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산책 - 아름다운 풍경에도 슬픔이 묻어나는 땅
크리스틴 조디스 지음, 사샤 조디스 그림, 고영자 옮김 / 대숲바람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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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제에 혹해서 집어든 책이다. 신비와 은둔의 나라 미얀마에 대한 호기심을 달래기 위하여. 다시 한 번 제목에 현혹되어서는 안 됨을 절감한다. 단순한 여행기 내지 가이드북과는 전혀 거리가 멀다. 원제가 불어라 정확히는 모르겠으나 '부디스트 미얀마'라고 하였으므로 불교적 시각이 많이 들어가 있다.

실제로 저자의 해박한 불교 지식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확인을 원한다면 50면 전후를 들쳐보라. 저자는 빗나간 불교 신앙에 대해 예리한 비판도 때로는 서슴지 않는 비판적 불교학도이면서도 예수와 부처의 차이를 언급한 유년시절(P.225~226)에서처럼 불교에 매혹당한 영혼이기도 하다.
 
미얀마, 흔히 버마는 양곤(랑군) 사건을 통해 비로소 우리에게 존재가 각인된 나라이다. 그 나라로서는 달갑지 않은 일이겠지만 말이다. 남의 얘기를 할 것도 없다. 많은 세계인에게 한국은 한국전쟁의 참상으로 기억되다가 근래에 들어 올림픽이나 월드컵으로 조금 이미지가 변화되었을 따름이다. 그래서일까? 경영에서 노이즈 마케팅이 극성을 부리는 연유가.
 
근자들어 미얀마는 해외여행 소개에 이따금씩 소개되고 있다. 내가 꾸준히 보는 매일경제신문의 월요일판에는 별지로 Travel Guide가 나오는데 대개는 상투적인 여행지가 소개되지만 가끔은 낯선 장소가 소개된다. 미얀마의 인상은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고요와 평온의 불교사원(파고다)의 나라로, 또한 산악 소수민족의 특이한 문화로 다가온다.
 
파고다. 번잡한 세속에 지친 속인들에게 그것은 신선한 샘물 한 줄기가 목을 축이는 기쁨과 경탄을 일깨운다. 상상해보라. 여명을 뚫고 아스라이 비치는 파고다의 숲. 석양의 찬란한 광채에 황홀감을 자아내는 황금빛 파고다.
 
하지만 물들지 않는 소박한 아름다움에 파묻혀 미얀마인들의 빈곤과 억압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그러면 관광객의 존재는 그들에게 끊이지 않는 재앙을 연장시킬 따름이다.

이 책은 미얀마의 현실 고발이나 가이드의 아무 역할도 하지 않는다. 모호하고 추상적인 미얀마인들의 일상과 내면에서 어우러지지 않은 인상기에 불과하다. 개인적 소회나 일상의 소소한 체험이 빠져있어 독자에게 실체감 없이 뜬구름 잡는 허우적거림을 안겨준다. 여행기로만 따지면 흥미진진한 몰입감이 부족하다는 의미. 그럼에도 망각된 존재를 세인에게 각성시키는 구실은 미약하나마 그런대로 수행하였다.

후반부는 그나마 루비계곡인 몽곡 방문기로 앞과는 확연히 다른 현실감을 제공한다. 영화 '블러드 다이아몬드'가 연상됨은 어인일일까? 다이아몬드와 루비의 차이는 있을망정 보석의 존재로 그들의 삶은 오히려 행복을 상실 당하였다. 쇼윈도에 걸린 루비와 몽곡의 루비가 주는 이중성의 극명함이 가슴을 저미게 한다.

말미에 미얀마의 민주화 약사를 수록하고 있다. 미얀마의 잘못된 단추는 독립의 주역인 아웅산이 암살당한 때로부터 꿰여졌다. 그렇다고 아웅산 수치가 모든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는 저으기 의문스럽다. 그는 단지 하나의 아이콘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이 미얀마의 불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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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근대나무 2011-09-01 17: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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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1 중국, 세계를 발견하다
개빈 멘지스 지음, 조행복 옮김 / 사계절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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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무척 흥미로운 책이다. 서기 1421년, 중국이 세계를 발견했다는 제목인데 대충 보아하니 중국 명나라 시절의 정화 함대에 대한 연구서다. 아마도 정화 함대의 인도양 진출에 관해 과장된 홍보 문구를 사용한 것으로 짐작되었다.
 
