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향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0
송성욱 풀어 옮김, 백범영 그림 / 민음사 / 2004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춘향전>은 어지간한 국민 모두라면 대강은 그 내용을 알고 있기에 새로울 것이 없다. 나 또한 판소리를 통해 여러 차례 감상했기에 더더욱 친숙하다. 분명 예전에 책으로도 읽었을 테지만 기억이 나지 않아 제대로 된 판본으로, 정식으로 읽는다. 이 책은 두 종류의 <춘향전>을 수록하고 있다. 하나는 경판본 <춘향전>이며, 다른 하나는 완판본 <열녀춘향수절가>. 굳이 두 종류를 읽을 필요가 있을지 의심을 품을 수 있지만, 등장인물과 사건 및 구성 등 모든 면에서 차이를 보이며 춘향전의 역사적 발전 과정을 짐작하게 해주기에 비교 감상이 필요하다. 학자들은 경판본이 완판보다 앞선 판본이라고 하는데, 몇 줄만 읽어봐도 알아차릴 수 있다. 부록으로 <열녀춘향수절가> 영인본을 실었는데, 실효성에 의문을 표한다.

 

<춘향전>의 배경은 판본에 따라 다르다. 경판본은 조선 인조, 완판본은 조선 숙종 시절을 시대 배경으로 한다. 판본이 다르다고 굳이 임금을 바꿀 이유가 있을까마는 아무래도 인조보다는 숙종이 그나마 낫다. 작중에 태평 시절이어서 백성들이 격양가를 부르는 설정이 있는데, 인조 때는 잇따른 내란과 두 차례의 호란으로 나라가 쑥밭이 된 시절이므로 이때를 태평성대라 칭하기에는 낯간지러웠는지 슬그머니 숙종으로 옮긴다.

 

<춘향전>의 주인공은 누가 뭐래도 이몽룡과 성춘향이다. 완판본은 주인공의 이름을 분명히 제시한다. 반면 경판본은 분명 춘향의 이름은 밝히는데, 이몽룡은 없다. 단지 사또 자제 이 도령만 시종 등장할 뿐이다.

 

무엇보다 차이는 춘향의 신분이다. 경판본에서 춘향은 기생이다. 관기에게 수절이 타당하지 않지만, 후에 대비정속하여 기생 신분에서 벗어났다고 한다. 그렇기에 신관 사또가 수청을 강요하는 건 엄연한 불법이다. 완판본의 경우 춘향은 퇴기 월매와 양반 성 참판 사이의 딸이다. 춘향 어미는 기생이지만, 춘향이는 기생이 아님을 아전들이 반복하여 신관 사또에게 고한다. 기생이 아닌데도 수청을 강요하는 건 역시 불법이다.

 

춘향 어미의 이름도 경판본에 없다. 그냥 춘향 어미일 뿐이다. 방자야 고유명사가 아니므로 논외로 하지만, 향단이의 존재는 경판본에 아예 없다. 완판본에 비로소 나타난다. 춘향이와 일대 대결을 벌이는 신관 사또의 이름, 변학도 역시 완판본에만 이름이 나온다. 경판본은 그냥 신관 사또다. 이처럼 경판본과 완판본은 배경과 인물 설정에서 여러 차이를 보인다. 다시 말하면 우리에게 친숙한 <춘향전>은 완판본을 기준 한 것이며, 판소리 또한 완판본에 가깝다.

 

이몽룡과 성춘향은 소설 서두에 군자이자 요조숙녀 그리고 재자가인의 대명사로 설정한다. 하지만 경판본의 이 도령을 보면 군자라고 하기 어렵다. 자칭 타칭으로 이른 나이에 바람둥이임을 부인할 수 없다. 너무했다고 생각했는지 완판본에서는 아예 해당 대목을 빼버렸다.

