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공주 / 바리데기 문명텍스트 43
이경하 주해 /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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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데기>(돌베개)를 읽다 보니 해설 부분에서 바리데기를 망자의 저승 인도와 연계시키고 있는 대목이 이해되지 않았다. 순수한 텍스트만 놓고 보자면 동해안본에는 그렇게 해석할 만한 여지도 찾기 어렵다. 더구나 서울본과 비교해서 더욱 강조하니 이참에 서울본도 함께 읽는다. 이 책의 주해자는 돌베개판과 동일하다. 해제는 더욱 자세하고 충실하다. 주해자는 학술용의 서울대판을 대중용으로 다듬어 돌베개판으로 내놓았음이 분명하다.

 

서울본을 동해안본과 비교하면 우선 분량이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 더구나 제목이 말미라고 하여 전혀 상이하며, 세부적인 내용도 차이가 크다. 바리공주의 아버지를 업비대왕이라 칭하며, 바리공주를 키운 이도 산신령이 아니라 비리공덕 할비 할미다. 결혼한 상대자도 동수자가 아니라 무장승이며, 언니와 형부들 간의 갈등 장면도 여기서는 없다. 이야기로서의 완결성과 재미만 놓고 보자면 동해안본의 판정승이다. 하지만 워낙 판본의 성격이 이질적이기에 각각 독자적 가치를 지닌다고 생각한다.

 

바리공주의 무속적 성격은 서울본에서 보다 명확하다. 서울본은 구성면에서 보다 넋굿의 형태와 가까우며 시종일관 망자의 극락왕생을 기원하고 있다. 작중에서도 바리공주가 지옥길을 지나면서 망자에 대한 왕생천도를 비는 대목이 나타난다. 또한 부친을 회생시킨 후 인도국왕 보살이 되었다고 하여 동해안본과 비교할 때 저승신의 속성이 분명히 드러난다.

 

무조신 혹은 저승신으로서 주인공 바리의 성격이 보다 부각되는 각편은 서울 지역 전승본이다. (P.29)

 

업비대왕이 일곱 공주를 낳고 중병에 걸린 연유는 문복 결과를 무시하고 하늘의 뜻을 어긴 잘못이다. 바리공주는 자신을 버린 부모를 살리기 위해 온갖 시련을 겪고 서천 구약여행을 다녀온다. 효 화소는 봉건사회 틀에 수용되기 위한 안전판인 동시에 당대의 보편적 가치를 반영한 것이다. 이 점을 고려하더라도 바리공주가 버려진 신세에서 무조신이 되는 과정은 전형적 영웅 신화의 구조다. 따라서 바리공주 서사는 남성중심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 영웅의 발현이라는 점에서 독자적 의의가 있다. 여성 영웅의 연원은 무속에서 면면히 흐르는 옛날 모계사회와 모신(母神)의 유산으로 해석할 수 있다. 치유와 포용의 여성성의 전형화는 물론 지배적 봉건 체제 내에서 억눌린 여성들 바람의 형상화로도 이해할 수 있다.

 

바리공주가 전승되는 배경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굿판에서 구연이 되던 무가(巫歌)라는 점이다. 바리데기굿은 오구굿 또는 진오기굿처럼 망자의 넋을 위로하고 왕생천도를 기원하는 넋굿이다. 굿판은 무당에 의해 이루어지는 구연, 노래, 연기가 어우러지는 공연을 마을 주민들이 한데 모여 관람하는 현장이기도 하다. 대중들이 영화나 드라마의 희로애락에 공감하며 웃고 우는 것처럼 당대의 열악한 현실에서 그나마 여성들이 즐길 수 있는 시공간이 바로 굿판이다. 따라서 바리공주 서사의 페미니즘적 해석이 현대에 와서 이야기를 재발견하고 새로운 가치를 부여한 점은 인정하더라도 보다 폭넓은 시각에서 바리공주를 재해석해야 하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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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三百, 一言以蔽之, 曰思無邪.

