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셀라스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26
새뮤얼 존슨 지음, 이인규 옮김 / 민음사 / 2005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인 에어>를 읽을 때 중간에 <라셀라스>가 소개되었다. 이 작품의 존재는 알고 있었지만,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은 별로 없었는데, <제인 에어>에서 굳이 언급될 정도면 나름의 가치가 있을 거라는 판단이 들어서 찾아보게 되었다.

 

이 작품은 한마디로 ‘철학적 허구’ 또는 ‘철학적 우화’이다. 우리가 소설 작품에서 기대하는 인물의 강렬한 개성과 인물 간의 갈등과 대립, 외부 환경과의 충돌 등의 요소는 여기에서 나타나지 않는다. 인물의 사고와 대화, 행동을 기술하는 작가의 태도는 차분하고 느긋하며, 관점은 지극히 관조적이다. 이 작품을 소설로 분류할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지만, 소설이 아니라면 어떤 장르로 간주할 수 있을지 애매하다.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와 비슷한 느낌이랄까.

 

왕자가 대답하였다. “나에게 아무것도 부족한 게 없다는 것, 아니 나에게 부족한 게 뭔지 모른다는 것, 바로 그것이 내 불만의 원인입니다.” (P.21)

 

라셀라스 왕자가 행복의 골짜기에서 탈출하고자 하는 심리는 싯다르타 왕자와 다르지 않다. 자기의 풍요로움에 대비되는 민중의 고통을 구제하고자 하는 해법을 찾기 위해서가 후자라면, 전자는 자신이 누리는 행복이 과연 최고, 최선인지 확인하고 싶다는 욕구를 갖는다. 인간은 상대적 비교를 통해서 자신의 현재를 파악하는 존재다. 불행이 있어야 행복의 가치를 인식할 수 있는 건 양지와 음지, 빛과 어둠, 선과 악처럼 우주의 보편적 원리에 해당한다. 절대적 행복은 오직 깨우친 자에게만 해당할 뿐, 속인들은 이를 알기 어렵다.

 

우리네는 왕자의 번민에 쉽사리 공감하기 어렵다. 그건 우리가 완전한 행복을 누린 경험이 전혀 없어서다. 세상 아무것도 모르는 아기 시절에나 있었을지 모르지만, 그때는 올바른 이성을 지니고 있지 않은 처지다. 다만 외관상 더없는 지상천국으로 묘사되는 행복의 골짜기로 들어온 사람들의 내심은 모두 이를 후회하고 있다는 시인 이믈락의 발언은 현실을 드러낸다.

 

“진실로 여쭙건대 제가 알기로 왕자님을 모시고 있는 자들 가운데 이 은둔의 처소에 들어온 날을 한탄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답니다.” (P.70-71)

 

왕자와 공주, 그리고 이믈락 일행이 골짜기를 벗어나 세상을 돌아다니는데, 주로 머물게 된 곳은 이집트다. 이미 서구 문명이 우위를 점하였음을 인정하고 있는 가운데 아비시니아에서 그나마 가까운 문명의 중심지이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왕자 일행은 다양한 유형과 계층, 직업의 사람을 만나고 그들과 어울리며 관찰함으로써 진정한 행복이 어디에 있는지 탐색한다.

 

세상 사람들은 겉보기에 모두 행복하고 즐거워 보인다. 웃음 띤 가면을 벗기면 그 아래 슬픔과 고통, 거짓의 참모습이 드러나기에 위선의 껍데기를 꽁꽁 동여매고 한사코 움켜잡는다. 그것을 건드리는 행위는 일종의 역린(逆鱗)이기에 왕자는 젊은 친구들에게서 내쫓김을 당한다. 쾌활한 젊은이도, 부유한 상인도, 은자도, 철학자도, 모든 것을 겪은 노인도 결코 행복하지 않음을 알게 되고, 궁정의 왕좌나 일반 평민의 가정을 살펴보았지만 권력과 지위도 행복을 담보하지 못함을 발견한다.

