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고운 최치원 시선 ㅣ 한국의 한시 1
최치원 지음, 허경진 옮김 / 평민사 / 2007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악부시’와 <시경>을 공부하다 보니 우리 한시도 틈틈이 보고 싶다. 비조에 해당하는 최치원 시선이 우선적 선택 대상이 된다. 고운 최치원은 12세에 당나라에 유학 가서 과거에 급제하고, 황소의 난 때 격문으로 문명을 떨친 후 귀국하여 신라를 중흥시키고자 하였으나 자신의 뜻이 받아들여지지 않고 회생 불가능함을 알고 산속에 은둔하여 생을 마친다. 교과서에서 그의 유불선에 관한 글과 ‘추야우중(秋夜雨中)’이라는 시를 배운 기억이 있다. 이 책은 1백면 남짓한 분량에 50여 편을 수록하였다. <계원필경>에 실린 시를 21수, <동문선>에 실린 시를 22수, <삼국사기>에 실린 5수와 <지봉유설>에 지리산 석굴 속에서 발견했다는 8수가 그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17년간을 홀로 타국에서 생활 했으니 그의 외로움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말해 무엇 하겠는가? 제아무리 개방적인 당나라이지만 외국인의 출세는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었고, 서서히 혼란기로 접어들던 시기였다. 이런 맥락에서 그의 시 가운데 상당수가 그리움을 제재로 삼고 있음은 당연할 것이다. ‘봄바람’, ‘바닷가에서 봄 경치를 바라보며’, ‘동쪽 나라로 돌아가려고’, ‘고향의 벗을 만났다가 헤어지면서’ 등등. 또한 의지가지없는 자신의 신세한탄을 읊는 시도 제법 있다. 자신의 능력을 펼칠 기회를 얻지 못한 울분과 탄식이 드러난다. ‘진달래’, ‘산마루 가파른 바윗돌’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그나마 마음의 위안과 기쁨을 주던 친한 벗들과 헤어지게 되었을 때 읊은 작품들에서는 그 슬픔과 아쉬움이 진하게 배어나온다. ‘고향 가는 배가 떠난다지만’, ‘진사 양섬이 헤어지며 보내 준 시를 받고서’, ‘헤어짐을 아쉬워하는 오만 수재에게’, ‘벗을 강남으로 보내며’ 등이 있다.
오매불망 그리던 고국에 돌아오면서 부풀었던 그의 포부와 희망이 무참히 깨졌을 때 그는 속세를 떠났다. 그의 호가 고운(孤雲)이며, 그와 관련된 장소가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음을 보면 그의 방랑여정을 짐작할 수 있다. ‘세상 사람들은 단술만 즐긴다네’, ‘마음의 거울을 닦고’, ‘가을날 밤비가 내리는데’, ‘가야산에 숨어 살며’와 지리산 석굴 속에서 발견했다는 8수가 그러하다.
최치원이 살던 시기는 당나라 후기로서 따라서 한시의 체계가 완전히 갖추어진 이후다. 따라서 그의 시 형식은 모두 5언과 7언의 절구와 율시로 통일되어 있다. 그의 작품이 깔끔하고 명료하며 장황하거나 처진 느낌이 들지 않는 연유도 내용 못지않게 형식의 영향도 크다고 생각한다.
혹자는 그의 현실감각과 정치능력이 뛰어나지 못함을 탓하지만 태생적으로 그는 경세가 타입이 아니다. 난랑비 서문과 이 책에 실린 시들에서 그가 유학에 매몰되지 아니하고 도가와 불가에도 거리낌 없이 교분을 가졌음을 알면 그의 열린 시각과 가슴을 깨닫게 될 것이다. 아래 시에서 그의 체념과 아울러 처절함이 절절하게 다가온다.
옳고 그름을 다투는 소리/귀에 들릴까 늘 두려워서/
짐짓, 흐르는 물로 하여금/온 산을 둘러싸게 하였다네. (‘가야산에 숨어 살며’, P.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