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중에 온 이사람에게도 : 생명의 경제학 - 개정판
존 러스킨 지음, 곽계일 옮김 / 아인북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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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러스킨은 내가 경애하는 작가다. 예술평론가로서도 탁월하지만 후세에 남긴 그의 영향은 단연 사회사상가로서이다. 알랭 드 보통의 <불안>에 소개된 내용을 본 이후 김석희 번역본을 두세 번 읽었는데, 대강의 내용은 어렴풋하게 다가왔지만 명확하게 이해되지 않는 답답함을 느낀 채 방치하였다. 수년이 경과한 시점에 새로운 번역본으로 재차 도전해 본다.

 

이 책은 전통적인 주류 경제학에 대한 반론이다. 그가 보기에 아담 스미스에서 비롯하여 리카도를 거쳐 존 스튜어트 밀에 의해 집대성된 경제학-러스킨은 상업경제학이라고 부르는데-은 학문의 목적 자체를 잘못 지향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 인간과 사회를 다루는 학문인데 인간이 아닌 사물과 로봇을 가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난 단지 뼈 없는 인간을 가정한 체조학에 관심이 없듯이 영혼 없는 인간을 가정한 경제학에 관심이 없을 뿐이다. (P.27)

 

전통경제학은 수요와 공급에서 출발한다. 보이지 않는 손의 중요성이 이어진다. 판매자는 최고의 가격에 재화를 판매하는 게 당연하고, 구매자는 최저의 가격에 재화를 구매하는 게 합리적이다. 시장 구성원이 각자 최선을 다하려는 노력에 매진하는 와중에 발견하는 사실은 적정한 수준의 가격보다 높거나 낮을수록 일방에게는 커다란 이익이 된다는 점이다. 나의 이익이 상대방에게 어떤 결과를 헤아릴 필요 없이 가능한 가장 큰 이익을 구하는 게 사회적으로 용납되고 오히려 권장되기조차 한다. 따라서 고용주와 고용인은 대립하는 상호 이해관계에서 갈등이 증폭되고 전투적인 관계로 악화되기 마련인데, 러스킨은 이러한 관계를 거부한다.

 

고용주와 고용인이 바람직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서로에게 최대 이익을 안겨 줄 수 있는 비밀은 바로 정의와 애정이다. (P.32)

 

작가는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앞서 온 노동자들과 동일한 임금을 지불하라고 말한다. 언뜻 이해되지 않는다. 먼저 와서 성실하게 일한 노동자와 게을러서 늦게 온 노동자에게 똑같은 대우를 한다면 누가 성실하게 일하겠는가? 이것이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보편적 인식룰이다. 러스킨의 미덕은 여기서 시작한다.

 

싼 가격의 상품이 고품질의 상품을 구축하고, 저렴한 인건비의 노동력이 비싼 노동력을 대체하는 현상을 우리는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소비자로서 한정된 예산으로 값싸게 지출하면 현명하며, 경영자로서 지출을 줄이기 위한 노력은 높이 평가할만하다. 이 모든 게 인간과 무관하다면 말이다. 무한정한 가격 경쟁이 벌어지면 노동자는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입을 얻지 못한다. 인간이 배제된 는 무슨 가치가 있는가? 이것이 러스킨의 질문이다.

 

의 이름 뒤에 감추어진 인간의 근본적인 욕망은 다름 아닌 타인에 대한 지배력이다. (P.72)

 

러스킨은 부를 정의의 관점에서 바라본다. 인간을 죽어가게 하고, 사회를 타락시키는 부는 참다운 부가 아니다. 부는 인간과 사회를 살아가게 하고 생명이 약동하도록 해야 한다. 그게 부의 본질이므로.

 

가치 있다는 말은 곧 생명에 유용하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진실로 가치 있고 유용한 것이란 바로 그 기능을 다해 인간을 생명으로 이끌어 주는 것이란 뜻이다. (P.156)

 

생명이 곧 부다이 생명은 사랑과 환희와 경외가 모두 포함된 총체적인 힘이다. (P.195)

 

이것이 러스킨의 경제학을 생명의 경제학이라 지칭하는 까닭이다. 인간과는 동떨어진 창백한 숫자로 표현되는 경제학이 아니라 인간과 사회에 정의로운 부를 구현하기 위한 경제학, 즉 정치경제학이 그의 관심사다. 나중에 온 노동자에게도 동일한 임금이 지불되어야 하는 이유 또한 여기에 있다. 노동자로서 품위 있게 살아가야 할 적정 수준의 임금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그의 삶은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며, 자신의 생존을 위해 가격경쟁력을 무기로 기존 노동 계층의 삶도 불안정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러스킨은 정당한 임금의 중요성을 이렇게 강조한다.

 

노동에 대한 공평하고 정당한 보수는 그 일을 하기 원하는 노동자의 숫자에 전혀 영향을 받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P.119)

 

그러면 부의 정당성과 부당성을 판별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러스킨은 정의의 역할이 그것이라고 생각한다. 부의 편중을 막고, 인간이 정신적으로 부에 함몰되는 것을 방지하는 것. 그에게 부와 정의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러스킨은 국가와 개인에게 각각 요구한다. 국가는 단순히 노동자의 고용 여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생명에 유용한 고용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다수의 국민이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는 국가가 부유한 국가라고 하면서. 개인도 마찬가지다. 최저 생존에 급급해하는 삶이 아니라 인간다운 삶, 온전한 생명을 누릴 수 있는 삶이 가능하도록 주장해야 한다.

