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쓰미추나곤 모노가타리 일본명작총서 7
유인숙.박연정.박은희.신재인 옮김 / 문 / 2008년 12월
평점 :
품절


<수록 작품>

벚꽃을 꺾는 쇼쇼

연상

벌레를 좋아하는 아가씨

어울리는 상대를 연모하네

사랑하는 여인을 얻지 못하는 곤추나곤

가이아와세

뜻하지 않게 다른 아가씨와 밤을 지낸 쇼쇼

꽃과 같은 아가씨들

그을음

부질없는 이야기

 

11~12세기 무렵 헤이안 시대 말기에 편집된 단편 모노가타리 모음집이다. 이 작품집에는 일본 최조라는 수식어가 붙는데, 통상의 모노가타리는 장편에 해당하는 반면 여기 실린 모노가타리들은 단편들이라는 점이 이채롭다.

 

이 모음집의 단편들은 앞서 읽은 <이세 이야기> 같은 우타 모노가타리 류가 아니므로 작품을 이끌어가는 것은 어디까지나 산문으로 된 이야기다. 물론 매 작품마다 와카가 몇 편씩 등장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헤이안 시대에 와카가 그만큼 개인의 감정을 표현하거나 상대방에게 호소하는 수단으로 정착되어 있음을 뜻한다.

 

장편과는 단편의 특성상 짧은 분량에 핵심 되는 사건이나 인물 소개, 아니면 이야기가 완결되어야 하므로 필체는 간략하면서도 개성적인 소재를 집중력을 갖고 다루고 있어 흥미롭다. 개별 작품들을 간략히 훑어보면 그 독자성과 주안점이 확연히 드러난다.

 

<벚꽃을 꺾는 쇼쇼>는 아름다운 아가씨를 보쌈 하는 이야기다. 마지막의 (보쌈한 여인의 실체에 대한) 반전이 묘미라고 하겠다.

 

<연상>은 세 편의 짧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여타 작품과는 성격이 다른 간결함이 특징이다. 뒤의 두 편은 이야기가 완결되지 않아서 여운을 독자의 가슴에 드리운다.

 

<벌레를 좋아하는 아가씨>는 소재 자체만으로도 주목을 끈다. 당대의 풍조와는 전혀 다른 엉뚱한 아가씨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달하는 남성. 뒷이야기는 다음에 이어질 것이라며 무 자르듯 싹둑 끊어버려 결말을 궁금해 하는 독자를 아쉽게 한다.

 

<어울리는 상대를 연모하네>는 젊은 남녀들 간의 짝짓기를 다룬다. 시종들과 그들의 주인들이 각각 연분을 맺게 되는데, 주인 남자의 일견 후회하는 듯한 마지막 대목이 묘하다.

 

<사랑하는 여인을 얻지 못하는 곤추나곤>은 단오절에 벌어지는 전통 행사인 네아와세를 배경으로 하여 그네들의 전통 축제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할 수 있다. 창포 뿌리와 창포 노래 경연을 벌이는 이 행사에서 외모는 물론 출중한 실력을 선보여 뭇사람들의 찬탄을 받은 곤추나곤이 정작 사랑을 갈망하는 여인으로부터는 아무런 보람이 없다.

 

<가이아와세>에서 외톨이 신세의 전처의 딸과 계모의 딸 간 조개 경연은 전자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할 수밖에 없다. 우연히 알게 된 주인공이 딱하게 여겨 이길 수 있도록 몰래 도와준다.

 

<뜻하지 않게 다른 아가씨와 밤을 지낸 쇼쇼>에서 영락한 귀족 집안의 아름다운 두 딸이 각각 당당한 집안의 청년들과 정을 주고받는다. 그들의 사랑은 남자 부모의 반대로 몰래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실정. 실수로 바뀐 연인과 같이 밤을 보낸 여인들의 망연한 심정. 두 남자는 자매 모두에게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데 그들의 앞날은...

 

<꽃과 같은 아가씨들>은 여인들이 자신들이 모시는 여주인을 여러 꽃들에 비유하여 평하고 이어서 꽃을 소재로 한 와카를 서로 노래한다. 여주인의 특장과 상황을 다양한 꽃들에 절묘하게 비유하는 재치와 묘미가 뛰어나다. 후반에서는 이를 지켜본 한 호색한이 그 여인들을 품평한다.

 

<그을음>은 한 남자를 둘러싼 전처와 후처 간의 대조적 처지 변화가 슬픔과 웃음을 자아낸다. 표면상 분명히 아름답고 착한 전처의 해피엔딩에 기뻐하게 되지만, 돌이켜보면 후처에게는 무슨 잘못이 있었던가? 그렇다면 오락가락하는 남자 역시 시대와 제도의 피해자라고 하겠다.

 

<부질없는 이야기>는 한 승려가 제자인 귀족집 아가씨에게 몇 가지 물건을 달라고 요청하는 서신문 형식을 사용한다. 심산에 은거하겠다며 요구하는 품목이 꽤나 거창하지만 결국은 용두사미와 같이 하찮은 물품들이다.