 

한편 피라미드를 방문하는 도중에 공주의 시녀를 아랍인 도둑에게 납치당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유일한 벗인 시녀가 사라지자 공주는 식음을 전폐하고 은둔할 생각마저 품는다. 극도의 슬픔과 절망은 영원히 지속될 것 같음에도 시간의 경과가 마음을 풀어놓게 되는 현상은, 곧 행복의 반대편인 불행마저도 완전하고 절대적인 불행은 존재하지 않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작품의 후반부에 비중 있게 등장하는 인물은 천문학자다. 명망 있는 학자로 소문난 그를 이믈락이 방문하는데,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서 이성의 분별을 상실한 인물임을 발견한다. 물론 학자 자신은 어릴 때부터 학문에 몰입하여 평생을 바쳤기에 자신의 인식과 믿음을 철석같이 믿기에 자족적인 상태이다. 왕자 일행과 교분을 나누고 그들과 어울리면서 비교와 판단의 새로운 근거가 생기기 전까지는. 이제야 비로소 그는 자신이 행복하지 않음을, 그리고 학문과 진리의 세계에 몰두한 자신의 선택이 잘못되었음을 깨닫는다. 이쯤에서 왕자 일행과 그가 헤어져야 하지만, 착오를 제외하면 고매한 인품과 현명함을 지닌 노인이기에 함께 지낸다.

 

진정한 행복을 찾는 왕자 일행의 여정 결말은 마지막 장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결론이 아무것도 없는 결론’이라는 제목이 의미심장하다. 자신들 소망이 현실에서 구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았기에 그들의 도전은 결과적으로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그렇다고 그들이 빈손인 건 아니다. 그들은 행복의 골짜기로 돌아가겠지만 이전처럼 무의미와 권태를 느끼지 않을 것이다. 헛된 욕망을 품고 방황하지도 않을 것이다. 중요한 건 마음의 상태이므로, 원효대사의 해골 물처럼.

 

인간은 늙어 죽을 때까지 행복이란 이 세상에서 결코 찾을 수 없는 것임을 쉽게 깨닫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저마다 다른 사람이 행복을 소유하고 있다고 믿으며 자기도 언젠가는 그런 행복을 얻으리라고 계속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지요. (P.89)

 

사실 작품의 지향과 결론은 심오하거나 색다르지 않다. 우리네가 역사를 거치면서 반복해서 들어왔던 진리가 바로 이것이다. 근대의 문학에서도 이와 비슷한 주제를 담은 작품이 있는데, <파랑새>가 여기에 해당한다. 파랑새는 멀리 있는 게 아니라 바로 이곳 우리 주변에 있다. 왕자와 공주는 이걸 비로소 깨달은 반면, 이믈락은 행복의 골짜기에 들어오기 전에 겪은 여러 세상사를 통해 이미 알고 있다. 작중에서 여러 번 그는 절대적인 행복의 부재를 설파한다.

 

작가는 작품의 첫 문장에서 이미 결론을 암시한다. 여정이 시작되기에 앞서 결과가 예견된다면 무척이나 김빠지게 마련이지만, 왕자 일행의 세상 체험이 결론에 이르는 구도의 과정임을 다양한 사례로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이 우화가 여늬 작품과 성격이 다름을 알 수 있다.

 

공상이 속삭이는 소리를 곧이곧대로 들으며 희망의 환영을 열심히 좇아가는 사람들이여, 나이를 먹으면 젊은 날의 기대가 이루어질 것이며 오늘 부족한 것이 내일이 되면 채워질 것이라고 기대하는 이들이여, 아비시니아의 왕자 라셀라스에 관한 이야기에 한번 귀를 기울여보라. (P.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전시회명 : 인상주의를 넘어 - 디트로이트 미술관 걸작선

기간 : 2026.5.28-8.23

장소 :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관람일자 : 2026년 8월 18일(화)


* 관람평

전시회명과 같이 인상주의부터 이후 현대미술까지 회화사를 조망하고 있다. 미국 디트로이트 미술관 컬렉션에서 52점을 가져왔다고 하는데, 전시회 끝부분에 미술관 소개 영상을 상영하고 있다. 