 

그대여! 먹고 살 권리를 주장하되, 거룩하고 온전하고 순전한 삶을 살 권리를 보다 큰 목소리로 높여 주장하라. (P.201)

 

러스킨의 주장은 일견 사회주의와 유사하게 보인다. 전통경제학에 기반한 자본주의 비판에서는 맥락이 닿아 있지만, 사유재산권의 강화와 개인의 가치에 대한 중시에서는 결이 다르다. 영국 노동당의 정신적 지주가 그의 사상이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그럴듯하다. 게다가 그는 수동적인 개인이 아니라 개인의 적극적 노력을 강조하며 구체적으로 그가 무엇을 생각해야 할지 예시하고 있다. 전혀 생소하지 않고 근년 들어 유행하는 공정무역의 기치와 매우 흡사함을 알 수 있다. 이처럼 그의 사상은 과거완료형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다.

 

당초 잡지에 연재하다가 갑작스레 중단된 내용을 정리하여 출판한 게 이 책이다. 하나의 완결된 체계를 갖춘 저작이 아니기에 얼핏 산만해 보이지만 실은 고도로 함축적이고 예언적이다. 낯선 논의에 당황할 수 있지만 그의 문장과 주장에서 느끼는 따스함은 비할 데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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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 여인과 걷다 삼국유사 시리즈
정진원 지음 / 맑은소리맑은나라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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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고대사를 다룬 대표적인 두 역사서인 <삼국사기><삼국유사> 중 확실히 후자의 대중적 인기가 월등히 더 높다. 모 출판사는 세계문학전집 목록에 포함할 정도니까. <삼국유사>는 순수한 역사서 외에도 그 안에 수록된 시, 설화 등으로 인한 흥미와 문학사적 가치도 인기를 높이는 일조하였다. 이러한 점에서 이 책은 <삼국유사>의 여러 인물과 이야기 중 여성에 초점을 두고 파헤쳐 소개하고 있다. 여성 대상 불교 잡지에 연재하였던 연유로 불교적 내용과 함께 여성주의적 시각이 있음을 유념하고 읽으면 도움이 된다.

 

전체 개의 장으로 나눠서 첫째 장은 삼국유사 삼대 미녀인 수로부인, 도화녀, 선화공주 소개와 사금갑 고사의 재해석을 다룬다. 둘째 장은 개국시조 어머니들인 유화부인, 알영부인, 허황후를 부각한다. 셋째 장은 성모와 국모 격에 해당하는 선도산 성모, 지소태후와 신라의 세 여왕을 재조명한다. 넷째 장은 고승을 뒷받침한 여인들이며 마지막 장은 관세음보살을 집중 조명한다.

 

두 편의 향가 창작의 배경이 되었던 수로부인의 정체를 추적하면서 그녀와 신적 존재의 접촉은 단순한 납치 행위가 아니라 신령함을 얻기 위한 차원으로 해석하려는 시도가 새롭다. 서동요로 유명한 선화공주도 일방적인 뜬소문과 피해의 운명을 개척하여 당당히 백제 왕비로 거듭나는 모습을 부각한다. 이처럼 저자는 그동안 간과되었던 여성의 이야기를 발굴하여 새로운 관점과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주인공의 지위에 올려놓는다. 스쳐 지나갔던 역사 속에서 새삼 반짝이는 보물을 발견한 기쁨이 크다.

 

유화부인은 단순히 주몽의 어머니로서가 아니라 역사 속의 대모신이며, 박혁거세의 왕비인 알영부인은 사실상 신라 건국의 쌍두마차였다고 강조한다. 진흥왕의 어머니 지소태후가 어린 진흥왕의 섭정이었음과 미실을 능가하는 화려한 행적을 통해 신라의 국모였음도 웅변한다. 선덕여왕의 뛰어남에 관한 확인과 함께 무시당하고 폄훼된 진덕여왕과 진성여왕의 실체가 사서 기록과 다를 가능성도 제기한다.

 

많은 여성의 이야기가 모계사회에서 부계사회로 넘어오며 유실되거나 영웅성을 상실한 것은 사실이다. 여성의 역할을 바라보는 관점 자체가 바뀌었으니. 이를 역사상의 자연적 흐름으로 이해할 건지 아니면 남성의 고의와 음모가 야기한 날조와 왜곡 행위로 간주할 것인지는 완전히 다른 사안이다. 이 책에서 저자의 견해는 적어도 후자에 가깝다. 저자가 되풀이하는 문구가 있다. “<삼국유사> 속에는 훌륭한 남자 뒤에 항상 열 배 뛰어난 여인이 숨어 있게 마련이라는 사실을 상기하실 것.” (P.137). 연재 대상을 지나치게 고려하였던 때문인지 아니면 저자의 원래 성향인지 모르겠으나 저자는 잊히고 무시된 여성 인물의 제자리를 찾는 데서 한발 나아가 역할과 중요성을 더욱 힘주어 말한다, 때로는 무리라고 할 정도로.