 

네 만일 간다면 우리 도련님이 바로 바람둥이라. (P.192, 방자)

 

기생집에서 온갖 좋은 술에 취하고 절대가인과 연분 맺어 맑은 노래 묘한 춤으로 세월을 보냈다. (P.194, 이 도령)

 

완판본에는 춘향이를 아예 선녀가 환생한 것으로 설정한다. 그만큼 신분과 인물, 성품이 빼어나다는 뜻이다. 하지만 경판본의 춘향이가 훨씬 의연하고 담대하다. 이 도령과 이별 대목이 판본에 따라 현격한 대조를 보인다. 경판본의 춘향이는 의연하고 담담한 게 이별을 감수한다. 완판본은 전혀 그렇지 않다. 무엇 때문에 자기를 버려두고 가냐고 이 도령을 향해 맹렬하게 퍼붓고 바닥에 주저앉아 신세 한탄을 그치지 않는다. 관점에 따라서는 더 인간적이고 극적인 인간성의 표현으로 상찬할 수 있겠지만, 서두의 칭찬이 머쓱할 따름이다.

 

존귀하신 도련님께 그것은 어찌 재앙 아니리오? 사람 대접을 그리 마오. 사람을 대하는 법이 그런 법이 왜 있을꼬. 죽고지고 죽고지고. 애고 애고 설운지고. (P.77)

 

<춘향전>은 민중에게서 비롯하였기에 내용에 해학적이거나 외설스러운 대목이 심심찮다. 경판본에서는 사랑가와 허 봉사의 꿈풀이 대목이 그러하다. 상대적으로 분량이 짧은 이유도 있다. 반면 완판본은 이 도령의 천자풀이, 사랑가, 농부가, 기생점고 대목이 대표적이며, 어사출도 대목도 경판본보다 훨씬 극적이다. 해학성 못지않게 비애를 불러일으키는 장면도 있다. 십장가, 옥중가, 이 도령이 춘향의 편지를 보는 장면 등이 여기에 속한다. 모두 다 판소리에서 심혈을 기울이는 대목이기도 하다.

 

완판본의 두드러진 특징은 식자층을 독자층으로 의식한 점이다. 곳곳에 등장하는 한시가 그러하며, 유교적 가치와 인물의 언급이 그러하다. 무엇보다 춘향이가 감옥에서 순임금의 두 왕비인 아황과 여영을 방문하는 꿈을 꾼 게 상징적이다. 민중에서 출발한 춘향 이야기의 인기가 양반층에까지 이르렀기에 이에 걸맞은 내용 보강이 이루어졌음을 알게 된다.

 

개인적으로 <춘향전>에서 가장 납득하기 어려운 설정은 춘향의 수절과 이 도령의 어사출도 간 시기상 간극이다. 이 도령 부친의 후임이 바로 변학도다. 변학도가 사또가 되어 가장 먼저 한 게 기생점고이고, 춘향이를 붙잡아 온 행동이다. 그렇다면 두 사람의 이별로부터 불과 몇 개월 후에 벌어진 사건인데, 그동안에 이 도령이 공부에 매진하고 과거에 급제하여 암행어사 임명되어 남원으로 내려와 춘향이를 구했다고 하면 너무나 촉박한 설정이 아닐 수 없다.

 

하나 더 언급하자면, 변학도가 어사에게 파직당하는데 죄명이 분명치 않다는 점이다. 분명 춘향이를 옥에 가둔 건 잘못이지만, 그것 하나만으로 현직 부사를 파직한다는 건 월권이다. 지나가는 말로 변학도가 가렴주구를 하는 탐관오리의 전형이라고 하는데, 독자가 이를 심정적으로 수용하기에는 변학도의 악행 묘사가 거의 없다.

 

경판본 <춘향전>을 문학의 시각에서 보면 빼어나다고 하기 어렵다. 완판본은 내용도 추가되고 훨씬 더 인간적인 면모의 인물과 장면이 있기에 재미는 쏠쏠하지만, 명창의 성음을 통해 오락성과 비극성이 극대화된다. 판소리계 소설의 특징이다. 문학으로서 <춘향전>은 그럼에도 우리 고전소설의 가장 인기 있는 작품임을 부인할 수 없으니, 재자가인의 결합 기대, 신분 상승의 욕구, 탐관오리의 응징, 걸쭉한 해학미 등 작품을 통해 주 독자인 민중층이 일종의 카타르시스와 보상을 구할 수 있어서일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