쿠르베의 '시냇가에서 잠든 목욕하는 여인'을 필두로, 마네, 르누아르, 드가, 고흐, 세잔, 마티스, 피카소에 이르기까지 귀에 익숙한 유명화가들의 작품이 줄줄이 이어진다. 전시회 포스터에 등장하는 르누아르의 '안락의자에 앉은 여인'과 '앉아 있는 목욕하는 여인'은 역시 르누아르답다. 무용수만 그리는 줄 알았던 드가의 말탄 사람들과 여인의 초상 그림은 신선하다. 고흐의 '오베르의 우아즈 강가'는 독무대로 꾸며져 있는데, 해당 미디어아트도 상영한다.


개인적으로 마티스와 피카소로부터 표현주의에 이르는 현대회화의 소개가 충실해서 유익하였다. 다리파와 청기사파, 독자적 활동 화가부터 기존에 생소했던 화가와 사조, 특징을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피카소는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책 읽는 소녀', '앉아 있는 여인'. 더 이른 시기의 '안락의자에 앉은 여인'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파리파로 모딜리아니도 나온다. 목이 긴 초상화 '여인'가 전형적이다.


유럽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르네상스, 고전 중심의 그림이 아니라 현대회화를 선구적으로 컬렉션한 그들의 혜안이 부럽다. 전시작품 수는 그렇게 많은 편은 아니지만, 근현대 회회사를 일목요연하게 조망하고 충실한 설명을 덧붙여 이해를 돕는 기획도 좋게 평가하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춘향전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0
송성욱 풀어 옮김, 백범영 그림 / 민음사 / 2004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춘향전>은 어지간한 국민 모두라면 대강은 그 내용을 알고 있기에 새로울 것이 없다. 나 또한 판소리를 통해 여러 차례 감상했기에 더더욱 친숙하다. 분명 예전에 책으로도 읽었을 테지만 기억이 나지 않아 제대로 된 판본으로, 정식으로 읽는다. 이 책은 두 종류의 <춘향전>을 수록하고 있다. 하나는 경판본 <춘향전>이며, 다른 하나는 완판본 <열녀춘향수절가>다. 굳이 두 종류를 읽을 필요가 있을지 의심을 품을 수 있지만, 등장인물과 사건 및 구성 등 모든 면에서 차이를 보이며 춘향전의 역사적 발전 과정을 짐작하게 해주기에 비교 감상이 필요하다. 학자들은 경판본이 완판보다 앞선 판본이라고 하는데, 몇 줄만 읽어봐도 알아차릴 수 있다. 부록으로 <열녀춘향수절가> 영인본을 실었는데, 실효성에 의문을 표한다.

 

<춘향전>의 배경은 판본에 따라 다르다. 경판본은 조선 인조, 완판본은 조선 숙종 시절을 시대 배경으로 한다. 판본이 다르다고 굳이 임금을 바꿀 이유가 있을까마는 아무래도 인조보다는 숙종이 그나마 낫다. 작중에 태평 시절이어서 백성들이 격양가를 부르는 설정이 있는데, 인조 때는 잇따른 내란과 두 차례의 호란으로 나라가 쑥밭이 된 시절이므로 이때를 태평성대라 칭하기에는 낯간지러웠는지 슬그머니 숙종으로 옮긴다.

 

<춘향전>의 주인공은 누가 뭐래도 이몽룡과 성춘향이다. 완판본은 주인공의 이름을 분명히 제시한다. 반면 경판본은 분명 춘향의 이름은 밝히는데, 이몽룡은 없다. 단지 사또 자제 이 도령만 시종 등장할 뿐이다.