 

선덕여왕의 일화인 여근곡과 옥문지 이야기는 역사적 사건과 성적 해석이 결부되어 일반인에게도 제법 알려진 일화다. 저자는 여왕의 탁월한 정치력을 강조하고자 하지만 나로서는 도저히 납득이 어렵다. 이 사건은 수천 명의 백제 군사가 아무도 모르게 신라 국토를 횡단하고 도성 가까이 급습하려고 매복해 있다는 게 핵심이다. 그토록 당시 신라의 국방력은 허약하기 그지없었다. 오죽했으면 자기 능력으로 해결 안 되어 수모를 받으면서도 당나라의 힘을 빌리려고 생각했겠는가. 진덕여왕에 대한 해석도 마찬가지다. 저자는 즉위하자마자 반란을 평정하고 나당 동맹을 맺은 뛰어난 정치력을 지닌 과소 평가된 여왕으로 힘주어 말하지만, 갑자기 왕위에 오른 일개 여왕이 무슨 대단한 정치적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단 말인가. 진흥왕의 초반 업적을 모두 지소태후의 것으로 돌리는 것과 비교하면 모순된 태도에 가깝다. 진덕여왕은 역시 허수아비로 보는 게 맞다. 하물며 진성여왕은? 그녀가 능력자라면 쇠망하던 신라를 중흥시켰을 테지만 역사는 그렇지 않음을 이미 보여주었다.

 

박혁거세에 가려 이름만 남아 있던 알영은 단순히 알영부인이 아니라 신라 건국의 이성(二聖), ‘알영여왕으로서 당당히 신라역사를 열었던 그 위상을 다시 회복해야 할 것이다. (P.62)

 

한 가지 역사적 사실에 다양한 변주로 전해지는 이야기는 당시 사람들의 염원을 투영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게 애닯게 죽었는데 성모나 신모가 되었으면 좋겠고 망부석이라도 남아 기릴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P.89)

 

알영부인에 대한 새로운 해석 가능성, 혁거세와 알영을 낳은 선도성모와 서라벌의 선도산 성모, 그리고 지리산 노고단의 주인공의 연관 관계는 흥미롭다. 망부석이 된 줄 알았던 박제상의 부인이 이야기 갈래에 따라 여러 가지 운명으로 달라지는 대목에서는 설화의 속성과 함께 당대인의 바람도 엿볼 수 있어 유익하다. <화랑세기>에 전하는 지소태후의 대단한 행적은 새삼 말할 것도 없고 신라 불국토 프로젝트를 위해 애쓴 미실과 선덕여왕, 그리고 자장율사의 이야기는 새롭다. 의상대사, 원효대사에, 김유신의 남매 이야기는 원래 유명하지만.

 

신라의 본격적인 여왕 제도 시행에는 지소태후의 섭정이라는 막강한 성공 배경이 뒷받침되고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볼 수 있다. 그야말로 지소는 신라의 왕과 여왕을 길러낸 명실상부한 신라의 어머니, 신라의 국모인 것이다. (P.99)

 

저자가 <삼국유사> 속의 자잘한 이야기를 발굴하고 다듬어서 세상에 소개하는 까닭은 스스로도 밝혔듯이 풍부한 문화유산 콘텐츠로 자리 잡고 이것이 문화적 한류로 이어지기를 바라는 의도임은 프롤로그와 본문 속에서 거듭 확인할 수 있다.

 

<삼국유사>를 읽다보면 지자체의 문화콘텐츠, 그 중에서도 역사문화 콘텐츠를 새롭게 발굴하거나 조성할 수 있고 그 내용을 연관 지을 수 있는 K-Culture 내용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필자는 K-Culture의 바탕이 삼국유사와 같은 K-Classic에 있음을 지속적으로 세상에 알리고자 한다. (P.21)

 

확실히 이 책을 보면 <삼국유사>에 이런 인물 또는 이야기가 있었나 싶은 소재를 저자가 잘 소개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읽은 지 한참 된 <삼국유사>를 다시 정독해 보고 싶은 욕구마저 생길 정도다. 이 책의 미덕이 부차적 요인으로 가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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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사전 - 중국의 전설
선용 엮음, 홍의남 그림 / 신아출판사(SINA)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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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4대 민간전설의 하나로 유명한 설화다. 일전에 중국 신화와 전설, 지괴소설에 관심을 가졌을 때 언급되었는데 의외로 국내에 번역본을 찾기 어려웠다. 지금도 시중 서점에서 백사전을 검색하면 학습만화를 제외하면 이 책이 유일하다. <중국 민간전설 백사전>은 자세한 정보가 나와 있지 않은데 도서관에서 직접 확인한 바에 따르면 백사전 연구 논문이다. 지금 이 책도 아동문학선의 하나로 출간된 만큼 아쉬움이 있지만 원작을 대강이나마 맛본다는 측면에서 대안이 없다.

 

전생에 자신의 생명을 구해 준 은혜를 갚기 위해 여인으로 변신하여 은인의 아내가 되는 천년 묵은 흰 뱀 백소정. 허선은 아내의 도움으로 약국 종업원에서 당당한 약국 주인으로 변신하게 되고 두 사람은 행복하게 살아갈 날만 남았다. 정말 그럴까. 중국 설화에서 중대한 금기사항 중 하나는 요괴가 인간 세상에서 인간처럼 사는 일이다. 인간으로 변신한 요괴의 선과 악은 여기에서 중요한 고려사항이 아니다. 서로의 영역이 분명하기에 어울려서는 안 되는 존재들의 교유는 세상 만물의 원리와 질서를 흩뜨리기에 엄한 처벌을 받기 마련이다.

 

백소정은 머리를 저으며 말했다.

