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명 : 제17회 남대문교회 파이프오르간 연주회 - 오르가니스트 강진

일시 : 2026년 5월 29일(금) 19:30

장소 : 남대문교회 대예배실

연주 : 강진 (오르간)

프로그램

  - 바흐, 오르간 협주곡 G장조 BWV 592

  - 바흐, 코랄 전주곡 "주 예수 그리스도여, 우리와 함께 계시옵소서" BWV 649

  - 바흐, 코랄 전주곡 "깨어라, 우리를 부르는 소리 있도다" BWV 645

  - 비에른, 환상모음곡 Op.54 중 6곡 '웨스트민스터의 종소리'

  - 바흐, 전주곡과 푸가 BWV 552 중 5성 푸가

  - 댄 밀러,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 J. C. H. 링크, "피난처 있으니" 선율에 의한 변주곡 Op.55 중 1-4번, 12번, 피날레

  - 비에른, 오르간 교향곡 3번 Op.28 중 5악장 피날레


* 세줄평

오늘 프로그램은 바흐와 비에른이 주인공이다. 바흐의 오르간 협주곡보다는 확실히 코랄이 그나마 친근하다. 비에른의 첫곡은 흥미롭고 마지막 곡은 장대하다. 링크의 작품은 생소하지만 재밌게 들을 수 있을만하다. 연주자의 후평처럼 예배와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는 선곡이다. 지난번보다는 꽤 많은 청중이 자리하여 의외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밤의 피크닉
온다 리쿠 지음, 권남희 옮김 / 북폴리오 / 200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왠지 마음이 끌리는 책이 있다. <꿀벌과 천둥>을 읽으면서 온다 리쿠를 알게 되었고, 그녀의 소설 중 <밤의 피크닉>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읽어볼까 말까 계속 망설이다 이렇게까지 오래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다면 심적 해방을 위한 독서라도 괜찮겠다 싶었다.

 

모두 줄지어 함께 걷는다. 단지 그것뿐인데,

어째서 이렇게 특별한 느낌인 걸까.

 

뒤표지의 문장이 유독 마음에 와닿는다. 걷기의 묘미, 그것도 단체 걷기가 지니는 최고의 미덕을 더없이 간결하게 잘 기술한다. 걷기를 좋아하고, 걷기를 다룬 작품 독서를 애호하는 나로서는 끌리지 않을 수 없다.

 

고등학생들이 거교적으로 일 년에 한 번 치르는 ‘야간보행제’, 말이야 그럴듯하지만 야간 행군이나 다름없다. 한두 시간도 아니라 스물네 시간을 걷는 강행군은 그야말로 고행이 아니겠는가. 그럼에도 이 소설에 등장하는 학생들은 보행제를 끔찍하게 여기면서도 막상 보행제를 그리워하는 모순된 감정을 느낀다. 당시의 고통은 순간적이지만 보행제가 주는 추억과 상념은 두고두고 가슴속에 남아서다. 미국에 유학 간 안나의 목소리가 그러하고, 누나의 체험을 부러워하던 준야가 슬그머니 합류한 것도 마찬가지다.

 

나란히 함께 걷는다. 단지 그것뿐인데, 신기하네. 단지 그것뿐인 것이 이렇게 어렵고, 이렇게 엄청난 것이었다니. (P.336)

 

걷는 행위는 가장 원초적인 동작인 동시에 정신을 건강하게 만든다. 제아무리 침울하고 우울해도 훌쩍 한 바퀴 걷고 나면 한결 가슴이 가벼워지는 건 우연이 아니다. 걷기의 매력에 빠진 사람들이 오늘도 자기 수준에 맞춰 단거리에서 장거리까지 수많은 걸음을 분주히 놀린다. 걷기는 지극히 개인적인 행위이지만, 여럿이 걸을 때 주위를 향한 경계선을 낮추고 서로의 마음을 수용하려는 태세를 나타내는 경우가 있다. 단순한 신체적 행위 속에서 타인에게 숨기거나 속이고자 하는 작위적 마음은 오래가지 못한다.

 

그리고 밤의 미학은 어떠한가. 낮과 해가 이성이라면, 밤과 달은 감성이다. 명징한 의식은 밤의 어둠과 고요와 애매함 속에서 풀어지고 튼튼한 심리적 방어망은 느슨해지지 않던가. 여기서 서로 간에 속 깊은 대화를 통해 마음을 주고받는 환경이 조성된다.

 

같은 반인 니시와키 도오루와 고다 다카코는 이복남매이다. 아버지의 외도로 맺어진 관계이니 서로가 편하지는 않다. 친구들에게도 철저히 집안의 수치를 숨기고 있지만 서로를 향한 의식마저 숨길 수는 없다. 영문 모르는 친구들은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는 두 사람이 은연 중 좋아하지만 표현하지 못하는 걸로 오해할 정도다.

