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퐁스 도데 단편선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55
알퐁스 도데 지음, 김사행 옮김 / 문예출판사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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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퐁스 도데는 ‘별’, ‘마지막 수업’으로 우리에게도 너무나 친숙한 작가다. 중고등학교 시절에 ‘별’을 읽고 그 투명한 아름다움에 영혼이 빛나고, ‘마지막 수업’으로 가슴 한구석이 시큰해지는 감동을 느껴보지 못한 이는 별로 없을 것이다. 하지만 막상 도데의 다른 작품은 거의 접하지 못하였다. 모처럼 짬을 내어 도데 단편집을 펼친다.

단편으로 유명한 알퐁스 도데이지만, 출발은 시인으로서였다. 그의 작품에서는 시적 향기가 배어난다. 특히 초기 작품집인 <방앗간 소식>이 두드러진다. 반면 단편작가로서의 이미지가 강렬한 탓일까. 그가 중후반 이후에 쓴 10편이 넘는 장편소설에 대해서는 대체로 무관심하다. 그나마 국내에 소개된 얼마 안 되는 작품 중 첫 장편인 <꼬마 철학자> 정도만이 현재 시중에서 구할 수 있다. 역시나 국내 문학계의 편식 성향을 엿볼 수 있다.

이 책은 그의 두 권의 단편집 <방앗간 소식>(1866)에서 12편, <월요일이야기>(1873)에서 16편을 발췌하였다. 도데는 모두 40여 편의 단편을 썼다고 하니 주요한 작품은 거의 수록한 셈이니 이 한 권으로 도데의 단편 세계를 조망하는데 부족하지는 않으리라.

사실 우리가 기대하는 도데의 특성은 모두 <방앗간 소식>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신의 고향인 프로방스 지방 사람들을 간명하고 따뜻한 필치로 시적인 정취를 불어넣어 너무나도 깨끗하고 아름답게 묘사하고 있어 그의 작품들을 읽다보면 마치 내가 당대 프로방스 사람들의 일원으로 더불어 숨 쉬는 착각마저 들 지경이다. 이러한 대표작이 바로 ‘별’인데, 너무 순수하여 오히려 비현실적이기조차 하다. 순수한 첫사랑을 그린 작품으로서 황순원의 ‘소나기’와 함께 유달리 기억에 뚜렷이 각인되어 있다.

그 외 작품들은 프로방스에 전해지는 이야기 및 그곳 사람들의 생활상을 미소 띤 시선으로 독자에게 들려주고 있다. ‘코르니유 영감님의 비밀’의 뭉클한 결말, ‘고셰 신부의 불로장생주’의 슬픔을 자아내는 해학 등이 잘 어울려 깊은 감동을 주고 있다.

소위 보불전쟁을 계기로 알퐁스 도데의 제재와 어조는 변화를 겪었다. 전쟁이란 그렇게 사회는 물론 개인에게도 큰 영향을 미치는 법이다. 더 이상 혼자만이 고요하고 평화로운 삶에 안주할 수는 없게 된다.

따라서 <월요일 이야기>에서 우리는 프로방스에서 알자스와 파리 등으로 배경을 옮겼을 뿐만 아니라 보다 날카로운 시선을 뿌리는 도데를 만나게 된다. 패전한 조국에 대한 애국심의 발현, 무기력한 자국 정부와 군대에 대한 비판적 인식이 두드러지는 것이다. 그나마 인간성에 대한 소박하지만 굳건한 믿음이 도데의 글에서 문학적 향기를 앗아가지는 않고 있으니 다행이랄까. ‘마지막 수업’과 ‘소년 간첩’, ‘기수’는 애국심을 다루고 있으며, ‘당구’, ‘8월 15일의 서훈자’, ‘패흐르 라셰즈의 전투’ 등은 당대 사회와 정부를 풍자하고 있다.

민족과 문화가 달라서인지 앞서 읽었던 독일 노벨레 작품들과는 글의 분위기가 확연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도데의 글에서는 그늘조차도 햇살에 반짝이고 있다.

