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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비처네 (양장) - 목성균 수필전집
목성균 지음 / 연암서가 / 2010년 12월
평점 :
수필가 목성균. 소설가 이름도 잘 알지 못하는 마당에 수필가 이름은 어찌 알겠는가. 애초 이 책을 구매하게 된 계기도 불순하다. 온라인 마켓에서 새책 같은 헌책을 몇 권 살 때 싼 맛에 가격대를 맞추기 위해 끼워넣기로 추가하였으니. 가격 대비 두툼한 면수가 최소한 손해는 보지 않을 거라는 얄팍한 계산으로. 막상 사놓고나니 계륵 같은 처지가 되었다. 제법 얄팍해야 부담 없이 손이 갈 텐데, 600면이 넘은 분량이 오히려 부담으로 다가왔다. 한동안 방치해놓고 째려보다가 여하튼 킬링타임용으로 한번 읽어나 보자 하는 심정이 독서의 계기다.
이 책은 목성균의 수필 전집이다. 그가 평생 발표한 수필 작품을 모두 수록한 책이라는 의미다. 뭔가 이상하다 싶어 발간사와 해설을 먼저 살펴보니, 그는 애초부터 전업 수필가의 길을 나선 게 아니라 공직 생활에서 퇴직한 이후, 나이로는 50대 중반이 되어야 비로소 글쓰기를 시작하였다.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불과 10년도 못 미친 채 60대 중반에 생을 마쳤으니 달랑 이 책 한 권에 그의 수필 작품 모두가 들어가게 된 셈이다.
김종완 문학평론가는 그를 ‘수필계의 기형도’(P.5)라고 소개한다. 사망한 나이는 차이가 있지만, 짧은 활동기간과 사후의 높은 평가의 유사점에 주목한 것이리라. 그게 과연 타당한지는 작품집의 독자가 판단한 몫이다. 아무래도 소설에 비해 대중성이 부족한 장르인 수필 특성상, 그가 폭발적인 찬사와 호응을 받는 일은 벌어지지 않으리라. 게다가 개인적으로 수필 작품은 한 번에 쭉 읽어 나가기보다는 몇 편씩 간격을 두고 긴 호흡으로 읽어야 한다는 선입견을 지니고 있게 이 책의 독서는 감흥과 몰입의 균형을 잡기 힘들었다.
노년에 글쓰기를 시작한 만큼 작품 소재가 회고와 추억이라는 과거지향성을 지님은 그의 작품세계의 뚜렷한 특징이다. 이 책에 실린 거의 대다수 작품이 여기 유형에 속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소년과 청년 시절이 우리나라가 한창 힘들고 어렵던 시기의 농촌이었던지라 오늘날 시각으로 보면 현대와 상당한 시간적, 문화적 간극이 존재한다. 표제 ‘누비처네’만 하더라도 무엇을 뜻하는지 읽기 전까지는 미처 알지 못하였다. 다랑논, 부엌 궁둥이, 사기 등잔, 살포, 부등가리, 돼지불알, 당목수건 등 용어 자체가 생소한 어휘와 거기 얽힌 일화는 우리에게 이미 잊힌 옛 시골 문화를 - 궁핍하지만, 그 속에서 정이 넘치는 - 되새기게 해준다. 아예 젊은 세대라면 지나간 세대의 문화를 글로나마 체험할 수 있다고나 할까.
고향은 사라져 가도 내리는 눈발 속에 내 고향이 남아 있다는 것이 나의 재산인데 누구에게 물려줄 수 없는 무형의 재산일 뿐이다. (P.439, 고향설)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강만돌 어른, 원규 어르신네, 고모부를 비롯한 선대 가족과 이웃의 삶은 자체로 개인사이자 풍토사의 한 장을 이룬다. 나이가 들수록 점점 사무쳐 가는 옛 추억과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은 그저 회고적 감정만이 아니다. 가족과 고향은 단순히 과거의 사람과 유물이 아니라 우리네 삶의 원형과 기초를 이루는 요인이 아니던가. 덕택에 우리는 풍요로운 영혼을 바탕에 깔고 힘차게 현재와 미래로 뻗어나갈 수 있었다. 아무래도 요즘 사람이 아닌 만큼 그의 글에 비치는 문화와 가치관은 전통적인 동시에 자칫 고리타분하고 보수적으로 여겨질 개연성이 있다. 그건 작가 또래가 갖는 무의식적 관습의 세례 결과이므로 비판적으로 보기보다는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으므로 열린 접근이 필요하다.
