>와는 달리 풍경 기술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므로 본격적인 기행문학으로서 평하고 있다.

 

이 1부를 일종의 구도기행으로 바라보면 어떨까? 작자는 모노가타리에 대해 듣고 읽어보고 싶은 마음에 하루빨리 귀경하기만을 고대하며 신불에 기원할 정도다. 작자가 귀경길에 언급하고 품평한 명소들도 기실 와카라든지 문학에서 회자된 곳이다. 문학적 감성이 충만한 십대 초반 소녀의 입장에서 헤이안쿄로 가는 길은 모노가타리 독서에 가까워지는 길에 다름 아니다.

 

작자는 당시로서는 매우 늦은 나이인 33세에 결혼한다. 십대 후반이 결혼 적령기인 당대로서는 상당한 만혼이다. 비슷한 나이였던 때 세이쇼나곤은 스스로를 할망구라고 지칭하였다. 만혼의 사유로서는 가정적인 연유도 있겠지만 분명한 것은 작자의 현실 인식의 미흡성이다. 작자는 모노가타리를 탐독하고 파묻혀 지내는 나날을 보낸다. 남들처럼 혼인에 적극적이지 않고 참배나 근행도 무심하게 여겼다. 오죽했으면 스스로 예지몽을 꾸어도 ‘아무 생각 없었다’고 반복적으로 술회할 정도이다.

 

모노가타리의 삶은 현실에 부재하다는 각성은 쓰라린 자각과 체념을 불러일으켰다. 감았던 눈을 떠보니 나이든 자신의 모습과 남편의 존재가 인식되었다. 스케미치와 길고도 짧은 대화는 스러져가는 촛불의 마지막 일렁임이라고 해야 하리라. 꿈은 비록 잃었지만 노년의 심리적, 경제적 안정을 기대하였던 다카스에의 딸, 그에게 닥친 운명은 남편의 죽음이었다. 남은 것은 후회와 회한, 내세의 기원뿐.

 

이 작품의 의의는 다음과 같이 해설에 잘 요약되어 있다.

 

“스스로에 대한 반성과 자기 성찰이 강하게 들어가 있다는 점에서 자전 문학으로서 가치 또한 높다......저자의 정신적 성장과 편력을 엿볼 수 있고 주제 구성을 위한 창작 요소가 내재해 있다는 점에서 회상록 혹은 자전 문학으로서 독자성이 인정된다.” (P.236)

 

이 책은 각 단마다 번역문, 각주, 해제의 순서로 충실하게 구성되어 있어 내용 이해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그리고 해설 외에 유용한 부록을 여럿 담고 있다. ‘헤이안 여류 일기 문학의 흐름’은 헤이인 시대 일기 문학의 개요를 조망할 수 있으며, ‘<사라시나 일기>의 귀경 여행’은 작품 중에서 특히 귀경 여행을 집중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첨부된 ‘귀경 여정 지도’는 기행문에서 흔히 간과하기 쉬운 것으로서 글월만으로는 파악하기 어려운 여행의 전반적 여정과 지리적 위치를 이해하는데 필수적이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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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즈미시키부 일기 ㅣ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수필비평선집
이즈미시키부 지음, 노선숙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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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세기 초 일본 고대 헤이안시대의 여류 일기문학 작품이다. 앞선 <청령일기>에 비하면 연대적으로 수십 년 후에 해당한다. 타이틀은 일기로 되어 있으나 역시 내용상으로는 회상록에 가깝다. 자연스레 선대와 후대의 유사한 일기문학과 비교되는데, 여류작가라는 점에서는 <청령일기>와 친근성을, 생애 전반이 아닌 특정 시기와 사건을 다룬다는 점에서는 <도사 일기>와 유사성을 지닌다. 이런 점에서 후대의 일기문학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다.

