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가 <옛 지도를 들고 떠나는 걷기 여행 특강 2>라고 되어 있다. 전작인 <옛 지도를 들고 서울을 걷다>의 후속작임을 강조하는 뜻이다. 이 책이 여타 답사 서적과 차별되는 지점은 지은이가 역사지리학자라는 데 있다. 역사와 지리, 내가 깊은 관심을 두고 있는 대표적인 두 영역이다. 양자의 결합이라면 매우 흥미로울 수밖에 없다.
저자는 후속작에서 서울 도성 밖을 나선다. 경계가 사대문을 벗어나 주변으로 확산하는 과정은 한양이 서울로 변하는 근현대사와 일맥상통한다. 오늘날 서울의 근원이 사대문 안쪽이라는 사실은 변치 않지만, 서울의 실질적 중심부는 더는 아니다. 도성 밖의 면적과 거주하는 인구만 헤아려 보아도 서울 사람 대부분은 성 밖 주민들이다. 성 밖의 서울을 살펴볼 이유는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서울은 넓다’라는 관점으로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서울의 역사적 변화과정은 공간적으로 넓어지는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넓어지면서 한양과 달라진 도시가 서울특별시입니다. (P.11)
천만 인구가 서울에 거주한다. 수도권이라 지칭하는 서울에 기대어 사는 인구까지 합치면 어마어마한 숫자다. 이들은 서울의 역사에 대하여 무엇을 알고 있는가. 조선 시대 사대궁궐을 열거하고, 사대문의 이름을 언급할 줄 안다면 박식한 축이다. 자신이 사는 지역-서울에는 25개 구가 있다-에 대해서는 아마 거의 모를 것이다. 내가 나고 자란 고향의 이미지라기보다 단순 거주와 재테크의 관점에서 자신이 사는 집을 바라보는 게 요즘 세태다. 자신이 임시로 머무는 공간에 굳이 관심을 기울일 까닭이 없다.
지리학의 관점, 공간과 장소의 맥락에서 서울을 나누어 봅시다. 저는 서울을 네 영역으로 나눕니다. 사대문을 기준으로 한 도성 안, 한성부에 포함되었지만 도성 밖에 해당하는 지역, 한강, 현재 서울특별시에 포함되는 조선시대 경기도 지역으로 나뉠 수 있습니다. (P.20)
서울을 역사적으로, 지리적으로 독자에게 친밀하게 소개해주는 게 이 책의 미덕이다. 내가 사는 동네가 조선 시대에는 어떤 이름으로 불렸고, 시대의 흐름에 따라 이합집산하다가 현재의 모습이 되었는가를 저자는 차분한 어조로 들려준다. 일종의 향토사적 접근이 될 수도 있겠다. 여하튼 조선 시대의 한양과 비교하면 오늘날의 서울은 매우 거대한 도시다. 서울의 팽창과 함께 경기도는 계속 축소되었다. 그게 아주 오래전이라 아니라 좀 멀게는 1960년대에서 가깝게는 1980년대까지 이어졌다. 서울 끄트머리의 동네는 대부분 최근에야 특별시에 편입된 곳이다. 한 끗 차이의 운이 서울과 서울 아닌 곳의 경계가 되었다.
25개구 이름이 서울의 모든 역사를 담고 있지는 못하지만, 서울이 어디에서 유래하였고 어떤 과정을 거쳐 현재의 모습이 되었는지를 보는 데는 구 명칭과, 언제 이 구가 생겼는지, 서울의 어느 방향에 있는지, 그 구에 어떤 건물이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P.26-27)
단순히 말로만 설명하면 와닿지도 않고 지루하기 마련이다. 저자는 지도를 활용한다. 해당 지역을 소개할 때면 서두에 남아있는 대동여지도, 도성도, 지방 지도 등을 활용하여 옛날의 지역 모습을 가시적으로 보여준다. 여기에 현대 지도와 사진 자료를 곁들여 시대적 간극을 비교하여 독자의 머릿속에 공간적 인식을 일깨운다.
아무래도 지명에 얽힌 유래를 비로소 알게 되고 새삼 머리를 끄덕이며 당대와 현재의 모습을 머릿속에서 비교할 때 흥미로움이 더 커진다. 몇 가지를 언급하면 경마장이 과천으로 옮겨지기 전에 뚝섬에 있었던 까닭이 우선 그러하다.
중랑천 동쪽의 뚝섬 일대에 많은 목장이 있었습니다. 옛 문헌에 양주 살곶이 목장이라고 적힌 곳이 현재의 중랑천변 뚝섬 일대입니다. 한양대에서 건국대 사이에 옛 목마장이 있었다고 보면 됩니다. 경마장이 과천으로 옮겨지기 전까지 경마장은 서울숲에 있었습니다. (P.84)
성동구 지역에 응봉이란 지명이 무슨 뜻일까 궁금하게 여긴 적이 있었다. 이 책에서 비로소 알게 되었다.