不學詩, 無以言.

詩可以興, 可以觀, 可以群, 可以怨, 邇之事父, 遠之事君, 多識於鳥獸草木之名.

 

공자가 시()의 중요성을 언급한 <논어>의 대목들이다. 여기서의 시는 <시경>의 시를 언급한다. 굳이 공자를 소환하지 않더라도 현대의 우리가 <시경>을 읽을 이유는 많지만, 무엇보다 우리네 전통 문화의 근간을 이루는 한 축이라는 점이다. <시경> 자체의 오랜 연구는 물론, <시경>의 자구를 인용한 수많은 저작, 한자성어가 존재한다. 경복궁의 어원조차도.

 

개인적으로 한자, 한문을 익힘과 아울러 고전 공부 차원에서 <시경>을 학습하였다. 1일에 시 1편이라는 단순한 생각으로 도전한 연간 프로젝트가 엊그제 끝을 맺었으니 성공한 셈이다. 다만 국풍편은 그런대로 무난했으나 소아’, ‘대아’, ‘국송편의 시는 길이가 대폭 늘어나 무리할 수밖에 없었다.

 

신동준 역본의 미덕은 친절함과 균형감이다. 원문에 한자 독음은 없지만, 상세한 해설을 통해 어렵거나 낯선 한자의 음과 의미를 친절하게 풀이한다. 또한 민속학적 관점을 도입하여 경전의 고리타분한 해석을 지양하지만, 기존의 주요 주석서들의 내용도 소개하여 독자로 하여금 비교 감상할 수 있게 해주고 있다. 이 점은 국풍편이 두드러진다. 개인적 감정과 소회를 담고 있거나 연회와 제사에 사용되는 의식적이며 장중함이 드러나는 등 수록된 각 시의 스펙트럼은 무척이나 넓다. 문왕과 무왕을 포함하여 선조들을 기리는 대목은 용비어천가와 흡사할 정도로 민망하지만 당대로서는 당연하게 받아들여질 것이다.

 

305편에 대한 개별적 품평은 내 역량을 넘어서는 일이다. 이 글은 완독에 대한 기쁨과 의미를 되새기기 위한 목적일 뿐이다. 무려 이천 년을 훌쩍 뛰어넘은 시대에 불리던 노래들이다. 당대의 사람, 언어, 사고 및 문화가 현재와 결코 동일할 수 없다. 따라서 번역문을 읽더라도 각각의 시 내용을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다. 원문을 토대로 한 글자씩 의미에 접근하더라도 요령부득인 모호한 대목은 어쩔 수 없다. 그렇더라도 소득은 크다. 어렴풋이나마 그네들이 살아가던 개인과 사회의 모습을 눈앞에 그려볼 수 있게 되었다.

 

몇 가지 기억에 남는 점을 떠올린다면, 짐승과 초목 명칭의 그 다종다양함, 특히 말의 종류를 색상과 무늬에 따라 무척이나 세분하여 명칭을 부여한 점이 놀랍다. 제사의 종류와 의식 절차의 상세한 표현도 인상적이다. 표현 면에서 어()조사의 적극적 사용과 의성어, 의태어를 나타내는 자구도 흥미로웠다. <시경>의 시는 거의가 4언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훗날 중국의 시가가 5언 또는 7언으로 통일된 것과 비교하면 이질적이다. 시대와 더불어 사람들의 정서도 변모하기 마련이다.

