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스트램프 제3권 - 용고개의 지하 신궁
천하패창 지음, 곰비임비 옮김 / 엠빈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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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사람들은 왜 공상(환상)에 빠져드는가? 혹자는 현실이 각박해질수록 환상에서 위안을 구한다고 말한다. 현실은 내 마음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잘 해보고 싶은데 모두가 탄복할만큼 당당하고 싶은데 내생적 내지 외생적 연유로 그러하지 못한 게 현실이다. 공상에서라면 다르다. 그 무엇도 나를 가로막지 못한다. 모든 게 마음 먹은대로 행복한 결과가 눈앞에 펼쳐진다. 이러한 현실과의 대비는 공상(환상)의 미덕을 한층 부풀린다. 그래서 공상과학소설과 공상과학영화가 우리를 사로잡는 모양이다. 아니 과거부터 그러하다. 옛날 신화는 무엇이며, 구운몽과 홍길동전은 무엇이란 말인가?

때로는 공상(환상)에의 탐닉이 지나쳐 현실을 망각하는 폐해가 나타난다.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꿈이란 말인가. 장자는 이러한 혼돈의 시조격이다. 현실도피는 단순한 공상(환상) 외에 다양한 수단을 통해서 가능하다. 고상함을 자랑하는 예술을 통해서, 아니면 병적인 성적 갈구도 예외는 아니리라. 위험하게는 흡연과 음주, 그리고 마약에 이르기까지. 요즘이라면 인터넷 중독이 있다. 낮에는 자고 밤에는 활동하는 인구도 제법 있다고 한다. 하긴 사이버 세상이 더 현실같다고 하는데 이 정도야 약과가 아니겠는가.

인생은 철저한 현실 추구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인간이란 존재는 신처럼 완전하지 못하다. 아 그러고보니 가장 커다란 도피처인 종교를 깜빡하였다.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극도로 지성적인 이도 교회에서 흐느끼는 모습을 보면 인간과 종교에 대하여 깊은 생각을 하게 된다. 불완전한 인간은 무엇엔가 의지를 원한다. 그것이 근원적 불안감과 공허함을 충족시켜주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찰나적 위안이 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 틈으로 미신과 불신이 스며든다. 그리고 음모와 모함이 난무하며 인간사는 한층 복잡다단해진다.

거꾸로 환상이 없는 인간사회를 그려본다. 모두가 냉철한 이성에 의지하고 철저하게 현실에 기반을 두는 삶을 영위한다. 모든 문장과 어휘는 지극히 합논리적이다. 불필요하게 문장을 꾸미거나 에둘러 말할 필요가 없다. 그것은 인간 정신에 어울리지 않는다. 예술은 존재하지 않는다. 감정조차 필요성이 의심받는다. 직선이 판치는 세상, 여기에는 곡선이 없다. 별로 재미는 없을 듯 하다.

이 <고스트램프> 시리즈는 순이론적 시각으로는 영양가가 없는 유형이다. 인류사회의 진보와 발전에 기여할 법 하지 않다. 존재가치가 있나하는 의구심조차 든다. 그런데 중국에서는 베스트 셀러라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책을 사고 읽는 근원적 동기가 궁금하다? 멀리 갈 것도 없다. 날씨 좋은 날 공원에서 손잡고 다정하게 걷는 연인, 손에 풍선을 들고 환하게 웃는 아이를 바라보며 미소짓는 젊은 부부, 지팡이를 들었지만 손을 꼭 잡고 느릿느릿 발걸음을 옮기는 노인.

삶에 인위적 목적을 부여하지 않는다. 삶은 자체로 소중하며 가치가 있다. 여백이 더 소중한 동양화처럼 삶도 그러하다. 스멀스멀 피어나는 조급함을 지그시 발로 누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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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근대나무 2011-09-02 15: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2008.6.30 마이페이퍼에 쓴 글을 이동
 
고스트램프 제2권 - 정절국 여왕
천하패창 지음, 곰비임비 옮김 / 엠빈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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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연히 읽게된 제1권의 재미에 옴팍 빠져들어 제2권을 펼쳐들지 않을 수 없었다. <반지의 제왕>이나 <해리포터>시리즈 이후 이른바 판타지 장르가 독서계에 부담없이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종래에는 기획이나 출판을 꿈도 꾸지 못했을 작품들이 대거 출판되고 있다. 이 <고스트램프>도 마찬가지다. 어쨌든 문화의 다양성 측면에서는 환영할 일이다.