 

무엇보다 차이는 춘향의 신분이다. 경판본에서 춘향은 기생이다. 관기에게 수절이 타당하지 않지만, 후에 대비정속하여 기생 신분에서 벗어났다고 한다. 그렇기에 신관 사또가 수청을 강요하는 건 엄연한 불법이다. 완판본의 경우 춘향은 퇴기 월매와 양반 성 참판 사이의 딸이다. 춘향 어미는 기생이지만, 춘향이는 기생이 아님을 아전들이 반복하여 신관 사또에게 고한다. 기생이 아닌데도 수청을 강요하는 건 역시 불법이다.

 

춘향 어미의 이름도 경판본에 없다. 그냥 춘향 어미일 뿐이다. 방자야 고유명사가 아니므로 논외로 하지만, 향단이의 존재는 경판본에 아예 없다. 완판본에 비로소 나타난다. 춘향이와 일대 대결을 벌이는 신관 사또의 이름, 변학도 역시 완판본에만 이름이 나온다. 경판본은 그냥 신관 사또다. 이처럼 경판본과 완판본은 배경과 인물 설정에서 여러 차이를 보인다. 다시 말하면 우리에게 친숙한 <춘향전>은 완판본을 기준 한 것이며, 판소리 또한 완판본에 가깝다.

 

이몽룡과 성춘향은 소설 서두에 군자이자 요조숙녀 그리고 재자가인의 대명사로 설정한다. 하지만 경판본의 이 도령을 보면 군자라고 하기 어렵다. 자칭 타칭으로 이른 나이에 바람둥이임을 부인할 수 없다. 너무했다고 생각했는지 완판본에서는 아예 해당 대목을 빼버렸다.

 

네 만일 간다면 우리 도련님이 바로 바람둥이라. (P.192, 방자)

 

기생집에서 온갖 좋은 술에 취하고 절대가인과 연분 맺어 맑은 노래 묘한 춤으로 세월을 보냈다. (P.194, 이 도령)

 

완판본에는 춘향이를 아예 선녀가 환생한 것으로 설정한다. 그만큼 신분과 인물, 성품이 빼어나다는 뜻이다. 하지만 경판본의 춘향이가 훨씬 의연하고 담대하다. 이 도령과 이별 대목이 판본에 따라 현격한 대조를 보인다. 경판본의 춘향이는 의연하고 담담한 게 이별을 감수한다. 완판본은 전혀 그렇지 않다. 무엇 때문에 자기를 버려두고 가냐고 이 도령을 향해 맹렬하게 퍼붓고 바닥에 주저앉아 신세 한탄을 그치지 않는다. 관점에 따라서는 더 인간적이고 극적인 인간성의 표현으로 상찬할 수 있겠지만, 서두의 칭찬이 머쓱할 따름이다.

 

존귀하신 도련님께 그것은 어찌 재앙 아니리오? 사람 대접을 그리 마오. 사람을 대하는 법이 그런 법이 왜 있을꼬. 죽고지고 죽고지고. 애고 애고 설운지고. (P.77)

 

<춘향전>은 민중에게서 비롯하였기에 내용에 해학적이거나 외설스러운 대목이 심심찮다. 경판본에서는 사랑가와 허 봉사의 꿈풀이 대목이 그러하다. 상대적으로 분량이 짧은 이유도 있다. 반면 완판본은 이 도령의 천자풀이, 사랑가, 농부가, 기생점고 대목이 대표적이며, 어사출도 대목도 경판본보다 훨씬 극적이다. 해학성 못지않게 비애를 불러일으키는 장면도 있다. 십장가, 옥중가, 이 도령이 춘향의 편지를 보는 장면 등이 여기에 속한다. 모두 다 판소리에서 심혈을 기울이는 대목이기도 하다.