 

참고로 올재클래식스로 나온 책인데, 7백면을 넘는 두꺼운 분량이다. 인간사랑의 정식 출간본은 1백면 가까이 더 분량이 많다. 다시 <시경>을 만날 날을 기약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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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데기 돌베개 우리고전 100선 23
김석출 구연, 이경하 역주, 전갑배 그림 / 돌베개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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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데기이야기는 동화책을 읽은 적이 있지만 원형으로서의 바리데기실체를 명확히 확인해 보고 싶었다. 찾아보니 서울본과 동해안본으로 대별되며, 명칭도 바리데기바리공주로 차이가 있다. 이 책에 수록한 김석출 구연본은 동해안본의 대표격이다. ‘바리데기는 통상적 전통 민담이 아니다. 죽은 사람의 넋을 위로하기 위한 굿판에서 무당에 의해 불리던 무가(巫歌)를 채록하였다. 무가(巫歌) 그리고 망자의 넋을 위로하기 위한 목적, 이 두 가지가 바리데기를 이해하기 위한 기본 성격에 해당한다.

 

서사 구조의 일관성 관점에서 볼 때 이야기 자체는 자가 모순적이다. 바리데기는 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버림을 당한다. 태어날 아이가 그토록 바라던 사내가 아니라 여자임을 태몽은 명명백백하게 고지한다. 그럼에도 대왕과 부인은 그릇된 소망을 품는다. 오구대왕이 제정신을 잃을 정도로 실망한 까닭은 어쩌면 헛된 바람이 어긋난 것에 대하여 스스로에 대한 분노였으리라. 마지막 장면에서 바리데기 덕분에 죽음에서 부활한 대왕과 부인은 기쁨의 노래를 부른다, 외손봉사도 좋다고 하면서. 막내딸의 효성에 감탄한 덕택이겠지만, 진작에 딸만 낳았다고 실망할 일이 무엇 에랴. 여기서 당대의 전근대적 가치관을 발견할 수 있다.

 

바리데기를 바라보는 인식은 전통적 효 중시개념에서 여성영웅의 장대한 서사시로 변모하고 있다. 남아선호 사상으로 경시되고 차별받던 딸, 서천서역국의 약수를 구하기 위해 밭갈이, 빨래 등 시련을 겪고, 남모르는 남자와 선뜻 혼인을 하고 세 아이의 출산과 양육의 힘든 생의 여정을 거친다.

 

이야기는 불교와 남다른 친연성을 보여준다. 득남의 희망, 오구대왕을 살릴 방안과 바리데기가 살아있음을 알려주는 잇단 노스님의 등장 등은 다소 작위적이고 허황하지만 이야기 자체의 속성이 그러하다. 압권은 귀국 중 유사강을 건네주기 위해 부처님들이 총출동하는 대목이다. 반야선을 타는 바리데기를 묘사한 용선가’ (P.117-120) 노래는 무속이 문학과 노래, 춤이 어우러지는 종합예술적 속성을 지녔음을 새삼 상기시킨다.

 

바리데기서사에서 주인공이 맡았던 소임은 바로 이승을 떠난 망자들을 저승의 좋은 곳으로 인도해 주는 무당의 역할이기도 하다. (P.145)

 

바리데기의 역할과 관련하여 해설은 이렇게 기술하지만, 김석출 구연본에서는 상기 내용이 분명하지 않다. 바리데기의 서천서역국행은 삶을 구하기 위한 여정이지 망자를 인도해 준다는 해석은 지나친 측면이 있다. 물론 서울본 등 다른 각본을 종합 비교하면 달리 판단할 수 있겠지만 적어도 이 책의 이야기만을 놓고 보면 그러하다. 망자가 아직 영원한 죽음의 세계에 이른 것이 아니며, 바리데기의 권능을 통해서 망자가 저승에서 이승으로 되돌아올 한 가닥 희망의 끈이 남았음을 알려주는 것. 이를 통해 망자의 넋이 조금이나마 위로될 수 있기를 바라는 행위가 바리데기굿과 오구풀이가 아닐까.