단편소설은 인생과 사회의 단면을 대상으로 한다. 부분이 전체를 내포할 수 있지만, 시냇물과 대하는 차원이 다르다. 보다 큰 스케일과 구성을 지니되, 소품의 매력을 잃지 않고 있는지 알퐁스 도데의 장편소설을 읽고 싶다. <알프스의 타르타랭>(1885), <사포>(1884), <꼬마 철학자>(1868)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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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근대나무 2011-08-24 16: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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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죽음의 교향곡 - 브루노 발터가 만난 구스타프 말러
브루노 발터 지음, 김병화 옮김 / 마티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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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 브루노 발터가 만난 구스타프 말러

브루노 발터는 1958년판 서문에서 말러의 현재 음악계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대해서 아쉬움을 표명하고 있다. 오늘날 클래식 음악계에서 말러의 위상을 브루노 발터는 물론이고 말러 본인이 직접 목도할 수 있다면 이런 아쉬움을 더는 토로하지 못할 정도로 경악을 금치 못할 것이다. 20세기 후반부터 시작된 말러 열풍은 서거 100주년을 맞이하는 2011년에 아마 절정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그럼에도 말러의 음악에 대한 평가는 여전히 엇갈린다. 그의 음악이 주는 광활성과 심원성에 대해서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지만, 극도로 신경질적 성향을 완연히 내비치는 음악세계는 극적인 몰입의 폐해를 가슴깊이 남기게 된다. 따라서 애호가 중에서 자녀들에게 들려주지 않겠다고 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한마디로 비교육적이라는 것, 영화로 치면 19금(?) 정도라고 할까.

개인적으로도 말러의 곡을 상당히 좋아하는 편이다. 유독 장대하고 극적인 성향의 곡을 일찍부터 선호하여 브루크너, 말러, 쇼스타코비치에 관심을 두었다. 말러 곡 중에서는 1번, 2번, 5번, 대지의 노래, 9번 순으로 듣게 되어 6번, 3번, 7번까지 별 거부감이 없다. 다만 4번과 천인 교향곡은 좀 더 시일이 필요할 듯. 언어의 한계는 내게 여전히 극복할 수 없는 한계다.

말러의 곡을 통해 유추하건대 말러의 인간성은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타입이다. 여유가 없고 신경질적이고... 말러 후반생의 정신적으로 가장 가까운 친우인 발터의 전언에 따르면 이는 부분적으로만 맞다. 사람 됨됨이는 섣불리 속단해서는 안 됨을 또 한 번 절감한다.

이 책의 매력은 작곡가 말러의 인간적 면모를 마치 옆에서 보고 듣는 것처럼 소상히 알 수 있다는 점이다. 사람은 사상가, 예술가와 운동선수 등 외견적 업적에 감탄하면 곧바로 업적을 산출한 개인 그 자체에 관심을 보이게 된다. 따라서 현시대 가장 인기있는 작곡가인 말러의 전기적 측면에 대한 이해는 단순한 호기심 이상이다.

하지만 보다 중요한 점은 말러의 교향곡 작품을 초기 말러 작품의 절대적 권위자였던 브루노 발터가 해석하는 내용이다. 수많은 지휘자들이 깊은 연구와 발전된 음향 기술의 덕택으로 보다 정교하고 극적인 말러의 음악을 재현하면서 브루노 발터의 권위는 많이 퇴색되고 있다. 특히 레너드 번스타인의 극단적 팽창주의는 물질문명의 이데올로기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말러의 작품이 가진 최고의 가치는 모험적이고 과감하며 개척자적이거나 기괴한 것이라는 진기함 때문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이 진기함이 아름답고 영감에 가득하고 심오한 음악 속에 녹아들어 있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그것이 고도로 창조적인 예술성과 의미 깊은 인간성이라는 영속적인 가치를 보유하고 있다는 점 말입니다.” (P.177)

바로 이것이 브루노 발터의 말러 작품론이다. 말러의 작품에 내재한 예술성과 인간성을 구현하는 것 말이다. 그러기에 발터의 말러 음반을 들어보면 외향적인 음향 효과에 치중하기 쉬운 <거인>과 <부활>에서도 화려한 분출을 조심스럽게 자제하고 있다. 마지막 교향곡에서도 과도한 비탄조를 피하고 담담한 어조를 유지하고 있다.

