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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데기 ㅣ 돌베개 우리고전 100선 23
김석출 구연, 이경하 역주, 전갑배 그림 / 돌베개 / 2019년 6월
평점 :
‘바리데기’ 이야기는 동화책을 읽은 적이 있지만 원형으로서의 ‘바리데기’ 실체를 명확히 확인해 보고 싶었다. 찾아보니 서울본과 동해안본으로 대별되며, 명칭도 ‘바리데기’와 ‘바리공주’로 차이가 있다. 이 책에 수록한 김석출 구연본은 동해안본의 대표격이다. ‘바리데기’는 통상적 전통 민담이 아니다. 죽은 사람의 넋을 위로하기 위한 굿판에서 무당에 의해 불리던 무가(巫歌)를 채록하였다. 무가(巫歌) 그리고 망자의 넋을 위로하기 위한 목적, 이 두 가지가 ‘바리데기’를 이해하기 위한 기본 성격에 해당한다.
서사 구조의 일관성 관점에서 볼 때 이야기 자체는 자가 모순적이다. 바리데기는 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버림을 당한다. 태어날 아이가 그토록 바라던 사내가 아니라 여자임을 태몽은 명명백백하게 고지한다. 그럼에도 대왕과 부인은 그릇된 소망을 품는다. 오구대왕이 제정신을 잃을 정도로 실망한 까닭은 어쩌면 헛된 바람이 어긋난 것에 대하여 스스로에 대한 분노였으리라. 마지막 장면에서 바리데기 덕분에 죽음에서 부활한 대왕과 부인은 기쁨의 노래를 부른다, 외손봉사도 좋다고 하면서. 막내딸의 효성에 감탄한 덕택이겠지만, 진작에 딸만 낳았다고 실망할 일이 무엇 에랴. 여기서 당대의 전근대적 가치관을 발견할 수 있다.
바리데기를 바라보는 인식은 전통적 효 중시개념에서 여성영웅의 장대한 서사시로 변모하고 있다. 남아선호 사상으로 경시되고 차별받던 딸, 서천서역국의 약수를 구하기 위해 밭갈이, 빨래 등 시련을 겪고, 남모르는 남자와 선뜻 혼인을 하고 세 아이의 출산과 양육의 힘든 생의 여정을 거친다.
이야기는 불교와 남다른 친연성을 보여준다. 득남의 희망, 오구대왕을 살릴 방안과 바리데기가 살아있음을 알려주는 잇단 노스님의 등장 등은 다소 작위적이고 허황하지만 이야기 자체의 속성이 그러하다. 압권은 귀국 중 유사강을 건네주기 위해 부처님들이 총출동하는 대목이다. 반야선을 타는 바리데기를 묘사한 ‘용선가’ (P.117-120) 노래는 무속이 문학과 노래, 춤이 어우러지는 종합예술적 속성을 지녔음을 새삼 상기시킨다.
「바리데기」 서사에서 주인공이 맡았던 소임은 바로 이승을 떠난 망자들을 저승의 좋은 곳으로 인도해 주는 무당의 역할이기도 하다. (P.145)
바리데기의 역할과 관련하여 해설은 이렇게 기술하지만, 김석출 구연본에서는 상기 내용이 분명하지 않다. 바리데기의 서천서역국행은 삶을 구하기 위한 여정이지 망자를 인도해 준다는 해석은 지나친 측면이 있다. 물론 서울본 등 다른 각본을 종합 비교하면 달리 판단할 수 있겠지만 적어도 이 책의 이야기만을 놓고 보면 그러하다. 망자가 아직 영원한 죽음의 세계에 이른 것이 아니며, 바리데기의 권능을 통해서 망자가 저승에서 이승으로 되돌아올 한 가닥 희망의 끈이 남았음을 알려주는 것. 이를 통해 망자의 넋이 조금이나마 위로될 수 있기를 바라는 행위가 바리데기굿과 오구풀이가 아닐까.
한편 작중의 ‘바리데기’와 ‘오구’의 유래를 굳이 한자와 결부시킨 대목은 견강부회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