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죽음의 교향곡 - 브루노 발터가 만난 구스타프 말러
브루노 발터 지음, 김병화 옮김 / 마티 / 200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부제: 브루노 발터가 만난 구스타프 말러

브루노 발터는 1958년판 서문에서 말러의 현재 음악계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대해서 아쉬움을 표명하고 있다. 오늘날 클래식 음악계에서 말러의 위상을 브루노 발터는 물론이고 말러 본인이 직접 목도할 수 있다면 이런 아쉬움을 더는 토로하지 못할 정도로 경악을 금치 못할 것이다. 20세기 후반부터 시작된 말러 열풍은 서거 100주년을 맞이하는 2011년에 아마 절정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그럼에도 말러의 음악에 대한 평가는 여전히 엇갈린다. 그의 음악이 주는 광활성과 심원성에 대해서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지만, 극도로 신경질적 성향을 완연히 내비치는 음악세계는 극적인 몰입의 폐해를 가슴깊이 남기게 된다. 따라서 애호가 중에서 자녀들에게 들려주지 않겠다고 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한마디로 비교육적이라는 것, 영화로 치면 19금(?) 정도라고 할까.

개인적으로도 말러의 곡을 상당히 좋아하는 편이다. 유독 장대하고 극적인 성향의 곡을 일찍부터 선호하여 브루크너, 말러, 쇼스타코비치에 관심을 두었다. 말러 곡 중에서는 1번, 2번, 5번, 대지의 노래, 9번 순으로 듣게 되어 6번, 3번, 7번까지 별 거부감이 없다. 다만 4번과 천인 교향곡은 좀 더 시일이 필요할 듯. 언어의 한계는 내게 여전히 극복할 수 없는 한계다.

말러의 곡을 통해 유추하건대 말러의 인간성은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타입이다. 여유가 없고 신경질적이고... 말러 후반생의 정신적으로 가장 가까운 친우인 발터의 전언에 따르면 이는 부분적으로만 맞다. 사람 됨됨이는 섣불리 속단해서는 안 됨을 또 한 번 절감한다.

이 책의 매력은 작곡가 말러의 인간적 면모를 마치 옆에서 보고 듣는 것처럼 소상히 알 수 있다는 점이다. 사람은 사상가, 예술가와 운동선수 등 외견적 업적에 감탄하면 곧바로 업적을 산출한 개인 그 자체에 관심을 보이게 된다. 따라서 현시대 가장 인기있는 작곡가인 말러의 전기적 측면에 대한 이해는 단순한 호기심 이상이다.

하지만 보다 중요한 점은 말러의 교향곡 작품을 초기 말러 작품의 절대적 권위자였던 브루노 발터가 해석하는 내용이다. 수많은 지휘자들이 깊은 연구와 발전된 음향 기술의 덕택으로 보다 정교하고 극적인 말러의 음악을 재현하면서 브루노 발터의 권위는 많이 퇴색되고 있다. 특히 레너드 번스타인의 극단적 팽창주의는 물질문명의 이데올로기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말러의 작품이 가진 최고의 가치는 모험적이고 과감하며 개척자적이거나 기괴한 것이라는 진기함 때문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이 진기함이 아름답고 영감에 가득하고 심오한 음악 속에 녹아들어 있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그것이 고도로 창조적인 예술성과 의미 깊은 인간성이라는 영속적인 가치를 보유하고 있다는 점 말입니다.” (P.177)

바로 이것이 브루노 발터의 말러 작품론이다. 말러의 작품에 내재한 예술성과 인간성을 구현하는 것 말이다. 그러기에 발터의 말러 음반을 들어보면 외향적인 음향 효과에 치중하기 쉬운 <거인>과 <부활>에서도 화려한 분출을 조심스럽게 자제하고 있다. 마지막 교향곡에서도 과도한 비탄조를 피하고 담담한 어조를 유지하고 있다.

말러의 음악은 20세기 초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의 산물이다. 그의 작품에서 설핏 감지되는 기계적 성향과 거대한 구조는 시대적 산물임을 인정해야 한다. 이를 극단적로 전개해 나가면 현대의 많은 지휘자들이 그러하듯이 장대한 오케스트라 쇼피스가 될 것이다. 하지만 발터는 말러와의 인간적 교감을 통해 그것은 말러의 가슴과 정신, 그리고 세계가 빚어내는 사랑과 죽음의 교향곡임을 우리들에게 들려주고 있다.

진지한 클래식 애호가, 특히 말러에 푹 빠져 있는 이들이라면 일독을 권하고 싶다. 이 책을 완독한 이후 다시 말러의 음악을 듣게 되면 이전과는 다른 말러의 얼굴을 보게 될 것이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성근대나무 2011-08-24 16: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2010.5.22 마이페이퍼에 쓴 글을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