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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6년 여름, 우리는 스위스로 여행을 갔고 - 프랑켄슈타인의 기원이 된 두 여행의 기록
메리 셸리.퍼시 비시 셸리 지음, 유혜인 옮김 / 이일상 / 2025년 6월
평점 :
개인적으로 메리 셸리와 퍼시 비시 셸리의 결혼 선택을 탐탁잖게 생각한다. 두 사람의 부적절한 만남으로 퍼시 셸리의 가정생활은 파탄 났고, 그의 아내는 자살을 감행하지 않았던가. 그럼에도 이 둘은 죄책감 없이 곧바로 결혼을 치렀으니 요즘으로 치면 파렴치한 인물에 가깝다. 제아무리 낭만으로 포장하고 예술가 특유의 방랑으로 옹호하더라도 잘못은 잘못이다. 특히 퍼시 셸리에게 더 큰 책임을 묻는다. 유부남으로서 어린 메리를 유혹하였고, 아내를 죽음에 이르게 한. 내가 개인적으로 퍼시 셸리 작품을 손대지 않는 것도 이에 대한 반감과 전혀 무관하지 않다.
이 책은 메리 셸리와 그녀가 쓴 <프랑켄슈타인>과 연관성에서 관심을 끈다. 10대의 메리 셸리가 이 소설을 구상하였던 그 때와 그 장소를 다루고 있어서다. 당시 메리 셸리는 무슨 상황에서 어떤 환경을 겪으며 이 작품의 틀을 만들어냈을까. 전체 3부 구성인데, 1부는 1814년, 2부는 1816년 두 사람의 유럽 여행을 소재로 한다. 1부는 메리의 여행 수기 형식이며, 2부는 메리와 퍼시가 쓴 각 2통의 여행 편지이다. 3부는 퍼시의 시 <몽블랑>을 담고 있다. 부록으로 <프랑켄슈타인> 서문 2개를 수록하고 있어 기획 의도를 명확히 한다.
두 사람은 넉넉한 여비 없이 1814년 여행을 떠났기에 한여름에 이동의 불편을 겪으며 무조건적인 즐거움과 행복을 누리지는 못하였다. 그럼에도 메리 처지에서는 영국을 떠나 첫 외국 여행인 만큼 보고 느끼는 모든 것이 새롭고 강한 인상으로 다가왔음을 알 수 있다. 프랑스, 스위스, 독일, 네덜란드를 거치는 여정은 나폴레옹 전쟁이 종식된 직후였기에 아름다운 풍광과 대비되는 참혹한 전쟁의 상흔이 곳곳에 드리워져 있었다. 메리의 글에서 자연의 경이에 압도됨과 동시에 현실 사회의 날카로운 인식이 드러난다.
집이 불타고 가축이 도살당하고 전 재산을 잃은 마을 사람들의 고통을 보고 있노라니 전쟁에 대한 혐오가 살아났다. 교만한 인간이 같은 인간에게 퍼뜨린 역병으로 망가지고 쇠약해진 나라를 여행해 보지 않았다면 느끼지 못할 감정이었다. (P.31)
1816년 여행은 프랑스와 스위스를 오가는 여정인데, 시인 바이런과 동행하였고 여기서 <프랑켄슈타인>이 태동했음은 서문을 통해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소설에서 프랑켄슈타인은 자신의 창조자를 찾으러 무시무시한 폭풍과 날씨를 무릅쓰고 사방을 헤매고 다닌다. 비정하리만치 냉혹한 풍경 묘사는 작가의 순수한 창작이 아니라 직접 스위스에서 경험했던 반영임을 이 편지 기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어느 날 밤에는 태어나서 처음 보는 강한 폭풍이 불었어. 호수가 번쩍이자 쥐라산맥의 소나무가 다 보이는 거 있지. 모든 풍경이 순간 하얗게 빛나더니 칠흑 같은 어둠이 찾아왔고 어둠 속에서 머리 위로 무시무시한 천둥이 쳤어. (P.83, 두 번째 편지)
두 영국인이 처음 바라본 알프스와 몽블랑의 장엄함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당사자 아니고서는 분명 형언하기 어려울 것이다. 요즘처럼 사진과 영상이 발달하여 미리 간접 체험이라도 했으면 낫겠지만, 상상 속 막연히 그려왔던 수준을 초월하는 광대한 규모의 거대한 산봉우리는 그야말로 압도적이라고 할밖에 없으리라. 메리는 물론 퍼시조차도 탄식을 아끼지 못하는 까닭이리라.
이전엔 정말 몰랐어. 산이 이런 존재인지 미처 상상하지 못했지. 하늘 높이 서 있는 이 거대한 봉우리들이 돌연 내 눈앞에 들어왔을 때 가슴에서 광기와도 같은 황홀한 경이로움이 터져 나오더군. 이게 전부 하나의 풍경이었단 말이네. (P.115, 세 번째 편지)
유럽과 프랑스, 스위스의 정치 체제가 갖는 뚜렷한 대비를 통해 메리와 퍼시는 2년 전에 비해 훨씬 성숙한 사회 비판 인식을 보여 준다. 영국인을 향한 프랑스인의 내재적 분노의 불가피성을 인정하고, 자유주의를 억누르는 전제주의 체제의 폭정을 향한 혐오감을 감추지 않는다. 프랑켄슈타인이 단순히 공포 문학이 아니라 진한 울림을 남기는 것은 인간존재의 본질에 대한 의문을 우리에게 던지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인간 사회의 보편적 도덕과 윤리 기준에서는 결코 긍정할 수 없지만, 두 사람의 만남은 문학사에서 하나의 이정표를 만들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당대는 퍼시가 더 영향력이 있었지만, 프랑켄슈타인의 창시자 메리의 명성은 현대에 가까울수록 한층 드높다. 이 책은 소설 <프랑켄슈타인>에 흥미를 느낀 독자가 가벼운 마음으로 그 탄생 배경을 훑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