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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ㅣ 문학과지성 시인선 438
한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11월
평점 :
시인 한강은 낯설면서 낯설지 않다. 우리는 소설가 한강이 친숙하지만 그의 출발은 시인으로서였다. 이 시집은 시인으로서 그의 유일한 기록이다. 이후 그는 소설에 매진하지만 시적 산문이라는 개성적인 문체로 시인의 속성을 그대로 유지한다.
수록 시들을 죽 일람하며 장르는 다르지만 작가로서 한강의 주제 의식과 문학정신은 거의 동일함을 깨닫는다. 시적 어조는 굉장히 나직하고 읊조리는 듯하며, 대체로 어두운 분위기를 띤다. 생명과 죽음을 대비하지만 죽음에 대한 인식의 비중이 훨씬 크다. 평탄한 시구 가운데 피와 고통, 폭력, 학살 같은 잔혹함이 무람없이 등장하여 독자를 당혹게 한다.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은 미처 간취하지 못하는 미묘한 인식은 과연 예민한 영혼과 감각의 소유자답다.
그때 알았다 / 무엇인가 영원히 지나가버렸다고 / 지금도 영원히 / 지나가버리고 있다고 //
밥을 먹어야지 (P.11, 어느 늦은 저녁 나는)
시적 화자는 뭔가를 알아차렸다. 매우 중요한 것이 영원히 지나고 있음을. 화자는 그게 뭔지 말하지 않지만 독자는 그게 뭔지 공감한다. 그럼에도 화자는 일상을 벗어나지 못한다. 예리한 인식은 행동으로 이어지지 못한다. 그것은 단순히 무력감의 발현인가. 아니면 결국 시인의 사명으로서 운명인가.
하지만 곧 / 너도 알게 되겠지 /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 기억하는 일뿐이란 걸 (P.73, 효에게. 2002. 겨울)
시인이 죽음을 긍정함은 죽음 자체를 찬미함이 아니다. 그가 처한 삶이, 현실이 초라하고 궁핍하며 부조리에 차 있기에 그는 역설적 대안을 선택한다. 2부에 실린 작품 중에서 유달리 고통과 폭력의 이미지가 구체적으로 제시된다. <피 흐르는 눈> 연작, <조용한 날들 2>가 기억에 남는다.
조용한 내 눈에는 / 찔린 자국뿐 / 피의 그림자뿐 (P.58-59, 피 흐르는 눈 4)
찌르지 말아요 // 짓이기지 말아요 // 1초 만에 / 으스러뜨리지 말아요 //
(하지만 상관없어, 네가 찌르든 부숴뜨리든) (P.62-63, 조용한 날들 2)
절대적인 폭력과 고통의 현실을 맞닥뜨릴 때 인간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일단 두려움에 휩싸인 채 움츠러들기 십상이다. 부정의가 쉽사리 해소되지 못하면 현실에 냉소적인 태도를 보이게 된다. 이어 차라리 삶을 경시하고 죽음을 긍정하는 인식으로 나아갈 수 있다. 시적 화자도 마찬가지다. <심장이라는 사물>에서 <서커스의 여자>를 거쳐 <파란 날>과 <조용한 날들>로 이어지는 1부 수록작에서 이러한 전개 단계를 확인할 수 있다.
더 캄캄한 데를 찾아 / 동그랗게 뒷걸음질치는 나의 혀는 (P.15, 심장이라는 사물)
아, 죽어서 좋았는데 / 환했는데 솜털처럼 / 가벼웠는데 (P.33, 파란 돌)
생을 부정하고 죽음을 긍정하는 화자는 <마크 로스코와 나>에서 잉태와 죽음의 현상을 대비하면서 쓸쓸한 감정을 드러낸다. <심장이라는 사물 2>에서는 오히려 반문한다. 죽음이 왜 고통인지를. 화자는 안구가 뚫린 해골을 처연하게 오만하게 응시한다. 그 자신도 뢴트겐 사진이 드러내듯 결국 일개 해골에 지나지 않는가. 인간의 물질적 본질에 대한 냉철한 인식을 이처럼 <해부극장> 연작은 보여준다.
신도 / 인간도 믿지 않는 / 네 침묵을 기억하는 나는 (P.106, 거울 저편의 겨울 6)
시적 화자도 고통스러울 것이다. 매 순간을 어찌 슬픔과 고통으로만 보낼 수 있는가. 민감한 인식과 감성을 달래기에 애쓴다. <괜찮아>에서 “괜찮아”를 되풀이하며 내면으로 흐느끼는 자아를 토닥이며 위로하는 모습은 차라리 안쓰러울 정도다. 어설픈 화해 시도는 너무나 취약하다. 내면에 응축되어 단단한 돌멩이처럼 자리 잡은 슬픔은 쉽사리 해소될 수 없음을 <그때>와 <몇 개의 이야기 12>는 나타낸다.
시인은 무슨 연유로 이토록 철저히 부정적이고 냉소적으로 되었는가. 2부 해부극장에서 독자는 고통과 폭력의 현상을 응시할 수 있었다면, <거울 저편의 겨울> 12편의 연작시로 구성된 4부에서 그 원인을 추론할 수 있다. 거울 저편 세계는 봄도, 여름도, 가을도 아니고 하필 겨울일까. 공격과 학살, 아이 살해가 넘쳐나는 세상은 결국 겨울일 수밖에 없다. 나와 너가 손을 내밀지 않고, 거울을 사이에 두고 완전하게 대립하는 세상. 내가 아닌 비아(非我)는 관용 대신에 적대시하는 세상.
시인은 이미 광주와 제주를 문학으로 다루게 될 것임을 운명적으로 예감한 것은 아닐까. 또는 마음속으로 문학적 형상화의 의사를 다짐하였던 게 아닐까. <회상>에서 시기와 형상을 구체적으로 드러냄을 보면 적어도 광주는 그러하다.
오그린 발바닥이 이따금 베어 피 흘러도 / 봉쇄된 거리 벗겨진 신 한 짝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
모든 것이 남은 천지에 / 남은 것은 없었던 그해 늦봄 (P.127, 회상)
고통과 슬픔이 어긋난 현실에 기인함에도 뿌리 깊숙이 들여다보지 못하고 대증 처치만 반복한다면 치료되기 어렵다. 차라리 감각이 무디다면 모르는 체하고 세상을 살아갈 수 있으련만. 순수하고 예민한 인식의 소유자인 시적 화자는 이도 저도 못하는 난처한 처지에 놓여 있다. 이를 극복하려면 힘들고 괴롭더라도 원인을 찾아 나서는 고통스러운 여정에 나서야 한다.
평론가 조여정의 작품 해설은 다가가기 어려운 시인의 시 세계를 조감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저녁의 소묘>와 <새벽에 들은 노래>라는 연작시의 표제가 갖는 다층성도 비로소 주목하게 되었다. 다만 시인을 언어의 틀에 가두는 일부 지나친 해석은 공감하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