 

고교 3학년생으로 마지막 보행제인데, 얼마 있으면 졸업하고 뿔뿔이 흩어질 텐데, 이대로 데면데면한 관계로 끝내야 하는가. 이 작품은 고다와 도오루의 시점을 오가면서 각자가 교대로 화자가 되어 보행제와 자신과 가족, 친구들의 상황을 기술한다. 고다는 처음에는 반 친구와 후반부에는 단짝 미와코와, 도오루는 줄곧 시노부와 함께 걷기를 이어 나간다.

 

잡담과 때로는 침묵이 교차하면서 진로 진학, 이성 친구 교제와 같은 또래에 통상적으로 갖게 되는 고민을 주고받기도 하며, 좋아하는 상대방에게 마음을 고백하려는 대담한 시도를 하는 학생도 있다. 고다와 도오루를 맺어주려는 헛된 깜짝 계획도 있다. 불미스러운 스캔들의 주인공을 색출하기 위한 은밀한 탐색 작업도 동반되는 등 그들의 대화와 고민은 청소년과 성인의 경계선상에 놓여있는 만큼 다채로우면서도 위태롭기도 하다.

 

“굳이 잡음을 차단하고 얼른 계단을 다 올라가고 싶은 마음은 아프리만큼 알지만 말이야. 물론 너의 그런 점, 나는 존경하기도 해. 하지만 잡음 역시 너를 만드는 거야. 잡음은 시끄럽지만 역시 들어두어야 할 때가 있는 거야.” (P.155-156)

 

부모들은 자녀에게 흔히 이렇게 말한다. 다른 데 신경 쓰지 말고 학업에 집중하라고. 이성 친구와 몰입하고픈 취미는 나중에 대학 가서 해도 충분하다고. 학생들은 온갖 관심과 욕구를 억누르는 게 권장되고 당연시되는 풍토와 습관에 함몰된다. 그들에게 고등학생 시절은 훗날 어떤 의미와 기억으로 떠오를까. 학교, 학원, 과외, 독서실로 날마다 쳇바퀴 도는 맹목적인 나날이 아닐까. 한국이 아닌 일본의 학생들이라고 크게 다르지는 않으리라. 그래서 시노부가 보기 드물게 진지한 어조로 도오루에게 해주는 말은 어른다워 오히려 어색하게 들린다.

 

사랑의 반대말은 미움 내지 증오라고들 하지만, 정말로 무서운 건 무관심이다. 사랑이든 증오든 관심이 있어야 가능하다. 애초에 관심이 없다면 그건 더 이상 어떠한 관계 설정도 불가능하다. 고다와 도오루의 표면적 무시와 외면이 친구들의 눈에 두드러진 건 그래서였으리라. 차라리 덤덤한 동급생 관계였다면 모를까. 그것은 두 사람의 내면에 서로를 향한 끌림이 있어서다. 유전자의 힘이라고 해도 좋을.

 

결국 불평을 쏟아놓자, 시노부가 보기 드물게 진지해졌다.

“이봐, 그건 아냐. 순서가 바뀌었어. 너희들이 연결되고 싶어하는 것처럼 보이는 거야.” (P.151)

 

고교생을 주인공으로 한 성장소설이기에 결말은 비교적 긍정으로 나아간다. 전속력으로 달리다가 다리를 다쳐 낙오한 도오루와 그를 돌보는 시노부. 때마침 지나치다가 그들을 발견하는 고다와 미와코. 서로를 향한 연대와 응원이 필요한 때 도오루와 고다는 비로소 제대로 된 대화를 처음 주고받는다. 막상 아무것도 아닌 것을, 두 사람은 서로를 미워하고 원망할 아무런 이유도 없는데. 잘못은 어른이 한 게 아닌가, 게다가 그들은 한 아버지라는 불가변한 공통점을 지닌다.

 

앞으로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 긴 세월. 대화를 나누며 서로의 존재를 인정해 버린 지금부터, 두 사람의 새로운 관계를 기다리고 있는 시간. 이제는 도망칠 수 없다. 평생 끊을 수 없는 앞으로의 관계야말로 진짜 세계인 것이다.

그것이 결코 감미로운 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두 사람은 예감하고 있다. (P.349-350)

 

소설의 초점은 응당 주인공인 고다와 도오루, 그리고 그들의 절친인 미와코와 시노부에 맞춰져 있다. 작가는 이들을 둘러싼 다양한 학우들을 등장시켜 작품의 폭과 깊이를 더한다. 안나와 동생 준야, 고다의 학급친구이자 보행제 전반을 동행하는 치아키와 리카의 소탈함, 엉뚱함이 매력인 고이치로와 도오루에게 깜짝 고백하는 우치보리 등. 이들은 단지 주변인물에 그치는 게 아니라 동년배 청소년들의 생활과 생각의 단면을 절묘하게 드러낸다.

