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명 : 이현지 바이올린 독주회 - 브람스의 밤

일시 : 2026년 3월 24일(화) 19:30

장소 : 금호아트홀 연세

연주 : 이현지 (바이올린), 권효진 (피아노)

프로그램

  - 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 1번 G장조 Op.78

  - 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 2번 A장조 Op.100

  - 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 3번 D단조 Op.108


* 세줄평

소슬하고 스산하다. 역시 브람스는 가을에 어울린다. 아직 본격적인 봄이 아니라 충분히 음미할 수 있어 다행이다. 연주자는 브람스의 음색 구현에 성공하였다. 조심스러운 가운데 충분히 열정적인 악구에서도 눈부신 비상과는 거리를 둔 내향적인 울림. 화려하지 않지만 매우 음악적인 공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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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잔티움의 역사 - 천년의 제국, 동서양이 충돌하는 문명의 용광로에 세운 그리스도교 세계의 정점 더숲히스토리
디오니시오스 스타타코풀로스 지음, 최하늘 옮김 / 더숲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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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잔티움 제국, 즉 동로마 제국의 역사 개설서다. 동로마 제국은 서양 중심의 세계사에서 주역으로 인정받지 못한 비운의 국가다. 대다수의 서양인은 로마 제국의 최후를, 서로마 제국의 멸망으로 간주한다. 로마 제국, 서로마 제국, 프랑크 왕국, 신성 로마 제국으로 이어지는 계보를 로마의 적통으로 본다. 그리스어와 정교가 중심인 동로마 제국은 로마의 후손이지만 방계 정도로만 여길 뿐이다. 유스티니아누스 대제와 콘스탄티노플 함락 정도가 일반인의 기억에 남아 있는 수준이 아닐까.

 

동로마 제국의 출발을 395년 또는 476년으로 볼지 관점은 다를 수 있다. 다만 동로마 제국의 멸망을 일단 1453년 콘스탄티노플 함락과 황제의 죽음으로 기준 삼는다면, 길게는 천 년 이상, 짧게는 천년 가까이 존속하였음은 확실하다. 역사상 일국의 정체가 천년을 버틴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므로 역사적으로 보기 드문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이 책의 장점은 일단 저자가 그리스인이므로 동로마 제국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서구 주류와 다른 새로운 시각을 보여 줄 수 있음이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이 책에서 사용하는 비잔티움의 이름과 지명을 기존의 라틴어식, 영어식 표현이 아니라 그리스어식으로 표기했다는 점이다. 비잔티움인들의 주체적 인식을 존중한 점에서 평가할 만하다. 또 하나 독자의 쉬운 이해를 위해 관례상 비잔티움이라는 어휘를 사용했지만, 문제가 있는 용어임을 주지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비잔티움 제국 또는 문명 표현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는 비잔티움 제국이 로마 제국과 구별되는 별개의 국가라는 인식을 유발해서다. 비잔티움 사람들은 멸망하는 순간까지도 자신들이 로마인임을 한 치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런 면에서 차라리 동로마 제국이 더 낫다.

 

동로마 제국의 영토는 동서 문화와 민족의 교차 지역이기에 안정된 국가 체제를 유지하기 어려웠다. 서쪽으로는 게르만족과 슬라브족의 계속된 침입, 동쪽으로는 이슬람과 페르시아, 셀주크와 오스만 등이 호시탐탐 아나톨리아와 콘스탄티노폴리스를 노렸다. 저자에 따르면 장기간의 역병 발생과 지진의 빈발 등 환경적 어려움도 커서 심각한 인구 통계적 위기에 직면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래도 아나톨리아와 발칸반도는 유지할 수 있었는데, 마케도니아 왕조 시절을 영토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제국의 중세 전성기라고 평하는 점이 새롭고 흥미롭다.

 

마케도니아 르네상스는 새로이 피어난 강력한 로마 제국 자체인 비잔티움 제국이 지성 세계에서도 서방을 압도할 수 있음을 보여 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P.223-224, 5)

 

동로마 제국과 관련하여 종교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로마 교회와 콘스탄티노폴리스 교회 사이의 교리를 둘러싼 차이는 교회 간 상호 파문으로 이어졌고, 이는 끝내 가톨릭교와 정교로 기독교가 분파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게다가 정교 내부에서도 성상 인정과 파괴를 둘러싼 치열한 종교적 갈등이 제국을 뒤흔들었으니, 가톨릭교와는 달리 정교는 황제가 총주교보다 우위를 점하는 일종의 제정일치 사회여서다.