너를 원망하는 것이 아니야. 우리에게는 우리들만의 세계가 따로 있는데 와서는 안 될 인간 세상으로 와서 괜한 근심거리를 만든 거야.” (P.135)

 

백소정도 마찬가지다. 그녀가 허선과 결혼하고 의원과 약방을 차려 병자를 구제하는 일체의 행위는 오로지 세상을 구제하려는 자비심의 소산이다. 그녀가 비록 요괴라고 하지만 세상에 해를 끼치는 사례를 여기서는 찾아볼 수 없다. 허선과 백소정은 이 이야기에서 오로지 선한 캐릭터로 존재한다. 백소정이 딱 한 번 세상을 뒤흔든 경우가 있는데, 법해 선사로부터 자신의 남편을 되찾기 위한 몸부림의 일환이었다. 그녀로서는 자신의 존재의의가 사라지는 것이므로 도저히 묵과할 수 없었으리라. 그러기에 관세음보살이 나타나서 법해 선사와 천신들과, 백소정과 소청의 무리 사이에서 중재에 나섰던 것이다.

 

이 전설의 기본 바탕은 매우 불교적이다. 백사가 깨달음을 얻기 위해 천년 동안 수행을 한다는 설정 외에 법해 선사라는 지극히 도력이 높은 스님의 존재, 그것도 모자라 결정적인 순간에 등장하는 관세음보살 등. 한편 도가적 분위기도 무시할 수 없다. 백소정의 정체를 처음으로 허선에게 일깨우는 도사, 의식을 잃은 허선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백소정이 영약을 구하려고 찾아가는 신선들이 사는 선산 등.

 

허선과 백소정이 대체로 점잖고 온화하며 수동적인 인물인 데 비해, 소청은 이야기에 활력과 생기를 불어넣는 인물이다. 푸른 뱀이 변신한 소청은 비록 도력에서는 백소정에 딸리지만 호수의 물과 바람을 자유자재로 부릴 줄 아는 능력자다. 그녀가 허선과 백소정을 엮어주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은 지극정성이다. 성격이 직설적이고 자유로우면서도 화려한 언변에 뛰어난 재치를 겸비한 매력적인 캐릭터라고 하겠다.

 

언니, 설마 우리에게 며칠 더 함께 살 수 있는 인연이 없는 것은 아니겠죠?”

물론 있지. 그러나 인연이란 영원히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니야. 만나야 하는 인연이 있다면 우리는 언제인가 또 만나게 될 거야!” (P.36)

 

편자도 그렇고 작중 인물들도 그러하고 인연의 의미를 강조한다. 인연은 불법의 종교적 의미로서도 중요하지만, 세속적 관점에서도 깊은 중요성을 지닌다. 허선과 백소정의 만남은 전생에서부터 예정된 인연이었고, 백소정과 소청의 만남도 마찬가지다. 허선과 백소정의 결합은 인연의 때가 이르지 않았음에도 무리하게 앞당긴 부작용으로 인해 법해 선사가 상황 정리에 나서게끔 하는 빌미가 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연분이 없다는 것입니까?”

있지요. 분명 연분은 있습니다만 그녀가 수행을 다 끝내고 진정한 깨달음을 얻었을 때 두 사람은 서로 만나 함께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은 때가 아니랍니다.” (P.157)

 

자체로서는 종교, 사랑, 그리고 환상이 결합한 흥미로운 전설이지만 납득이 가지 않는 설정으로 설득력이 떨어지는 대목도 있다. 관세음보살과 법해 선사는 시종일관 백소정의 잘못을 지적한다. 천년 수행을 해서 깨달음을 얻어야 하는데 수행을 도중에 파하고 인간 세상에 침입하였다고 말이다. 여기서 묻고 싶다. 흰 뱀인 백사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천년이란 긴긴 시간을 엄격한 수행을 해야 하는가를. 수행 끝의 깨달음은 백사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를. 이 책에서 관련하여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는다. 다만 수행은 무조건적이 절대적인 의미를 지니며, 이를 중도에 깨는 것은 금기이기에 무슨 일이 있어도 계속되어야 한다. 백소정이 남편과 아이와 영원히 헤어지더라도 말이다. 그리고 단오절에 소청은 산속으로 들어가 숨는다. 그 덕분에 허선은 백소정에게 웅황주를 마시게 할 기회를 얻는데, 소청이 숨어야 하는 연유는 이 책에서 알려주지 않는다.

 

관세음보살은 영단 한 알을 꺼내주며 말했다.

너희들이 이미 부부의 연을 맺었으니 어쩔 수 없구나. 내가 한 번만 도와주지. 이 영단을 그에게 먹이면 바로 깨어날 것이다. 그리고 너는 인간 세상에 오래 머물면 안 된다. 빨리 산속으로 되돌아가서 하던 수행을 계속 하여라.” (P.149)

 

백사전 전설은 불교적 관점에서는 해피엔딩이다. 백사도 원래 수행으로 돌아가고, 청사 역시 수행의 길에 나선다. 법해 선사는 허선을 출가승으로 만들 계획을 품고 있다. 모두가 불도의 세계에 들어서니 참으로 좋은 일이다. 인간적 관점에서 바라보면 전혀 다르다. 요괴와 인간이라는 존재의 형태를 떠나 부부간의 사랑, 부모와 자식의 천륜을 냉혹하게 끊어버리는 종교의 냉혹함이 두드러진다. 천년 수행이 과연 백사의 자발적 의사인지 알 수 없다. 인간 세상에서 숨어버리려는 청사는 법해 선사에 잡혀 반강제적으로 수행의 길에 들어서게 된다. 허선의 의사에 관계없이 선사는 허선을 출가승으로 만들 생각을 품고 있다.