 

이 일기는 남녀 간의 따끈한 연애과정을 기술하고 있다. 여자는 작자인 이즈미시키부, 남자는 당대 천황의 아들인 아쓰미치 황자. 신분상 격차가 있는 남녀가 만나게 된 계기는 겉치레를 벗기고 보면 기실 불순하다. 여자는 남편이 있는 마당에 이미 황자의 형인 다메타카 황자와 내연의 관계를 유지하였는데, 황자의 죽음으로 실의에 빠져 있다. 남편과는 사실상 이혼 상태. 남자는 여자에 대한 소문을 듣고 가볍게 심심풀이 삼아 한때 유희의 상대로 생각한다. 여자에 대한 세간의 평은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다.

 

일기에서 다루는 시기는 서기 1003년 4월에서 1004년 1월까지에 해당한다. 남녀 사이의 연애 코스가 흔히 그러하듯 만남, 탐색, 밀고 당기기, 다툼과 소원, 진심의 발견, 영원한 결합으로 이어지는 과정은 동일하다. 다만 시대적, 문화적 차이가 존재하는데, 연인의 마음을 상호간에 전달하고 확인하는 수단은 서신과 와카다. 이 점에서 우타 모노가타리로 장르 성격을 구분하기도 한다. 작자가 화자를 ‘여자’로 지칭하는 점, 후대에 회상 형식으로 쓰여져 다소간 작위적 요소가 존재한다는 점이 그러하다.

 

일기에는 매우 많은 와카가 등장한다. 해설에 따르면 145수로서 분량을 감안하면 일기문학 작품들 중에서는 가장 와카의 비중이 크다. 그녀는 와카의 뛰어난 명인이었던 듯하다. 와카 증답을 통해 그녀의 재주, 감정, 외로움 등을 알게 된 황자는 서서히 그녀에게 빠져들게 된다.

 

“여자의 섬세한 감각을 보신 황자님께서는 운치를 이해하는 여자의 멋스러움에 새삼 감탄하셨다.” (P.154)

 

그리고 황자의 신분 상 자주 찾기가 어려워 종내에는 자신의 집으로 들어올 것을 강권하는 단계에 이른다. 두 사람의 와카 중 압권은 ‘팔베개 소맷자락’이라는 문구를 마지막 시구로 사용한 일련의 와카들(18장과 19장)이다. 상기 문구는 두 사람 만의 사랑을 표시하는 비밀 암호라고 할 수 있으리라.

 

두 사람 사이를 가로막는 최대의 장애는 여자를 둘러싼 좋지 않은 풍문이다. 황자는 여자를 사랑하면서도 여자의 품행에 계속적으로 일말의 의혹을 품는다. 이 과정에서 교제와 소원이 반복된다.

 

“여자에 관한 소문을 전하자 황자님께서는 그녀가 참으로 경박한 여자라는 생각에 오랫동안 편지도 쓰지 않으셨다.” (P.76)

 

일기의 마지막은 망설이던 작자가 황자의 저택으로 들어가게 되고, 이에 격분한 황자비가 친정으로 돌아가는 장면으로 끝맺는다. 순전히 두 사람의 관계만으로 보면 사랑이 결실을 거둔 것이지만, 확대된 주변 관계의 시각에서 보자면 황자의 가정에 형용할 수 없는 파문을 일으킨 셈이다. 어쨌든 두 사람은 수 년 후 황자가 사망할 때까지 행복한 시절을 보내었으니 사랑 자체는 순수했음을 알 수 있다.

 

일기가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한 연유는 분명하다. 더 이상 서신과 와카를 교환할 필요성이 사라졌다. 신분상 차이로 인해 작자는 황자의 궁인 자격으로 저택에 들어갔다. 애타게 그리워할 필요 없이 눈앞에서 서로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지만, 연인의 사랑은 천상에서 지상으로 내려왔다.