 

12044월에 일어난 십자군의 콘스탄티노폴리스 정복과 약탈은 비잔티움 제국의 역사를 결정지었다. 도시 자체는 1261년에 탈환되었지만, 함락에 비롯된 정치적.경제적.인구적.문화적 여파는 중세 이후 비잔티움 세계에 남아 있었다. (P.261, 7)

 

이처럼 언어와 종교가 다르니 동일한 문명권이라고 인정하기 어렵게 된 상황에서, 서구와 동로마를 결정적으로 틀어지게 만들고 동로마의 멸망을 재촉하게 만든 사건이 바로 십자군 전쟁, 특히 콘스탄티노폴리스를 공략하여 무너뜨린 4차 십자군이다. 이슬람 적국이 아니라 어쨌든 같은 기독교 문명권인 동로마 제국이 한순간 무너지면서 60년 가까이 지나서야 겨우 후속 국가인 니케아 제국이 콘스탄티노폴리스를 되찾았지만, 이후 동로마 제국은 다시는 예전의 세력을 회복하지 못하였다는 점에서 이 사건은 동로마 제국을 멸망으로 이끈 결정적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이후 동로마 제국인들은 서방 세계를 믿지 않고 적대시하게 되었고, 쇠퇴한 동로마 제국을 서방 세계는 경시하고 함부로 대하기 시작하여 두 체제의 단합은 요원하게 되었다. 오스만 제국이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포위하여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인 상황에서 서방 세계의 구원 의지가 강력하지 않았음을 이를 보여 준다. 그들에게 비잔티움은 이미 다른 세계에 속해 있으므로.

 

저자는 두 가지 독자적 의견을 제시한다. 1453년 콘스탄티노폴리스의 함락이 곧 동로마 제국의 멸망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펠로폰네소스 반도와 에게해 섬 지역에 여전히 비잔티움의 영토가 오랜 기간 존속하였기에. 하지만 제국의 수도와 황제가 종말을 맞이했고 응집력 있는 대안세력이 나타나지 않았으므로 멸망이라고 간주하는 게 타당하다고 본다.

 

십자군 전쟁의 단초가 된 알렉시오스 1세의 구원 요청에 대한 해석이다. 보통은 셀주크 세력에 위협을 느낀 황제의 절박한 구원 요청에 교황이 나서서 호소함에 따라 최초의 십자군이 구성되었다고 본다. 저자는 다른 주장을 펼치는데, 당시 셀주크의 세력은 제국의 명운에 위협을 가져올 정도가 아니었고, 황제는 서방의 용병으로 셀주크와 대적하려는 의도 정도였다는 것이다. 거대한 십자군의 움직임은 황제와 동로마 입장에서도 당혹스러운 사태 전개였다는 점이다. 어쨌든 대규모의 군대가 자국 영토를 통과해 간다는 점은 어느 지배자든지 부담스럽게 여길 것은 자명한 일이다. 흥미로운 사안이다.

 

어쨌든 동로마 제국의 멸망에 내부적 책임은 결코 면할 수 없다. 제국이 공국 수준으로 쪼그라들었음에도 지배층은 알량한 권력 다툼으로 국세를 키우기 위한 노력을 등한시한 점은 분명 사실이므로. 다만 그러함에도 동로마 제국의 의의를 과소평가하는 시각은 잘못이다. 비잔티움은 천년을 존속하였다. 저자의 발언처럼 비잔티움 역시 역사의 흐름에 맞추어 변화하고자 했지만 이를 잘 수행하지 못하였을 뿐이다. 근대 서구 사상가들이 비잔티움 세계를 폄하한 것은 마치 어린이가 할아버지의 현재 모습만 보고 늙고 병든 존재라고 인식하는 편견에 불과하다. 동로마 제국의 큰 흠결은 너무 오래 살아남았다는 점이다.

