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피크닉
온다 리쿠 지음, 권남희 옮김 / 북폴리오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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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지 마음이 끌리는 책이 있다. <꿀벌과 천둥>을 읽으면서 온다 리쿠를 알게 되었고, 그녀의 소설 중 <밤의 피크닉>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읽어볼까 말까 계속 망설이다 이렇게까지 오래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다면 심적 해방을 위한 독서라도 괜찮겠다 싶었다.

 

모두 줄지어 함께 걷는다. 단지 그것뿐인데,

어째서 이렇게 특별한 느낌인 걸까.

 

뒤표지의 문장이 유독 마음에 와닿는다. 걷기의 묘미, 그것도 단체 걷기가 지니는 최고의 미덕을 더없이 간결하게 잘 기술한다. 걷기를 좋아하고, 걷기를 다룬 작품 독서를 애호하는 나로서는 끌리지 않을 수 없다.

 

고등학생들이 거교적으로 일 년에 한 번 치르는 야간보행제’, 말이야 그럴듯하지만 야간 행군이나 다름없다. 한두 시간도 아니라 스물네 시간을 걷는 강행군은 그야말로 고행이 아니겠는가. 그럼에도 이 소설에 등장하는 학생들은 보행제를 끔찍하게 여기면서도 막상 보행제를 그리워하는 모순된 감정을 느낀다. 당시의 고통은 순간적이지만 보행제가 주는 추억과 상념은 두고두고 가슴속에 남아서다. 미국에 유학 간 안나의 목소리가 그러하고, 누나의 체험을 부러워하던 준야가 슬그머니 합류한 것도 마찬가지다.

 

나란히 함께 걷는다. 단지 그것뿐인데, 신기하네. 단지 그것뿐인 것이 이렇게 어렵고, 이렇게 엄청난 것이었다니. (P.336)

 

걷는 행위는 가장 원초적인 동작인 동시에 정신을 건강하게 만든다. 제아무리 침울하고 우울해도 훌쩍 한 바퀴 걷고 나면 한결 가슴이 가벼워지는 건 우연이 아니다. 걷기의 매력에 빠진 사람들이 오늘도 자기 수준에 맞춰 단거리에서 장거리까지 수많은 걸음을 분주히 놀린다. 걷기는 지극히 개인적인 행위이지만, 여럿이 걸을 때 주위를 향한 경계선을 낮추고 서로의 마음을 수용하려는 태세를 나타내는 경우가 있다. 단순한 신체적 행위 속에서 타인에게 숨기거나 속이고자 하는 작위적 마음은 오래가지 못한다.

 

그리고 밤의 미학은 어떠한가. 낮과 해가 이성이라면, 밤과 달은 감성이다. 명징한 의식은 밤의 어둠과 고요와 애매함 속에서 풀어지고 튼튼한 심리적 방어망은 느슨해지지 않던가. 여기서 서로 간에 속 깊은 대화를 통해 마음을 주고받는 환경이 조성된다.

 

같은 반인 니시와키 도오루와 고다 다카코는 이복남매이다. 아버지의 외도로 맺어진 관계이니 서로가 편하지는 않다. 친구들에게도 철저히 집안의 수치를 숨기고 있지만 서로를 향한 의식마저 숨길 수는 없다. 영문 모르는 친구들은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는 두 사람이 은연 중 좋아하지만 표현하지 못하는 걸로 오해할 정도다.

 

고교 3학년생으로 마지막 보행제인데, 얼마 있으면 졸업하고 뿔뿔이 흩어질 텐데, 이대로 데면데면한 관계로 끝내야 하는가. 이 작품은 고다와 도오루의 시점을 오가면서 각자가 교대로 화자가 되어 보행제와 자신과 가족, 친구들의 상황을 기술한다. 고다는 처음에는 반 친구와 후반부에는 단짝 미와코와, 도오루는 줄곧 시노부와 함께 걷기를 이어 나간다.

 

잡담과 때로는 침묵이 교차하면서 진로 진학, 이성 친구 교제와 같은 또래에 통상적으로 갖게 되는 고민을 주고받기도 하며, 좋아하는 상대방에게 마음을 고백하려는 대담한 시도를 하는 학생도 있다. 고다와 도오루를 맺어주려는 헛된 깜짝 계획도 있다. 불미스러운 스캔들의 주인공을 색출하기 위한 은밀한 탐색 작업도 동반되는 등 그들의 대화와 고민은 청소년과 성인의 경계선상에 놓여있는 만큼 다채로우면서도 위태롭기도 하다.