네이버 백과사전에 따르면 "정화는 1405년부터 1433년까지 영락제의 명을 받아 전후 7회에 걸쳐 대선단(大船團)을 지휘하여 동남아시아에서 서남아시아를 거쳐 아프리카 케냐 스와힐리에 이르는 30여 국에 원정하여 수많은 외교사절이 왕래하였고 명나라의 국위를 선양하였다. 중국에서 생산되는 비단과 도자기를 가지고 열대지방의 보석, 동물, 광물 등을 교환하여 중국으로 가져와 무역상의 실리를 획득하였다."고 한다.
그런데...그런데, 저자는 타이틀 그대로 '중국이 세계를 발견하였다'고 말한다. 바르톨로뮤 디아스보다 희망봉을 먼저 발견하고, 콜럼버스보다 먼저 아메리카 대륙에 도달하였으며, 마젤란보다 먼저 지구를 일주하였다! 게다가 남극과 북극지역에 대한 탐사도 하였다!
 
언뜻 보면 터무니없는 주장이다. 속된 말로 비주류 고고학이나 역사학에서 흔히 우기는 상상의 비약도 유분수지. 더욱이 저자는 전문 사학자도 아니다.

하지만 저자를 따라 1421년 시기를 하나씩 되짚어 보면서 나는 멘지스의 추론이 상당한 근거를 가지고 있다는 데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오랜동안 잠수함 장교로 근무하였고, 탐구의 시초도 중세 지도와 해도에 대한 호기심에서 비롯하였다.

사실 옛지도에 남극과 북극 및 당시에는 알려지지 않았던 아메리카 등이 표기된 경우가 간혹 존재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알려지지 않은 고도의 문명의 존재를 거론하기도 한다.
 
저자 개빈 멘지스는 관점을 달리한다. 해도(지도) 전문가로서 그의 시각은 현전하는 해도가 나타내는 지형을 당시 뱃사람의 입장에서 퍼즐 맞추듯이 하나하나 살펴본다. 그 결과 황당해 보이는 해도와 지도들은 제작자로서는 최선을 다한 정확성을 자랑할 만한 수준이었다. 다만 당시의 과학적 지식과 관찰 상의 오차로 인해 현재와는 다른 모습을 나타낼 뿐이다.
 
저자는 이러한 정화 함대의 발자취, 구체적으로 언급하면 홍보 함대, 주만 함대, 주문 함대, 양경 함대의 항로를 추적한다. 그리고 고고학적 유적의 흔적과 난파한 선원들의 후손에 대한 민족학적 징표를 더듬는다. 그리고 얼마 안남은 중국의 사서와 타문명권의 유물과 동식물에서 준거를 확인한다. 또한 이러한 모든 대탐험을 추진할 만한 국가가 당시 세계에는 중국이 유일함을 확인한다.

 어떤가? 너무나도 흥미진진하지 않은가? 만약 이 추론이 진실이라면 세계사는 일대 혁명을 겪게될 것이다. 저자가 전문 역사학자가 아닌 덕택에 선입관에 물들지 않았기에 이러한 연구가 가능했다.
 
혹자는 그런 엄청난 발견이 왜 중국에서도 망각되었는가 이의를 제기할 수도 있다. 저자의 답변은 간단하면 명쾌하다. 대탐험의 경제적 부담으로 영락제는 실권을 잃었고 후임자들은 쇄국정책을 펴고 타국에 대한 자료는 대부분 파기하였다는 것이다.
 