 

이 책은 그동안 찾아보기 어려웠던 동로마 제국의 역사 전반을 충실히 소개한 점에서 의의가 크다. 정치와 군사적 관점에서만 관심을 쏟지 않고, 사회, 경제, 문화적 측면도 균형 잡고 기술하려는 노력도 엿볼 수 있다. 무엇보다 서방에 편중된 시각에서 탈피하여 보다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시각으로 천년 제국의 실체를 독자에게 알리고자 한 점이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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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폰스 무하 재원 아트북 26
조명식 지음 / 재원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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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폰스 무하 관련 글과 작품을 더 감상하고 싶어 도서관에서 대출한 책이다. 미술 전문 출판사의 아트북 시리즈의 하나로 나온 책이므로 일반적인 도서와는 기획과 판형, 구성이 다소 다르다. 판형은 265*220mm로 통상의 신국판, 국판, 46판보다 커서 그림 감상에 유리하다. 특히나 작품 한 점을 한 면 가득 수록한 경우는 눈이 시원할 정도다. 지질과 색상도 아트북답게 신경 쓴 자취가 역력하다. 분량도 79면으로 많지 않아 전체적으로 화보의 느낌이 든다.

 

아무래도 보는 책이 주가 되다 보니 단점으로 여길만한 부분도 있다. 알폰스 무하의 생애와 작품세계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고, 수록된 개개 작품에 대한 소개도 기본 정보 외에는 따로 제공하고 있지 않다. 기획 의도를 볼 때 알폰스 무하라는 예술가를 처음 접하는 독자를 위한 소개서의 성격이 강하다. 화가 연보가 앞부분에 바로 나오는데, 흔히 보던 간략한 연보가 아니라 8면에 걸쳐 세밀하게 내용을 담고 있어 무하의 삶과 주요 작품에 대한 정보를 부족하나마 얻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무하의 주요 작품, 즉 극장 포스터, 광고 포스터, 잡지 표지, 4개의 OOO 시리즈는 물론 무하 스타일을 특징적으로 보여주는 인물 장식집과 장식 자료집의 도안도 일부 보여준다. 대다수의 작품은 앞서 읽은 책과 중첩되는데, 몇몇 새로운 작품이 눈에 띈다. <슬라브 서사시> 연작도 다섯 편을 수록하고 있다. 앞서 읽은 책과 비교하면, 적어도 그림의 품질에서는 이 책이 압도적으로 우위에 있다. 보다 고급지를 사용하고, 색분해도 더 충실하여 동일한 작품을 나란히 비교하면 다른 느낌을 자아낼 정도다. 특히 <살람보>(P.66)는 완전히 다른 그림으로 보일 정도다. 확실히 이 책의 그림은 컬러감이 훨씬 더 살아 있다는 인상이다.

 

한편 프라하의 무하박물관 외에 일본의 무하미술관과 사카이 시립문화관에서 그의 작품을 여럿 소장하고 있는 게 인상적이다. 체코를 제외하고 무하에게 이렇게 관심을 기울인 곳이 있었나 의외인 동시에 놀라울 따름이다. <르페브르 유틸사의 광고 포스터>(P.14), <사계절> 시리즈(P.16-17), <새벽><황혼>(P.25), <토스카 홍보 포스터>(P.33), <살람보>(P.66), <꽃들>(P.70), <쿼바디스>(P.74) 등이 그러하다. 프라하에 앞서 먼저 일본을 가봐야겠다.

 

일단 무하의 작품은 사전 지식 없이 둘러봐도 흥미롭다. 다만 무하의 아르누보 스타일에 대한 추가적 설명과, 그의 후반기 작품세계를 대표하는 <슬라브 서사시>와 슬라브적 제재의 작품에 대한 해설을 덧붙였으면 금상첨화였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 책은 전체적으로 알폰스 무하가 누군지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짧은 시간에 그를 알리는 데 효과적이다. 본격적인 접근보다는 그림 감상 위주로 무하라는 예술가를 부담 없이 알고 싶어 하는 독자를 위한. 그런 측면에서는 꽤 괜찮은 책이라는 점을 인정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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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명 : 188회 아트엠콘서트 - 최송하 무반주 바이올린 리사이틀

일시 : 2026년 3월 19일(목) 19:30

장소 : 신영체임버홀

연주 : 최송하 (바이올린)

