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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을 잘 알지 못하는 나도 좋아하는 가수가 몇몇은 있다. 그 중에서도 자우림은 독특한 이미지로 시종일관 다가온다. 때로는 내가 자우림을 좋아하는지 아니면 보컬 김윤아를 더 좋아하는지 잘 모를 정도로 김윤아의 존재는 자우림에서 거의 절대적이다. 그리고 난 김윤아의 노래와 성음을 사랑한다.

 

KBS에서 The musician이라고 해서 음악콘서트 프로그램을 하는줄 처음 알았다. 우연히 자우림 콘서트를 중계해 준 영상물 두 편을 구해서 연속해서 집중 감상하였다. '트루 라이브'와 '모던락의 유혹'을. 역시 자우림이군! 하는 말외에는 떠오르지 않는다. 두 시간을 꼬박 앉아서 보는데도 지겹다거나 따분하다는 느낌이 전혀 없다.

 

맨처음 '헤이 헤이 헤이'라는 요상한 노래를 부르는 밴드의 존재를 알고는 재밌군 하며 지나쳤다. 더구나 락밴드라니..난 시끄러운 음악은 딱 질색이다.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날 심야의 음악프로그램인데, 윤도현이었나 이소라였는지 진행자가 자우림의 김윤아를 소개하고 노래를 부르는데 단번에 매료되고 말았다.

 

그 빛나는 광채, 빤짝이를 한 눈 뿐만 아니라 도도한 표정의 얼굴에서도 그리고 자유자재로 뽑아올리는 목소리에도 온통 그만의 광채가 눈부셨다. 이렇게나 노래를 잘하는 가수도 있구나! 전혀 힘들이지 않고 노래함에도 전혀 가볍지 않다. 노래에 표정을 담아서 실어보낼줄 아는 가수.

 

곧 자우림의 라이브음반을 주문하였다.  

 

 

 

 

 

 

 

 

 

 

이게 현재까지 내가 소장한 유일한 자우림 음반이다. 자우림이 알면 섭섭할려나? 개인적으로 자우림은 라이브용 밴드라고 생각한다. 팬의 열광적 반응을 자양분으로 삼고 존재의 의의를 가지는.

 

자우림은 인기있는 밴드이지만 본령은 락에 있다고 본다. 따라서 자우림에게 부드럽고 감미로움을 기대한다면 실례가 되지 않을까? 사회적 이슈에 대한 민감한 도전과 반항, 이것이 락의 정신이고 자우림의 음악정신 아닐까? 김윤아의 보컬을 좋아해서 솔로 음반도 들어봤는데 너무 우울하고 어둡다. 밝은 김윤아의 곡은 언제쯤 들어볼 수 있을까 싶다.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새'라는 곡이 불려지지 않아서 아쉬움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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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개인적으로 대학 은사이다. 대학원과는 달리 학부는 사제간의 관계가 미약하지만.그래서 아마도 나를 기억하시지는 못할 것이다, 나 또한 그렇게 뛰어난 학생은 아니었다. 한편으로는 직장에서 상하관계에 있기도 하다. 마찬가지로 최상층과 말단으로 접할 기회가 거의 없지만. 어쨌든 비서실을 통하여 간신히 한 권을 구하였다.

 

일종의 회갑 기념물로 얇은 책자를 내셨다는데, 벌써 연세가 접어드셨구나 생각하니 소회가 새롭다.

 

1부는 시편이다. 언제부터 시를 쓰셨는지, 그 중 '물방울'은 신작 가곡으로 작곡까지 이루어진 작품이다. 하긴 꼭 전문 시인만이 시를 써야 된다는 것은 지나친 엄숙주의의 발로다. 생활속에서 누구나 시적 감흥을 글로 표출할 수 있다. 그렇더라도 지속적인 관심과 흥미가 없이는 이처럼 갈고 닦는 작업을 소화하기 어렵우니. 최근 건강이 안 좋으신 탓인'지 소재가 과거를 지향하고 있다. 어릴적 아려한 추억들, 그리고 가슴 뭉클한 감상. 엄숙한 학자에게서 발견하는 뜻밖의 부드러움. 왠지 애틋함이 배어나온다.