제1권이 재미있기는 하지만 다소 구성이 산만한 면이 있었다. 배경 소개와 아울러 중국 동북부와 내륙 깊숙한 지역을 순차적으로 다루는 제1권에 비해 정절국 여왕의 무덤을 찾기 위한 타클라마칸 사막 여정에 전부 할애하는 제2권은 집중도가 높다고 하겠다. 스피디함과 보다 가벼움을 원하는 독자는 다소 서운할 수도 있겠지만 이 책의 미덕인 책장을 술술 넘기는 재미는 조금도 줄지 않았다.

중국에서도 서역은 머나먼 이국이다. 중국사람들도 별로 가보지 않았고 문화와 언어, 민족도 상이한 이방인들의 따이다. 게다가 무시무시한 사막이 커다랗게 자리잡고 있으니. 사하라와 마찬가지로 타클라마칸도 시초부터 황량한 곳은 아니라고 한다. 그래서 초기 문명시대와 오아시스 문명의 흔적이 모래속에 파묻힌채 그대로 전해오는 신비의 지역이기도 하다.

사막 유적을 찾다고 행방불명된 아버지를 찾기 위해 미국 국적의 중국계 2세가 탐험대를 조직하고, 주인공 호팔일과 뚱보가 여기에 참가하게 된다. 그들은 나름 충분한 준비를 하고 사막에 발을 내딛지만 저주가 내린 사막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초반부터 모래폭풍을 맞닥뜨려 고생하더니 서야고성 유적을 거쳐 찰격랍마 산에 들어간다. 여기서 기이한 독사의 습격을 받아 인명의 희생을 당하면서도 마침내 정절국 유적을 발견한다.

정절국의 역사적 배경은 알지 못한다. 작가가 단순히 이름만 빌려왔는지 아니면 가급적 전해오는 사실과 전설을 혼합했는지. 귀신동굴의 어두운 힘을 끌어쓰는데 격분한 신의 분노로 멸망하였다고 하는 귀동족과 마지막 여왕. 여와의 관을 지키는 사체화의 환각으로 일행의 수는 또 줄고 만다. 현실과 환각이 교묘히 교차하여 생사를 선택하게 만드는 절체의 순간. 그들은 간신히 무덤을 탈출하고 찰격랍마의 유적은 모래폭풍속에 자취를 감춘다. 그리고 사막의 저주가 풀린다 등등.

중요한 것은 스토리가 아니다. 황당하기조차한 줄거리를 감칠맛 나게 구성하고 읽는 재미를 어떻게 제공하는가이다. 그 점이 천하패창의 글솜씨이자 <고스트램프>가 성공한 이유라고 생각한다. 여기에 번역자들의 군더더기없는 깔끔한 번역도 큰 역할을 한다.

도시기담도 언급되지만 역시 이런 류의 작품 배경은 확실히 미지의 신비한 무대가 제격이다. 그런 점에서 내몽골, 곤륜산 그리고 타클라마칸 등이 장소로 등장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광활한 중국대륙 가운데도 오지 중의 오지인 탓이다. 잘 모르는 것은 두려움과 신비감을 자아낸다. 게다가 사람은 두려움 가운데 호기심을 느끼는 희안한 취향을 지닌다.

각설하고 제3권을 기다리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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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근대나무 2011-09-02 15: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2008.3.26 마이페이퍼에 쓴 글을 이동
 
고스트램프 제1권 - 비밀지하요새
천하패창 지음, 곰비임비 옮김 / 엠빈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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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 동료가 한번 보라고 건네줬다. '고스트 램프'라, 어디껀가? 뭐야, 중국! 인터넷소설! 게다가 광고문구가 '동양의 인디아나존스, 그의 탐험이 시작됐다!'라니. 이걸 읽을 가치가 있으려나? 이런 의문이 든다. 그래도 받아들었으니 어쨌든 한번 읽어보자. 중간에 재미없으면 접어두면 되니까. 이렇게 아주 가벼운 마음으로 책장을 넘겼다.

소설은 쑥쑥 책장이 잘 넘어간다. 잘은 모르지만 인터넷 소설의 특징이 아닐까. 인터넷 상에서는 복잡하고 난해한 문장은 방문객의 마우스 클릭에서 버림받기 쉽다. 또한 속도가 느려서도 안된다. 빠른 장면 전개도 필수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중국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는 점은 당연하다. 또한 번역도 아주 매끄러워서 고유명사를 제외하면 번역본이라는 느낌을 들게 하지 않는다.

내용을 보자면 주인공 호팔일의 가족 내력이 초반에 이어진 후, 호팔일이 문화대혁명을 거치며 군인이 되어서 겪는 기이한 모험을 그리고 있다. 곤륜산의 빙하 아래서 불 무당벌레, 구층요루와 패왕 도롱뇽 등 황당하면서도 꽤 그럴듯한 어드벤처가 이어진다.