 

독서 대상을 아동을 염두에 두고 이야기를 엮었기에 원작 전설의 풍요로운 원형이 얼마만큼 유지되었는지 알기 어렵다. 백사전 전설의 줄거리와 중요 사건들이 대강이나마 들어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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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 밖을 나서다 역사지리학자와 함께 떠나는 걷기여행 특강 2
이현군 지음 / 청어람미디어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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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가 <옛 지도를 들고 떠나는 걷기 여행 특강 2>라고 되어 있다. 전작인 <옛 지도를 들고 서울을 걷다>의 후속작임을 강조하는 뜻이다. 이 책이 여타 답사 서적과 차별되는 지점은 지은이가 역사지리학자라는 데 있다. 역사와 지리, 내가 깊은 관심을 두고 있는 대표적인 두 영역이다. 양자의 결합이라면 매우 흥미로울 수밖에 없다.

 

저자는 후속작에서 서울 도성 밖을 나선다. 경계가 사대문을 벗어나 주변으로 확산하는 과정은 한양이 서울로 변하는 근현대사와 일맥상통한다. 오늘날 서울의 근원이 사대문 안쪽이라는 사실은 변치 않지만, 서울의 실질적 중심부는 더는 아니다. 도성 밖의 면적과 거주하는 인구만 헤아려 보아도 서울 사람 대부분은 성 밖 주민들이다. 성 밖의 서울을 살펴볼 이유는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서울은 넓다라는 관점으로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서울의 역사적 변화과정은 공간적으로 넓어지는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넓어지면서 한양과 달라진 도시가 서울특별시입니다. (P.11)

 

천만 인구가 서울에 거주한다. 수도권이라 지칭하는 서울에 기대어 사는 인구까지 합치면 어마어마한 숫자다. 이들은 서울의 역사에 대하여 무엇을 알고 있는가. 조선 시대 사대궁궐을 열거하고, 사대문의 이름을 언급할 줄 안다면 박식한 축이다. 자신이 사는 지역-서울에는 25개 구가 있다-에 대해서는 아마 거의 모를 것이다. 내가 나고 자란 고향의 이미지라기보다 단순 거주와 재테크의 관점에서 자신이 사는 집을 바라보는 게 요즘 세태다. 자신이 임시로 머무는 공간에 굳이 관심을 기울일 까닭이 없다.

 

지리학의 관점, 공간과 장소의 맥락에서 서울을 나누어 봅시다. 저는 서울을 네 영역으로 나눕니다. 사대문을 기준으로 한 도성 안, 한성부에 포함되었지만 도성 밖에 해당하는 지역, 한강, 현재 서울특별시에 포함되는 조선시대 경기도 지역으로 나뉠 수 있습니다. (P.20)

 

서울을 역사적으로, 지리적으로 독자에게 친밀하게 소개해주는 게 이 책의 미덕이다. 내가 사는 동네가 조선 시대에는 어떤 이름으로 불렸고, 시대의 흐름에 따라 이합집산하다가 현재의 모습이 되었는가를 저자는 차분한 어조로 들려준다. 일종의 향토사적 접근이 될 수도 있겠다. 여하튼 조선 시대의 한양과 비교하면 오늘날의 서울은 매우 거대한 도시다. 서울의 팽창과 함께 경기도는 계속 축소되었다. 그게 아주 오래전이라 아니라 좀 멀게는 1960년대에서 가깝게는 1980년대까지 이어졌다. 서울 끄트머리의 동네는 대부분 최근에야 특별시에 편입된 곳이다. 한 끗 차이의 운이 서울과 서울 아닌 곳의 경계가 되었다.

 

25개구 이름이 서울의 모든 역사를 담고 있지는 못하지만, 서울이 어디에서 유래하였고 어떤 과정을 거쳐 현재의 모습이 되었는지를 보는 데는 구 명칭과, 언제 이 구가 생겼는지, 서울의 어느 방향에 있는지, 그 구에 어떤 건물이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P.26-27)

 

단순히 말로만 설명하면 와닿지도 않고 지루하기 마련이다. 저자는 지도를 활용한다. 해당 지역을 소개할 때면 서두에 남아있는 대동여지도, 도성도, 지방 지도 등을 활용하여 옛날의 지역 모습을 가시적으로 보여준다. 여기에 현대 지도와 사진 자료를 곁들여 시대적 간극을 비교하여 독자의 머릿속에 공간적 인식을 일깨운다.

 

아무래도 지명에 얽힌 유래를 비로소 알게 되고 새삼 머리를 끄덕이며 당대와 현재의 모습을 머릿속에서 비교할 때 흥미로움이 더 커진다. 몇 가지를 언급하면 경마장이 과천으로 옮겨지기 전에 뚝섬에 있었던 까닭이 우선 그러하다.

 

중랑천 동쪽의 뚝섬 일대에 많은 목장이 있었습니다. 옛 문헌에 양주 살곶이 목장이라고 적힌 곳이 현재의 중랑천변 뚝섬 일대입니다. 한양대에서 건국대 사이에 옛 목마장이 있었다고 보면 됩니다. 경마장이 과천으로 옮겨지기 전까지 경마장은 서울숲에 있었습니다. (P.84)

 

성동구 지역에 응봉이란 지명이 무슨 뜻일까 궁금하게 여긴 적이 있었다. 이 책에서 비로소 알게 되었다.