말러의 음악은 20세기 초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의 산물이다. 그의 작품에서 설핏 감지되는 기계적 성향과 거대한 구조는 시대적 산물임을 인정해야 한다. 이를 극단적로 전개해 나가면 현대의 많은 지휘자들이 그러하듯이 장대한 오케스트라 쇼피스가 될 것이다. 하지만 발터는 말러와의 인간적 교감을 통해 그것은 말러의 가슴과 정신, 그리고 세계가 빚어내는 사랑과 죽음의 교향곡임을 우리들에게 들려주고 있다.

진지한 클래식 애호가, 특히 말러에 푹 빠져 있는 이들이라면 일독을 권하고 싶다. 이 책을 완독한 이후 다시 말러의 음악을 듣게 되면 이전과는 다른 말러의 얼굴을 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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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근대나무 2011-08-24 16: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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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올리버 색스 지음, 조석현 옮김 / 이마고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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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로 모자로 착각한 남자에 관한 이야기라니! 표제만으로는 언뜻 유머 모음집이 연상된다. 개콘이나 웃찾사에 등장할 소재가 아닌가. 하지만 실화를 다룬 책이라는 사실을 아는 순간 우리는 몸과 마음의 옷깃을 단단히 여밀 필요가 있다.

신경학 전문의인 저자가 자신의 임상체험 사례를 기술하였는데, 감동을 자아낼 정도의 소박하며 과도하지 않은 아름다운 필치로 독자에게 소개하고 있다.

사실 신경학이라면 다소 낯선데, 흔히 말하는 정신병 환자를 다루고 있다. 다만 뇌와 신경 기능의 이상으로 초래된 것으로 범위를 제한하고 있다. 신체의 운동이나 감각 기관은 정상인데 이를 전달하는 신경 기능 또는 인지하는 뇌 부위의 이상으로 언뜻 황당하게 우스꽝스럽게 보이는 병적 행태가 등장한다. 우습지만 웃을 수 없는 것은 누구에게나 발생할 수 있기에 남의 이야기가 아닌 연유다.

타이틀의 이야기는 시각인식 불능증에 걸린 한 음악선생의 사례다. 우리는 사물 또는 사람을 인식할 때 개개의 부분 정보를 모두 수집 정리하여 판단하지 않는다. 그것은 미지의 존재를 파악할 때 하는 방식이다. 보통은 한번 쓱 보면서 전체적으로 인식한다. 흠 이건 현대자동차의 쏘나타 차종이군. 저기 앞에 걸어오는 이는 우리 수학 선생님이네 등등. 만약 전체적 인식이 불가능하여 모든 정보를 종합 분석해야 한다면 인생이 매우 피곤해질 것이다. 종합하기 힘들뿐더러 종합된 결과가 옳다는 보장도 없다. 두드러진 특징을 보유할 경우만 식의 확실한 판단 근거가 될 수 있다. 여의치 않다면 아내를 모자로 착각할 수 있다. 이것은 시각기능의 장애가 아니라고 한다. 시각과 뇌를 연결하는 신경 또는 이를 인식하는 뇌의 특정 부위에 질병 또는 장애가 발생하면 이렇게 되고 만다.

‘몸이 없는 크리스티너’와 ‘침대에서 떨어진 남자’, ‘매들린의 손’은 모두 몸 전체 또는 다리, 손이 없다고 인식하는 증세를 다룬다. 고유감각 기능의 상실로 몸에 대한 모든 인식과 감각을 상실한다면 소위 내 몸이 내 것이 아니게 되니 그럼 나의 존재 근거에 대한 존재론적 질문마저 제기될 수 있다. 뒤 두 편은 각각 다리와 손에 대한 인식과 통제기능을 상실한 경우다. 내 것이 아닌 낯선 팔다리가 내 몸에 붙어 있다는 감각은 얼마나 끔찍할 것인가.