후반부는 군대에서 쫓겨난 후, 친구 뚱보와 함께 본격적인 도굴 사업을 벌이며 겪는 마찬가지로 해괴한 모험담이다. 내몽고 변경 야인골의 요나라 귀족무덤을 파헤치다가 일본 관동군 비밀요새를 맞닥드리는 일행. 붉은털 야수에다가 거대늘보를 만나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져 돌아온다. 수업료를 톡톡히 치른 셈이지만 그래도 신기한 옥기를 건져서 헛수고는 아니었다. 후일담은 제2권에...

신화와 전설이 상상과 만나 어우러지는 소설답게 특이한 괴생물이 등장한다. 호국화가 겪는 요괴(영화 천녀유혼이 연상된다), 라마골의 귀신, 곤륜산의 불 무당벌레과 패왕 도롱뇽, 야인골의 붉은 야수, 지하요새의 흡혈박쥐와 거대늘보 등. 이 모든 것을 영화로 만들면 꽤나 그럴듯한 비주얼이 나올 것 같다. 중국에서 영화화가 결정되었다는데 잘 표현하려나 걱정마저 든다.

처음의 얕봄과는 다르게 일단 책을 펼치자 쉴새없이 몰아치는 재미에 시간가는 줄 모를 정도다. 이래서 사람은 섯부른 편견과 예단을 하면 안된다는 잊기쉬운 교훈을 새삼 깨우친다.

더불어 생생한 중국 문화와 사고를 중국인 자신의 글을 통해 발견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동안 미심쩍어하던 중국인들에 대한 이해의 폭을 편린이나마 직접 확인하는 소득도 의외로 크다.

어드벤처를 그리려면 미지의 장소를 선택해야 하므로 곤륜산에서 내몽고까지, 그리고 후속편에서는 타클라마칸 사막과 운남성 등을 포괄하는 스케일의 광대함에 놀란다. 이는 중국인에게도 그만큼 중국 대륙의 광활함이 이국적으로 여겨진다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현재의 중국 영토를 자신들의 것으로 간주하는 자연스러움이 낯설고 씁쓸하게 다가온다. 중국인들로서는 지극히 당연하겠지만 말이다.

후속편이 아직 나오지 않았다는 데 아쉬움을 느낀다. 이제는 제2권이 나오기만 기다리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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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근대나무 2011-09-02 15: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2007.12.31 마이페이퍼에 쓴 글을 이동
 
위대한 왕
니콜라이 바이코프 지음, 김소라 옮김, 서경식 발문 / 아모르문디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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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실직고하면, 덤으로 <등에> 소설책과 음반을 준다는 바람에 혹해서 덜컥 구입해 버렸다. 한편 예전에 스포츠신문에 연재되던 사냥일기가 떠올라서 혹시나 그 재미를 다시 즐겨볼까 하는 마음도 없지는 않았다.

부제 그대로 '만주의 밀림을 호령한 한국 호랑이의 일생'을 기술하였다. 소설 형식을 취했지만 논픽션에 가까운 작가의 체험담이다. 한국 호랑이라, 아마 작가는 시베리아 호랑이라고 표현하였을 것이다.

20세기 초반, 우리나라와 중국에게 격동의 시기는 만주 밀림의 생물에게도 파란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숲속의 대왕도 마찬가지다. 별 볼일 없는 존재로 무시하고 지냈던 중국인 주민들 틈으로 조금씩 파고드는 러시아인들과 그들의 기계문명. 대왕은 자신의 영토와 삶의 방식을 지키려고 투쟁하다가 영웅적인 최후를 마친다. 매우 감상적인 내용이지만 담담한 서술이 이를 중화시키고 있다.

'위대한 왕'은 서구에 의해 스러지는 동양 그 자체이다. 언뜻 승리자의 시각에서 바라본 섣부른 감상 아닌가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작가의 삶의 이력을 되짚어보면 그 또한 패배한 도망자의 처지다. 즉 그는 호랑이를 통해서 몰락한 옛적 삶을 그리워하고 있다.

우리 조상들에게도 호랑이는 단순한 동물이 아니라 영물로 취급되었다. 그래서 산신령 내지 산군(山君)으로 불려 두려움과 숭배를 받았다. 하물며 숲의 바다인 만주와 연해주 일대에서는 말할 나위가 없으리라. 따라서 주민들이 보이는 행동양식은 현재적 시각에서 제아무리 어리석다고 할지라도 무조건 비난할 수만은 없다. 사냥꾼들의 법을 실행하기 위해 위대한 왕에게 처형을 맡기는 장면이 바로 그러하다. 여기에서 호랑이는 절대적 권위의 상징으로 등장한다.