저자의 주장은 혁신적이라서 꼼꼼한 검증이 필요하다. 주류사학계는 차라리 외면할지도 모른다. 그들은 이것을 공상 소설로 간주할 지도 모른다. 아마추어의 가설이므로. 하지만 나라면, 일만 년전에 초고도의 문명 제국이 존재했다는 주장보다는 이편이 훨씬 더 사실에 가깝게 다가온다.
근래에 읽어본 책들 중에서 가장 흥미진진하였다. 600여면(부록을 빼고도 450여면)이라는 두툼함이 전혀 부담스럽게 여겨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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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근대나무 2011-09-01 17: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2009.4.27 마이페이퍼에 쓴 글을 이동
 
빛의 도시 까치글방 177
야콥 단코나 지음, 데이비드 셀번 영문 편역, 오성환 외 옮김 / 까치 / 200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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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이탈리아 출신 유대인 상인이 마르코 폴로보다 3년 앞서 중국을 방문하고 기록을 남겼다. 그리고 그 기록은 수백년간 비밀리에 보관되어 오다가 원본 및 보관자는 비밀로 한다는 조건하에 마침내 공개되었다. 일부 학자들은 여전히 진위 여부를 의심하고 있다.
 
이만하면 꽤나 흥미진진한 저작이 아닐 수 없다. 내용 자체가 보잘 것 없다면 위작 여부가 딱히 논란거리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일단 두툼한 분량의 이 책은 흔해빠진 여행기는 아니다. 무역을 위해 이탈리아의 안코나에서 육로와 해상을 통해 중국의 짜이툰까지 오간 여정 중에서 상당 부분은 야콥이 짜이툰에 체류하면서 보고 듣고 겪게 되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그나마도 그가 짜이툰의 미래에 대하여 개인과 사회질서, 윤리 등에 대하여 중국의 학자 및 상인과 토론하는 내용이어서 뭔가 이국적인 것을 기대하는 이는 실망할 것이다.

13세기 중국에서 유대인 상인과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민감한 사안도 포함하여 열성적인 토론을 거듭하는 장면은 이채롭다. 너무나 사실적이고 현대적인 점에서 오늘날과 차이를 찾기 어렵다. 그 때문에 오히려 진실성을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책이 정말로 위작이라면 이는 비난할 사항이 아니라 오히려 편역자 데이비드 셀던을 찬양해야 할 것이다.
 
 야콥은 독실한 유대인으로 철저한 계율 준수와 회개의 전범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고 그가 성인에 필적하는 믿음과 굳건함으로 태산같은 위엄을 보여준 것은 아니다. 곳곳에 인간적 나약함을 보여주는 대목이 등장한다. 50의 나이를 감안하면 의외의 장면이다.
 
"과거에 당한 불운이 생각나서 나는 다시 슬픔이 복받쳐올랐다...경전 연구를 잠시 제쳐둘 정도로 마음이 무거워져 또 울기 시작했다." (P.44)
 
곳곳에 다양한 인간 군상이 등장하지만, 야콥의 주요 토론자이며 그를 높이 평가한 빠이따오꾸는 구시대의 질서를 대변하는 양반이다. 그의 발언을 통해 당시 사대부 계층의 도덕적 기준을 이해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에 따르면 상업이 득세하며 도덕이 무너지고 있는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황제 중심의 통치 체제를 새옵게 해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각 계층이 자신의 직분에 맞게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회당에서 빠이따오꾸와 상인들이 벌이는 논쟁(P.262~265)은 오늘날 신자유주의에 대한 첨예한 대립적 시각과 유사하다. 상인들은 극단적 자유방임을 주장하며 개인과 사회의 일체의 의무 부과에 반대한다.

한편 젊은 지식인 안훵산과 야콥의 토론은 또다른 흥미를 제공한다. 종교적, 전통적 가치관을 고수하고 대변하는 야콥, 현대적 가치관을 지향하는 안훵산. 야콥은 그를 '나의 적'으로 지칭한다. 그만큼 강력함을 반증한다고나 할까. 그들의 견해는 아동교육론에서 의무교육과 자유교육으로, 형벌의 의의에 대한 처벌론과 교화론으로 대립된다. 솔직히 요즘의 시각에서는 안훵산의 주장이 시대를 초월한 신선함을 안겨준다. 그것이 야콥에게는 더욱 신경쓰인 모양이다.
 
그리고 유대인과 기독교인, 사라센인의 관계에 대한 야콥의 설명은 그 반목의 깊이와 뿌리가 얼만 깊은 지를 웅변한다. 유대인에게 가장 큰 피해를 입힌 역사는 이슬람교에 책임을 물을 수 없으며, 야콥 자신도 사라센인보다는 기독교도에 더한 적대감을 표출한다. 그럼에도 오늘날의 현실과 대조되는 사실에 역사적 아이러니가 표출된다.
 