 

완판본의 두드러진 특징은 식자층을 독자층으로 의식한 점이다. 곳곳에 등장하는 한시가 그러하며, 유교적 가치와 인물의 언급이 그러하다. 무엇보다 춘향이가 감옥에서 순임금의 두 왕비인 아황과 여영을 방문하는 꿈을 꾼 게 상징적이다. 민중에서 출발한 춘향 이야기의 인기가 양반층에까지 이르렀기에 이에 걸맞은 내용 보강이 이루어졌음을 알게 된다.

 

개인적으로 <춘향전>에서 가장 납득하기 어려운 설정은 춘향의 수절과 이 도령의 어사출도 간 시기상 간극이다. 이 도령 부친의 후임이 바로 변학도다. 변학도가 사또가 되어 가장 먼저 한 게 기생점고이고, 춘향이를 붙잡아 온 행동이다. 그렇다면 두 사람의 이별로부터 불과 몇 개월 후에 벌어진 사건인데, 그동안에 이 도령이 공부에 매진하고 과거에 급제하여 암행어사 임명되어 남원으로 내려와 춘향이를 구했다고 하면 너무나 촉박한 설정이 아닐 수 없다.

 

하나 더 언급하자면, 변학도가 어사에게 파직당하는데 죄명이 분명치 않다는 점이다. 분명 춘향이를 옥에 가둔 건 잘못이지만, 그것 하나만으로 현직 부사를 파직한다는 건 월권이다. 지나가는 말로 변학도가 가렴주구를 하는 탐관오리의 전형이라고 하는데, 독자가 이를 심정적으로 수용하기에는 변학도의 악행 묘사가 거의 없다.

 

경판본 <춘향전>을 문학의 시각에서 보면 빼어나다고 하기 어렵다. 완판본은 내용도 추가되고 훨씬 더 인간적인 면모의 인물과 장면이 있기에 재미는 쏠쏠하지만, 명창의 성음을 통해 오락성과 비극성이 극대화된다. 판소리계 소설의 특징이다. 문학으로서 <춘향전>은 그럼에도 우리 고전소설의 가장 인기 있는 작품임을 부인할 수 없으니, 재자가인의 결합 기대, 신분 상승의 욕구, 탐관오리의 응징, 걸쭉한 해학미 등 작품을 통해 주 독자인 민중층이 일종의 카타르시스와 보상을 구할 수 있어서일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전시회명 : 스페인의 거장 고야展 - 이성이 잠들 때, 괴물이 깨어난다

기간 : 2026.6.26-9.30

장소 :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제7전시실


관람일자 : 2026년 8월 11일(화)


* 관람평

논란이 많은 전시회다. 고야라는 화려한 명성의 화가에게 기대했던 수준의 전시 내용이 아니어서 큰 비판을 받았고, 지금은 각종 안내와 소개에도 회화전이 아니라 판화전과 미디어아트임을 비교적 명확히 밝히고 있다.


나로서는 처음부터 이 전시회의 핵심이 판화집 <카프리초스>(변덕)임을 알고 있었기에 즐겁게 관람할 수 있었다. 평일 늦은 오후 시간대여서 관람객도 많지 않아 더욱 좋았다. 한가람미술관 방향으로 직진하느라 제7전시실을 찾아 한참 헤맨 게 아쉬웠을 뿐.


개인적으로 고야 예술의 최고봉은 화려한 태피스트리 밑그림과 초상화가 아니라 판화집과 검은 그림처럼 인간과 사회의 어둡고 비이성적인 면을 날카롭고 풍자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카프리초스> 전작을 소상히 감상할 수 있는 기회가 무척 소중하였다. 작은 판형의 판화에 담긴 내용과 의미, 기법 등을 음미하며 작품소개 글을 꼼꼼히 읽어나갔다. 이미 책을 통해서 알고 있는 그림은 물론 처음 보는 판화를 통해 그의 예술에 더욱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계기였다.