 

2부는 '소설적 수필편'이라고 명명하였다. 선악과 이야기, 클론의 세계, 언문과 세종대왕 등 콩트에 가까운 분량의 수필을 소설 형식을 빌려 사용하고 있다. 저자는 글쓰기를 좋아하나 보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런 글을 쓰기가 쉽지 않다. 소설인 듯 수필인 듯 분간하기 어려운 속에서도 이야기의 진행구조는 머리속에서 가다듬고 구성한 결과물이다.

 

3부는 '영화, 드라마 시청 소감'이다. 드라마 '아내'의 열렬한 시청자임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콰이강의 다리', '에바와 페론' 등을 감상하며 느낀 소회를 토로하였다. 학자도 사람인 이상 이것저것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기울인다. 대통령이라고 TV 드라마를 봐서는 안된다면 참으로 곤란하지 않을 수 없다. 다만 보더라도 항상 한 발자국 떨어져서 자신의 관심분야와 접목시켜 보고 있음을 알게 된다. '콰이강의 다리'만 하더라도 이를 수평적 리더십과 연결하여 관찰하고 있다.

 

4부는 약간의 전문성이 가미되어 정보격차와 위원회 운영에 대한 제언을 하고 있다. 실물 세계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사이버 공간에서 우위를 점하여 반목 갈등이 심화된다면 이러한 정보격차가 결국은 사회적 불안정을 야기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전자정부특별위원회가 성공하였던 요인 분석을 하고 있다. 위원회는 전면에 나서지 말아야 함을 따끔하게 지적한다. 작년 가을에 발간된 책에서 작금의 '동북아위원회' 사태의 원인을 이해하게끔 단초를 제공하고 있으니 고맙다고 해야 할까.

 

한 개인의 비상업적, 신변잡기적 글들을 모아 놓은 책이므로 다수의 관심을 끌 수는 없다. 그리고 흥미진진하게 몰입을 끌어당기지도 않는다. 하지만 저자에 대하여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저자에게 이런 면이 있구나 하는 의외의 놀람과 기쁨을 누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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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독에 실패한 소책자. 저자의 난해한 문체 or 역자의 난삽한 번역 or 독자의 무지?]

 

원래는 완독한 책만이 이곳에 올라올 자격을 부여받음이 타당하다. 하지만 가끔은 중도하차한 경우도 있어야 완독의 어려움과 기쁨을 상대적으로 실감할 수 있으리라. 그런 면에서 헤르더의 언어기원론은 최초의 완독 실패작이다. 물론 어떻게 해서든지 끝마칠 수는 있겠으나 독자가 이해하지 못하는 독서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170여 페이지의 단촐한 구성에 자신만만하게 분수도 모르고 덤벼든 독자의 잘못이 물론 제일착이다. 하지만 반론이 만만치 않다. 해설에 따르면 ‘논의전개의 탁월함’과 ‘질풍노도적 문체’라 압권이라고 하였다. 하지만 첫 70여 페이지를 아무리 읽어도 이 두가지가 내게는 전혀 실감나지 않는다. 간혹 기발한 논리와 뛰어난 문학적 표현이 돋보이는 부분이 있긴 하지만, 논의전개를 따라가기엔 내용 파악이 매우 어렵다.

 

나는 진실로 묻고 싶다. 헤르더도 악명높은 독일 철학자답게 역시 난삽하고 현학적인 표현으로 자신을 위장하고 있는가. 아니면 원저의 아름답고 탁월함을 역자가 제대로 살려내지 못하고 딱딱함과 난해함을 배가시키고 있는가. 그것도 아니라면 결국은 역부족에 과감하게 도전한 나의 무모함과 무지탓인가.