야콥은 겸손한 유대교도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전투적이라고 표현함이 적합하다. 중국 학자들, 상인들과의 불꽃튀는 토론, 기독교 사제와의 격한 논쟁을 보자. 게다가 그는 상인의 직분을 넘어서는 과욕을 부린다. 즉 도시의 고문관이 되고자 한 것이다.

"지금 암흑속에 놓인 빛의 도시에 진리와 지혜를 일깨워주려던 내 노력이 사람들 앞에서 무참히 좌절당하고 말았던 것이다." (P.401)
 
이러한 그의 오만은 빠이따오꾸와 상인들의 대립을 부추기는 기름 구실을 하게 되었고, 결국 빠이따오꾸의 죽음과 그의 필사의 탈출을 초래하는 원인이 되었다. 그가 과연 순수한 도덕적 동기에서 타국의 정치에 관여한 것으로는 생각되지 않는다. 초창기에는 그럴지 몰라도 나중에 그는 중국에서 봉건영주를 꿈꾸었다.

다시 말하지만 이국적 풍광을 담은 여행기로 접근하면 실망하기 딱 좋다. 대신 몽골 침략을 목전에 둔 남송 말기의 무역항 짜이툰 사람들로 대변되는 보편적 인간 군상의 사회적 면모를 되돌아 보는 데는 매우 유용하다.
 
'빛의 도시'가 사실은 '어둠과 맹목'(P.408)의 도시임을 야콥은 체험과 토론을 통해 현대의 우리들에게 몸소 입증해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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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근대나무 2011-09-01 17: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2009.4.21 마이페이퍼에 쓴 글을 이동
 
서유견문 - 조선 지식인 유길준, 서양을 번역하다 서해문집 오래된책방 8
유길준 지음, 허경진 옮김 / 서해문집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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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책이 모다 고전은 아니다. 오늘날에도 생생히 숨을 쉬고 싱싱함을 유지해야 참다운 고전으로 불릴 자격이 있다. <서유견문>이 옛책과 고전 중 어느 위치에 놓일지 궁금했다.
 
사실 명성은 자자하지만 일반인에게 친숙하지 않은 저서도 참 많다. 누가 그랬던가. 다윈의 진화론은 삼척동자도 알지만 정작 <종의 기원>을 읽은 이는 극소수라고. 아마 <서유견문>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책 제목을 보고서 개화기에 서양을 소개한 여행 개설서 정도로 이해했다. 저자 자신도 자신의 견문담과 남의 글을 짜집기한 것이라고 인정하고 있다.
 
그런데 책을 읽어나갈수록 이것은 단순한 견문록이 아니라 견문록을 가장한 저자 자신의 정치론으로 이해되었다. 조선 최초의 유학생으로 당대 서양에 관해서는 최고의 권위자인 유길준이 선진 서양에서 받은 문명적 충격과 이에 대비한 조선의 낙후된 현실을 비교하여 어떻게 하면 조국을 개화시킬 것인가를 견문록의 형식에 담아냈다.
 
그래서일까. 목차만 보더라도 서양 풍물보다 정치, 조세, 교육, 사회제도에 대한 분량이 압도적으로 비중을 차지하며, 상당 부분의 내용이 저자 자신의 주관을 반영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는 국제정치 관계를 논하면서 증공국과 속국에 대해 장황한 논리를 펼친다. 요즘에는 이해하기 어렵지만 구한말 당시의 정세를 상기하면 십분 이해된다. 조선에 대한 청의 간섭은 조선말 개화기에 이르러 더욱 심해진다. 따라서 조선의 근대화를 도모하는 지식인에게 청의 간섭을 배제하려는 논리 개발은 중요한 과제라고 하겠다. 그것이 증공국과 속국 논리로서 조선은 청의 속국이 아니라 증공국이라는 것이다.(P.110~)
 
그런 유길준의 논리는 당당하다. "나라 위에 나라가 없고, 나라 아래에도 또한 나라가 없다."(P.107)며, "강대국이 자기 나라의 넉넉한 형세를 휘둘러 약소국의 정당한 권리를 침범하는 것은 올바르지 못한 폭거이며 무도한 악습"(P.110)이라고 날카롭게 비판한다.