 

이즈미시키부, 그녀는 미색과 재주를 겸비한 재인이었음에 틀림없다. 비록 본인은 부인하고 있지만 그녀를 둘러싼 무수한 염문들. 두 황자와의 실제적 사건. 작중에서도 역설적으로 알 수 있듯이 남편에 대한 철저한 외면. 이것들로 미루어 보면 그녀는 자유분방한 인물이었을 것이며, 이 점에서 한숨과 탄식으로 점철한 미치쓰나의 어머니와는 가는 길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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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새니얼 호손 단편선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4
나사니엘 호손 지음, 천승걸 옮김 / 민음사 / 199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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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 작품>

1. 나의 친척, 몰리네 소령

2. 로저 맬빈의 매장

3. 젊은 굿맨 브라운

4. 웨이크필드

5. 야망이 큰 손님

6. 메리 마운트의 오월제 기둥

7. 목사의 검은 베일

8. 반점

9. 천국행 철도

10. 미를 추구하는 예술가

11. 라파치니의 딸

12. 이선 브랜드

 

<큰 바위 얼굴>과 <주홍 글자>로 유명한 호손의 단편소설 모음집이다. 호손의 단편들을 읽으면서 새삼 모호성, 상징성, 환상성 등의 단어를 떠올리게 되는데, 이는 그의 기법의 전형인 알레고리에 기인한다. <라파치니의 딸>에서 스스로 자신의 작품 성향을 “알레고리에 대한 고질적 선호”(P.251)라고 술회하는 점에서 보듯이 그의 단편 작품들에는 양의 정도에서 차이가 있을 뿐 알레고리적 특성이 다소간 반영되어 있다. 알레고리에 대한 선호는 그의 작품 특질을 정신적 또는 형이상학적으로 치우치게 만드는 한편, 당대의 종교, 특히 죄와 선악에 대한 관념, 그리고 초자연적 요소와 결부하여 작품에 음울한 판타지적 분위기를 부여한다.

 

<나의 친척, 몰리네 소령>의 모호성은 젊은이의 핵심적 질문에 아무도 대답을 하지 않으며, 작가 또한 의도적으로 표현하지 않음으로써 증폭되며, 밤이라는 시간적 배경을 활용하여 기괴한 연상을 독자와 젊은이에게 불러일으킨다.

 

호손은 특히 엄격한 청교도주의에 대해 비판적 인식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애초에 신앙의 자유를 구하기 위해 신대륙에 정착한 이주민들은 자신들의 신앙만을 추구하는 독선적 경향을 보이게 되었다. 완고하고 독단적인 믿음은 타협과 관용을 불허하며 비인간적으로 흐르게 되기 쉽다. 호손은 인간 사회에서 악의 존재는 불가피함을 깊이 인식하고 엄연한 진실을 외면하는 종교의 과오를 우회적으로 또는 직설적으로 비판한다. <젊은 굿맨 브라운>, <메리 마운트의 오월제 기둥>, <목사의 검은 베일>, <천국행 철도>, <이선 브랜드>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젊은 굿맨 브라운>에서 굿맨 브라운의 혼란은 선악에 대한 자신의 이해가 전도되는 데 기인한다. 정직하고 독실한 선조는 사실 사악한 짓을 자행하였으며, 주변의 선한 사람들과 아내조차 악마의 집회에 참석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는다. 인간 내부의 악마적 속성은 “본성과 운명”(P.83)이며, “악은 인간의 본성”(P.85)임을 인정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스스로를 굿맨 브라운처럼 세상과 단절시킬 수밖에 없을 것이다.

 

<메리 마운트의 오월제 기둥>에서도 이러한 갈등은 이어진다. ‘오월제’ 자체가 기독교 이전의 이교적 요소임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호손은 메리 마운트 주민을 타락한 것으로, 이웃 청교도 주민을 경건하다고 표현하는데, 조금만 더 들어가 보면 역설적 문구임을 알게 된다. 메리 마운트 주민은 즐겁고 쾌활한 반면, 청교도 주민은 “음울하고 불행한 모습”(P.126) 또는 “엄격하고 냉혹”(P.127)한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연의 자태는 무엇일지 생각하게 만든다.

 

<목사의 검은 베일>에서 후퍼 목사의 검은 베일 한 조각이 던져주는 의미 역시 인간에게 드리어진 선과 악에 대한 질문이다. 단순한 검은 베일로 사람들은 목사를 무서운 존재로 인식하며 두려워하고 꺼린다. 베일에 대한 두려움은 작품 전개의 추동력이다. 검은 베일은 실체적으로는 어둠과 단절을 가리키지만, 상징적으로는 인간의 죄악과 악마성을 의미한다.