 

애초에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헤르더의 『인류의 역사철학에 대한 이념』문고판을 읽다가 좀더 폭넓은 이해를 도모하려고 집어들게 된 것이다.

 

나중에 혹시라도 헤르더의 사상에 대한 기초지식을 갖출 기회가 된다면, 다시 도전하여 실패를 만회하고 싶다.

 

- 2003.02.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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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자누스 2012-04-09 2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행히도 다른 번역자의 책이 있네요. 비교해보아도좋겠씁니다,


언어의 기원에 대하여 ㅣ 한길사 한국연구재단 학술명저번역총서 서양편 7
요한 고트프리트 폰 헤르더 (지은이), 조경식 (옮긴이) | 한길사 | 2003년 1월
 

[제대로 돈을 쓸 줄 아는 사람의 소박한 삶]

 

예산조정팀에서 대외협력부로 발령받은 지 얼마후, 최병순여사 추모식에 갔었다. 막연히 학교에 돈을 많이 기부하신 양반이구나 하는 느낌외에는 없는 상태였다. 거기서 내가 여사의 약력을 소개하는 역할을 하였다. 그런지 며칠후 사무실 보관장에서 무언가를 찾다가 이 책을 발견하게 되었다. 할머니가 기부하시고 눈을 감으신지 얼마후에 발간된 책이다.

 

가끔씩 언론매체의 한 구석을 장식하는, 일생을 힘들에 모아온 재산을 노년에 학교나 자선기관에 기부하는 사람들의 훈훈한 미담이 있다. 대개는 나처럼 그냥 훌륭한 분이군하고 넘길 것이다. 정말로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야 그 분들의 이력을 통하여 얼마나 고단한 삶을 겪어왔는지 추측할 뿐이다.

 

이 책의 주인공인 최병순 할머니도 그런 분 가운데 하나다. 약력만 보아도 파란만장한 인생역경이 눈에 밟힌다. 초년 결혼 실패, 간첩죄로 장기 복역, 그리고 재혼 등. 80세를 넘긴 친자식 하나 없는 고독한 노인의 삶 중 소위 말하는 행복한 기간은 얼마나 되었을까.

 

그런 그는 자신의 전재산을 고려대학교에 기부하였다. 여기서 금액의 다과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1천억의 재력가에게 10억은 미미하지만, 10억이 전부인 사람에게 10억은 전재산이고, 그의 모든 것이다. 하지만 할머니는 훌훌 털어버렸다. 그것은 무소유의 삶이자 진정으로 돈을 쓸 줄 아는 모습이다. 종신에 임박해서야 비로소 욕심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를 깨달은 것이다. 그후 짧지만 행복한 마음으로 충만한 가운데 잔잔히 죽음을 맞이한다.

 

대개 이런 유형의 책들은 목적성이 뚜렷하다. 기부자의 삶을 아름답게 윤색하여 보여주기 일쑤다. 모든 자서전이 대개 그러하듯이. 여기도 할머니의 어린 시절부터 각종 역경에 찬 인생이 할머니 개인의 구술에 의해 서술된 탓에 가끔은 미화되지 않았을까 하는 의구심이 생기는 부분도 있다. 그리고 마지막에 고려대학교에 기부하는 경위는 솔직히 낯간지럽기 짝이 없다.

 

그럼에도 이런 유형의 책은 많이 권장되어야 한다. 그리고 홍보도 많이 해야 한다. 우리 사회는 제2, 제3의 최병순 할머니 같은 분들을 필요로 한다. 그 분들이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주기 위하여 급급하지 않고 정말 사회가 필요로 하는데 기부할 수 있도록 문화를 조성할 필요가 있다.

 

이 책이 좀더 고급스럽게 만들어졌다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리고 약력의 연도와 본문 내용의 연도가 불일치하는 점이 옥의 티라고 하겠다. 

 

- 2003.07.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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