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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 세계인이 감동한 레오 버스카글리아 교수의 사랑학 특강
레오 버스카글리아 지음, 이은선 옮김 / 홍익 / 2023년 5월
평점 :
오래전부터 이름을 들어본 책이다. 저자는 사랑학 교육자로, 사랑을 주제로 젊은이들에게 세상을 살아가는 조언과 지침을 전달하는 강연으로 특히 명성이 높다고 한다. 솔직히 인생 지침서 또는 자기계발서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이 책에서 저자는 사랑학을 어떻게 접목할까 궁금했는데, 의외로 사랑을 논한 대목은 별로 두드러지지 않는다. 저자의 사랑은 에로스를 초월하여 아가페에 가깝다. 자신에 대한 사랑, 가족, 이웃, 친구와의 사랑을 넘어 궁극적으로 보편적 인류애를 지향한다.
내가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를 깨달으면 나를 진실로 존중하고 사랑할 수 있습니다. 내게서 모든 것이 비롯된다는 사실을 깨달으면 다른 사람들에게 무한정으로 사랑을 베풀 수가 있습니다. (P.40-41)
버스카글리아는 자신에 대한 사랑을 우선시한다. 이기주의보다는 자존감 회복이라고 해야 맞겠다. 현대 사회로 올수록 우리는 주체적인 인생행로보다는 타인의 시선과 평가에 일희일비하는 경향이 크다. 항상 잘난 남과 비교하면 열등한 나 자신의 모습만 두드러질 뿐이다. 사람은 자체로 비교 불가한 고유의 독자적 가치가 있음을 깨달으라고 한다. 그렇다고 헛된 망상과 착각을 하라는 뜻은 아니다. 자신의 실질에 대해 명확한 인식은 필수적이다.
지금의 내 모습을 사랑하라는 뜻을 담은 이 말이 저는 참 마음에 듭니다. 지금의 내 모습이 새로운 나로 나아가는 시발점이기 때문입니다. (P.160)
이렇게 스스로 중심을 확고히 한 상태에서 눈을 들어 주변을 살펴볼 때 가족과 친구, 이웃 간 사랑과 연계 가능성이 나타난다. 타인 의존적이 아니라 동등하고 대등한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것이다. 아시아에서 한동안 시간을 보낸 적 있기에 저자의 글에서 해당 언급과 함께 소위 아시아적 전통에 입각한 깨우침이 자주 인용된다. 나보다는 우리, 이기심보다는 이타심 등 서양적 미덕과 동양적 미덕의 혼합적 가르침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저자의 유년기 가족생활에 대한 경험으로부터도 우러나오기에 가족 관련 일화도 되풀이하여 밝힌다.
현재의 나에 만족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런 스스로를 업그레이드하려면 꾸준한 자기 계발 노력을 해야 한다. 저자는 배움의 가치를 강조하는데, 배움이야말로 새로운 나를 발견하기 위한 유익한 모험이라고 한다. 자신을 위해 아무런 활동도 하지 않을 수 있지만 그건 자기 자신을 향한 참된 사랑이 아니다. 저자는 인생을 살아가는 것과 단순히 생존을 구별한다. 자신이 내면적으로 충만하면 남에게 뭔가 구하기를 기대하지 않으며 오히려 남에게 베푸는 것에 기쁨을 느낀다고 한다. 우리가 타인과의 관계에서 항상 다툼이 발생하는 이유는 주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얻으려고 기대하기 때문이다.
자신을 향한 발견과 사랑이 나를 넘어 타인에게로 확산할 때 인간관계는 한층 아름답고 풍요로우며 의미 있는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말이다.
이 세상에서 사랑을 포괄할 수 있을 만큼 커다란 단어는 단 하나 ‘인생’밖에 없습니다. 모든 면에서 볼 때, 사랑은 곧 인생입니다. 사랑을 놓친다면 인생을 놓칩니다. 여러분은 부디 인생을 놓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P.337)
이 책은 저자의 강연 모음집인데, 따라서 전체적으로 짜임새 있는 구성보다는 다소 산만하고 중복적인 내용이 존재한다. 초반은 제법 신선하고 흥미롭다. 버스카글리아의 일침에 뜨끔하면서 자기반성의 순간도 갖게 된다. 반면 중반부터는 앞에 나온 내용을 동어와 유의어 반복을 하고 있기에 긴장감과 흥미가 상대적으로 저하된다. 이런 유형의 책이 갖는 근본적 한계라고도 하겠다. 그렇기에 노자는 5천 자의 글만 남기지 않았겠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삶에서 정말로 소중한 것은 우리 인생 저 너머 어딘가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절대로 내 안에 있을 리가 없다고 단정하면서 평생 그것을 찾기 위해 방황합니다. 그런 게 결코 살아 숨 쉬는 삶일 수는 없습니다. (P.112)
버스카글리아가 사랑과 인생을 논할 때 강조한 점이 있는데, ‘여기’와 ‘지금’이다. 여기라 함은 자신이 몸담고 있는 공간을 가리킨다. 우리는 언제나 이곳을 하찮게 여기고 저 멀리 다른 곳에서 이상향을 구한다. 파랑새도 그렇고, 샹그릴라도 그러하다. 현세에 대한 비판은 좋지만 차안과 이승을 버리고 피안과 저승을 무조건적으로 지향하는 태도는 올바르지 않다. 삶이란 결국 이곳에 있다.
우리는 해야 할 무슨 일이 있을 때 대체로 나중으로 미룬다. 막상 나중이 되면 그때 하지 못한 걸 후회한다. 사랑도 그러하다. 우리는 운명을 예견하고 통제할 수 없다. 사랑은 미루지 말고 바로 표현하라는 조언이다. 그것이 어디 사랑뿐이겠는가마는 그만큼 사랑에 있어 더욱 소중하다는 뜻이리라.
<성경>, <불경>과 <논어> 등 과거의 수많은 고전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올바른 삶, 훌륭한 인생을 신조로 내거는 책은 참으로 많다. 어주와 변주는 다양하지만 본질은 비슷하다. 그럼에도 여전히 이런 유형의 책이 시중에 넘쳐나는 것은 그만큼 사람들이 그 가르침을 따르지 못해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실천입니다. 실천 없이는 모든 게 불가능하니까요. 이야기를 하는 건 시작에 불과합니다. 생각을 갖는 건 절반만 해결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몸소 행동해야 비로소 나머지가 완성됩니다. (P.398)
저자도 마지막에 강조하듯이 실천, 즉 실행을 끌어내지 못하면 공염불에 불과하다. 아는 것과 실행은 전혀 다른 차원이다. 마음속으로는 명료한 진리와 일침의 문장으로 각성을 하지만, 한두 번 실행해 보고는 이내 포기하는 사례는 부지기수다. 그렇다면 이런 유형의 책은 전혀 무쓸모인가 하면, 독자 중에서 한두 명이라도 책을 통해 개심하였다면 어쨌든 실패는 아니다. 인생 지침서를 백 권 읽는 것보다 그만큼 실천의 의의와 중요성이 크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