도록 견본을 보니 기대보다 품질이 좋지 않았다. 내용은 충실하지만, 도록의 메인은 수록 작품의 인쇄와 용지 질이 아니겠는가. 도록을 구입하려던 계획을 접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세상 모든 것의 기원 - 어디에도 없는 고고학 이야기
강인욱 지음 / 흐름출판 / 2023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고고학이라고 하면, 옛날 유적과 무덤을 파헤치는 우리네 일상적인 삶과는 무관한 분야라고 생각하게 마련이다. 저자는 고고학이 인간의 삶과 매우 밀접한 연관성을 지니고 있으며 상아탑에 안주하는 현학적인 학문 분과가 아님을 이 책을 통해 보여주고자 한다.

 

1부 잔치 편에서 다루는 항목은 막걸리, 소주, 김치, 삼겹살, 소고기, 닭, 상어 고기, 해장국이다. 음식과 관련된 내용이다.

 

소주가이 새삼 눈길을 끄는데, 최초의 증류식 소주는 거란에서 만들었고, 세계화에 성공한 것은 몽골제국 시기라고 한다. 추운 지역에서 몸에 열을 내려고 일개 유목민이 마시던 높은 도수의 술이 세계의 술이 된 것은 역시 국력의 힘이 뒷받침되었기에 가능했던 셈이다. 김치와 삼겹살 항목에서 유라시아 각지의 절임 채소 요리의 공통성, 우크라이나와 우리나라의 돼지고기의 유사성을 통해 지역을 막론한 민중들의 강인한 생활력과 생존 본능을 우선 꼽는다.

 

우리나라의 특수성이 반영된 항목도 있는데, 경상도 지역의 상어 고기 문화의 역사성을 예시하며 “신라 문화는 상어(돔베기) 문화권”이라고 부를 수 있다는 언급, 우리나라에서만 ‘도토리묵’과 ‘해장국’이라는 음식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흥미로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2부 놀이 편에서는 놀이, 고인돌, 씨름, 축구, 여행, 낙서, 개, 고양이 항목을 다룬다.

 

고구려의 <수렵도>가 실제 사냥 장면이 아니라 일종의 사냥놀이를 하는 모습이라는 분석은 간과했던 사실인데 매우 설득력 있다. 씨름과 축구처럼 신체가 맞부딪히는 스포츠는 격렬한 만큼 거친 폭력성의 해소와 함께 신체 단련의 의미도 지닌다. 다만 그것이 과도하면 흥분과 폭력으로 확대되는 현상을 자주 보게 된다.

 

고인돌이 놀이와 무슨 관계인지 의아했는데, 제의는 엄숙성과 동시에 축제성도 지니고 있다고 하니 이해가 되었다. 현세에서 여행은 인간의 생존과 번영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면, 내세로의 여행은 영생과 피안에서의 행복을 지향했다는 점은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반려동물의 대표격인 개와 고양이 이야기도 재밌지만, 시대를 초월한 낙서 애호의 흔적은 인간 본성이 한결같음을 보여주는 생생한 증거이기에 해학적이다. 러시아 아이 온핌의 필기 뭉치처럼.

 

생물은 생존과 번식을 실현하기 위한 본능적 욕망을 품는다. 3부 명품 편의 석기, 실크, 황금, 신라 금관, 인삼, 기후와 유물, 도굴, 모방 항목은 바로 이 욕망을 얘기한다.

 

고급 옷감의 대명사인 실크는 실크로드라는 불후의 유산을 남겼는데, 실크에 열광한 흉노족의 쇠망 원인 중 하나가 실크라는 견해는 참신하다. 물욕하면 바로 황금이 연상되는데, 황금 문화의 역사가 흑해 연안에서 오래전 피어났다는 사실은 뜻밖이다. 우리 고대사도 황금과 무관하지 않다. 신라 금관이 대표적인데, 금관총 발견의 아픈 역사와 함께 복제품 유물 도난 사건의 어처구니없는 시대상이 함께 다루어진다.

