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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스필드 파크 2 ㅣ 현대문화센터 세계명작시리즈 7
제인 오스틴 지음, 김지숙 옮김 / 현대문화센터 / 2007년 4월
평점 :
미스 제인 오스틴에게,
앞서 띄운 서신에서 당신이 어떤 식으로 작품을 전개할지 무척 궁금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특히나 말미에 공언된 패니에 대한 헨리의 유혹 말이지요. 서둘러 2권을 읽어나가면서 당신이 독자의 심리를 꿰뚫어 보는 정확성에 새삼 놀라게 됩니다.
1권과 동일한 패턴으로 2권이 전개되었다면 인내심이 부족한 독자들은 지루함을 못 이겨 이내 읽던 책을 내던지고 자리를 박차고 나설 것입니다. 가련한 독자들의 바램은 매우 소박합니다. 착하고 겸손한 우리 패니가 헨리의 유혹을 잘 견디기를 바라며, 마음 한구석에 간직한 사촌오빠 에드먼드에 대한 사랑이 행복한 결실을 거두기를 간절히 소망할 따름입니다. 아, 또 하나 있군요. 패니를 그렇게도 구박하는 노리스 이모가 응분의 보답을 받았으면 하는 것이지요. 그래야 고진감래와 사필귀정이 권선징악으로 이어지는 상투적이면서도 보편적인 진정한 대단원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전반부 플롯의 대세는 패니에 대한 헨리의 끈질긴 구애입니다. 작중에서 헨리는 비록 악역이지만 제인 당신은 그에게 동정할 미덕과 여지를 남기고 있습니다. 패니의 아름다움을 최초로 깨달은 사람이 바로 헨리 아니겠습니까. 헨리가 패니에 관심을 기울인 연유도 실상은 여느 아가씨와는 다른 미덕을 발견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불순한 동기로 시작된 헨리의 사랑놀이는 얼마 후 불타는 진실한 감정으로 바뀌게 되었던 것이지요. 이때부터 패니 대 헨리 및 맨스필드 가문 간의 팽팽한 대치가 시작됩니다. 패니는 매우 불리한 처지에 놓이게 됩니다. 헨리의 성격상 결점은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그는 부유하면서 훌륭한 신사의 전형일 수밖에 없으니 패니의 거절을 이해하기 어렵겠지요. 패니를 한순간에 난처한 궁지로 몰아넣은 제인 당신의 솜씨와 한편 비정함에 아연할 따름입니다.
당신이 구성한 결말과 다르게 헨리와 패니가 맺어졌으면 어떨까 궁금합니다. 솔직히 무리한 추론은 아니지요. 당신은 패니의 마음이 조금씩 약해지고 있음을 묘사하고 있었으니 헨리가 시간의 도전을 극복했다면 충분히 가능한 전망입니다.
“헨리가 이상하리만큼 좋아졌다. 좀 전에도 패니는 그 생각을 했었는데, 그녀의 생각의 흐름 속에서 가장 위안에 가까운 것은 이것뿐이었다......패니는 자신의 건강과 안락을 그토록 염려하는 헨리의 말투와 태도에서 커다란 감동을 받았다. 그토록 자신에게 섬세하게 신경을 써주는 만큼 그녀가 몹시 괴롭게 여기면서 완강하게 거절해온 구혼을 이제는 받아들여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드는 것이었다.” (P.266)
마음을 다잡은 헨리의 끈질긴 구애에 패니가 마음을 열고 청혼을 받아들였다면, 헨리가 러시워스 부인과 도주하는 일은 생기지 않았겠지요. 패니의 감화로 헨리는 점차 바람직한 모습으로 변화하였을 테죠. 에드먼드와 메리 사이도 바램대로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높아졌을 것이며 에드먼드의 다소간의 실망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모든 사람들이 커다란 불행 없이 그네들의 삶을 영위할 수 있었을 겁니다.
그래서는 재미가 없겠죠. 독자들도 이를 바라지 않고요. 톰은 중병에 걸리게 하고 러시워스 부인은 헨리와 다시 만나 가정을 버리는 극단적 선택을 하며 줄리아마저 애인과 줄행랑을 칩니다. 토머스 경의 입장으로서는 통탄할 노릇일 테죠. 메리의 근본적 성격상 흠결을 깨달은 에드먼드의 결별, 이혼당한 마리아를 돌보기 위한 노리스 이모의 자발적 은거. 사건 진행은 일사천리로 급속도로 흘러갑니다. 1권의 유유자적하고 느릿느릿함에 비하여 폭풍 같은 전개라고 해도 과장이 아닐 겁니다. 격류의 대단원은 에드먼드와 패니의 결혼으로 이어지는 거죠. 모두가 열렬히 기대마지 않은 바로 그것.
결론적으로는 제인 당신은 독자층의 기대에 부응하여 당신의 전매특허와도 같은 해피엔딩으로 이끌어 가는데 성공합니다. 그럼에도 이 작품은 여전히 이색적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답니다. 왜냐고요?