 

<꿀벌과 천둥>에서도 경험했지만 온다 리쿠의 작품은 최고 미덕은 문장과 서사가 주는 힘 자체다. 작가는 화려한 수식구와 정교하게 세공한 문장에 천착하지 않는다. 평범하지만 꼭 적합한 문장이 필요한 때와 곳에 퍼즐 조각을 맞추듯 적절하게 배치되어 있다. 독자는 낮과 밤을 지나면서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을 되풀이하듯 자연스러운 흐름을 따라 작품을 읽어 나가다 보면 어느새 마지막 쪽에 이르게 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작가로서 이보다 더 행복한 일이 있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공연명 : 제16회 남대문교회 파이프오르간 연주회 - 오르가니스트 강한미

일시 : 2026년 5월 22일(금) 19:30

장소 : 남대문교회 대예배실

연주 : 강한미 (오르간)

프로그램

  - 바흐, 오르간 작품(환상곡 G장조) BWV 572

  - 비도르, 안단테 소스테누토 (오르간 교향곡 9번 Op.70 "고딕" 중)

  - 로제-뒤카스, 전원곡

  - 메시앙, 천국을 소망하는 영혼의 고요한 알렐루야

  - 맥밀란, 아카데미 행진

  - 뒤뤼플레, '오소서 창조주 성령이여' 주제에 의한 전주곡, 아다지오와 코랄 변주곡 Op.4


* 세줄평

남대문교회는 언덕 위에 있어 접근성이 불편하지만 대예배실 공간은 훌륭하며 오르간의 자태도 뛰어나다. 여지껏 들었던 오르간 연주 중 음향 밸런스가 가장 뛰어나다. 개인적으로 비도르와 로제-뒤카스의 곡이 평온과 위안 그 자체로 마음에 다가온다. 메시앙도 괜찮았다. 바흐와 뒤뤼플레의 작품은 더 이해가 필요하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성실한 연주에 마음이 끌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공연명 : 남에셀 오르간 독주회 - 파리의 교회들

일시 : 2026년 5월 19일(화) 19:30

장소 : 새문안교회 대예배실

연주 : 남에셀 (오르간)

프로그램

  - 유진 지구, 토카타

  - 쿠프랭, 베네딕투스

  - 보엘리, 환상곡과 푸가

  - 프랑크, 코랄 2번

  - 쥬앙 알랭, 리타니

  - 장 기유, 토카타 Op.9

  - 생상스, 전주곡 B단조

  - 뒤뤼플레, 알랭 이름에 의한 푸가

  - 메시앙, 기쁨의 폭발

  - 비도르, 안단테 소스테누토 (오르간 교향곡 9번 Op.70 "고딕" 중)

  - 비에른, 피날레 (오르간 교향곡 6번 Op.59 중)


* 세줄평

엄청 큰 규모의 대예배실 전체를 울리는 거대한 오르간 음향을 체험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강력하고 위압적인 사운드의 오르간보다는 포용하고 충만하는 스타일을 선호하는 까닭에 쿠프랭, 프랑크, 생상스, 비도르의 곡이 더 가슴에 와닿았다. 장 기유의 토카타는 오르간의 연주 기능성을 극한까지 추구하는 독특한 경험이다. 

앵콜연주가 끝나고 퇴장하는데 연주자가 다시 나와서 두번째 앵콜곡을 연주한다. 맨 뒷자리에 다시 주저앉아 음악을 듣는데 확연히 달라진 음향에 놀랐다. 기존의 직접 음향이 아니라 공간 전체를 아우르는 음향, 다음부터 오르간 공연은 뒷자리에서 감상해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1816년 여름, 우리는 스위스로 여행을 갔고 - 프랑켄슈타인의 기원이 된 두 여행의 기록
메리 셸리.퍼시 비시 셸리 지음, 유혜인 옮김 / 이일상 / 202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개인적으로 메리 셸리와 퍼시 비시 셸리의 결혼 선택을 탐탁잖게 생각한다. 두 사람의 부적절한 만남으로 퍼시 셸리의 가정생활은 파탄 났고, 그의 아내는 자살을 감행하지 않았던가. 그럼에도 이 둘은 죄책감 없이 곧바로 결혼을 치렀으니 요즘으로 치면 파렴치한 인물에 가깝다. 제아무리 낭만으로 포장하고 예술가 특유의 방랑으로 옹호하더라도 잘못은 잘못이다. 특히 퍼시 셸리에게 더 큰 책임을 묻는다. 유부남으로서 어린 메리를 유혹하였고, 아내를 죽음에 이르게 한. 내가 개인적으로 퍼시 셸리 작품을 손대지 않는 것도 이에 대한 반감과 전혀 무관하지 않다.