 

“사람의 눈으로 이 베일이 걷히는 것을 보지는 못할 것이오. 이 음산한 베일은 나와 이 세계를 떼어놓아야만 하오.” (P.147)

 

후퍼 목사는 베일의 숙명적 속성을 선언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검은 베일은 목사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있다.

 

“보시오! 모든 사람들의 얼굴에 검은 베일이 씌워져 있지 않습니까!” (P.156)

 

<천국행 철도>는 존 번연의 <천로역정>을 차용한 현대적 알레고리다. 과거와 현대, 허영의 도시 대 천국의 도시, 열차 순례자 대 도보 순례자의 대비는 올바른 신앙의 자세를 되돌아보게 한다. 천국행으로의 순례를 수월하게 하는 철도가 있는데, 흙먼지와 땀에 지저분하고 힘들게 도보를 하는 두 순례자(옳은 일 고수하기, 천국 향해 걷기)는 시종 조롱과 폭소의 대상이 된다. 마지막의 반전이 극적인데, 천국행은 안락과 쾌락으로는 닿을 수 없음을 시사하고 있다.

 

석회 구이 <이선 브랜드>를 사로잡은 관념은 인간의 죄악에 대한 집착이다. 하늘이 자비를 베풀 수 없는 유일한 죄악, 즉 용서받지 못할 죄에 대한 탐구와 실행은 곧 신에 대한 도전에 다름 아니다. ‘용서받지 못할 대죄’가 기독교에서 존재할까?

 

“인간에 대한 우애와 신에 대한 존경의 염을 물리쳐 이기고 자신의 강력한 요구에 모든 것을 희생시키는 그런 지적 죄악이 바로 그것이오. 영원한 고뇌의 응보를 받아 마땅한 유일한 죄악이지!” (P.308)

 

호손은 인간의 지적 오만을 경고한다. 지식과 과학의 진보에 대한 무조건적이며 무한한 신뢰는 신의 존재를 부정하게 한다. 신이 사라진 마당에 신에게서 용서받거나 용서받지 못하는 죄악을 판별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이선 브랜드는 악마가 되었다.

 

종교와 신앙에 대한 성찰과 함께 그의 주제 의식은 과학과 예술에 대한 의미 추구로 확대된다. <반점>, <미를 추구하는 예술가>, <라파치니의 딸>이 이에 해당하는 작품군이다.

 

<반점>은 계몽주의와 근대 과학문명의 발전에 따른 무비판적 과학 추종에 대한 경종이자 과학적 낙관주의와 오만에 대한 강력한 경고다. 에일머는 과학자로서 아내의 뺨에 아로새겨진 진홍빛 손 모양의 반점을 견딜 수 없다. 그것은 인간의 유한성과 한계를 상징하므로 불안과 두려움을 느껴 제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인간은 신의 손길이 없어도 완벽과 완전을 구현할 수 있다. 에일머의 실패와 아내의 죽음은 당연한 귀결이다. 인간은 자신의 불완전성을 부인하지 말고 자체로 수용해야 한다. 그것이 호손이 뜻하는 “좀더 깊은 지혜”(P.184)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에일머의 조수인 아미나다브가 오히려 현명하다.

 

<라파치니의 딸>의 비극적 결말도 과학적 기술의 실패에 결부되어 있다. 인간에 대한 애정이 결핍되어 있는 과학의 추구가 가져오는 참혹한 교훈을 우리는 이미 역사를 통해 깨달은 바 있다. 과학적 실험을 위해 인간 희생을 거리끼지 않는 라파치니 박사. 희대의 독녀가 된 그의 딸. 베아트리체의 절규와 탄식. 그의 아버지는 자식이 과학적 대상을 뛰어넘는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였다. 인간이 부재한 과학의 무의미성도.