이렇게 제1부는 장애에 따른 기능의 상실을 다루고 있는데, 제2부에서는 역으로 장애에 따른 기능의 과잉을 안내한다. 옛말에 과유불급이라고 하였다. 지나침이 오히려 모자람만 못하다는 것이다. 여기서는 주로 투렛 증후군의 병례를 언급하고 있다. 투렛 증후군은 신경질적인 에너지 그리고 기묘한 동작이나 생각이 과잉현상을 보이는 것이 특징(P.177)이라고 한다. ‘익살꾼 틱 레이’에서 환자는 극심한 틱 증상으로 사회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래서 약물 처방을 받아 증세가 완화되었더니 탁월한 재즈 드럼 솜씨가 퇴보하였다. 그래서 주중에만 약물을 처방하고 주말에는 투렛 증후군이 발생하는 상태에서 예술적인 장기를 살리기로 한다. 또한 코르사코프 증후군을 겪는 끊임없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톰슨 씨의 병례도 흥미와 아울러 깊은 연민을 느끼게 한다. 혹시 예능인 중에도 본인은 잘 모르지만 이런 증세(다소 약하더라도)를 지닌 사람이 있는 게 아닐까 궁금하기도 하다.

제3부는 이행을 다루고 있다. 정확한 이해는 어렵지만 신경 장애가 현실과 예술 또는 현실과 과거 등 서로 다른 두 세계를 연결하는 기능을 수행하는 경우를 일컫는데 대개 사회적으로는 크게 문제시되지 않는다. 관심있는 쇼스타코비치의 비밀과 힐데가르트의 환영을 읽어보면 예술가의 기질이 범인과는 차이가 나는 점도 일부분 설명되지 않나 생각한다. 신경 장애가 예술적 영감이 극대화된다면 오히려 예술가들은 앞 다투어 신경 장애에 걸리고자 노력할지도 모르겠다. 또한 너무 까마득해서 기억에도 없던 어린 시절의 노랫소리와 당시 정경이 한순간에 상기된다면, 아니면 고국의 추억이 되살아난다면 오히려 병에 걸린 것을 고마워할 사람들도 분명 존재할 것이다. 이 책의 ‘회상’에 나오는 C 부인과 ‘인도로 가는 길’의 소녀처럼 말이다. 그들은 병세의 악화로 아름다운 회상이 사라져가는 게 너무도 아쉬울 것이다. 어차피 죽을 수밖에 없다면 즐겁고 흐뭇한 기분으로 가는 게 최선이 아니겠는가.

제4부는 소위 자폐증 환자에 관한 사례다. 이들의 특징은 낮은 지능에도 두드러진 탁월성을 발휘하는 영역을 지니고 있다. 리베커의 시적 재능, 뛰어난 음악 기억력의 마틴, 날짜계산의 천재 쌍둥이 형제, 그림을 잘 그리는 호세 등.

1985년에 출간된 이 책에서 저자는 인간의 신경과 정신에 관련된 임상 체험을 탁월한 솜씨로 형상화하고 있다. 지금 보아도 내용이 생소하고 충격적인데 20여 년 전 당시의 독자에게는 하나의 경악이 아니었을까. 저자는 그동안의 신경정신학이 뇌의 좌반구에만 관심을 집중하였다고 비판하며 우반구에 원인을 두고 있는 증후군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호소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우반구는 좌반구 보다 원시적이므로 생명체가 생존하는 데 반드시 있어야 할 능력을 담당하고 있으며, 여기에 장애가 발생하면 진단하기가 좌반구 장애보다 훨씬 어렵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반구에 원인을 가진 증후군이 나타나면 그것을 특이하고 기묘한 현상으로 간주했다.(P.20)

