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샤키라의 이름을 처음 접한 것은 몇년 전 그녀의 첫번째 다국적 음반인 <Laundry Service>에 대한 소문을 들어서였다. 엄청난 화제를 몰고온 그 앨범 평을 듣고 한번 구입해 볼까 진지하게 검토도 하였었다. 그러다가 타이틀곡을 듣게 된 기회가 있었는데 아무래도 나의 정서에는 맞지 않았고, 그후로 샤키라에 대한 관심은 점차 사라져 버렸다.
아무래도 실력보다는 외모에 주안점을 둔 반짝가수겠지하는 생각이 강했고, 또 브리트니 스피어스와 라이벌로 거론되는 외신은 더욱 내 선입견을 고착시키는데 일조하였다. 그만큼 난 브리트니 스피어스를 높게 평가하는 편이 아니다. 미디어를 잘 이용하여 스타가 된 정도로밖에. 둘이 또 섹시한 외모를 내세우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
최근 샤키라의 라이브 공연 영상을 구해 볼 기회가 생겼다. 그리고 나의 판단이 완전히 틀렸다는 사실을 곧 깨닫게 되었다. 단순히 벼락출세한 뜨내기가 아니었구나.
국내에도 많이 소개되었던 <Live and Off the Record> 라이브 영상은 자신이 브리트니 스피어스와 어떻게 다른지 확실히 입증하는 무대였다. 둘 다 솔로라는 점이 공통점이지만 그외는 모두 틀리다. 이어마이크가 아닌 핸드마이크를 들고 공연하는 모습에서 브리트니같은 격렬한 댄스 위주가 아님을 알게 되었고, 별다른 특수효과없이 내내 무대를 종횡으로 휘젓고 다니며 열정적으로 소리를 토해내는 장면에서는 라이브를 거대한 쇼처럼 구성한 브리트니와는 다른 순수함과 진지함을 엿보게 되었다. 말이 쉽지 한시간 이상을 쉴새없이 라이브를 한다는 건 체력뿐만 아니라 목소리에 자신이 있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브리트니가 전형적인 댄스가수의 춤을 춘다면, 샤키라는 몸 자체의 관능성을 최대한 살리는 춤을 춘다. 그래서 더 섹시하게 보이는지도. 특히 몸을 돌려서 히프를 마구 흔들어대는 동작은 그녀의 전매특허인 동시에 라틴계로서의 특기이기도 하다.
나중에 인터넷을 뒤져봤더니 이미 <Laundry Service> 이전에 뛰어난 라틴계 가수로서 여러장의 음반을 발표한 중견(?) 가수였다는데, 이번에 메이저와 손잡고 영어음반을 발매하였기에 신인으로 비친 듯하다. 물론 난 여전히 그녀의 목소리 톤이 썩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통굵게 내지르며 음색마저 바꿔부르는 창법이 익숙하지 않기도 하거니와 거칠게 느껴지는 탓이다. 하지만 라이브에서 이런 소리가 오히려 청중을 열광시키는 면도 있으니.
<MTV Unplugged> 영상은 샤키라의 진면모를 보여주는 수작 공연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는 대규모의 라이브와는 달리 그야말로 차분하면서 자신의 진정한 소리실력을 뽐내고 있다. 아무래도 샤키라의 영어 노래와는 달리 라틴계에 적합한 스페인어 노래가 체질에 맞고 음성에도 훨씬 어울리는 듯. 그야말로 고향의 노래를 부르듯 자연스러우면서도 호소력 짙게 배어나오는 소리에 정말로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비로소 라이브 전체를 지배할 수 있는 샤키라의 밑바탕이 탁월한 가창력임을 깨닫게 되었다.
브리트니 스피어스와 샤키라를 비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샤키라에 비하면 브리트니는 거대한 상업성에 의존하는 과대평가된 만들어진 노래도 할 줄 아는 댄서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