 

상기 작품에 비하면 <미를 추구하는 예술가>의 주인공 오웬은 행복한 인물이다. 그는 기술자로 머물기보다 예술가를 지향한다. 예술가의 작업은 “아름다움의 정신 바로 그것을 형태로 만들어 움직이게 하려는 것”(P.218)이다. 오웬과 댄포스는 작중에서 각기 정신 대 육체, 예술 대 기술을 체현하는 인물이다. 세상은 예술과 예술품은 찬미하지만 예술가와 예술 행위는 높이 평가하지 않는다. 예술가의 정신은 높지만 그들의 주위는 아무도 없다. 늙은 시계 제조공과 그의 딸 애니조차도.

 

오웬의 실패와 방황, 재도전은 예술가의 고뇌를 표상한다. 오웬의 나비는 “미를 추구하는 예술가의 지력과 상상력과 감성과 영혼의 구현”(P.243) 결과다. 회의적인 아기의 손에 소멸당하는 나비의 운명은 차라리 상징적이다. 예술적 상징물은 유한하지만 예술과 창조의 정신은 영속적이다. 그래서 예술가는 “모든 고아한 정신적 행위의 보상이란 다른 데서 구할 수 없고 오직 그 자체 안에서만 찾을 수 있다는 사실”(P.245)을 새겨야 하지 않겠는가.

 

<나의 친척, 몰리네 소령>과 <로저 맬빈의 매장>, <웨이크필드>, <야망이 큰 손님>은 인간 운명의 초자연적 불가해성에 대한 탐구의 산물이다. 합리와 이성은 근원을 알 수 없는 불안과 공포에 압도된다. 앞의 두 작품에서는 초기 개척민들 사이에 자리 잡은 이교도적, 미신적 요소가 발견된다. 특히 후자에서 로이벤의 선택은 불가피한 경우이지만 저주를 받게 되고 피갚음의 희생을 요구하는 초자연적 현상이 개입하게 된다.

 

“같은 운명을 공유한 사람들 사이의 유대가 단순한 혈육의 그것보다 더 강한 것이 아니겠는가?” (P.107)

 

이렇게 암시적 성향을 <야망이 큰 손님>은 작품 내내 드러낸다.

 

“높고 추상적인 야망”(P.107)을 품고 있는 젊은이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삶과 이름 모를 죽음을 견딜 수 없어 한다. 예언적 운명의 결과는 그래서 은근한 조소와 냉소마저 느낄 수 있다. 죽음의 운명을 언제나 삶의 주변을 맴돈다. 죽음은 맹목적이며 개인의 소소한 희구를 유념하지 않는다는 것.

 

<웨이크필드>는 문제적 인물이다. 립 밴 윙클이 타의에 의해 이십년간을 세상과 떨어진 반면 웨이크필드는 스스로 “세상과 절연하여 사라져버리고, 죽은 사람들 틈에 끼지도 못하면서 산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그의 위치나 그가 누릴 수 있는 특권을 모두 포기해 버리려 한 것이었다.”(P.100). 그의 존재는 살아 있지만 죽은 것이고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현상이 되어 버렸다. 인간이 자신과 사회로부터 떨어져 겉도는 상태를 우리는 인간소외라고 부른다. 소외는 실존의 질문을 던진다. 그런 면에서 호손은 시대를 앞선 실존주의 문학의 선구자라고 하겠다.

 

개인적으로 그동안 호손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었는데, 마냥 외면만 할 수 없어서 이번 기회에 그의 대표작들을 섭렵하려고 한 첫 번째 시도에서 큰 인상을 받았다. 그는 섣부른 선입견과 기대를 훌쩍 뛰어넘는다. 알레고리 기법, 추상성과 모호성으로 대변되는 분위기, 초자연적 요소, 종교와 신앙의 본질에 대한 질문, 과학과 인간의 관계 설정에 대한 제기 등이 한데 어울려 호손을 우울한 예언자로 만들고 있다. 또한 경쾌하거나 화려하지 않은 차분하고 나직한 문체도 여기에 일조하고 있다. 단번에 확 이끌리는 재미는 없지만 은근하게 되새김질하게 만드는 묘미를 지닌 작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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