 

굳이 잡음을 차단하고 얼른 계단을 다 올라가고 싶은 마음은 아프리만큼 알지만 말이야. 물론 너의 그런 점, 나는 존경하기도 해. 하지만 잡음 역시 너를 만드는 거야. 잡음은 시끄럽지만 역시 들어두어야 할 때가 있는 거야.” (P.155-156)

 

부모들은 자녀에게 흔히 이렇게 말한다. 다른 데 신경 쓰지 말고 학업에 집중하라고. 이성 친구와 몰입하고픈 취미는 나중에 대학 가서 해도 충분하다고. 학생들은 온갖 관심과 욕구를 억누르는 게 권장되고 당연시되는 풍토와 습관에 함몰된다. 그들에게 고등학생 시절은 훗날 어떤 의미와 기억으로 떠오를까. 학교, 학원, 과외, 독서실로 날마다 쳇바퀴 도는 맹목적인 나날이 아닐까. 한국이 아닌 일본의 학생들이라고 크게 다르지는 않으리라. 그래서 시노부가 보기 드물게 진지한 어조로 도오루에게 해주는 말은 어른다워 오히려 어색하게 들린다.

 

사랑의 반대말은 미움 내지 증오라고들 하지만, 정말로 무서운 건 무관심이다. 사랑이든 증오든 관심이 있어야 가능하다. 애초에 관심이 없다면 그건 더 이상 어떠한 관계 설정도 불가능하다. 고다와 도오루의 표면적 무시와 외면이 친구들의 눈에 두드러진 건 그래서였으리라. 차라리 덤덤한 동급생 관계였다면 모를까. 그것은 두 사람의 내면에 서로를 향한 끌림이 있어서다. 유전자의 힘이라고 해도 좋을.

 

결국 불평을 쏟아놓자, 시노부가 보기 드물게 진지해졌다.

이봐, 그건 아냐. 순서가 바뀌었어. 너희들이 연결되고 싶어하는 것처럼 보이는 거야.” (P.151)

 

고교생을 주인공으로 한 성장소설이기에 결말은 비교적 긍정으로 나아간다. 전속력으로 달리다가 다리를 다쳐 낙오한 도오루와 그를 돌보는 시노부. 때마침 지나치다가 그들을 발견하는 고다와 미와코. 서로를 향한 연대와 응원이 필요한 때 도오루와 고다는 비로소 제대로 된 대화를 처음 주고받는다. 막상 아무것도 아닌 것을, 두 사람은 서로를 미워하고 원망할 아무런 이유도 없는데. 잘못은 어른이 한 게 아닌가, 게다가 그들은 한 아버지라는 불가변한 공통점을 지닌다.

 

앞으로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 긴 세월. 대화를 나누며 서로의 존재를 인정해 버린 지금부터, 두 사람의 새로운 관계를 기다리고 있는 시간. 이제는 도망칠 수 없다. 평생 끊을 수 없는 앞으로의 관계야말로 진짜 세계인 것이다.

그것이 결코 감미로운 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두 사람은 예감하고 있다. (P.349-350)

 

소설의 초점은 응당 주인공인 고다와 도오루, 그리고 그들의 절친인 미와코와 시노부에 맞춰져 있다. 작가는 이들을 둘러싼 다양한 학우들을 등장시켜 작품의 폭과 깊이를 더한다. 안나와 동생 준야, 고다의 학급친구이자 보행제 전반을 동행하는 치아키와 리카의 소탈함, 엉뚱함이 매력인 고이치로와 도오루에게 깜짝 고백하는 우치보리 등. 이들은 단지 주변인물에 그치는 게 아니라 동년배 청소년들의 생활과 생각의 단면을 절묘하게 드러낸다.

 

<꿀벌과 천둥>에서도 경험했지만 온다 리쿠의 작품은 최고 미덕은 문장과 서사가 주는 힘 자체다. 작가는 화려한 수식구와 정교하게 세공한 문장에 천착하지 않는다. 평범하지만 꼭 적합한 문장이 필요한 때와 곳에 퍼즐 조각을 맞추듯 적절하게 배치되어 있다. 독자는 낮과 밤을 지나면서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을 되풀이하듯 자연스러운 흐름을 따라 작품을 읽어 나가다 보면 어느새 마지막 쪽에 이르게 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작가로서 이보다 더 행복한 일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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