 

인삼은 고대부터 명품으로 취급되었으며, 특히 고려 인삼이 최고로 인정받았다는 점은 새삼스러울 것이 없다. 인삼과 관련하여 소개된 두 개의 에피소드도 이를 충분히 입증한다. 다만 역사적으로 청나라의 발전이 인삼 파워라는 견해는 놀랍다. 하물며 인삼이 병자호란의 사실상 원인이라는 주장은 어안이 벙벙할 뿐.

 

명품은 모방과 도굴과 떼려야 뗄 수 없다. 모방은 방제경처럼 긍정적 의의를 부여할 수 있겠지만 도굴은 재화 욕망에 사로잡힌 인간의 적나라한 모습 아닐까. 그런 면에서 도굴의 왕이었던 조조의 무덤이 도굴로 발견되었다는 점은 웃어야 하나 울어야 할지 애매하다. 한편, 지구온난화가 현대 인류 사회에만 영향을 미치는 줄 알고 있었지만 확실히 고고학자는 다르다. 동토 지대에 오랜 기간 보존되어 온 유물들이 온난화의 결과로 녹아서 부패하고 소멸하는 현상에 대한 안타까움의 심정은 다만 헤아릴 뿐 충분히 따라잡기 어렵다.

 

4부 영원 편의 벽화, 추모, 미라, 발굴 괴담, 마스크, 문신, 점복, 메신저 항목은 결국 죽음과 미래에 관한 항목이다. 인간의 죽음은 필연이며 회피할 수 없지만 누구나 벗어나고자 한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도 마찬가지다. 고인을 추모하고 그네들이 저승에서 현세처럼 부귀영화를 누리기를 기원하는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거대한 무덤과 화려한 부장품, 제2의 집으로 그려진 벽화를 보라.

 

기후로 우연히 된 미라가 아니라 의도적 미라 또한 영생의 의미가 아니겠는가. 그런 점에서 투탕카멘과 레닌의 미라는 닮았으면서도 전혀 다른 의도를 지닌다. 두 사람은 자신의 시신이 오늘날 이렇게 남아 있는 것에 대해 어떤 심정일지 궁금하다.

 

마스크에 관한 얘기도 빼놓을 수 없다. 마스크는 애초에 인간과 신을 중개했던 샤먼의 전유물이었으면서 오늘날 영정 사진의 역할도 했다는 설명은 마스크, 즉 가면의 비일상성을 증명한다. 다만 코로나 시기를 경험했던 만큼 전염병 예방을 위한 마스크는 새로운 의미를 지닌다.

 

문신의 역사는 오래되었다. 고대에 문신은 부족과 신분을 나타내거나, 훈장처럼 특별한 공적을 드러내기 위한 용도로 사용되었다. 물론 묵형처럼 먹을 새기는 형벌도 있었는데 모두가 문신의 반영구성에 기인한다. 문신에 대한 요즘 세간의 인식은 나쁜 편이다. 우리 사회는 유교적 가치관이 내재화되어 있는데 문신은 소중한 신체를 훼손하는 행위 아니겠는가. ‘문신충’이라는 폄하적 용어도 존재한다. 문신을 개성의 표현으로 인정할지 경계가 참으로 모호하다.

 

과거를 발굴하면서 수많은 유물을 발견해나가면 기존의 역사를 새롭게 쓸 수밖에 없다고요. 그걸 해내는 학문이 바로 고고학입니다. (P.345)

 

에필로그에서 저자는 고고학의 의의와 자부심을 토로한다. 이 책은 대중을 겨냥한 고고학 입문서다. 새삼 골치 아픈 학문적 얘기는 제쳐두고, 세상의 다양한 사물과 풍습의 기원을 고고학과 결부시켜 의외성과 함께 흥미진진한 내용으로 풀어놓는다. 굳이 고고학이라는 어휘를 일부러 결부시킬 필요도 없다. 인간과 세상에 존재하는 여러 사항의 기원과 유래를 가볍게 읽어 나가다 보면 절로 고고학에 대한 호기심이 생길 것이므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