작가는 평생을 산림 공무원으로 봉직하였다. 여러 작품에서 이때의 경험과 추억을 드러내고 있는데, <2부 혼효림>에 실린 ‘목도리’, ‘선배의 모습’, ‘어떤 직무유기’, ‘혼효림’, ‘약속’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소나무와 참나무가 조화를 이룬 숲을 예찬한 ‘혼효림’과 함께 산골 소년과의 다시 오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한 자괴감이 마음에 남는다.
목성균의 글이 그렇다고 죄다 과거지향은 아니다. 도중에 솟구치는 현재성을 여러 군데서 볼 수 있다. 현재 거주지인 청주시에서 열리는 체육대회에 대한 기대감(‘새벽의 거리’), 기러기 떼가 앞자리를 서로 교대하는 행태와 정치 상황을 비유하거나(‘앞자리’), 의료 수가 관련하여 의사가 단체행동을 나선 것에 대한 호소(‘의사 선생님께’), 정치 상황에 대한 우려와 바람(‘봄비와 햇살 속으로’) 등, 그는 현재에도 시선을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현재성의 다른 갈래는 고향과 현재 거주지가 아닌 타지와 타인에 대해 쓴 글이다. <4부 불영사에서>에 실린 몇 편이 주로 여기에 해당하는데, ‘간이역’, ‘거진항의 아침’, ‘불영사에서’, ‘전장포’ 등이다. ‘억수리에서’는 자식과 손주 사랑이 결합되어 있는 점에서 손주를 제재로 삼은 ‘여덟 살의 배신’과 더불어 드물게 보는 가족적 모습이다. 그것은 빛이 나는 따뜻한 사회를 이루게 되는 이웃 간 서로가 상대를 향한 배려의 모습이 빛이 나는 관계와 다를 바 없다.
그 수족이 불편한 아주머니는 나의 이 행복감에 차질을 주지 않으려고 고구마가 안 팔리는 그 추운 겨울밤에도 몇 시간씩 내가 지나갈 때까지 기다려 준 것이다. (P.489, 행복한 군고구마)
생계와 가족 부양이라는 생활의 압력에서 작가는 스스로의 인생을 뜻을 이루고 성공한 삶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하급 공무원으로 평생 지내다가 은퇴했으니 물질적 측면에서 풍요롭지 못함은 그의 글 도처에서 찾아볼 수 있다. 자신의 삶을 쭉정이라고 비판적으로 인식하지만 그의 수필 작품을 읽은 독자로서는 그야말로 ‘올 찬 알밤’(P.200)으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
그의 글은 젠체하지 않아서 좋다. 특별히 대단한 학식을 뽐내거나 심오한 사상을 피력하지도 않는다. 담담하고 평이한 문장 속에서 잔잔한 감흥이 깊게 배어 있어 은근한 묘미와 곱씹는 단맛을 독자에게 제공한다. 아무 반찬 없이 흰 쌀밥을 꼭꼭 씹으면 느낄 수 있는 그런 은은함이랄까.
나는 통속적인 걸 좋아한다. 그래서 내 수필도 문학적 테크닉보다 인간의 속성에 기대하는 바 크다. (P.385, 봄비와 햇살 속으로)
자신의 수필 문학에 대한 작가 자평이다. 그의 수필이 지향하는 인간주의적 성향이 결코 일과성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다. 아주 다채로운 문학 지평을 보여 주지 않지만 – 그러기에는 작품활동이 길지 않다 – 그의 작품을 통해서 우리는 잃어버린 옛 시절과 풍습과 사람을 정겹게 추억할 소중한 기회를 얻게 되었다. 전혀 내키지 않은 우연한 계기로 그의 글에 접하게 되었지만 무척 행복한 마음으로 독서하게 되어 기쁘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