 

뚝섬과 아차산 일대는 조선시대에 왕의 사냥터 역할도 하였습니다. 도성과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고 숲과 산이 있으니, 왕이 매사냥하기에 적합했을 듯합니다. 당시 최고의 전통적인 여가는 매사냥이었습니다. 응봉, 매봉 같은 지명은 매사냥과 관련이 있습니다. (P.86)

 

경기도 시흥시와 서울시 금천구의 시흥동을 계속 헷갈렸다. 무슨 인접한 지명을 혼동하게끔 동일한 명칭을 사용하는지 한심해한 적도 있다. 저자에 따르면 금천과 시흥은 원래 같이 지역이었는데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갈라지면서 비슷한 이름을 사용하게 되었다고 한다. 서울 동작구에 보라매공원과 보라매병원이 있다. 볼 때마다 이름이 특이하다고 생각하였다. 이 역시도 이 책을 통해서 유래를 확인할 수 있었다. 여의도공원의 전신이 국제공항이었다가 공군기지였으며, 보라매공원에 공군사관학교가 있었다는 사실도. 역시 뭐든지 사유는 있게 마련이다. 그것을 알면 흥미롭고 더욱 친근하게 다가온다.

 

지금은 잊힌 옛 서울의 흔적도 지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저자는 저자도(楮子島)를 알려준다. 이름만 섬인 뚝섬의 동남쪽에 있는 진짜 섬이었는데, 강남개발 당시 이 섬의 흙을 퍼서 사용했기에 사라지고 말았다는 비운의 섬이다. 당시의 기준으로 보면 불가피하였겠지만 오늘날 시각으로 보면 그 섬이 남아있었다면 어떠했을까 궁금하고 아쉽다.

 

한양 남쪽 7리쯤 되는 곳에 용산호가 있다. 옛날에는 한강의 본줄기가 남쪽 기슭 밑으로 흘러가고 또 한줄기는 북쪽 기슭 밑으로 돌아 들어와서 십리나 되는 긴 호수였다. 서쪽으로는 염창의 모래 언덕이 물을 막아 물이 흐르지 않아 그 안에서 연()이 자랐다.” (P.120)

 

<택리지>의 기록이다. 용산 지역에 길다란 호수가 있었다니 도저히 상상이 안 간다. 한강의 물길이 이렇게 큰 변화가 있었다니 말이다. 한강도 황하만큼이나 다스리기 어려운 존재였나 보다. 석촌호수가 그걸 알려준다. 나는 석촌호수가 완전한 인공호수인 줄 알고 있었다. 1895년대의 잠실 인근 지도를 보면서 깜짝 놀랐다. 오늘날의 한강 흐름과는 전혀 달라서였다.

 

1925년 을축년 대홍수 이후에는 위쪽으로 더 큰 물길이 지나갑니다. 이 물길이 현재 잠실 북쪽으로 지나는 한강입니다. 옛 물길이었던 곳이 지금의 석촌호수입니다. 옛 물길은 남쪽으로 흘렀기에 잠실은 한강 북쪽의 경기도 양주군에 속한 지역이었습니다. (P.197-198)

 

원래 섬이었던 잠실은 1970년대 한강 개발을 통해 내륙이 되었다고 하며, 그때 막은 물길이 석촌호수였다고 한다. 불과 수십 년 후 잠실과 비교하면 상전벽해가 전혀 과장이 아니다.

 

솔직히 이 책을 들고 서울 곳곳을 걷고 답사하기는 무리다. 도성 안과 비교하면 걷기에 광활한 지역이다. 그저 일부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거주하는 주변 정도만 둘러봐도 충분하다. 나머지는 우연히 해당 지역에 갔을 때 그 지역에 대한 기억을 떠올려도 의의가 충분하다고 본다. 저자의 말처럼 지나가 버린 과거를 되돌릴 수 없으며, 옛날의 기억에만 집착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어쩌면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동대문 밖이 예전에는 모두 경기도 양주였다는 사실, 오늘날 강남은 경기도 과천과 광주에 속한 지역이었다는 사실 등이다. 한양에서 서울로의 확장은 우리나라에 자본주의가 확산하고 지배이념으로 자리 잡은 시기와 맞물린다. 서울과 비서울, 강남과 비강남으로 첨예하게 이해관계가 엇갈리는데 과거에는 한 지역이었다는 공유 기억이 지역 간 갈등 완화에 이바지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것이 옛 지도를 보고 옛 추억에 잠겨 회고적 관념으로 퇴행하지 않는 동시에 서울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서도 유의미하리라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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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네트 셰익스피어 전집 337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신정옥 옮김 / 전예원 / 2011년 3월
평점 :
품절


소네트라는 시 형식에 대해서 들어본 적은 있지만 직접 해당 작품은 처음 읽는다. 작품해설에 따르면 엄격한 운율 구성과 특정 구조를 가진 14행의 시”(P.164) 유형이라고 한다. 아마도 이탈리아와 영국에서 보편적인 인기를 끌었던 듯하며 잉글랜드식 소네트의 대표 시인이 바로 셰익스피어다. 그의 소네트는 모두 154편이 전한다.

 

세 개의 4행과 2행으로 귀결되며 abab cdcd efef gg의 운율의 14행 연구시는 16세기에 셰익스피어식 소네트라고 불리며 이탈리아식-페트라르카식과 대별되는 소네트의 대상과 표현방식으로 보급되었다. (P.166)

 

당연히 번역과정을 거치므로 원무의 운율 구성은 눈으로 파악할 수 없으며, 단지 14행의 구조를 외형으로 확인할 수 있다. 내용상으로 볼 때 그의 소네트는 추상적이지 않고 구체적이며 주로 시인의 생각과 감정을 토로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어 대체로 이해에 어려운 편은 아니다. 순서대로 읽어나가다 보면 개개의 시편이 독립적이기보다는 전체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셰익스피어의 소네트는 한 미남청년을 향한 시인의 변함없는 사랑을 담고 있다. 중년 남성 시인과 여자 못지않게 아름다운 미남청년의 사랑은 언뜻 동성애를 떠올리게 한다. 실제로 시인의 사랑의 감정 서술과 묘사는 너무나도 아름답고 애틋하여 남녀 간 사랑의 감정과 밀도를 능가할 정도다. 일방적 사랑이 아니라 양자 간의 사랑은 평탄하지 않게 마련이다. 오해와 서운함이 켜켜이 쌓이면 갈등으로 증폭되며 분노와 미움이 시너지 화하여 회복할 수 없는 다툼과 감정의 벽이 생기는 사례도 빈번하다. 이 소네트집에서는 그러한 감정의 파랑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어 독자를 더욱 절절히 공감하게끔 하고 있다.