 

한편 작중의 바리데기오구의 유래를 굳이 한자와 결부시킨 대목은 견강부회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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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 최치원 시선 한국의 한시 1
최치원 지음, 허경진 옮김 / 평민사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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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부시<시경>을 공부하다 보니 우리 한시도 틈틈이 보고 싶다. 비조에 해당하는 최치원 시선이 우선적 선택 대상이 된다. 고운 최치원은 12세에 당나라에 유학 가서 과거에 급제하고, 황소의 난 때 격문으로 문명을 떨친 후 귀국하여 신라를 중흥시키고자 하였으나 자신의 뜻이 받아들여지지 않고 회생 불가능함을 알고 산속에 은둔하여 생을 마친다. 교과서에서 그의 유불선에 관한 글과 추야우중(秋夜雨中)’이라는 시를 배운 기억이 있다. 이 책은 1백면 남짓한 분량에 50여 편을 수록하였다. <계원필경>에 실린 시를 21, <동문선>에 실린 시를 22, <삼국사기>에 실린 5수와 <지봉유설>에 지리산 석굴 속에서 발견했다는 8수가 그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17년간을 홀로 타국에서 생활 했으니 그의 외로움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말해 무엇 하겠는가? 제아무리 개방적인 당나라이지만 외국인의 출세는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었고, 서서히 혼란기로 접어들던 시기였다. 이런 맥락에서 그의 시 가운데 상당수가 그리움을 제재로 삼고 있음은 당연할 것이다. ‘봄바람’, ‘바닷가에서 봄 경치를 바라보며’, ‘동쪽 나라로 돌아가려고’, ‘고향의 벗을 만났다가 헤어지면서등등. 또한 의지가지없는 자신의 신세한탄을 읊는 시도 제법 있다. 자신의 능력을 펼칠 기회를 얻지 못한 울분과 탄식이 드러난다. ‘진달래’, ‘산마루 가파른 바윗돌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그나마 마음의 위안과 기쁨을 주던 친한 벗들과 헤어지게 되었을 때 읊은 작품들에서는 그 슬픔과 아쉬움이 진하게 배어나온다. ‘고향 가는 배가 떠난다지만’, ‘진사 양섬이 헤어지며 보내 준 시를 받고서’, ‘헤어짐을 아쉬워하는 오만 수재에게’, ‘벗을 강남으로 보내며등이 있다.

 

오매불망 그리던 고국에 돌아오면서 부풀었던 그의 포부와 희망이 무참히 깨졌을 때 그는 속세를 떠났다. 그의 호가 고운(孤雲)이며, 그와 관련된 장소가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음을 보면 그의 방랑여정을 짐작할 수 있다. ‘세상 사람들은 단술만 즐긴다네’, ‘마음의 거울을 닦고’, ‘가을날 밤비가 내리는데’, ‘가야산에 숨어 살며와 지리산 석굴 속에서 발견했다는 8수가 그러하다.

 

최치원이 살던 시기는 당나라 후기로서 따라서 한시의 체계가 완전히 갖추어진 이후다. 따라서 그의 시 형식은 모두 5언과 7언의 절구와 율시로 통일되어 있다. 그의 작품이 깔끔하고 명료하며 장황하거나 처진 느낌이 들지 않는 연유도 내용 못지않게 형식의 영향도 크다고 생각한다.

 

혹자는 그의 현실감각과 정치능력이 뛰어나지 못함을 탓하지만 태생적으로 그는 경세가 타입이 아니다. 난랑비 서문과 이 책에 실린 시들에서 그가 유학에 매몰되지 아니하고 도가와 불가에도 거리낌 없이 교분을 가졌음을 알면 그의 열린 시각과 가슴을 깨닫게 될 것이다. 아래 시에서 그의 체념과 아울러 처절함이 절절하게 다가온다.