"이렇게 타이가의 정의가 실현되었다. 위대한 왕은 최후의 재판관이자 오래된 법의 집행자였다. 엄숙한 정적이 다시 찾아왔다." (P.216)

불과 백년도 안 된 시절의 이야기다. 그리고 그 짧은 시간 동안에 호랑이는 동물원에 가야 볼 수 있는 존재로 전락하고 말았다. 백두산 일대와 만주 지역에 호랑이가 생존하고 있는지조차 의문시된다.

<위대한 왕>이 동물 문학으로서 얼마나한 가치를 지니는지 잘 알지 못한다. 난 그저 여기에서 아 그래 이런 시절도 있었구나 하는 사라진 과거의 흔적을 회상하는 것에 위안을 삼으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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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근대나무 2011-09-02 15: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2008.2.19 마이페이퍼에 쓴 글을 이동
 
등에
에델 릴리언 보이니치 지음, 서대경 옮김 / 아모르문디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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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스타코비치의 <등에>를 듣고 있다. 소설 <등에>의 영화음악이다. 그답지 않게 선율이 잔잔하다. 오히려 로맨틱한 편이다.

이 책은 사연이 있다. 아모르문디에서 신작 <위대한 왕>의 마케팅을 위해 재고로 남아있던 소설과 영화음악 CD <등에>를 사은품으로 제공하였다. 덤으로 주는 책에 따르는 '비매품' 표기나 출판정보 생략 등이 전혀 없는 완전한 서적이다. 출판사의 고육지책이 떠오르면서도 한번 읽어볼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등에>는 정치소설 내지 혁명소설이다. 통상적인 이념소설은 아니다. 혁명을 배경으로 한 우정과 사랑의 이야기다. 종교소설이자 혈연을 다룬 가족소설이기도 하다. 영국 여류작가가 이탈리아를 무대로 이런 작품을 썼다는 것이 재미나게 다가온다. 이미 백년도 더 된 옛 소설이지만 주제는 여전히 새롭다.

작품은 3부로 나뉘지만 크게 보자면 두 부분이다. 아서 시절과 '등에' 리바레즈 시절로. 젊은 아서에게 그 날은 너무 가혹하였다. 동지들, 특히 젬마의 불신은 육체적, 심리적으로 쇠약한 그가 감내하기에는. 거기에 숨겨진 탄생의 비밀.

십수년 후, 젬마는 미망인 볼라 부인이 되어 혁명가 집단에 속해 있다. 풍자 팜플렛을 만들기 위해 필명을 떨치는 등에를 불러오고 둘은 마주친다. 일방은 상대를 알지만 타방은 알지 못한 채. 등에는 존경받는 몬타넬리 주교를 유독 강력히 풍자한다. 개인적인 감정이라도 있는듯이.

소설의 전개는 등에와 젬마가 함께 본격적인 무력 혁명 준비를 하는데 뛰어들면서 극적으로 굽이친다. 스파이의 밀고로 등에와 대원은 군대의 추격을 받고. 등에는 충분히 탈출할 순간이 있었음에도 몬타넬리 주교를 보는 순간 스스로 도망을 포기한다.

그리고 종결부는 등에와 몬타넬리의 대면. 여기서 인간의 사랑과 신의 사랑은 화해와 대결이라는 갈등구조를 겪는다. 미워하지만 부인할 수 없는 존재. 죄책감에 신의 자비와 용서를 끊임없이 구하는 성자.

해피엔딩을 원하는 독자의 기대를 작가는 처참히 무너뜨리고 부자는 스러져간다.

지금이야 종교적 영향력이 많이 퇴색하였지만 혁명의 시대 19세기 중반에는 많은 지성인들이 종교 문제로 골머리를 썩었을 듯 하다. 타락한 성직자. 종교적 세속적 영향력을 휘두르는
교황. 대중의 마음 깊숙히 자리잡은 굳건한 신앙심 등.

아서의 선택이 옳은 길이었는가 묻고 싶지만, 달리 마땅한 대안도 생각나지 않는다. 누구나 본인의 처지가 아니면 쉽게 말하는 법이니까. 자신을 이해하고 모든 것이라고 믿어왔던 존재로부터의 몰이해와 배신. 그래서 아서는 "이 따위 기생충 같은 작자들을 기필코 몰아내지 않으면 안 돼. 새로운 삶을 시작해야지."(P.94)하며 등에로 다시 태어나는 순례의 길을 자처한다.

그래. 아서에서 리바레즈로의 변신은 간단하지 않고 무수한 치욕과 고통, 위험을 인내하는 자기정화의 길이다. 현대인들이 조금은 가볍게 치루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처럼.

귓전에 울리는 로망스가 마음을 잔잔히 어루만진다. 서정품의 음악이다. 쇼스타코비치도 알았음에 틀림없다. <등에>가 본디 인간애와 사랑을 다루고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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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근대나무 2011-09-02 15: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2008.4.3 마이페이퍼에 쓴 글을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