이처럼 청에 대해서는 분연히 떨쳐 일어난 유길준이지만 후일 일본의 조선 침탈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킨다. 연유가 궁금하다.
 
아직 개화 초기이다 보니 충분한 숙성을 통해 체화하지 못한 흔적이 곳곳에 보인다. 스코틀랜드인, 아메리카 인디언 등에 대한 저자의 비판(P.123~124)은 전형적인 제국주의 시각을 여과없이 수용하고 있음을 알게 해준다.
 
시대적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모습도 나타난다. 납세의 의무를 강조한 것은 소위 악법도 법이라는 지나치게 정권지배자 중심 시각이며, 군주제의 옹호는 주독자층이 누구인가를 감안하면 이해할 수밖에 없다.

 "임금이 다스리는 정부의 국민들은...선대 임금들이 창업한 공덕을 만세에 받들어 지키는 것이 옳은 일이다."(P.167)
 "임금은 그 아버지고 국민은 그 자식이라고 할 수 있다."(P.221)
 
물론 현대의 시각에도 유념할 부분도 적지 않다. 재산권 보호에 대한 그의 의견("전 국민에게 커다란 이익을 줄 만한 일이 있더라도, 한 사람의 사유물을 해치게 되면 감히 시행할 수가 없다, P.144)은 극단화할 수는 없겠지만 공공의 이익이 아니라 부유층의 사익을 위해 공권을 동원하는 오늘날(얼마 전 재개발로 촉발된 용산참사를 보라)에 비하면 오히려 100년 전보다도 인식은 퇴보한 게 아닌가 씁쓸하다.
 
그리고 상인의 직분과 경계할 점 등 도리에 대해 설파한 항목(P.387-391)은 이 책이 단순한 서양문물 소개기가 아님을 새삼 깨닫게 된다.

저자 역시 친일 개화파로서 나름의 견해가 없을 수 없다. 지혜로써, 용단으로써, 위력으로써 개화하는 방식(P.397)에 대한 주장에서 얼핏 갑신정변에 대한 비판과 변호의 인상을 풍긴다. 그의 사고에 따르면 갑신정변은 옳은 방식은 아닐 것이다.

 "한 나라의 정치 체제란 오랜 세월에 걸쳐 국민들의 습관이 된 것이다...급격한 소견으로 헛된 이치를 숭상하고, 실정에 어두우면서도 개혁하자고만 주장하는 자들은 아이들이 장난하는 것과도 같다. 임금과 나라에 도움을 주기는 고사하고, 도리어 해를 끼치는 것이 적지 않을 것이다."(P.176)
 
이 얼마나 통렬한 비판인가? 이 단락을 집필한 시점이 언제인지 모르겠으나 여기서 그는 갑신정변의 실패를 예견했거나 아니면 그 실패한 결과를 목도하고 지적한 것이리라. 사실 갑신정변은 우리 근대사 기조를 바꾸어 놓았다. 일부 성급한 과격파에 의해 그 후 개화파는 친일의 앞잡이로 간주되었고, 자주적 개화는 시작도 하기 전에 싹을 잘리게 되었다. 개화의 죄인은 개화의 원수보다 폐해가 더 크다.
 
오늘날 개화는 케케묵은 단어다. 글로벌 시대에 무슨 시대에 뒤처진 말인가. 그런데 실상의 개화와 허명의 개화(P.398)에서 우리는 허명의 개화를 따르는 것은 아닌가. 개화의 원수는 사라졌지만 개화의 죄인은 여전하다. 더욱이 "입에는 외국 담배를 물고..외국말을 얼마쯤 지껄이는...개화라는 헛바람에 날려서 마음속에 주견도 없는 한낱 개화의 병신"(P.400)이 곳곳에서 난무하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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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근대나무 2011-09-01 17: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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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하라 사막 횡단기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도 슬픈 땅
윌리엄 랑게비쉐 지음, 박미영 옮김 / 크림슨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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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클라마칸을 비록 언저리지만 목도하고 손발로 체험한 이후 사막의 생생한 정경은 더더욱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어릴 적부터 꿈꾸던 미지의 곳, 오지 탐험에 대한 열망을 탐험기 또는 여행기를 통한 대리 충족으로 만족해야만 함이 못내 아쉽다.
 