내게 이 책을 권해 준 지인은 인지심리를 연구하는 학자다. 그에게 이 책에 실린 사례는 인지 구조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내게는 어떠한가. 우선 이야기 자체로 흥미롭다. 게다가 내게도 발생하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두려움도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소위 정신병 행태를 보이는 사람에 대한 섣부른 판단이나 편견을 품지 말자는 각성이다. 사실 팔다리가 불편한 장애인은 타인의 동정과 관심을 받기 쉽지만, 행동이나 어투에서 뭔가 이상한 기미를 보이는 사람의 주위는 모두들 피한다. 같은 장애인데 신체적 장애에 비해 정신적 장애는 사람이 아닌 동물로 취급받는다. 사람다움을 잃어버렸다는 것인데, 이 책을 읽다보면 그들이 과연 인성과 영혼을 상실하였는지 아니면 그런 시각을 지닌 우리들이 신경 장애인지 자성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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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근대나무 2011-08-24 16: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2010.6.20 마이페이퍼에 쓴 글을 이동

빨강파랑 2014-06-10 15: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을 퍼가도 될까요?

성근대나무 2014-06-10 1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출처만 명확히 하시면 퍼가도 괜찮습니다.
 
불후의 클래식
허제 지음 / 책과음악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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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림 교수가 쓴 <이 한 장의 명반 클래식>과 <이 한 장의 명반 오페라>를 가지고 있다. 각권이 정가 5만원에 분량도 전자의 경우 1500여 면을 훌쩍 넘는다. 서가에 꽂아놓고만 있어도 흐뭇하며 가끔씩 들춰보는 재미도 제법 쏠쏠하다.

물론 이런 유형의 저작을 좋아하지 않는 이들도 꽤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너무 옛 시대의 거장들의 연주를 선호하고, 개인적 감상이 깊숙이 반영되어 있어 음반가이드로서는 지나치게 주관적이라는 이유다.

그런데 이러한 책을 음반가이드가 아니라 글자 그대로 ‘이 한 장의 명반’에 대한 수상록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가벼워지지 않을까싶다. 물론 비싼 돈 주고 수상록을 사보는 데 반대한다면 다른 차원의 문제이기는 하다.

여하튼 허제의 이 책을 보며 안동림 교수의 저작을 떠올리는 건 대체로 스타일이 비슷한데 연유한다. 허제는 일찍이 <명반의 산책>과 개정판인 <명반의 산책 1001>로 정통적인 음반가이드북을 출간한 적이 있다. 그야말로 가이드북에 충실하게 대중적 명곡과 대표음반 세 장씩을 소개하여 나 같은 입문자에게는 지금도 꽤나 도움이 되고 있다. 영문판인 <펭귄 가이드>나 <그라마폰 가이드>는 조금 어렵다.

<불후의 클래식>은 음반가이드북이 아니다. 오페라를 제외한 주요 작곡가의 대표 작품 당 단 하나의 음반을 소개하고 있는데, 기실 900여 면을 빽빽하게 채운 것은 음반 자체보다는 음반에 수록된 작곡가와 작품, 그리고 연주가와 연주에 얽힌 이야기다. 음반 선정 자체는 대체로 주관성과 객관성이 혼재되어 있다고 볼 수 있는데 명반이라는 것이 원래 그러한 법이 아니겠는가?

저자가 추천하는 음반으로 그 음악을 들으며 책장을 넘기면 그동안 간과하기 쉬웠던 악구의 미묘한 의미를 되새기는 교육적 효과를 얻을 수 있으니 가이드북처럼 한번 쑥 스쳐지나가며 페이지를 넘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태도다. 그래서 나도 날마다 몇 장씩 읽다 보니 거의 두 달이나 소요되었다. 음악 감상과 병행하지 못한 게 아쉽지만.

이 책을 클래식 입문자에게 추천하기는 약간은 곤란하다. 소위 보편타당한 추천음반으로 어느 정도 귀가 익숙해져서 나름의 판단 기준을 가지고 있어야 저자의 주관성에 함몰되지 않는다. 저자의 절대 명반은 내게도 절대적이지는 않다.