 

이 책은 메리 셸리와 그녀가 쓴 <프랑켄슈타인>과 연관성에서 관심을 끈다. 10대의 메리 셸리가 이 소설을 구상하였던 그 때와 그 장소를 다루고 있어서다. 당시 메리 셸리는 무슨 상황에서 어떤 환경을 겪으며 이 작품의 틀을 만들어냈을까. 전체 3부 구성인데, 1부는 1814년, 2부는 1816년 두 사람의 유럽 여행을 소재로 한다. 1부는 메리의 여행 수기 형식이며, 2부는 메리와 퍼시가 쓴 각 2통의 여행 편지이다. 3부는 퍼시의 시 <몽블랑>을 담고 있다. 부록으로 <프랑켄슈타인> 서문 2개를 수록하고 있어 기획 의도를 명확히 한다.

 

두 사람은 넉넉한 여비 없이 1814년 여행을 떠났기에 한여름에 이동의 불편을 겪으며 무조건적인 즐거움과 행복을 누리지는 못하였다. 그럼에도 메리 처지에서는 영국을 떠나 첫 외국 여행인 만큼 보고 느끼는 모든 것이 새롭고 강한 인상으로 다가왔음을 알 수 있다. 프랑스, 스위스, 독일, 네덜란드를 거치는 여정은 나폴레옹 전쟁이 종식된 직후였기에 아름다운 풍광과 대비되는 참혹한 전쟁의 상흔이 곳곳에 드리워져 있었다. 메리의 글에서 자연의 경이에 압도됨과 동시에 현실 사회의 날카로운 인식이 드러난다.

 

집이 불타고 가축이 도살당하고 전 재산을 잃은 마을 사람들의 고통을 보고 있노라니 전쟁에 대한 혐오가 살아났다. 교만한 인간이 같은 인간에게 퍼뜨린 역병으로 망가지고 쇠약해진 나라를 여행해 보지 않았다면 느끼지 못할 감정이었다. (P.31)

 

1816년 여행은 프랑스와 스위스를 오가는 여정인데, 시인 바이런과 동행하였고 여기서 <프랑켄슈타인>이 태동했음은 서문을 통해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소설에서 프랑켄슈타인은 자신의 창조자를 찾으러 무시무시한 폭풍과 날씨를 무릅쓰고 사방을 헤매고 다닌다. 비정하리만치 냉혹한 풍경 묘사는 작가의 순수한 창작이 아니라 직접 스위스에서 경험했던 반영임을 이 편지 기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어느 날 밤에는 태어나서 처음 보는 강한 폭풍이 불었어. 호수가 번쩍이자 쥐라산맥의 소나무가 다 보이는 거 있지. 모든 풍경이 순간 하얗게 빛나더니 칠흑 같은 어둠이 찾아왔고 어둠 속에서 머리 위로 무시무시한 천둥이 쳤어. (P.83, 두 번째 편지)

 

두 영국인이 처음 바라본 알프스와 몽블랑의 장엄함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당사자 아니고서는 분명 형언하기 어려울 것이다. 요즘처럼 사진과 영상이 발달하여 미리 간접 체험이라도 했으면 낫겠지만, 상상 속 막연히 그려왔던 수준을 초월하는 광대한 규모의 거대한 산봉우리는 그야말로 압도적이라고 할밖에 없으리라. 메리는 물론 퍼시조차도 탄식을 아끼지 못하는 까닭이리라.

 

이전엔 정말 몰랐어. 산이 이런 존재인지 미처 상상하지 못했지. 하늘 높이 서 있는 이 거대한 봉우리들이 돌연 내 눈앞에 들어왔을 때 가슴에서 광기와도 같은 황홀한 경이로움이 터져 나오더군. 이게 전부 하나의 풍경이었단 말이네. (P.115, 세 번째 편지)

 

유럽과 프랑스, 스위스의 정치 체제가 갖는 뚜렷한 대비를 통해 메리와 퍼시는 2년 전에 비해 훨씬 성숙한 사회 비판 인식을 보여 준다. 영국인을 향한 프랑스인의 내재적 분노의 불가피성을 인정하고, 자유주의를 억누르는 전제주의 체제의 폭정을 향한 혐오감을 감추지 않는다. 프랑켄슈타인이 단순히 공포 문학이 아니라 진한 울림을 남기는 것은 인간존재의 본질에 대한 의문을 우리에게 던지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인간 사회의 보편적 도덕과 윤리 기준에서는 결코 긍정할 수 없지만, 두 사람의 만남은 문학사에서 하나의 이정표를 만들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당대는 퍼시가 더 영향력이 있었지만, 프랑켄슈타인의 창시자 메리의 명성은 현대에 가까울수록 한층 드높다. 이 책은 소설 <프랑켄슈타인>에 흥미를 느낀 독자가 가벼운 마음으로 그 탄생 배경을 훑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