 

시인은 청년의 빼어난 미모가 너무나 아깝다. 그가 나이 들면 미모도 스러지게 마련이며 그가 죽으면 다시는 재생 불가능하다. 시인은 청년에게 결혼하라고 되풀이 권유한다. 청년처럼 우수한 유전자를 지닌 인물의 권리이자 의무는 자손을 후대에 남기는 것이라고. 소네트 1편에서 17편까지 이러한 내용을 담고 있다.

 

아름다움이라는 장미가 죽지 아니하도록 함은

아주 아름다운 사람들이 번식하도록 소망하는 지라,

그러나 나이든 자가 때가 되어 죽은들,

젊은 자손이 그의 모습을 이어받으리. (P.9, 1)

 

아무래도 미남청년은 결혼에는 아직 관심이 없는 모양이다. 결혼 권유가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시인은 자신이 직접 글로써 청년의 미모를 증거하여 후대에 남기려는 소망을 품는다. 그래야 후인들도 미남청년 같은 유일무이한 완벽한 아름다움의 소유자가 실존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지 않겠는가. 물론 제아무리 뛰어나게 묘사하더라도 문장은 한계가 있겠지만 없는 것보다는 나을 테니까. 시인이 그런 노력을 자신의 필생의 의무라고 생각하며, 소네트 18편부터 이후에 해당하는 시편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대리석도, 왕후의 금빛 찬란한 기념비도

이 힘찬 시보다 오래 살지 못하리라.

그러나 그대는 오욕된 세월에 더럽혀진,

씻지도 않은 비석보다는, 이 시 속에서 더욱 밝게 빛나리라. (P.63, 55)

 

미남청년을 향한 시인의 일편단심 사랑은 지칠 줄 모르며 그에 대한 찬가는 제아무리 읊어도 지겨워할 줄 모른다. 시인은 그에 대한 사랑을 우상숭배라고 폄하하지 말라고 요청한다. 서양 사회에서 기독교에서 신에 대한 끝없는 종교적 찬미와 여성을 향한 세속적 예찬만이 정상적으로 용납된다고 볼 때 소네트 시인의 미남청년 숭배는 양자의 열정과도 흡사하다.

 

나의 사랑을 우상숭배라 부르지 마오.

나의 애인을 우상시한다고 하지 마오.

나의 노래와 찬사는 한결같이

오직 한 사람에게, 오직 한 사람을 위하여 하는 것이니. (P.113, 105)

 

두 사람의 사랑 관계에 변화가 발생한다. 시인의 시재(詩才)를 능가하는 더욱 뛰어난 새로운 시인이 등장하여 미남청년을 향한 찬미가를 짓기 시작한다. 미남청년도 보다 새로운 시인의 신선미와 작법에 마음이 쏠리는 모양이다. 시인은 분노와 절망이 교차하는 씁쓸한 감정 상태에 놓이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자신이 봐도 새로운 시인은 한층 탁월하므로. 자괴감에 빠진 그는 스스로 물러나고자 한다, 다만 한가지는 밝히고. 자신이야말로 시류에 흔들리지 않고 오직 순수하고 진실함에서 우러나는 애정에 바탕을 두고 미남청년을 향한 시를 지었음을 자부한다고. 따라서 자신을 멀리하길 원한다면 근처에 머물지 않을 것이며, 자신을 미워하고 싶다면 마음껏 미워하라고 자신은 결코 그를 원망하지 않고 진실한 마음을 지닐 것이라고 하며.

 

이제는 나의 우아한 시는 쇠퇴하리니,

병든 나의 시신은 다른 자에게 가버렸다오.

사랑하는 임, 그대의 사랑스러움을 주제로 하여

보다 훌륭한 시인이 맡아서 수고할 일이오. (P.87, 79)

 

어디 미남청년에게만 일이 생기랴. 시인에게도 새로운 애인이 생긴다. 그녀는 미남청년과는 여러모로 대조적이다. 남성과 여성이라는 성별의 차이를 논외로 하더라도 하양과 검정, 밝음과 어두움, 정신과 육체, ()과 색() 등 차이가 너무나 뚜렷하다. 검은 여인은 미남청년의 변심에 다소 지친 시인의 마음을 비집고 들어와 그를 사로잡아 버린다. 시인의 맑은 이성과 올바름을 지향하는 본성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향한 거역할 수 없는 이끌림에 저항도 거부도 하지 못한 채 그는 빠져든다. 타락이라고 하기 어렵지만 분명히 지금껏 시인의 가치관과는 배치되는 그녀의 존재는 시인의 상념에 계속적으로 물결을 일으킴은 분명하다. 그리고 그가 완전히 매혹되었음도.

 

옛날에는 검은 빛을 아름답게 여기지 않았으며,

그렇다고 하여 미라고도 부르지 않았노라.