진행 : 바이올리니스트 이수민

프로그램

  - 크라이슬러, 레치타티보와 스케르초-카프리스 Op.6

  - 바흐, 무반주 바이올린을 위한 파르티타 2번 D단조 BWV1004

  - 이자이, 무반주 바이올린을 위한 소나타 3번 D단조 Op.27 No.3


* 세줄평

바이올린의 음색과 연주자의 실력을 남김없이 드러내는 고독하며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는 프로그램이다. 연주자는 물론 청중에게도. 바꾼지 한달 남짓 되었다는 스트라디바리 덕분일까 매우 섬세하다. 연주자와 악기가 아직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에 있는 듯. 열정으로 휘몰아치거나 강인한 울림을 선사하는 순간에도 미묘한 음색과 여린 듯한 섬세함을 놓치지 않는다. 작년에 들었던 최송하와는 또 다른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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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비처네 (양장) - 목성균 수필전집
목성균 지음 / 연암서가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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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목성균. 소설가 이름도 잘 알지 못하는 마당에 수필가 이름은 어찌 알겠는가. 애초 이 책을 구매하게 된 계기도 불순하다. 온라인 마켓에서 새책 같은 헌책을 몇 권 살 때 싼 맛에 가격대를 맞추기 위해 끼워넣기로 추가하였으니. 가격 대비 두툼한 면수가 최소한 손해는 보지 않을 거라는 얄팍한 계산으로. 막상 사놓고나니 계륵 같은 처지가 되었다. 제법 얄팍해야 부담 없이 손이 갈 텐데, 600면이 넘은 분량이 오히려 부담으로 다가왔다. 한동안 방치해놓고 째려보다가 여하튼 킬링타임용으로 한번 읽어나 보자 하는 심정이 독서의 계기다.

 

이 책은 목성균의 수필 전집이다. 그가 평생 발표한 수필 작품을 모두 수록한 책이라는 의미다. 뭔가 이상하다 싶어 발간사와 해설을 먼저 살펴보니, 그는 애초부터 전업 수필가의 길을 나선 게 아니라 공직 생활에서 퇴직한 이후, 나이로는 50대 중반이 되어야 비로소 글쓰기를 시작하였다.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불과 10년도 못 미친 채 60대 중반에 생을 마쳤으니 달랑 이 책 한 권에 그의 수필 작품 모두가 들어가게 된 셈이다.

 

김종완 문학평론가는 그를 수필계의 기형도’(P.5)라고 소개한다. 사망한 나이는 차이가 있지만, 짧은 활동기간과 사후의 높은 평가의 유사점에 주목한 것이리라. 그게 과연 타당한지는 작품집의 독자가 판단한 몫이다. 아무래도 소설에 비해 대중성이 부족한 장르인 수필 특성상, 그가 폭발적인 찬사와 호응을 받는 일은 벌어지지 않으리라. 게다가 개인적으로 수필 작품은 한 번에 쭉 읽어 나가기보다는 몇 편씩 간격을 두고 긴 호흡으로 읽어야 한다는 선입견을 지니고 있게 이 책의 독서는 감흥과 몰입의 균형을 잡기 힘들었다.

 

노년에 글쓰기를 시작한 만큼 작품 소재가 회고와 추억이라는 과거지향성을 지님은 그의 작품세계의 뚜렷한 특징이다. 이 책에 실린 거의 대다수 작품이 여기 유형에 속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소년과 청년 시절이 우리나라가 한창 힘들고 어렵던 시기의 농촌이었던지라 오늘날 시각으로 보면 현대와 상당한 시간적, 문화적 간극이 존재한다. 표제 누비처네만 하더라도 무엇을 뜻하는지 읽기 전까지는 미처 알지 못하였다. 다랑논, 부엌 궁둥이, 사기 등잔, 살포, 부등가리, 돼지불알, 당목수건 등 용어 자체가 생소한 어휘와 거기 얽힌 일화는 우리에게 이미 잊힌 옛 시골 문화를 - 궁핍하지만, 그 속에서 정이 넘치는 - 되새기게 해준다. 아예 젊은 세대라면 지나간 세대의 문화를 글로나마 체험할 수 있다고나 할까.

