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수석 : 현대어본 조선 왕실의 소설 6
임치균.임정지 옮김 / 한국학중앙연구원(한국정신문화연구원)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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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권으로 나누어져 본문만 450여 면의 두툼한 책이다. 중국 당나라 말기와 510국 시대 초기를 아울러 위보형과 설옥영이라는 전형적인 재자가인의 만남과 시련, 그리고 행복을 그린 소설이다. 군자와 숙녀의 결합에서, 그리고 군자의 출세가도에서 악인의 개입은 필수요소다. 간옥지와 이초혜, 그리고 양 부인이 이 작품에서 해당 역할을 담당한다.

 

위보형은 전통소설 속 대개의 주인공처럼 하늘의 별이 환생한 것으로 용모와 인품, 학식을 두루 갖춘 완벽에 가까운 인물이다. 설옥영 또한 비길 데 없는 미모에 현숙하기 그지없는 덕성마저 갖추었으니 군자호구다. 왕명에 의해 위보형과 인연을 맺게 된 동창공주는 높은 지위에도 현숙함을 잃지 않으니 악인에 의한 이른 죽음이 애처롭기 그지없다. 참고로 동창공주가 시가의 여인과 남자들을 초대하여 궁 안에서 즐기는 대목은 이 소설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경 묘사가 깃들여져 있다.

 

위보형의 서모(庶母) 양 부인은 위보형이 집안과 국가의 동량으로 승승장구하자 시기와 질투에 불타올라 위보형 부부를 파멸시키려고 한다. 문학작품에서 심심찮게 등장하는 소재다. 간옥지는 설옥영의 미모에 빠져 집안의 위세만 믿고 위보형과 대립 관계를 이루는 소인배적 악인에 불과하다.

 

위 낭군과 인연을 이루지 못하면 위씨 집안을 풍비박산내고 말테야.’ (P.183)

 

이초혜는 색다른 유형의 인물인데, 집착에 가까운 여인의 사랑이 결국에는 증오로 돌변하고 마는 지경이다. 이초혜 또한 미모로는 설옥영 못지않게 뛰어난 인물이다. 다만 인품과 행실에서 간사하고 음험한 기미가 있어 이것이 위보형 부부는 물론 당나라 전체를 위기에 빠뜨리니, 팜므파탈 내지 경국지색인 셈이다. 이초혜는 어떤 의미로든 작중에서 가장 역동적이고 다양한 변신을 이루어내는 인물이다. 표면적 주인공이 위보형 부부라면 작품을 이끌어가는 실질적 주된 인물은 이초혜다. 간옥지와 양 부인조차 이초혜만큼의 활약상과 비중을 갖지 못한다.

 

작중에서 수차 암시되었듯이 위보형 부부는 세속에 오래 머물 운수가 아니다. 우여곡절 끝에 화산의 신선 세계에 머물게 되며, 추후 아들 사원과 잠시나마 부모 상봉을 하여 회포를 분다. 대개 여기서 작품이 끝나기 마련인데 이 소설은 그의 아들 사원이 중심이 되어 나머지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이 작품이 두 남녀 주인공 중심의 소설관에서 벗어나 시대와 사회 전체를 아우르는 가문 대하소설로 이어지는 단계로 평가받는 연유가 여기에 있다. 위보형 부부라는 개인을 넘어 혼암한 군주가 잇달아 등장하며 왕조가 흔들리고 사회가 어지러워지는 시대상.

 

작품 말미에 당나라 멸망 후 5대의 혼란이 기술되고, 이사원은 양부 진왕을 돕다가 후에 황제가 되니 역사상의 후당(後唐) 명종이다. 그러나 명종과 후손들의 삶 또한 편치 못하니 더없는 난세의 시절이다. 마지막에 사원의 아들 복성의 뒷이야기를 기록한 책이 더욱 기이하다는 문장으로 끝맺음을 짓고 있는데, 해설에 따르면 8080책의 대하소설 <화산선계록>이 이 작품의 후편에 해당한다. 다만 후편은 아직 번역본이 없어 실체를 가까이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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