뚝섬과 아차산 일대는 조선시대에 왕의 사냥터 역할도 하였습니다. 도성과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고 숲과 산이 있으니, 왕이 매사냥하기에 적합했을 듯합니다. 당시 최고의 전통적인 여가는 매사냥이었습니다. 응봉, 매봉 같은 지명은 매사냥과 관련이 있습니다. (P.86)
경기도 시흥시와 서울시 금천구의 시흥동을 계속 헷갈렸다. 무슨 인접한 지명을 혼동하게끔 동일한 명칭을 사용하는지 한심해한 적도 있다. 저자에 따르면 금천과 시흥은 원래 같이 지역이었는데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갈라지면서 비슷한 이름을 사용하게 되었다고 한다. 서울 동작구에 보라매공원과 보라매병원이 있다. 볼 때마다 이름이 특이하다고 생각하였다. 이 역시도 이 책을 통해서 유래를 확인할 수 있었다. 여의도공원의 전신이 국제공항이었다가 공군기지였으며, 보라매공원에 공군사관학교가 있었다는 사실도. 역시 뭐든지 사유는 있게 마련이다. 그것을 알면 흥미롭고 더욱 친근하게 다가온다.
지금은 잊힌 옛 서울의 흔적도 지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저자는 저자도(楮子島)를 알려준다. 이름만 섬인 뚝섬의 동남쪽에 있는 진짜 섬이었는데, 강남개발 당시 이 섬의 흙을 퍼서 사용했기에 사라지고 말았다는 비운의 섬이다. 당시의 기준으로 보면 불가피하였겠지만 오늘날 시각으로 보면 그 섬이 남아있었다면 어떠했을까 궁금하고 아쉽다.
“한양 남쪽 7리쯤 되는 곳에 용산호가 있다. 옛날에는 한강의 본줄기가 남쪽 기슭 밑으로 흘러가고 또 한줄기는 북쪽 기슭 밑으로 돌아 들어와서 십리나 되는 긴 호수였다. 서쪽으로는 염창의 모래 언덕이 물을 막아 물이 흐르지 않아 그 안에서 연(蓮)이 자랐다.” (P.120)
<택리지>의 기록이다. 용산 지역에 길다란 호수가 있었다니 도저히 상상이 안 간다. 한강의 물길이 이렇게 큰 변화가 있었다니 말이다. 한강도 황하만큼이나 다스리기 어려운 존재였나 보다. 석촌호수가 그걸 알려준다. 나는 석촌호수가 완전한 인공호수인 줄 알고 있었다. 1895년대의 잠실 인근 지도를 보면서 깜짝 놀랐다. 오늘날의 한강 흐름과는 전혀 달라서였다.
1925년 을축년 대홍수 이후에는 위쪽으로 더 큰 물길이 지나갑니다. 이 물길이 현재 잠실 북쪽으로 지나는 한강입니다. 옛 물길이었던 곳이 지금의 석촌호수입니다. 옛 물길은 남쪽으로 흘렀기에 잠실은 한강 북쪽의 경기도 양주군에 속한 지역이었습니다. (P.197-198)
원래 섬이었던 잠실은 1970년대 한강 개발을 통해 내륙이 되었다고 하며, 그때 막은 물길이 석촌호수였다고 한다. 불과 수십 년 후 잠실과 비교하면 상전벽해가 전혀 과장이 아니다.
솔직히 이 책을 들고 서울 곳곳을 걷고 답사하기는 무리다. 도성 안과 비교하면 걷기에 광활한 지역이다. 그저 일부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거주하는 주변 정도만 둘러봐도 충분하다. 나머지는 우연히 해당 지역에 갔을 때 그 지역에 대한 기억을 떠올려도 의의가 충분하다고 본다. 저자의 말처럼 지나가 버린 과거를 되돌릴 수 없으며, 옛날의 기억에만 집착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어쩌면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동대문 밖이 예전에는 모두 경기도 양주였다는 사실, 오늘날 강남은 경기도 과천과 광주에 속한 지역이었다는 사실 등이다. 한양에서 서울로의 확장은 우리나라에 자본주의가 확산하고 지배이념으로 자리 잡은 시기와 맞물린다. 서울과 비서울, 강남과 비강남으로 첨예하게 이해관계가 엇갈리는데 과거에는 한 지역이었다는 공유 기억이 지역 간 갈등 완화에 이바지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것이 옛 지도를 보고 옛 추억에 잠겨 회고적 관념으로 퇴행하지 않는 동시에 서울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서도 유의미하리라는 생각이다.