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잔티움의 역사 - 천년의 제국, 동서양이 충돌하는 문명의 용광로에 세운 그리스도교 세계의 정점 더숲히스토리
디오니시오스 스타타코풀로스 지음, 최하늘 옮김 / 더숲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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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잔티움 제국, 즉 동로마 제국의 역사 개설서다. 동로마 제국은 서양 중심의 세계사에서 주역으로 인정받지 못한 비운의 국가다. 대다수의 서양인은 로마 제국의 최후를, 서로마 제국의 멸망으로 간주한다. 로마 제국, 서로마 제국, 프랑크 왕국, 신성 로마 제국으로 이어지는 계보를 로마의 적통으로 본다. 그리스어와 정교가 중심인 동로마 제국은 로마의 후손이지만 방계 정도로만 여길 뿐이다. 유스티니아누스 대제와 콘스탄티노플 함락 정도가 일반인의 기억에 남아 있는 수준이 아닐까.

 

동로마 제국의 출발을 395년 또는 476년으로 볼지 관점은 다를 수 있다. 다만 동로마 제국의 멸망을 일단 1453년 콘스탄티노플 함락과 황제의 죽음으로 기준 삼는다면, 길게는 천 년 이상, 짧게는 천년 가까이 존속하였음은 확실하다. 역사상 일국의 정체가 천년을 버틴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므로 역사적으로 보기 드문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이 책의 장점은 일단 저자가 그리스인이므로 동로마 제국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서구 주류와 다른 새로운 시각을 보여 줄 수 있음이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이 책에서 사용하는 비잔티움의 이름과 지명을 기존의 라틴어식, 영어식 표현이 아니라 그리스어식으로 표기했다는 점이다. 비잔티움인들의 주체적 인식을 존중한 점에서 평가할 만하다. 또 하나 독자의 쉬운 이해를 위해 관례상 비잔티움이라는 어휘를 사용했지만, 문제가 있는 용어임을 주지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비잔티움 제국 또는 문명 표현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는 비잔티움 제국이 로마 제국과 구별되는 별개의 국가라는 인식을 유발해서다. 비잔티움 사람들은 멸망하는 순간까지도 자신들이 로마인임을 한 치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런 면에서 차라리 동로마 제국이 더 낫다.

 

동로마 제국의 영토는 동서 문화와 민족의 교차 지역이기에 안정된 국가 체제를 유지하기 어려웠다. 서쪽으로는 게르만족과 슬라브족의 계속된 침입, 동쪽으로는 이슬람과 페르시아, 셀주크와 오스만 등이 호시탐탐 아나톨리아와 콘스탄티노폴리스를 노렸다. 저자에 따르면 장기간의 역병 발생과 지진의 빈발 등 환경적 어려움도 커서 심각한 인구 통계적 위기에 직면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래도 아나톨리아와 발칸반도는 유지할 수 있었는데, 마케도니아 왕조 시절을 영토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제국의 중세 전성기라고 평하는 점이 새롭고 흥미롭다.

 

마케도니아 르네상스는 새로이 피어난 강력한 로마 제국 자체인 비잔티움 제국이 지성 세계에서도 서방을 압도할 수 있음을 보여 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P.223-224, 5)

 

동로마 제국과 관련하여 종교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로마 교회와 콘스탄티노폴리스 교회 사이의 교리를 둘러싼 차이는 교회 간 상호 파문으로 이어졌고, 이는 끝내 가톨릭교와 정교로 기독교가 분파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게다가 정교 내부에서도 성상 인정과 파괴를 둘러싼 치열한 종교적 갈등이 제국을 뒤흔들었으니, 가톨릭교와는 달리 정교는 황제가 총주교보다 우위를 점하는 일종의 제정일치 사회여서다.