 

옳고 그름을 다투는 소리/귀에 들릴까 늘 두려워서/

짐짓, 흐르는 물로 하여금/온 산을 둘러싸게 하였다네. (‘가야산에 숨어 살며’, P.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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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수석 : 현대어본 조선 왕실의 소설 6
임치균.임정지 옮김 / 한국학중앙연구원(한국정신문화연구원)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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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권으로 나누어져 본문만 450여 면의 두툼한 책이다. 중국 당나라 말기와 510국 시대 초기를 아울러 위보형과 설옥영이라는 전형적인 재자가인의 만남과 시련, 그리고 행복을 그린 소설이다. 군자와 숙녀의 결합에서, 그리고 군자의 출세가도에서 악인의 개입은 필수요소다. 간옥지와 이초혜, 그리고 양 부인이 이 작품에서 해당 역할을 담당한다.

 

위보형은 전통소설 속 대개의 주인공처럼 하늘의 별이 환생한 것으로 용모와 인품, 학식을 두루 갖춘 완벽에 가까운 인물이다. 설옥영 또한 비길 데 없는 미모에 현숙하기 그지없는 덕성마저 갖추었으니 군자호구다. 왕명에 의해 위보형과 인연을 맺게 된 동창공주는 높은 지위에도 현숙함을 잃지 않으니 악인에 의한 이른 죽음이 애처롭기 그지없다. 참고로 동창공주가 시가의 여인과 남자들을 초대하여 궁 안에서 즐기는 대목은 이 소설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경 묘사가 깃들여져 있다.

 

위보형의 서모(庶母) 양 부인은 위보형이 집안과 국가의 동량으로 승승장구하자 시기와 질투에 불타올라 위보형 부부를 파멸시키려고 한다. 문학작품에서 심심찮게 등장하는 소재다. 간옥지는 설옥영의 미모에 빠져 집안의 위세만 믿고 위보형과 대립 관계를 이루는 소인배적 악인에 불과하다.

 

위 낭군과 인연을 이루지 못하면 위씨 집안을 풍비박산내고 말테야.’ (P.183)

 

이초혜는 색다른 유형의 인물인데, 집착에 가까운 여인의 사랑이 결국에는 증오로 돌변하고 마는 지경이다. 이초혜 또한 미모로는 설옥영 못지않게 뛰어난 인물이다. 다만 인품과 행실에서 간사하고 음험한 기미가 있어 이것이 위보형 부부는 물론 당나라 전체를 위기에 빠뜨리니, 팜므파탈 내지 경국지색인 셈이다. 이초혜는 어떤 의미로든 작중에서 가장 역동적이고 다양한 변신을 이루어내는 인물이다. 표면적 주인공이 위보형 부부라면 작품을 이끌어가는 실질적 주된 인물은 이초혜다. 간옥지와 양 부인조차 이초혜만큼의 활약상과 비중을 갖지 못한다.

 

작중에서 수차 암시되었듯이 위보형 부부는 세속에 오래 머물 운수가 아니다. 우여곡절 끝에 화산의 신선 세계에 머물게 되며, 추후 아들 사원과 잠시나마 부모 상봉을 하여 회포를 분다. 대개 여기서 작품이 끝나기 마련인데 이 소설은 그의 아들 사원이 중심이 되어 나머지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이 작품이 두 남녀 주인공 중심의 소설관에서 벗어나 시대와 사회 전체를 아우르는 가문 대하소설로 이어지는 단계로 평가받는 연유가 여기에 있다. 위보형 부부라는 개인을 넘어 혼암한 군주가 잇달아 등장하며 왕조가 흔들리고 사회가 어지러워지는 시대상.

 

작품 말미에 당나라 멸망 후 5대의 혼란이 기술되고, 이사원은 양부 진왕을 돕다가 후에 황제가 되니 역사상의 후당(後唐) 명종이다. 그러나 명종과 후손들의 삶 또한 편치 못하니 더없는 난세의 시절이다. 마지막에 사원의 아들 복성의 뒷이야기를 기록한 책이 더욱 기이하다는 문장으로 끝맺음을 짓고 있는데, 해설에 따르면 8080책의 대하소설 <화산선계록>이 이 작품의 후편에 해당한다. 다만 후편은 아직 번역본이 없어 실체를 가까이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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