예컨대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와 파르티타의 경우 저자는 헨릭 셰링을 추천하지만, 나의 가슴 속에는 요제프 시게티가 흔들리지 않는 뿌리를 내리고 있다.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제3번의 아름다움을 처음 깨달은 연주는 여기서 추천하는 블라디미르 호로비츠의 미국 데뷔 50주년 음반이나 블라디미르 아쉬케나지의 두 종류의 음반이 아니라 아쉬케나지가 유진 오먼디와 협연한 것이다.

또한 피아노 협주곡 제2번의 경우에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터와 쿠르트 잔데를링의 멜로디야 음반을 듣고 나서 비로소 라흐마니노프 음악의 감상성과 상투성에 대한 선입견을 깨뜨릴 수 있었다.

즉 허제의 이 책은 한 음악애호가의 주관적 감상기로 참고도서로 유용하게 활용하되, 전적으로 의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게다가 이 책은 결정적 약점을 지니고 있다. 정가 49,000원의 일반 독자에게는 다소 부담이 될 만한 책이라면 내용뿐만 아니라 편집에도 보다 철저를 기해야 했음에도 다소 미흡하다. 눈썰미가 좋은 독자라면 곳곳에 수많은 오타를 발견할 수 있다. 연주와 녹음이 조화를 이루어야 명반이 되는 것처럼(연주는 좋은데 녹음이 나쁘면 historic 이라는 단어가 추가된다) 내용과 편집이 잘 어우러져야 좋은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아마 상업성이 취약한 1인 출판의 한계가 노정된 게 아닌가 생각한다.

그럼에도 이 책은 충분히 일독할 가치가 있는데, 클래식 음악 감상에 대한 저자의 다년간의 몰입과 열정이 수록된 내용의 가치를 더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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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근대나무 2011-08-24 16: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2010.7.13 마이페이퍼에 쓴 글을 이동
 
에피 브리스트 대산세계문학총서 83
테오도르 폰타네 지음, 김영주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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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산세계문학총서 083.

1. 에피와 인스테텐의 결합

1) 에피
사랑보다 조건(지위, 신분) 선택 → 연령차 20년 이상!!!
부녀 같은 사이에 무슨 사랑과 애정의 감정을 느낄 것인가?
애정의 결핍이 외도를 유발시키는 필요조건이 되었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면서도 처리에 대해서는 불만: 가혹함 → 한때의 실수

2) 인스테텐
정신적, 윤리적으로 엄격한 모범적 귀족 & 관료
에피와의 결혼은 에피의 어머니에 대한 일종의 대체재?
20년 이상 차이의 에피와 행복한 결혼생활 기대는 과욕, 잘못된 판단
조건으로 애정 결핍을 보전할 수 없음
유령의 집에 대한 모호한 태도와 7년 전의 지나간 사건에 대한 결투와 복수
→ 자신과 부인의 진정성이 아닌 사회적 계급의 틀에 얽매인 보수적 가치관 표출
→ 개인<사회(계급)
복수는 불가피했는가? (사랑하는 여인의 과거를 용서할 수 있는가의 문제)
진정한 용서가 불가능하다면, 복수와 결별 그리고 덮어둠가 외양적 평온 중 무엇이 바람직한가의 가치관 문제

2. 에피와 인스테텐의 비난 불필요성
그들은 19세기 사회적 관습의 지배를 받고 있음
당대의 여러 가정에 잠복해 있는 위험이 외면으로 표출된 것일 뿐

3. 여성주의 문학의 걸작 이유?
에피의 외도의 불가피성 해명???
에피에 대한 인스테텐/사회의 가혹한 처사 비난???
에피의 이혼 이후 여성으로서의 독자적 삶 개척???
19세기 당대의 귀족적 삶의 모순과 은폐에 대한 온유한 비판 (작가는 누구의 편도 들지 않는다)

* 내용 추가 
http://blog.aladin.co.kr/anaudeh/40805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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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근대나무 2011-08-24 16: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2010.8.29 마이페이퍼에 쓴 글을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