 

12044월에 일어난 십자군의 콘스탄티노폴리스 정복과 약탈은 비잔티움 제국의 역사를 결정지었다. 도시 자체는 1261년에 탈환되었지만, 함락에 비롯된 정치적.경제적.인구적.문화적 여파는 중세 이후 비잔티움 세계에 남아 있었다. (P.261, 7)

 

이처럼 언어와 종교가 다르니 동일한 문명권이라고 인정하기 어렵게 된 상황에서, 서구와 동로마를 결정적으로 틀어지게 만들고 동로마의 멸망을 재촉하게 만든 사건이 바로 십자군 전쟁, 특히 콘스탄티노폴리스를 공략하여 무너뜨린 4차 십자군이다. 이슬람 적국이 아니라 어쨌든 같은 기독교 문명권인 동로마 제국이 한순간 무너지면서 60년 가까이 지나서야 겨우 후속 국가인 니케아 제국이 콘스탄티노폴리스를 되찾았지만, 이후 동로마 제국은 다시는 예전의 세력을 회복하지 못하였다는 점에서 이 사건은 동로마 제국을 멸망으로 이끈 결정적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이후 동로마 제국인들은 서방 세계를 믿지 않고 적대시하게 되었고, 쇠퇴한 동로마 제국을 서방 세계는 경시하고 함부로 대하기 시작하여 두 체제의 단합은 요원하게 되었다. 오스만 제국이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포위하여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인 상황에서 서방 세계의 구원 의지가 강력하지 않았음을 이를 보여 준다. 그들에게 비잔티움은 이미 다른 세계에 속해 있으므로.

 

저자는 두 가지 독자적 의견을 제시한다. 1453년 콘스탄티노폴리스의 함락이 곧 동로마 제국의 멸망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펠로폰네소스 반도와 에게해 섬 지역에 여전히 비잔티움의 영토가 오랜 기간 존속하였기에. 하지만 제국의 수도와 황제가 종말을 맞이했고 응집력 있는 대안세력이 나타나지 않았으므로 멸망이라고 간주하는 게 타당하다고 본다.

 

십자군 전쟁의 단초가 된 알렉시오스 1세의 구원 요청에 대한 해석이다. 보통은 셀주크 세력에 위협을 느낀 황제의 절박한 구원 요청에 교황이 나서서 호소함에 따라 최초의 십자군이 구성되었다고 본다. 저자는 다른 주장을 펼치는데, 당시 셀주크의 세력은 제국의 명운에 위협을 가져올 정도가 아니었고, 황제는 서방의 용병으로 셀주크와 대적하려는 의도 정도였다는 것이다. 거대한 십자군의 움직임은 황제와 동로마 입장에서도 당혹스러운 사태 전개였다는 점이다. 어쨌든 대규모의 군대가 자국 영토를 통과해 간다는 점은 어느 지배자든지 부담스럽게 여길 것은 자명한 일이다. 흥미로운 사안이다.

 

어쨌든 동로마 제국의 멸망에 내부적 책임은 결코 면할 수 없다. 제국이 공국 수준으로 쪼그라들었음에도 지배층은 알량한 권력 다툼으로 국세를 키우기 위한 노력을 등한시한 점은 분명 사실이므로. 다만 그러함에도 동로마 제국의 의의를 과소평가하는 시각은 잘못이다. 비잔티움은 천년을 존속하였다. 저자의 발언처럼 비잔티움 역시 역사의 흐름에 맞추어 변화하고자 했지만 이를 잘 수행하지 못하였을 뿐이다. 근대 서구 사상가들이 비잔티움 세계를 폄하한 것은 마치 어린이가 할아버지의 현재 모습만 보고 늙고 병든 존재라고 인식하는 편견에 불과하다. 동로마 제국의 큰 흠결은 너무 오래 살아남았다는 점이다.

 

이 책은 그동안 찾아보기 어려웠던 동로마 제국의 역사 전반을 충실히 소개한 점에서 의의가 크다. 정치와 군사적 관점에서만 관심을 쏟지 않고, 사회, 경제, 문화적 측면도 균형 잡고 기술하려는 노력도 엿볼 수 있다. 무엇보다 서방에 편중된 시각에서 탈피하여 보다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시각으로 천년 제국의 실체를 독자에게 알리고자 한 점이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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