 

고향은 사라져 가도 내리는 눈발 속에 내 고향이 남아 있다는 것이 나의 재산인데 누구에게 물려줄 수 없는 무형의 재산일 뿐이다. (P.439, 고향설)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강만돌 어른, 원규 어르신네, 고모부를 비롯한 선대 가족과 이웃의 삶은 자체로 개인사이자 풍토사의 한 장을 이룬다. 나이가 들수록 점점 사무쳐 가는 옛 추억과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은 그저 회고적 감정만이 아니다. 가족과 고향은 단순히 과거의 사람과 유물이 아니라 우리네 삶의 원형과 기초를 이루는 요인이 아니던가. 덕택에 우리는 풍요로운 영혼을 바탕에 깔고 힘차게 현재와 미래로 뻗어나갈 수 있었다. 아무래도 요즘 사람이 아닌 만큼 그의 글에 비치는 문화와 가치관은 전통적인 동시에 자칫 고리타분하고 보수적으로 여겨질 개연성이 있다. 그건 작가 또래가 갖는 무의식적 관습의 세례 결과이므로 비판적으로 보기보다는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으므로 열린 접근이 필요하다.

 

작가는 평생을 산림 공무원으로 봉직하였다. 여러 작품에서 이때의 경험과 추억을 드러내고 있는데, <2부 혼효림>에 실린 목도리’, ‘선배의 모습’, ‘어떤 직무유기’, ‘혼효림’, ‘약속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소나무와 참나무가 조화를 이룬 숲을 예찬한 혼효림과 함께 산골 소년과의 다시 오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한 자괴감이 마음에 남는다.

 

목성균의 글이 그렇다고 죄다 과거지향은 아니다. 도중에 솟구치는 현재성을 여러 군데서 볼 수 있다. 현재 거주지인 청주시에서 열리는 체육대회에 대한 기대감(‘새벽의 거리’), 기러기 떼가 앞자리를 서로 교대하는 행태와 정치 상황을 비유하거나(‘앞자리’), 의료 수가 관련하여 의사가 단체행동을 나선 것에 대한 호소(‘의사 선생님께’), 정치 상황에 대한 우려와 바람(‘봄비와 햇살 속으로’) , 그는 현재에도 시선을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현재성의 다른 갈래는 고향과 현재 거주지가 아닌 타지와 타인에 대해 쓴 글이다. <4부 불영사에서>에 실린 몇 편이 주로 여기에 해당하는데, ‘간이역’, ‘거진항의 아침’, ‘불영사에서’, ‘전장포등이다. ‘억수리에서는 자식과 손주 사랑이 결합되어 있는 점에서 손주를 제재로 삼은 여덟 살의 배신과 더불어 드물게 보는 가족적 모습이다. 그것은 빛이 나는 따뜻한 사회를 이루게 되는 이웃 간 서로가 상대를 향한 배려의 모습이 빛이 나는 관계와 다를 바 없다.

 

그 수족이 불편한 아주머니는 나의 이 행복감에 차질을 주지 않으려고 고구마가 안 팔리는 그 추운 겨울밤에도 몇 시간씩 내가 지나갈 때까지 기다려 준 것이다. (P.489, 행복한 군고구마)

 

생계와 가족 부양이라는 생활의 압력에서 작가는 스스로의 인생을 뜻을 이루고 성공한 삶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하급 공무원으로 평생 지내다가 은퇴했으니 물질적 측면에서 풍요롭지 못함은 그의 글 도처에서 찾아볼 수 있다. 자신의 삶을 쭉정이라고 비판적으로 인식하지만 그의 수필 작품을 읽은 독자로서는 그야말로 올 찬 알밤’(P.200)으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

 

그의 글은 젠체하지 않아서 좋다. 특별히 대단한 학식을 뽐내거나 심오한 사상을 피력하지도 않는다. 담담하고 평이한 문장 속에서 잔잔한 감흥이 깊게 배어 있어 은근한 묘미와 곱씹는 단맛을 독자에게 제공한다. 아무 반찬 없이 흰 쌀밥을 꼭꼭 씹으면 느낄 수 있는 그런 은은함이랄까.

 

나는 통속적인 걸 좋아한다. 그래서 내 수필도 문학적 테크닉보다 인간의 속성에 기대하는 바 크다. (P.385, 봄비와 햇살 속으로)

 

자신의 수필 문학에 대한 작가 자평이다. 그의 수필이 지향하는 인간주의적 성향이 결코 일과성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다. 아주 다채로운 문학 지평을 보여 주지 않지만 그러기에는 작품활동이 길지 않다 그의 작품을 통해서 우리는 잃어버린 옛 시절과 풍습과 사람을 정겹게 추억할 소중한 기회를 얻게 되었다. 전혀 내키지 않은 우연한 계기로 그의 글에 접하게 되었지만 무척 행복한 마음으로 독서하게 되어 기쁘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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