사하라 사막은 아프리카 북부를 차지한 지구 최대의 사막으로 그 면적만도 아프리카의 1/3이나 된다. 이 사하라를 도보로 횡단하는 것은 언감생심이요 차량으로 이동하더라도 도로 상태가 여의치 않아 위험천만하기 이를 데 없다고 한다. 랑게비쉐의 횡단 도전은 알제리에서 남하하여 니제르를 거쳐 서쪽으로 말리, 세네갈을 빠져나가는 노선으로 엄밀히 말하자면 서부 사하라에 국한되지만 논쟁은 하지 말자. 어차피 사하라 사막을 횡단하려는 사람도 제정신은 아니요 그 기록을 읽는 이도 마찬가지다.
 
훌륭한 여행기의 미덕은 기이한 자연과 이국적 풍경 묘사 보다는 여정 속에서 만나는 개인과 사회의 재발견과 성찰에 있다. 올리비에의 <나는 걷는다>가 뛰어난 점은 느릿한 여정 속의 자아 성찰과 마주치는 사람들을 편견을 배제하고 순수한 눈으로 대하려고 하였다는 점이다. 서양인 여행자의 글에는 무의식적으로 우월주의가 스며들기 쉽다.
 
랑게비쉐도 나름 중도적 입장을 견지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많다. 그는 현직 기자답게 사물과 사람들을 한 발짝 사이를 두고 바라보는 직업적 습관이 배어있다. 자동차로 며칠이면 통과할 그 곳을 400면에 가까운 두터운 글로 채우자면 자연 곁가지로 새는 경우가 많다. 그곳의 사람 개인사 및 지역의 정세를 상세히 기술하는 것을 읽다보면 리포트가 아닌가 착각이 들기도 한다. 좀 더 인간적인 체취를 원한다면 2프로 부족할 수도 있다. 반면 사하라의 현실을 이해하는 데는 유용하다.
 
사막이 우리에게 주는 매혹은 어디에 기인하는가. 그것은 절대 고독이다. 처음 눈길을 사로잡은 풍경도  곧 단조로움으로 다가오고 생명의 자취가 끊어진 그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우리는 내면을 응시한다. 저자의 표현대로 "완벽한 고독과 황폐함은 사람들에게 귀중한 교훈을 던져준다...사막은 그 부족함으로 귀한 뭔가를 깨우친다."(P.18)
 
사하라는 남쪽으로 그 기세를 더해가고 사람들은 국경을 넘어 생존 영위를 위한 필사의 몸부림을 한다. 얼마 전 신문에서 거대한 차드 호가 이제는 거의 말라붙게 된 위성사진을 본 적이 있다. 인간이 자연을 조작할 능력은 없으니 자연에 대한 순응이 필요한데, 곤궁에 치일수록 인간의 집착과 탐욕은 적나라한 모양이다. 사하라 국가들, 리비아, 알제리, 니제르, 나이지리아, 말리, 부르키나파소, 모리타니아, 세네갈 등 서부 및 동부 사하라 국가들 중 착실한 운영을 하는 나라를 발견하기 어렵다. 궁핍 속에서 소수의 지배층은 더욱 독점하기 위하여 철과 피를 불사한다.

국회의장의 질서유지권 발동으로 오랜만에 국회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좌파 정권이 집권할 때도 이러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우파 정권의 좌파 야당 시절에는 흔한 장면이었는데. 역시 정치는 잘 바뀌지 않는다. 어차피 사람이 변하지 않는데 정치이게 요구할 수는 없다. 문제의 원인이 우파 집권인지 아니면 좌파 야당인지 애매하다. 아니면 절묘한 시너지 효과! 당하는 입장에서는 아쉬울 법도 하겠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들도 집권 시절에 마음껏 권력의 힘을 행사해 보는 건데 하고 말이다. 욱하는 심정을 억누르고 까칠한 상대와 소통을 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어렵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요즘은 마음에 안 든다고 사화를 일으키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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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근대나무 2011-09-01 17: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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