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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하게 피는 꽃 이치요
히구치 이치요 지음, 박영선 옮김 / 북스토리 / 2005년 5월
평점 :
절판
요절한 일본 근대의 대표적 여류 작가의 일기 모음집이다. 기본적으로 작가가 공개를 염두에 두지 않는 일기의 출간에는 다소 부정적 입장이지만, 저명한 문인 및 학자들의 사후 출간된 일기를 무작정 외면할 수는 없다. 오히려 읽고 싶은 강한 흥미를 느끼게 하는데, 한 개인의 내밀한 사적 영역을 엿보는 일종의 관음증적 욕망과 함께 겉으로 언명되지 않아 더욱 진실에 가까울 수 있는 저자의 속내를 들여다볼 수 있음에서이다.
이백면 정도 분량의 이 책이 히구치 이치요가 쓴 일기 전부를 수록하고 있을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15세와 19세 이후 사망에 이르기까지의 기록을 보건대 일부만 공개된 게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할 따름이다. 독자는 여기에 담고 있는 내용만 보더라도 히구치 이치요의 삶의 척박함과 굳건한 의지, 문학에의 열정을 공감하기에 충분하다.
문학 수업과 연관 지을 수 있는 활동은 15세부터 시작한 와카(和歌) 수업과 19세에 나카라이 도스이와의 만남이다. 수년 간 지속된 와카 수업은 그녀의 독특한 문체적 특징을 형성하고 그녀의 작품에서 쉽사리 발견할 수 있는 시적인 간결함과 정서적 기조를 갖출 수 있도록 하는데 일조하였을 것이다. 한편 나카라이 도스이를 통해서는 본격적인 소설 작법을 수업하였을 것이며 그녀가 문단에 진출하는 데도 도움을 받는다.
그녀의 삶에서 나카라이 도스이는 양가적 존재라고 할 수 있다. 문학적 스승으로서 존경심을 품었던 그에게 또한 스캔들 유포로 인한 실망감과 배신감을 갖기도 하였고 심적 혼란은 이치요에게 극심한 영향을 미쳤음을 일기에서 여실히 찾을 수 있다.
“나는 너무나 깜짝 놀라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나카라이 선생님이 미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너무나 결백한 나에게 있지도 않은 오명을 씌우고, 자기 자신은 사람들에게 기세등등한 얼굴을 하다니! 너무나 미워서 어떡해야 할지 모르겠다.” (P.78)
나카라이 도스이에 대한 감정은 존경과 사랑의 감정이 혼재되어 있었을 것이다. 갓 스물을 넘은 그녀가 지속적인 교제를 하는 유일한 남성, 선배 문인, 가르침을 받는 존경하는 선생님 등 이런 감정을 갖는 것은 당연할 수 있다.
19세 자신의 일기에 ‘새싹 사이로’라는 제목을 붙인 그녀. 자신의 글을 평하기를 “꽃의 아름다움도 없고 문장도 요염하지 않다”(P.16)라고 하였다. 그녀는 알았을 것이다. 아름다움과 요염함이 문장의 본체가 아니라는 사실을, 잎을 통해서 가지와 줄기로 면면히 흐르는 강인한 생명력이야말로 진실한 기초이자 핵심임을.
그녀에게 소설은 한낱 여흥과 여기가 아니었다. 현실적으로는 엄연히 가족의 생계수단이지만
경박한 대중에게 영합할 의사는 추호도 없다. 일기를 통해서 이치요의 솔직한 소설관을 알게 된다. 그녀에게 소설은 자신의 온 생애를 쏟아 부어야 하는 필생의 과제이다.
“나역시 소설가라 그저 그런 작가의 작품처럼 한번 읽고 곧 쓰레기통으로 들어가는 그런 글은 쓰지 않으려 한다......인간의 진심에 호소하는 것을 쓰고, 인간의 진심을 그려낸다면 설령 단 한 장의 작품이라도 문학으로서 가치가 없다고 할 수 있겠는가.” (P.62)
일기 곳곳에 그녀 삶의 궁핍함을 느낄 수 있는 대목들이 많다. 부족한 생활비로 고심하고 돈을 빌리고 원고료에 일희일비하는 이치요. 일기가 아니라면 적나라한 그녀의 탄식을 어디에서 들을 수 있겠는가.