줄리아가 감행했던 사랑의 도피는 이전 작품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소재였으므로 새롭지는 않습니다. 어쨌든 미혼 남녀의 섣부른 행동은 결국 결혼으로 무사히 수습되었으니까요. 떳떳하지는 않지만 도덕적으로 지탄의 대상은 아니었습니다. 결혼한 여성의 경우는 다르지요. 마리아의 간통과 가출은 이제까지 당신의 작품 성향에 비추어 볼 때 이례적으로 파격적인 소재입니다. 당신의 지론은 가족 간, 연인 간 티격태격하더라도 결국은 행복으로 귀결된다는 밝고 긍정적인 플롯을 항상 지향하고 있었지요. 이 작품에서 처음 일탈이 나온 겁니다. 당신이 대충 아무런 소재나 끌어다 쓰지는 않았을 테지요. 작품 세계에서 이전과 다른 시도를 하려고 했던 것 아닌가요.
메리에 대한 패니의 감정과 평가는 어떠했던가요. 패니는 사촌오빠와 메리의 교제를 대단히 불만족스럽게 받아들입니다. 자신과 메리의 친분에 대해서도 탐탁지 않아 합니다. 결과론적으로 봤을 때 옳은 판단이라고 할 수 있지만 중간 대목에서는 패니의 질투라고 밖에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메리에 대한 부당할 정도의 잇따른 비판과 두 사람 간의 진척에 극도의 초초함을 표명합니다. 사촌오빠에 대한 순수한 애정 때문이라고 하기에는 정도가 과하다는 뜻입니다.
“역시 천성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어서 메리는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었다. 마음은 바르지 않은 쪽으로 치닫고 눈이 멀어 있는 건 분명한데도 자신은 그것은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그러므로 패니가 메리의, 앞으로의 향상 가능성을 거의 절망적으로 봤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P.199)
패니가 포츠머스에 있는 친 가족을 방문하여 머무르는 장면은 두 가지 측면에서 이 작품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패니는 맨스필드 파크에서 괄시받는 처지에 있어서 친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환상을 한켠에 지니고 있었지요. 이것이 산산이 부서지고 전혀 회복이 되지 않습니다. 특히나 부모에 대해서는 구제불능으로 창피하게 여길 정도지요. 그녀에게 있어 진정한 가족은 낳아준 부모가 있는 곳이 아니라 바로 맨스필드 파크가 된 것이지요. 이것은 북적대는 가족들 간의 아옹다옹을 정답고 행복한 모습을 그렸던 여타 작품들과는 상당히 대조적으로 받아들여집니다. 그리고 패니의 성격과 관련하여서인데 맨스필드 파크에서 패니는 거의 아무런 자율성을 보장받지 못하고 매사에 수동적이고 의존적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포츠머스의 생가에서 그녀는 기대고 의존할 존재에 없습니다. 자신의 판단과 행동을 통해 사태의 악화를 막아야 하고 조금이나마 개선시키려고 노력을 해야 하는 입장에 처하게 되니 비로소 그녀에게 감추어져 있던 독립성과 자율성이 발현되었던 겁니다.
“자기 명의로 무엇이 된다는 것이 놀랍고 자기가 하는 모든 일이 경이로울 뿐이었다. 패니는 누구의 강요도 받지 않고 스스로 읽고 싶은 책을 자기가 직접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P.244)
이것이 매우 중요하였던 점은 풍비박산이 난 맨스필드 파크에서 버트램 가 사람들을 위로하고 의지가 되며 실제적인 도움을 주었던 사람은 패니가 유일하였다는 데 있었습니다. 매사에 소극적이고 구석이나 다락방에서 숨어 눈에 띄지 않았던 그녀가 자신의 겸손과 분별을 유지한 채 전면에 당당히 나설 수 있는 토대가 포츠머스에서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우여곡절 끝에 패니는 당당한 주인공으로서 에드먼드와 사랑의 결실을 이루었습니다. 관찰자의 지위에서 우려를 극복하고 중심인물로 거듭날 수 있었습니다. 독자들도 충분한 보답을 받았지요. 2권에서는 앞서 와는 달리 밀고 당기는 사랑의 줄다리기, 자신과 상대방의 세밀한 심리와 행동에 대한 치밀하면서 미묘한 묘사 등 제인 당신에게 기대할 수 있는 모든 요소들을 재발견할 수 있었으니까요. 무엇보다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흥미로움과 읽는 재미가 두드러졌답니다.
이제 당신이 공들여 쌓아온 맨스필드 파크를 떠날 시간이 되었군요. 다음 행선지는 아마도 노생거 사원이 될 것 같습니다. 다만 바로 향하지는 못할 것 같고, 당분간은 일본 중세와 근세를 한번 돌아볼 생각입니다. 그럼 다시 만날 때를 기약하며 여기서 작별을 고합니다.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