그러나 지금은 검은 것이 미의 정통 상속자이니,

미는 서자라는 오명으로 비방되노라. (P.135, 127)

 

검은 여인은 미남청년과 시인의 관계에서 새로운 국면을 전환하는 인물인 동시에 양자 관계를 삼자 관계로 심화, 확대, 변질시키는 존재다. 검은 여인은 엄격한 도덕률에 연연하지 않는다. 그녀의 비일상적이고 자유로운 영혼은 많은 남자를 일거에 매혹할 수 있는 강력한 페로몬과 같은 마력을 지닌다. 거기에 미남청년도 빠져들고 이를 바라보는 시인은 안타까움과 무력감에 좌절한다. 이런 내용이 소네트 127편에서 거의 끝 편에 해당하는 152편까지 담겨있다. 검은 여인에 대한 해석은 여러모로 생각해 볼 수 있다. 말 그대로 어떤 실체적 여성을 지칭하거나 아니면 이를 상징적 은유로 봐서 인간 내심의 선과 악 개념으로 접근할 수도 있으려니.

 

내게 애인이 둘 있으니, 위안과 절망이오며,

두 요정인 듯 언제나 나에게 소곤거리노라.

더 나은 천사는 수려한 남자요.

더 나쁜 요정은 빛이 검은 여자라. (P.152, 144)

 

영어 원작을 읊조리면 분명 이상의 내용이 운율적 외형과 부합하여 형용할 수 없는 감흥을 일으킬 것이라고 감히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번역문에 의지하는 제한된 접근을 통해서도 셰익스피어의 소네트가 갖는 매력의 가치는 절멸되지 않는다. 셰익스피어는 그의 40편에 가까운 희곡이나, 여러 시 작품들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현학적이거나 형이상학적 제재와 표현을 다루지 않았다. 그의 희곡은 철저히 무대 상연을 전제로 해서 관객들과 소통하기 위한 목적이며, 소네트와 다른 시들도 분명히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의도를 이야기체로 풀어놓거나 구술하기 용이한 언어를 사용하여 표현하였다. 셰익스피어라는 으리으리한 후광에 지레 겁먹을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게 그의 작품 완독을 마치는 소감이다.

 

 

부록

셰익스피어 전집에 따라서는 몇 편의 시를 추가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최종철(민음사)<불사조와 산비둘기>, 신상웅(동서문화사)<연인의 탄식>, <열정의 순례자>, <불사조와 산비둘기>, 이상섭(문학과지성사)<불사조와 비둘기>, <연인의 탄식>, <열정의 순례자>를 각각 수록하고 있다. 간과하기에는 아쉬운 마음에 이상섭 번역본으로 세 편의 시를 읽는다.

 

<불사조와 ()비둘기>는 새를 전면에 내세운 우화시다. 413연의 본문과, 35연의 애가로 구성되었는데, 한 쌍의 연인을 불사조와 비둘기에 비유하여 그들의 죽음을 사랑과 정절의 죽음으로서 애도한다.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진실한 결합의 한 쌍이 후손을 남기지 않은 것조차 고귀한 정절로 기리고 있는데, 작품 전반적으로 셰익스피어로서는 예외적으로 형이상적 뉘앙스를 풍긴다.

 

<연인의 탄식>747연의 제법 긴 분량의 이야기 시다. 미모의 청년에 굴복하여 애정을 바쳤으나 결국 배반당한 처녀가 애인의 변심을 원망하고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는 내용으로 시종일관하고 있어 이해하기 쉽고 흥미롭기조차 하다. 우월한 외모와 절묘한 어조와 그럴듯한 연기로 여러 처녀, 심지어는 수녀의 정조마저 후리는 바람둥이 청년의 거짓된 언행을 비난하고 처녀는 복수를 다짐한다. 압권은 마지막 연의 마지막 단락이다. 아무리 원망하고 미움이 가득하더라도 청년에 대한 연정의 끈을 처녀는 놓지 못한다. 마치 나쁜 남자에 빠져서 헤어나지 못하는 여자를 보는 듯하다.

 

그 모든 꾸민 감정, 꾸어온 표정이

한번 속은 여자를 다시 속이고

뉘우치는 처녀를 또다시 망치겠죠.

 

<열정의 순례자>는 셰익스피어 단독의 창작이 아니다. 여러 편의 시들을 수록한 시 선집이라고 할 수 있는데, 셰익스피어 자신의 작품은 물론 당대 몇몇 시인의 시들도 함께 포함하고 있다. 셰익스피어의 것도 순전한 창작보다는 소네트 중 일부, 희곡에 등장하는 소네트도 기꺼이 재수록하고 있다. 특히 비너스와 아도니스 이야기를 여러 편의 소네트로 삽입하고 있는데 장시 <비너스와 아도니스>의 관련성과 보완성 측면에서 흥미롭다. 오히려 여기에서 표현의 대담성이 두드러진다.

 

조금 전에 보니까 잘생긴 청년이

이 숲에서 멧돼지한테 허벅지에

깊은 상처를 입었는데 정말 끔찍하더라.

내 허벅지를 쳐다봐. 상처가 이쯤 되었어.

하면서 보여주니, 상처는 하나 이상이었다.

낯 붉힌 소년은 그녈 두고 달아났다.

 

여러 가지 가락에 맞춘 시편들이라는 소제목에 딸린 여러 편의 시들은 해학미가 돋보인다. 여하튼 모두가 사랑을 주제로 삼고 있음은 공통이다. 마지막의 우렁찬 노래를 부르는 새들애가<불사조와 산비둘기>와 전적으로 동일하다. 이 작품집은 수록작의 일관성보다는 다양성의 묘미를 즐기는 데 감상의의를 두어야 할 텐데 여전히 창작 배경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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