“이번 달은 어떻게 보내야 할지 모르겠다. 아아, 쌀도 떨어지고, 돈도 전혀 들어올 것 같지 않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무조건 붓을 들고 뭔가를 쓰는 일밖에 없다. 그렇게 해도 원고료 한 장 값은 얼마 안 된다.” (P.153)
요시하라 유곽 근처로 이사한 일은 그녀에게 매우 상심되는 사건이었다. 21세 그녀의 일기는 ‘티끌에 묻혀’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영락해가는 자신의 환경을 티끌 속에 묻혀버리는 것에 비유하고 있다 이런 그녀가 걱정하고 안타까워하는 것은 의외로 사랑의 상실에 대한 우려이다.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까지 초라해져 버려 일생동안 그 선생님도 뵐 수가 없을 것 같다. 결국 나의 사랑은 흘러가는 구름처럼 허무하게 사라져버리고 말 것인가......두번 다시 만나주지도 않을 테고......” (P.114)
절교하였지만 나카라이 도스이에 대한 감정의 끈을 놓지 않았음을 알 수 있으며 두 사람은 나중에 오해가 풀리고 다시 교제를 재개하게 된다.
힘들고 어려웠던 시절, 히구치 이치요는 오히려 마음을 단단히 추스른다. 역경에 굴하지 않고 시련은 오히려 그녀를 더욱 옹골차게 만든다.
“나는 이 인간 세상에 고통과 실망을 위로하기 위해 태어난 시신詩神의 자식이다. 교만한 자를 포용하고 고통속에 있는 사람을 구하는 것이 나의 의무이다. 그래서 한시라도 자신에게 경계를 게을리할 수 없다. 내가 쓰러져 죽는 그 순간까지 이 미美를 향한 정신을 남기기 위해 전력을 다할 것이다. 그래서 이 세상이 멸망치 않는 한 나의 시(소설)는 사람들의 생명으로 남게 될 것이다.” (P.142)
22살의 봄날에 그녀는 확고한 결심을 굳힌다. 이제 그녀는 자신이 추구해야 할 길, 자신의 앞에 높인 가시밭길을 헤쳐 나갈 각오를 다진다. 이것이 기적의 14개월을 이룩하는 원동력이 된 것이다.
“내 마음은 이미 천지자연과 일체이다. 나의 뜻은 국가의 대본大本이다. 힘이 모자라 쓰러져 내 몸이 들판에 버려져 굶주린 개의 먹이가 될 지라도 뜻을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바칠 것이다.” (P.143)
어느 날 문득 그녀의 작품들이 잇달아 세상의 호평을 받게 되었다. 게다가 <키재기>는 당시 문단의 양대 산맥인 모리 오가이와 고다 로한 양자에게서 극찬을 받게 되었다. 세인들의 열광적인 호응과 칭찬에도 이치요의 심경은 오히려 차분하고 담백하다. 기쁨에 못지않게 슬픔을 토로한다. 찬사와 비방을 손바닥 뒤집듯 거리낌 없이 하는 세상의 명성은 헛되고 덧없음을 그녀는 알고 있다.
마지막 해의 2월 20일자 일기를 살펴보면 이것이 대체 24살 한창 때의 아가씨의 글인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그녀를 염세가로 지칭하는 이들도 있다고 하는데, 분명히 글을 통해 본 그녀는 염세적 성향을 풍긴다. 가난과 고독, 허약한 몸 그리고 몰인정한 세상인심은 이치요를 오래전부터 서서히 갉아먹고 있었다. 그리고 회복하기에는 너무 늦었다.
“그저 별 볼일 없이 써 놓은 글은 세상에 내면 대단한 작가라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과장되게 칭찬을 남용해 놓고는 내일을 같은 입으로 비방을 한다. 얼마나 기막히고 허무한 일인가.
매일 만나는 사람 중에서 단 한 사람도 친구라고 할 만한 사람이 없다. 나를 정말 이해해주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고 생각하니, 나 혼자 이 세상에 태어난 생각이 든다. 정말 견딜 수가 없다.” (P.173~174)
부족하나마 이 일기를 통해서 우리는 히구치 이치요에 보다 가깝게 다가갈 수 있다. 책의 표제대로 그녀는 치열하게 피는 꽃이었다. 그 꽃이 아름답거나 요염하지는 않더라도 개화를 위해 몸부림친 그 치열함만은 적어도 인정해야 한다.
※ 히구치 이치요가 무라사키 시키부와 세이 쇼나곤을 평한 대목이 있다. <겐지이야기>와 <마쿠라노소시>의 작가들이므로 유독 관심이 쏠렸다. 무라사키 시키부와 비교하면 쇼나곤의 재능에 비해서 인덕의 부족함을 인정한다. 넉넉하지 못한 생활형편 상 노력하고 키워야 하는 인덕의 양성 면에서 미흡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녀와 자신의 불우한 처지에 공감을 한 탓인지 쇼나곤에 대해서 이해와 동정을 아끼지 않는다.
“소일거리로 썼다고 하는 마쿠라소시를 읽어보면 표면적으로 단풍잎 같이 아름답기만 해보이지만, 두세 번 읽다보면 애처롭고 쓸쓸한 마음이 그 속에 깃들어 있다.” (P.1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