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는 개인적으로 대학 은사이다. 대학원과는 달리 학부는 사제간의 관계가 미약하지만.그래서 아마도 나를 기억하시지는 못할 것이다, 나 또한 그렇게 뛰어난 학생은 아니었다. 한편으로는 직장에서 상하관계에 있기도 하다. 마찬가지로 최상층과 말단으로 접할 기회가 거의 없지만. 어쨌든 비서실을 통하여 간신히 한 권을 구하였다.

 

일종의 회갑 기념물로 얇은 책자를 내셨다는데, 벌써 연세가 접어드셨구나 생각하니 소회가 새롭다.

 

1부는 시편이다. 언제부터 시를 쓰셨는지, 그 중 '물방울'은 신작 가곡으로 작곡까지 이루어진 작품이다. 하긴 꼭 전문 시인만이 시를 써야 된다는 것은 지나친 엄숙주의의 발로다. 생활속에서 누구나 시적 감흥을 글로 표출할 수 있다. 그렇더라도 지속적인 관심과 흥미가 없이는 이처럼 갈고 닦는 작업을 소화하기 어렵우니. 최근 건강이 안 좋으신 탓인'지 소재가 과거를 지향하고 있다. 어릴적 아려한 추억들, 그리고 가슴 뭉클한 감상. 엄숙한 학자에게서 발견하는 뜻밖의 부드러움. 왠지 애틋함이 배어나온다.

 

2부는 '소설적 수필편'이라고 명명하였다. 선악과 이야기, 클론의 세계, 언문과 세종대왕 등 콩트에 가까운 분량의 수필을 소설 형식을 빌려 사용하고 있다. 저자는 글쓰기를 좋아하나 보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런 글을 쓰기가 쉽지 않다. 소설인 듯 수필인 듯 분간하기 어려운 속에서도 이야기의 진행구조는 머리속에서 가다듬고 구성한 결과물이다.

 

3부는 '영화, 드라마 시청 소감'이다. 드라마 '아내'의 열렬한 시청자임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콰이강의 다리', '에바와 페론' 등을 감상하며 느낀 소회를 토로하였다. 학자도 사람인 이상 이것저것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기울인다. 대통령이라고 TV 드라마를 봐서는 안된다면 참으로 곤란하지 않을 수 없다. 다만 보더라도 항상 한 발자국 떨어져서 자신의 관심분야와 접목시켜 보고 있음을 알게 된다. '콰이강의 다리'만 하더라도 이를 수평적 리더십과 연결하여 관찰하고 있다.

 

4부는 약간의 전문성이 가미되어 정보격차와 위원회 운영에 대한 제언을 하고 있다. 실물 세계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사이버 공간에서 우위를 점하여 반목 갈등이 심화된다면 이러한 정보격차가 결국은 사회적 불안정을 야기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전자정부특별위원회가 성공하였던 요인 분석을 하고 있다. 위원회는 전면에 나서지 말아야 함을 따끔하게 지적한다. 작년 가을에 발간된 책에서 작금의 '동북아위원회' 사태의 원인을 이해하게끔 단초를 제공하고 있으니 고맙다고 해야 할까.

 

한 개인의 비상업적, 신변잡기적 글들을 모아 놓은 책이므로 다수의 관심을 끌 수는 없다. 그리고 흥미진진하게 몰입을 끌어당기지도 않는다. 하지만 저자에 대하여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저자에게 이런 면이 있구나 하는 의외의 놀람과 기쁨을 누리게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