 

각 작품들은 이와 같이 소재와 형식, 내용과 기법 면에서 뚜렷한 개성미를 보여준다. 가볍게 생각하면 옛 일본의 재밌는 이야기 몇 편을 흥미롭게 감상하는 정도면 충분할 것이다. 사람들의 귀를 솔깃하게 만드는 흥미진진한 이야기에 대한 수요와 관심은 시대를 불문하고 항상 있어오지 않았는가.

 

이 책에는 후반부의 작품 해설 외에도 전반부에는 두 편의 해설-‘시대와 문화를 통한 헤이안 문학 되돌아보기헤이안시대의 결혼과 연애풍속도’-이 따로 붙어 있다. 이는 뒤의 모노가타리를 이해하기 위한 기본 개념과 이해의 밑바탕을 소개하는 취지다. 전자는 일본은 물론 세계사적으로도 이른 시기인 헤이안시대의 문학이 급작스럽게 번성하게 배경을 밝히고 있다. 가나문자의 정착, 섭관정치로 정착된 귀족문화, 독특한 뇨보 문화의 전개 등이 주된 사유라고 한다.

 

한편 후자는 당대의 연애와 결혼과 관련된 문화를 이해하는 단초를 제공한다. 결혼해도 동거하지 않는 쓰마도이곤문화, 남편이 저녁에 아내의 집을 방문하여 머물다가 새벽에 돌아온다. 노래나 편지를 통한 연애의 시작과 결혼 및 자연 이혼의 요건도 이색적이다. ‘기누기누 노래는 남녀가 잠자리를 함께 한 다음날 남자가 감사의 편지로 보내는 노래라고 한다. 이를 보내지 않는 것은 당대의 에티켓에 매우 어긋났다고 하니... 아울러 뛰어난 여류 문학 작품을 남기게 된 뇨보(女房)의 신분과 역할도 알려준다.

 

이 해설은 내용 이해와 숨은 의미를 파악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앞서 읽었던 <이세 이야기>의 많은 와카들에서 표면상 간과하였던 무수한 함축된 배경 중 다수도 비로소 이해가 되었다. 문학은 결코 시대와 동떨어져 있다. 작가는 시대의 문화와 공기를 호흡하며 은연중 그 숨결을 자신의 작품 속에 깊숙이 새겨 넣는다.

 

헤이안시대의 여인을 상상해본다. 허리 아래로 늘어뜨릴 정도의 긴 머리는 미인의 필수 요건이다. 얼굴은 매우 희고, 눈썹을 뽑고 먹으로 그리며, 치아는 검게 물들인다. 그래야 흑백의 대조 효과로 흰 얼굴이 더욱 두드러지게 된다. 그네들은 집안에 칩거하면서 상대방 남자들이 와카나 편지로 접근하기를 학수고대한다. 연분을 맺고 혼인을 치르더라도 대개의 경우 동거를 하지 않으며 남편이 방문하기를 오매불망 기다린다. 연달아 오지 않으면 버림받은 신세가 되는 것이므로 언제쯤 오려나 전전긍긍이다. 임금이 처첩들의 방을 밤마다 순례하는 사극이 연상된다.

 

반대로 남자는 행동이 자유로우므로 오며가며 곁눈질의 유혹에 노출되기 쉽다. 예로부터 일본은 성()에 관한 한 개방적인 민족이었다. 사촌과 결혼하거나 여기서처럼 두 명의 아내를 갖거나 또는 두 자매와 동시에 사랑을 해도 심각한 사안으로 인식되지 않을 정도로.

 

그래도 그녀들은 뒷세대를 바라보면 위안을 삼을 만하다. 막부와 전란의 시기를 거치면서 여인들의 자유는 더욱 억압되었고 철저하게 남성에게 예속되는 처지로 전락하였다. 헤이안시대의 찬란한 개화는 곧이어 기나긴 엄동설한에 움츠려야만 했다. 수백 년 후 근세 일본의 여류작가인 히구치 이치요는 자신의 신세가 일개 보잘 것 없는 여인임을 자탄하고 있다.

 

일본 문학을 번역할 때 선택의 문제가 발생한다. 인명과 지명, 관직명 등의 고유명사를 표기하는 방식에서 원어 충실과 내용 충실의 갈등이 존재한다. 그나마 최근에는 인명(풍신수길 -> 도요토미 히데요시 등)과 지명(동경 -> 도쿄 등)은 얼추 합의가 이루어진 듯하다. 애매한 경우가 관직명이다. 작중에서 쇼쇼, 주조, 추나곤, 다이나곤, 우다이쇼, 아제치는 모두 벼슬 이름으로서 한자어로 번역하면 소장, 중장, 중납언, 대납언, 우대장, 안찰사가 된다. 이중 일부는 우리 옛 관직명과도 유사하므로 귓전을 튕겨나가는 일본어보다는 훨씬 이해가 용이하다. 실제로 지금 읽고 있는 <우게쓰 이야기>의 역자는 관직명을 우리식 발음으로 옮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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