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사전 - 중국의 전설
선용 엮음, 홍의남 그림 / 신아출판사(SINA)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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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4대 민간전설의 하나로 유명한 설화다. 일전에 중국 신화와 전설, 지괴소설에 관심을 가졌을 때 언급되었는데 의외로 국내에 번역본을 찾기 어려웠다. 지금도 시중 서점에서 백사전을 검색하면 학습만화를 제외하면 이 책이 유일하다. <중국 민간전설 백사전>은 자세한 정보가 나와 있지 않은데 도서관에서 직접 확인한 바에 따르면 백사전 연구 논문이다. 지금 이 책도 아동문학선의 하나로 출간된 만큼 아쉬움이 있지만 원작을 대강이나마 맛본다는 측면에서 대안이 없다.

 

전생에 자신의 생명을 구해 준 은혜를 갚기 위해 여인으로 변신하여 은인의 아내가 되는 천년 묵은 흰 뱀 백소정. 허선은 아내의 도움으로 약국 종업원에서 당당한 약국 주인으로 변신하게 되고 두 사람은 행복하게 살아갈 날만 남았다. 정말 그럴까. 중국 설화에서 중대한 금기사항 중 하나는 요괴가 인간 세상에서 인간처럼 사는 일이다. 인간으로 변신한 요괴의 선과 악은 여기에서 중요한 고려사항이 아니다. 서로의 영역이 분명하기에 어울려서는 안 되는 존재들의 교유는 세상 만물의 원리와 질서를 흩뜨리기에 엄한 처벌을 받기 마련이다.

 

백소정은 머리를 저으며 말했다.

너를 원망하는 것이 아니야. 우리에게는 우리들만의 세계가 따로 있는데 와서는 안 될 인간 세상으로 와서 괜한 근심거리를 만든 거야.” (P.135)

 

백소정도 마찬가지다. 그녀가 허선과 결혼하고 의원과 약방을 차려 병자를 구제하는 일체의 행위는 오로지 세상을 구제하려는 자비심의 소산이다. 그녀가 비록 요괴라고 하지만 세상에 해를 끼치는 사례를 여기서는 찾아볼 수 없다. 허선과 백소정은 이 이야기에서 오로지 선한 캐릭터로 존재한다. 백소정이 딱 한 번 세상을 뒤흔든 경우가 있는데, 법해 선사로부터 자신의 남편을 되찾기 위한 몸부림의 일환이었다. 그녀로서는 자신의 존재의의가 사라지는 것이므로 도저히 묵과할 수 없었으리라. 그러기에 관세음보살이 나타나서 법해 선사와 천신들과, 백소정과 소청의 무리 사이에서 중재에 나섰던 것이다.

 

이 전설의 기본 바탕은 매우 불교적이다. 백사가 깨달음을 얻기 위해 천년 동안 수행을 한다는 설정 외에 법해 선사라는 지극히 도력이 높은 스님의 존재, 그것도 모자라 결정적인 순간에 등장하는 관세음보살 등. 한편 도가적 분위기도 무시할 수 없다. 백소정의 정체를 처음으로 허선에게 일깨우는 도사, 의식을 잃은 허선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백소정이 영약을 구하려고 찾아가는 신선들이 사는 선산 등.

 

허선과 백소정이 대체로 점잖고 온화하며 수동적인 인물인 데 비해, 소청은 이야기에 활력과 생기를 불어넣는 인물이다. 푸른 뱀이 변신한 소청은 비록 도력에서는 백소정에 딸리지만 호수의 물과 바람을 자유자재로 부릴 줄 아는 능력자다. 그녀가 허선과 백소정을 엮어주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은 지극정성이다. 성격이 직설적이고 자유로우면서도 화려한 언변에 뛰어난 재치를 겸비한 매력적인 캐릭터라고 하겠다.

 

언니, 설마 우리에게 며칠 더 함께 살 수 있는 인연이 없는 것은 아니겠죠?”

물론 있지. 그러나 인연이란 영원히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니야. 만나야 하는 인연이 있다면 우리는 언제인가 또 만나게 될 거야!” (P.36)

 

편자도 그렇고 작중 인물들도 그러하고 인연의 의미를 강조한다. 인연은 불법의 종교적 의미로서도 중요하지만, 세속적 관점에서도 깊은 중요성을 지닌다. 허선과 백소정의 만남은 전생에서부터 예정된 인연이었고, 백소정과 소청의 만남도 마찬가지다. 허선과 백소정의 결합은 인연의 때가 이르지 않았음에도 무리하게 앞당긴 부작용으로 인해 법해 선사가 상황 정리에 나서게끔 하는 빌미가 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연분이 없다는 것입니까?”

있지요. 분명 연분은 있습니다만 그녀가 수행을 다 끝내고 진정한 깨달음을 얻었을 때 두 사람은 서로 만나 함께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은 때가 아니랍니다.” (P.157)

 

자체로서는 종교, 사랑, 그리고 환상이 결합한 흥미로운 전설이지만 납득이 가지 않는 설정으로 설득력이 떨어지는 대목도 있다. 관세음보살과 법해 선사는 시종일관 백소정의 잘못을 지적한다. 천년 수행을 해서 깨달음을 얻어야 하는데 수행을 도중에 파하고 인간 세상에 침입하였다고 말이다. 여기서 묻고 싶다. 흰 뱀인 백사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천년이란 긴긴 시간을 엄격한 수행을 해야 하는가를. 수행 끝의 깨달음은 백사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를. 이 책에서 관련하여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는다. 다만 수행은 무조건적이 절대적인 의미를 지니며, 이를 중도에 깨는 것은 금기이기에 무슨 일이 있어도 계속되어야 한다. 백소정이 남편과 아이와 영원히 헤어지더라도 말이다. 그리고 단오절에 소청은 산속으로 들어가 숨는다. 그 덕분에 허선은 백소정에게 웅황주를 마시게 할 기회를 얻는데, 소청이 숨어야 하는 연유는 이 책에서 알려주지 않는다.

 

관세음보살은 영단 한 알을 꺼내주며 말했다.

너희들이 이미 부부의 연을 맺었으니 어쩔 수 없구나. 내가 한 번만 도와주지. 이 영단을 그에게 먹이면 바로 깨어날 것이다. 그리고 너는 인간 세상에 오래 머물면 안 된다. 빨리 산속으로 되돌아가서 하던 수행을 계속 하여라.” (P.149)

 

백사전 전설은 불교적 관점에서는 해피엔딩이다. 백사도 원래 수행으로 돌아가고, 청사 역시 수행의 길에 나선다. 법해 선사는 허선을 출가승으로 만들 계획을 품고 있다. 모두가 불도의 세계에 들어서니 참으로 좋은 일이다. 인간적 관점에서 바라보면 전혀 다르다. 요괴와 인간이라는 존재의 형태를 떠나 부부간의 사랑, 부모와 자식의 천륜을 냉혹하게 끊어버리는 종교의 냉혹함이 두드러진다. 천년 수행이 과연 백사의 자발적 의사인지 알 수 없다. 인간 세상에서 숨어버리려는 청사는 법해 선사에 잡혀 반강제적으로 수행의 길에 들어서게 된다. 허선의 의사에 관계없이 선사는 허선을 출가승으로 만들 생각을 품고 있다.

 

독서 대상을 아동을 염두에 두고 이야기를 엮었기에 원작 전설의 풍요로운 원형이 얼마만큼 유지되었는지 알기 어렵다. 백사전 전설의 줄거리와 중요 사건들이 대강이나마 들어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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